The Baron' Son has Paranormal Abilities RAW novel - Chapter (211)
남작 아들은 초상능력자-211화(211/252)
제211화
제11편 준비(10)
루이드와 세반 공작 사이에서 기묘한 기류가 흘렀다.
상황을 모르는 건 엘빈 포커드 혼자뿐인 것 같았다.
“안으로 드시겠습니까.”
루이드의 말에 셜린 세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집무실에 들어설 때까지 잠잠했다.
“그래서요?”
문이 닫힌 뒤, 곧장 본론을 꺼내는 루이드의 말에 셜린은 눈을 빛냈다.
“그래. 그대일 수밖에 없지. 그런 귀인이 둘이나 나타날 수는 없지. 역시 그대뿐이었어.”
붉은 눈이 루이드의, 아니 기사 D의 금발을 훑어보았다. 그리고 그 아래의 푸른 눈을 똑바로 마주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요.”
“나는 지금껏 그대가 무르익기를 기다렸다.”
“예?”
루이드는 세반 공작의 눈에 깃든 묘한 광기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 능력이 있다면 그대는 더 강해질 필요가 없어. 그 능력이면 충분하다.”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정확하게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만.”
“진실을 보는 눈을 가지고 있지?”
셜린 세반 공작이 루이드에게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왔다.
“…….”
“이곳에서도 차원의 문을 닫았다며.”
공작의 눈빛은 거의 애원하는 것 같았다.
‘아아, 그렇군. 그 일행 중에 세반의 사람이 있었던 건가.’
루이드는 소폴레리온의 저주, 온몸이 흰 사내가 지켜야 했던 차원의 문을 닫았다.
너무 급했던지라 병사들의 앞에서 능력을 쓰는 모습을 드러내놓고 사용했다.
‘생각해보면, 의외로 마음껏 사용한 것 같기는 했지만.’
오히려 지금에 와서야 세반 공작이 눈치챘다는 점이 놀라울까.
‘아니, 알고도 계속 기다렸다는 건가? 내가 굳이 D의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왜?’
루이드가 말이 없자, 공작이 한 걸음 더 다가왔다.
“조금 허술하기는 해도, 그대를 이해해. 진정한 본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야 할 때도 있는 거지. 그대는……. 그래, 아직 어리니까. 그럴 수 있어.”
세반 공작이 중얼거렸다.
“더는……. 기다릴 수가 없어. 나는, 인제 그만 돌아가고 싶으니까. 더는 참을 수 없어. 그 힘이 필요해.”
그가 루이드의 팔을 덥석 잡았다.
“아니, 그러니까! 제대로 설명을…….”
“차원의 문을 열어줘.”
그가 속삭였다.
목소리가 마치 뱀처럼 루이드의 귓가에 파고들었다.
순간적으로 목 뒷덜미가 오싹해졌다.
평소에 듣던 그의 목소리가 아닌 것 같은, 불쾌한 이질감.
“뭐라고?”
루이드는 거칠게 셜린 세반을 떼어내었다.
게다가 하는 말은 정상이 아니었다.
차원의 문을 열어달라니?
말이나 되는 일인가?
지금 막 소폴레리온의 차원 문을 닫은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았는가.
셜린 세반은 얼마 전 카이린이 왔을 때 함께 이야기를 나눴으니, 그 문이 어떤 것인지 알았다.
물론 루이드는 그 문에 관하여서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았다.
그저 저주가 깃들었고, 그 때문에 소폴레리온에 악재가 계속되고 있었다는 정도만 보고했다.
하지만 아마도…….
루이드의 예상으로는 아마, 셜린 세반 공작은 그 차원 문의 진짜 정체에 관하여 알지도 몰랐다.
그런데 그런 문을 다시 열어달라니?
루이드는 슬슬 화가 치밀어 올랐다.
“미친 겁니까?”
“내가 미친 건 아주 오래전이야. 루이드 포커드. 그대가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오래전.”
그의 섬뜩한 목소리가 땅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루이드는 믿을 수 없었다.
정말로, 눈앞에 있는 그가 셜린 세반 공작이 맞는가?
아찔한 감각은 거짓이 아니었다.
바로 앞에 있는 그의 얼굴이, 마치 새카만 밤처럼 보였다.
“무슨…….”
셜린 세반은 조금 전과는 전혀 다른 존재가 되어 있었다.
