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ron' Son has Paranormal Abilities RAW novel - Chapter (213)
남작 아들은 초상능력자-213화(213/252)
제213화
제13편 달의 이야기(2)
“괜찮아요?”
달빛처럼 빛나는 머리카락을 가진 인간이 그에게 말을 걸었다.
그는 눈을 깜빡였다.
“이런 데서 자다가는 죽을 거예요.”
그는 그제야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어떤 상황인지 살펴보았다.
졸졸졸.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고, 하늘은 검고 달은 밝았다.
달이 기운 위치로 보건대 해가 진 지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다.
주위는 온통 풀과 나무였다. 벌레가 우는 소리는 가까이에, 짐승이 우는 소리는 멀리서 들렸다.
깊은 숲속인 것 같았다.
문제는 그가 시냇물에 반쯤 몸을 걸치고 쓰러져 있었다는 거였다.
“처음에는 시체인 줄 알았어요.”
인간은 두려움이라고는 없는 것처럼 그의 옆에서 조잘거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니, 숨이 붙어 있는 거예요. 정말 운이 좋죠.”
“내게 다가오지 마라.”
“어머, 귀하신 분이신가 봐요? 하지만 용서해 주세요. 세상에서 제일 중한 것은 목숨이니, 일단은 상처를 치료하는 게 우선이죠.”
날이 선 음성에도 인간은 전혀 겁내지 않았다.
왜일까? 그는 땅 아래 차원의 공포 그 자체인데. 인간은 이해하지 못할 미지의 악.
살아있는 불행. 그 자체일 터인데.
“당장 꺼져.”
그는 자신의 진짜 얼굴을 내보였다.
인간과 닮았던 얼굴이 새카맣게 물들었다.
살아있는 것들은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는 그 모습을.
인간이 그 모습을 본다면, 백이면 백 두려움에 도망쳤다.
“꺄악!”
가까이 다가와 귀찮게 하던 인간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뒷걸음쳤다.
떨리지 않던 가녀린 몸이 벌벌 떨렸다.
그리고 작은 인간은 어두운 수풀 사이로 사라졌다.
‘흥, 그것 보라지.’
그는 눈을 살짝 감았다.
귀찮은 것이 사라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몸이 왜 이렇게 다친 것인지를 떠올렸다.
기억이 제대로 나지 않았다. 전쟁 한 가운데 있었던 것 같다.
인간들이 서로를 죽이게 하였던 것 같다.
피를 밟고, 시체들을 밟고, 비명 사이를 누볐던 것 같다.
‘약해지고 있는 건가. 모습이 허물어지고, 다시 생성되면서.’
애초에 이 땅의 존재가 아니었다.
별의 주인도 바뀌었다.
새로운 어린 신은 아직 그의 존재를 모르는 것 같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세계 자체가 그를 반기는 것도 아니었다.
원래 영원을 사는 존재였던 그지만, 이곳에서는 그 힘이 완전할 수 없었다.
유배지란 그런 것이었다.
낡고 헤지고 닳게 되는 곳.
그것이 그의 운명이었다.
분노는 그를 살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지만, 결국 그 모든 것이 사그라지면 재만 남게 되리라.
몸이 너무 무거웠다.
분노도, 증오도, 슬픔도, 괴로움도 모두 연기처럼 흐릿해지는 기분이었다.
지금 포기하면, 모든 것이 사라질 것만 같은.
이대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사라진다면…….
바스락.
인기척에 눈을 떴다.
“……?”
그는 눈을 의심했다.
어느새 떠오른 햇살이 내리쬐는 나무 그늘 사이로 인간이 있었다.
“어, 어제는 미안했어요.”
미안하다고? 무엇이?
“그런 상태인 사람은 처음 봐서…….”
인간은 머뭇거리면서 아주 천천히 그에게 다가왔다.
“난 사람이 아니야.”
그는 신경질적으로 대답하고는 흠칫 놀랐다.
이 목소리가 새로운 신에게 들린다면 곤란했다. 약해진 상태로는 어린 신에게 사냥당해 존재가 지워지리라.
“제발 저리 가!”
“다친 사람을 두고 그냥 갈 순 없어요!”
“사람이 아니라니까!”
가만히 살펴보니, 인간이 들고 온 것이 보였다.
작은 바구니에 풀과 천이 담겨 있었다.
“간밤에 걱정했어요. 내가 그대로 도망쳐 버려서, 당신이 죽었을까 봐요.”
“무슨…….”
인간은 다가와서 그의 팔을 잡았다.
파앗! 그는 거칠게 인간을 뿌리쳤다.
작은 몸이 밀려 벌렁 뒤집혔다.
“악!”
