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ron' Son has Paranormal Abilities RAW novel - Chapter (215)
남작 아들은 초상능력자-215화(215/252)
제215화
제15편 달의 이야기(4)
그래, 루이드 포커드.
그만 있으면 차원 문을 열 수 있다.
그러면 이 모든 지옥은, 형벌은 끝낼 수 있다.
셜린은 거기까지 생각한 뒤, 계단에 주저앉았다.
당최 지옥이란 어디인가. 무엇이란 말인가.
* * *
엘빈 포커드가 털어놓은 이야기를 들으며 루이드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래서. 아는 게 그것밖에는 없단 말입니까?”
루이드는 엘빈이 세반 공작에 관한 모든 비밀을 털어놓길 바랐지만, 그가 아는 것은 정말 적었다. 이미 루이드가 쉬이 짐작하는 것들 뿐이었다.
“그래……. 애초에 나는…….”
엘빈은 다시 한숨을 푹 내쉬었다.
답답했지만, 루이드 역시 선뜻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애초에 엘빈이 그를 따랐던 이유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어쩐지, 갑자기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게 이상했지.’
엘빈 포커드는 루이드처럼, 태어날 때부터 마나 감응력이 없었다.
루이드보다 조금 나은 정도였으려나. 하지만 마법사가 되기에는 턱없이 적은 재능이었다.
포커드 남작은 그리 신경 쓰지 않았다.
자기 아들이라면, 기사가 되는 것이 응당 옳은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엘빈은 검술에 크게 관심이 없었다.
특출나게 뛰어난 재능이 있었다면 관심을 가졌을지도 모를까. 검술 역시 보통 정도의 실력이었다.
그래도 포커드 남작은 엘빈이 기사의 길을 걸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엘빈이 택한 것은 행정 공부를 하여 왕궁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가족이 멀리 떨어져 지내게 된 것이니 남작 부부는 섭섭해했지만, 루이드는 그런 둘째 형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어찌 됐든, 안주하지 않고 자기 상황을 이끌어나갔다는 거니까.
“나는……. 마법이 정말로 하고 싶었단다. 루이드…….”
축축해진 목소리의 엘빈이 고개를 푹 떨구고 있었다.
온갖 감정이 뒤섞여, 차마 동생 앞에서 고개를 들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공작님의 밑으로 들어간 거야. 마법사가 될 수 있다고 해서. 마법사로 만들어주겠다고 해서. 게다가 그분이 시키신 일들은, 그리 위험한 것도 아니었단다. 왕궁에 관한 정보를 전달해드리는 것 정도뿐이었어. 대부분은…… 카이린 전하에 관한 것이었고.”
“형님은 일반 행정 관리 아닙니까? 그런데 전하와 관련한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었습니까?”
루이드의 물음에 엘빈은 한숨을 푹 내쉬고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저 나만으로서는 접근하기가 어렵지. 하지만 루이드, 궁에 눈이 어디 나만 있겠느냐. 전하의 수발을 드는 가장 낮은 궁녀에서부터, 왕실 경호대까지, 공작님의 수족이 될 사람은 누구나 있었단다. 나는 그저 왕궁의 정보를 모아 전달해드리기만 해도 됐단다.”
그 정도만으로 없던 마법의 재능을 깨워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마, 어떤 식으로든 이 일이 조금이라도 잘못되어 틀어지면 죄를 뒤집어쓰는 쪽은 엘빈 포커드가 되었을 터.
아마 그런 거래가 오갔을 것이었다.
루이드는 착잡한 마음으로 형을 내려다보았다.
‘그래. 어린 시절이긴 했지만, 형님이 항상 마법 서적을 뒤적이던 걸 기억한다. 내 의식은 온전하게 성인의 것이었으니까.’
일찍 말을 깨치고, 무엇이든 빠르게 배우는 어린 루이드를 보면서 쓸쓸한 표정을 지었던 엘빈 포커드의 얼굴이 떠올랐다.
천부적으로 기사의 재능을 타고나고 인품 또한 아버지를 빼다 박은 듯한 첫째 형 케인.
태어나자마자 신동 소리를 듣는 눈에 넣어도 아깝지 않을, 사랑을 독차지한 막내 루이드.
그사이에 끼어 이도 저도 아니었을 엘빈.
충분히 성장하지 못한 엘빈에게는 고역이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포커드 남작 가문이 돈이 썩어나, 재능이 없는 둘째 아들을 마법사로 굳이 키울 수 있는 곳도 아니었다.
부족함 없이 귀족의 생활을 누려도, 사치를 부릴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 와중에도, 엘빈은 마법사가 무척 하고 싶었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행정 관리의 자격을 따내, 왕궁으로 들어와서도 그 꿈을 포기하지 못할 만큼 마법을 사랑했다는 것이다.
결국 잘 알지도 못하는 힘을 빌려서라도 이루고 싶을 만큼.
포커드의 이름을 위험에 내몰 수도 있는 외줄 타기를 할 만큼.
그것을 가족 중 그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을 만큼 외롭고 쓸쓸했다는 거였다.
그가 왕궁으로 떠난 것이, 비단 용기나 야망 때문만이 아님을 생각하니 루이드는 마음이 아팠다.
“루이드, 힘을 얻고 싶다는 것이 잘못된 일은 아니지 않느냐. 게다가 정말로, 맹세코! 누군가 해를 입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단다.”