루이드는 자신의 땅에서, 방에서, 공간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이건 마치……소폴레리온 숲의 차원 문이 열렸을 때와 같은 감각.
“당신 뭐야.”
루이드는 온몸의 기운을 바짝 세웠다. 언제든지 반격할 수 있도록.
아니, 사실 이미 반사적으로 스킬 금강불괴가 발동되어 손끝에서부터 오리할콘으로 뒤덮이는 중이었다.
새카매진 셜린의 얼굴과 은은하게 반짝거리는 루이드는 마치 밤과 낮처럼 대비되었다.
“그대의 마법사가 깨어나지 못하고 있지?”
“…….”
루이드는 셜린 세반의 입에서 나온 그 말이, 지금까지 당했던 그 어떤 공격보다 날카롭고 아프게 느껴졌다.
“내가 그 이유를 알지. 어쩌면 도와줄 수도 있겠어.”
“당신 뭐냐고 물었어.”
루이드는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더욱 단호한 말투로 말했다.
“보고도 모르겠나? 그대가 예상하는 바로 그대로이다.”
루이드는 눈을 가늘게 떴다.
‘내가 통찰의 눈을 사용하기를 원하고 있군.’
셜린 세반 공작의 새카맣게 변한 얼굴에 둥둥 떠 있는 것 같은 눈은 기대를 한껏 품고 있었다.
흰자와 붉은 눈동자가 무척이나 간절해 보였다.
‘그러니까 더 해주기 싫은걸.’
루이드는 통찰의 눈을 사용하기 전에, 그를 좀 더 자세히 관찰했다.
조금 전까지는 너무나 놀란 탓에 그의 겉모습을 훑어보기 바빴다.
통찰의 눈을 사용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그의 기운.
얼마 전 소폴레리온에 방문했을 때는 전혀 느끼지 못하던 것이었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숨길 수 있었을까.
‘비슷하다. 이건, 차원 문 너머의 것들과 비슷해.’
마치 셜린 세반 공작이 차원 문 너머에, 오래된 것들과 같은 결을 가진 존재라는 듯이.
‘그렇다면 인간이 아니라는 건가.’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눈앞에 있는 왕족이. 카이린의 남동생이자, 왕국의 공작이.
인간이 아니라고?
오래된 신들과 같은 존재라고?
“차원 문 너머의 것들과 무슨 관계야.”
루이드의 말에 셜린 세반 공작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러니까 정확히는 밤하늘처럼 검어진 얼굴에서 입이 있을 자리가 쫙 갈라져, 사람이 웃는 것처럼 표정을 만들어냈다.
“역시. 제대로야.”
그는 어깨를 잘게 떨며 웃었다.
카이린 세반과는 거의 쌍둥이처럼 닮아서, 객관적으로 봐도 미인이었던 공작의 얼굴이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섬뜩한 모습이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당신은…….”
치덕, 치덕.
루이드에게 떠밀려진 셜린 세반 공작이 다시 천천히 다가왔다.
그의 발소리는 잔뜩 젖은 사람의 것처럼 들렸다.
“그건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이지. 하지만……. 그래, 그대가 궁금해할 줄 알았어.”
기괴하게 비틀린 셜린 세반의 얼굴이 다가왔다.
눈을 마주치고 있기도 어려울 정도로 소름이 끼치는 광경이었으나, 루이드는 어쩐지 위험하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모든 것이 충격적이고, 이해되지 않는 이 상황에서 오히려 강렬한 호기심이 일었다.
“그대는 이야기를 좋아하니까.”
셜린 세반은 다시 루이드의 팔을 쥐었다.
싸늘한 감각이 팔을 타고 올라왔다.
‘페르디날. 그놈과는 다른 느낌의 차가움과 불쾌함이야.’
루이드는 인상을 찡그리면서도 이번에는 그를 내치지 않았다.
“나는 아주 오래전에 이곳으로 유배당했다.”
유배. 루이드는 염증을 느꼈다.
그래서 하늘의 것들에게도, 땅 아래 다른 차원의 오래된 것들에게도 이 세상은 감옥이라는 것인가.
자기가 사는 곳을 감옥 취급하는 것이 기쁠 리가 없었다.
“이 땅에 생명이라는 것이 존재하기 이전부터, 인간이 존재하기 이전부터.”
그의 축축한 목소리에서 끓어오르는 분노가 느껴졌다.
“나는 나를 내쫓은 놈들에게 복수해야 해.”