흙과 풀, 나뭇가지 범벅이 된 인간은 웅크려 있다가 고개를 확 들었다.
그는 인상을 썼다. 그리고 다시, 인간을 쫓아버리기 위해 자신의 진짜 모습을 조금씩 보였다.
스멀스멀…….
일렁이는 어둠이 피어올랐다.
눈앞의 인간이 매우 놀라는 것이 보였다.
“……?”
그는 당황했다. 인간은 분명히 겁을 먹었는데도 어젯밤과 같이 단번에 도망가지 않았다.
“쉬이…….”
마치 자신을 달래듯, 짐승을 대하듯. 팔을 뻗고 천천히 다가왔다.
대체 왜 저러는 거야.
그는 짜증이 확 치밀었다.
그는 너무 지쳐있었다. 아무런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았다.
눈앞에 있는 인간을 죽이지 못할 정도로.
게다가 더 모습을 드러냈다가 언제 이 땅의 신에게 정체를 들킬지 알 수 없었다.
꿈틀대던 어둠 속에서 인간을 노려보던 그가 기운을 거두어들였다.
“하아…….”
그의 깊은 한숨과 함께 인간은 밝은 표정이 되었다.
그러더니 냉큼 곁으로 다가와 그를 닦이고 치료하기 시작했다.
‘저런 것이 내게 듣겠나. 인간도 아닌데.’
하지만 그는 더는 인간을 내칠 기력이 없었다.
그저 가만히 하려는 대로 두었더니, 인간은 약초를 으깨 그의 상처에 바르고 깨끗한 천으로 묶었다.
시냇물을 떠 그의 입에 흘려 넣었다.
나무 열매를 따 그의 입 안에 넣었다.
씹지 않고 가만히 있자, 인간은 그의 턱을 억지로 움직여 씹게 하였다.
그는 마지못해 그것을 삼켰다.
맛도 느끼지 못하는 것을.
그러면서 그는 인간을 관찰했다.
가만히 보니, 그 인간은 젊은 여성인 것 같았다.
“왜 이렇게 하는 것이냐. 내가 귀족의 아들이라도 되는 것 같으냐? 그래서 인생을 한 번 펴 보려고?”
“하?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자기 입으로 인간이 아니라고 하지 않았어요?”
“…….”
그는 입을 다물었다.
여인이 자기 말은 죄다 무시한 줄 알았는데 기억하고 있다니, 다행인 건지 아닌지 고민했다.
“뭐, 이렇게 인간의 모습을 할 수 있으니……. 어딘가에서 귀족의 아들로 계실 수도 있겠죠.”
“상상력이 뛰어나군.”
그건 빈말이 아니었다.
그가 지금껏 봐 오기로, 이 땅의 인간들은 대체로 상상력이 뛰어났다.
그래서 본 적이 없는 신들을 믿고 경배하고 섬겼다.
물론 신들을 직접 본 세대도 있었지만…….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록 이곳을 찾는 병사들이 없었는걸요. 그런 걸 보면, 쫓기는 망국의 왕자? 이런 것도 아닌 것 같고…….”
그녀는 작은 입을 조잘거리면서 자기 생각을 늘어놓았다.
그는 가만히 그 말을 들었다.
이상하게도, 그녀의 말이 크게 거슬리지 않았다.
왜일까? 나약하고 미천한 생명의 목소리가.
자신을 위로하는 것 같았다.
그때 처음으로 세상이 다르게 느껴졌다.
그녀의 목소리 뒤로 들리는 새들의 소리가. 바람 소리가. 키가 큰 나무의 잎새 사이로 비치는 햇살이.
풀과 이끼로 푹신한 숲 바닥이. 주위를 가득 채운 꽃과 곤충과 흐르는 시냇물이 눈에 들어왔다.
이 별은 원래 이렇게 아름답던가.
아름다움.
그런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에게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근원에서부터 지금까지, 그를 둘러싸고 이루는 모든 것 중에 그런 것은 없었다.
그랬는데…….
“무서운 모습을 보니, 몬스터인가? 지나는 모험가의 말을 들어보니, 몬스터 중에도 인간처럼 머리가 좋아서 말도 통하고 친화적인 녀석들이 있대요. 하지만 인간 행세를 하는 것들이 있다고는 못 들었는데.”
인간처럼 머리가 좋다, 라는 그녀의 말에 그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가 생각했을 때, 인간들은 그리 머리가 좋지 않았으니까.
“뭐예요? 그 비웃음은?!”
그녀가 발끈 화를 냈다.
“난 다른 건 몰라도 바보 취급하는 건 싫어해요!”
“왜?”
“그, 그야…….”
그녀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개졌다.
“그야……. 아무리 못 배워도 바보는 아니니까요.”