그것은 이내 슬픔으로 뒤바뀌었다.
“놈들이 부순 내 왕좌를 되찾고, 나의 관을 돌려받아야 해. 응당 내가 받아야 할 영광을.”
셜린은 루이드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그저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것처럼 두서없이 말을 늘어놓았다.
“배반자들의 목을 베고, 영원한 비극과 고통 속에 몰아넣어야 해.”
말들이 주문처럼 느껴졌다.
너무 오래된 감정들이 엉켜 본래의 모습을 잃어버린 것 같은, 형태만 어렴풋이 남아있는 것 같은.
망령의 주문 같은.
루이드는 고민했다.
‘차원의 문을 열라고 해도…….’
이번 소폴레리온의 차원 문을 닫을 수 있었던 건 이브의 도움 덕분이었다.
이브와의 연결이 성공하지 않았다면, 차원 문을 닫을 수 있었을까? 분명히 실패했을 터였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살아있을 수 없었을지도 몰랐다.
‘분명 내가 닫기는 했어. 하지만 다시 하라고 한다면…….’
확신이 들지 않는 것이다.
마치 본능처럼 깨우쳐지는 감각. 루이드는 이브가 알려준 그 감각 덕분에 문을 닫았다.
문을 닫는 방법을 설명하고자 한다면, 스스로 정의할 수 없었다.
다시 제어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도 없었다.
‘게다가 애초에 여는 방법 같은 건 알지도 못하고.’
닫는 것도 극적으로 해냈다.
다시 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셜린 세반이 말했다.
아샤라가 깨어나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고. 그리고 그녀를 깨울 수 있다고.
그렇다면 루이드가 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그에게 동조해 아샤라를 깨울 방법을 찾는다.
“아샤라가 깨어나지 못하는 방법에 관해서는 어떻게 알고 있지?”
“이제 좀 구미가 당기는 모양이군. 그래. 그대도 정말이지, 지독하군. 이야기라면 사족을 못 쓰니.”
셜린은 아샤라를 생각하는 감정 이전에 루이드가 느꼈던 호기심을 눈치채기라도 한 듯 대놓고 비아냥거렸다.
“하지만 이해해. 나도 이 오랜 시간을 버티는 동안, 참으로 많은 이야기가 필요했어. 곧 질려버렸고, 곧 무기력해졌지만.”
세반의 힘없는 웃음소리가 어느새 집무실 안을 메웠다.
“어떤 형태를 유지하는 것도, 어떤 삶을 살아가는 것도, 이야기를 만들고 듣고 찢고 변화시키고. 그 모든 것들이……. 하지만 나는 포기할 수 없었어. 놈들이 원하는 대로 이곳에서 썩어가며 흩어져버릴 수 없었어. 부서질 수 없었어.”
루이드는 그가 잡은 팔이 이번에는 뜨겁다고 생각했다.
“그게 놈들이 원하는 일이니까.”
그의 붉은 눈이 이글거렸다.
어째서일까.
루이드는 순간, 그가 정말로 그 오래된 것들과 같은 존재일까? 의심했다.
셜린의 눈동자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고, 아직 살아 불타고 있는 것은 너무도 이 땅 위에 살아가는 생명과 같은 기운을 내고 있었다.
그리고 새카맣게 변했던 그의 얼굴도, 점점 다시 루이드가 알던 본래의 셜린 세반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카이린을 닮은 반듯한 이목구비와 탈색된 것 같으나 윤기가 흐르는 백금발.
“당신이 어떤 존재든 상관하지 않아. 하지만 확실히 해 줘야겠어.”
루이드는 단호한 말투로 말했다.
“난 내 사람들을 보호한다. 당신 때문에 그 누구라도 다치는 걸 원하지 않아.”
“당연하지. 그대가 제대로 문만 열어준다면, 그대의 마법사가 회복할 방법은…….”
“아샤라뿐만이 아니야.”
셜린이 루이드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 눈을 가늘게 떴다.
“내가 말한 내 사람 중에는 카이린 전하도 있다.”
그리고 그 뒤에 나온 루이드의 말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붉은 두 눈이 크게 뜨여졌다.
“카이린…….”
셜린 세반은 루이드에게 뺨이라도 맞은 듯 멍한 얼굴로 그녀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역시……. 어쩌면 생각보다 간단하게 끝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루이드는 세반 공작의 눈을 들여다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