우물거리면서 말하는 것이, 역시나 그가 말했듯 그녀는 가난한 집의 여식인 것 같았다.
이렇게 자신을 치료하러 나올 시간이 있는 것을 보니 노예는 아니겠다.
평민이나 가난한 귀족의 딸인가.
그는 후자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평민이라고 생각하기에 그녀는 너무나 아름다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평민이라고 해서 아름답지 말라는 법은 없었으나, 아무래도 고된 노동 속에 피부가 상하는 일이 많았다.
그러니까 그녀의 피부는 참으로…….
거기까지 생각하던 그는 자기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
왜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건가.
고작 이런 인간에게 관심이라도 생긴 것일까.
이런 비천하고 나약한 생명에게.
어린 신만 아니었다면, 그가 내쉬는 숨결에도 사그라져 죽을 시시한 것에게.
“그만 돌아가. 피곤하니까.”
그는 그녀를 쫓아내 버렸다.
그러나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그녀는 그를 찾아왔다.
상처를 치료하고 먹을 것을 주고,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는 그녀에 관하여 궁금한 것도, 궁금하지 않던 것도 다 알게 되었다.
그의 예상과는 달리 그녀는 평민의 딸이었다.
정확히는 숲지기의 딸이었다.
나무가 우거져 그늘이 가득한 이 숲에서 일하느라, 얼굴이 상할 일이 없었던 모양이었다.
아니면 타고났거나.
어쨌거나 그녀는 숲에서 열매를 줍고, 버섯을 따고, 나물을 채취하고, 천을 짜고 옷을 만들었다.
그리고 남는 시간에 그를 돌보러 와 주었다.
어떤 날은 그녀가 그에게 노래를 불러주었다.
그는 숲의 새소리보다 그녀의 노랫소리가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몸이 꽤 회복되고 있었다.
이제 떠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떠나지 않았다.
“당신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나는…….”
그녀가 물었을 때, 그는 할 말이 없었다.
인간들을 지켜봐 오고 그 틈에 섞여 살았지만, 사실 그들에 관해서 잘 몰랐다.
지금까지 그는 거의 원념의 상태로 있었다.
타고난 본능에 따라 존재하기만 했다.
폭력을 부르고, 이간질하고, 공포를 끌어오며.
“잘 생각이 안 나.”
그렇게 말하는 그를 한참 바라보면서,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더 묻지 않아?”
이때까지 봐 온 그녀의 모습은 늘 호기심이 많았다.
늘 숲 바깥의 이야기를 했다.
성과 용사의 이야기를 했다.
궁금한 게 많은 여자였다.
더 묻지 않냐고 물은 건 오히려 섭섭해서였을까?
“사람마다 숨기고 싶은 비밀이 있는 법이니까.”
“숨기는 비밀 같은 건 아닌데…….”
그는 눈치챘다.
그녀에게도 뭔가 숨기는 일이 있구나.
무엇일까?
한편으로는 놀랐다. 왜 그녀에게 섭섭함을 느끼고 궁금증을 가질까?
단순히 자신을 도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럴 수 있을까?
인간이 아니며, 인간을 이해할 수 없으며, 인간이 이해할 수도 없는 존재가.
‘너무 오랫동안 이 땅에 있었나.’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가 유배된 지로부터 무척 오랜 시간이 지났다.
생명들이 번성했다가 스러지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모른다.
심지어는 새로운 신이 태어날 정도로, 그는 오랜 시간 동안 이 별에서 지내왔다.
시간은 모든 것을 변하게 하는 법이다.
그도 변한 것이었다.
연약한 인간의 다정한 말에 마음이 동할 정도로, 연약한 것들과 비슷한 모양으로 변한 것이다.
“이름 정도는 기억나는 것 같지 않아요?”
“이름?”
“응, 이름.”
“…….”
“설마 이름이 없나?”
“그러는 그쪽은? 너도 알려주지 않았잖아.”
“어머, 그랬나?! 내 이름은 카린이에요.”
그녀는 미안하다는 듯 호들갑을 떨었다.
“이름이 없으면 내가 지어줄게요. 셜린. 어때요?”
“그게 뭐야.”
“그 뜻도 몰라요? 미인이라는 뜻이에요.”
“미…….”
그가 미간을 확 찌푸렸다.
“게다가 나랑 발음이 비슷해서, 꼭 가족 같지 않아요?”
그녀는 활짝 웃었지만, 그는 입술을 찌푸리곤 입을 다물었다.
어느 날은 해가 지도록 그녀가 찾아오지 않았다.
그는 홀연히 하늘 위로 솟아올라 빽빽한 숲 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솟아오른 작고 검은 연기를 보았다.
아마 그것이 모든 일의 시작이었을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