“하지만 궁 안의, 특히나 전하의 일거수일투족을 궁 밖으로 빼돌린 것은 무척이나 위험한 일입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역모의 의혹에 휩싸일 수도 있었단 말이에요.”
“역모라니! 가당치도 않다! 그건 그저, 공작님께서 전하를 걱정하셔서 그런 것뿐이다. 전하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너무 깊으셔서 그런 거야. 본인이 궁에 가까이 있을수록 귀찮은 일만 일어난다고 말이야. 너도 알지 않느냐.”
그건 확실히 루이드도 알고 있는 내용이었지만.
“그리고 말했다시피, 공작께선……. 그 레온 크레이브 공작도 사실 소드 마스터가 될 수 있을 그릇이 아니라 하셨어.”
엘빈의 얼굴에는 묘한 희열감이 서려 있었다.
“그런데 자신이, 카이린 전하를 지키기 위해서 그를 도와준 것이라고.”
“그 말을 믿었습니까?”
말은 그렇게 했지만, 루이드는 속으로 깜짝 놀랐다.
레온 크레이브라는 소드 마스터를, 셜린 세반이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라니. 그런 일이 가능할 수 있을까?
믿기 어렵지만, 셜린 세반의 존재를 생각한다면 가능할지도 몰랐다. 그만큼 그는 이 세계에 정상적인 것이 아니었으니까.
게다가 루이드가 본 것이 있었다.
레온 크레이브의 내부 안에 있었던 보라색 마정석.
아주 고대의 힘이며 불길해야 온당하지만, 그렇지 않았던 기이한 힘.
그것의 근원이 사실은 셜린 세반 공작이었다는 것인가.
고대의 기술들, 고대의 지하 유적, 그리고 고대의 저주.
셜린 세반 공작이라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어려운 퍼즐이 맞춰지면서도 루이드는 어떻게 이 모든 일이 벌어진 것일까 혼란스러웠다.
“어떻게 믿지 않을 수 있겠어. 레온 크레이브 공작의 심장 옆에 심어진 마정석을 보여주셨는걸. 너도 그걸 봤다면……!”
“…….”
엘빈이 그것까지 봤다면, 셜린 세반을 믿을 수밖에 없었을 터였다.
그리고 지금 루이드 역시 엘빈 포커드가 하는 모든 이야기를 믿을 수밖에 없었다.
“봤습니다…….”
“봤다고?!”
“내 힘에 관해서 듣지 않았습니까. 그게 셜린 세반 공작의 작품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지만요.”
“역시 그렇구나! 그래! 네 힘! 대단하구나. 그래……. 공작님이 너를 잘못 본 것이 아니었어. 대단하구나……. 그래.”
엘빈은 얼떨떨하게 루이드를 칭찬했다. 거의 지금 무슨 말을 하는 지도 잘 모르는 것 같았다.
“그럼 레온 크레이브 공작 역시 셜린 세반과 거래했다는 거군요.”
“아……. 그것이 좀 달라. 그는 모른다고 했어. 셜린 세반 공작이 그에게 술법을 걸어주었다는 건……. 그러니까 정확히는……. 어린 시절에 만난 기이한 주술사가 셜린 세반 공작이라는 사실을 모른다는 거지.”
루이드는 한 번 더 기가 찬다는 듯 엘빈을 보았다.
아는 것이 전혀 없는 것 같으면서도, 이런 이야기는 또 이상하게 깊이 알고 있었다.
“그게……. 가끔 세반 공작님은 자기 이야기를 늘어놓을 때가 있어. 그분은……. 그러니까 굉장히 외로움을 많이 타시는 분인 것 같아.”
엘빈은 얼버무렸다.
‘결국 세반 공작을 이용할 방법은 카이린 전하뿐이라는 건가.’
그런데 어떻게 이용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결국 진짜 남매도 아니었던 거군. 쳇, 근처에 카이린 전하께서 계시면 좋았을 뻔했다. 이전에 이곳 소폴레리온에 왔을 때 이야기가 진행되었다면…….’
분명 그럴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던 건, 아샤라가 당한 일 때문이었다.
아샤라를 떠올리니 루이드의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
‘분명 세반 공작에게 전하는 소중한 사람이야. 틀림없다. 친남매라서라는 사유도 아니라면 분명 이유가 있는 거야. 그걸 알아낸다면…….’
물론 루이드에게는 그걸 알아낼 좋은 방법이 있었다.
“아, 그래. 공작님께서 항상 하시던 말씀이 있었어.”
엘빈은 무엇이라도 루이드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머리를 짜내다가 무릎을 치며 말했다. 그리고는 다시 금방 의기소침해졌다.
“물론 도움이 될만한 이야기인지 모르겠지만…….”
“무엇이든 지금은 필요한 이야기니까요. 부탁드립니다.”
“그래, 공작께서는……. 항상 집착하시던 게 있어. 하나는 네게 원하셨던 그 차원 문을 여는 것이고. 하나는…….”
엘빈은 자기가 이야기하면서도 이해하지 못한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카이린 전하가 자신을 기억해낸다면, 사실 아무런 것도 바라는 것이 없다고…….”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거야……. 나도 모르지.”
엘빈은 멀뚱히 루이드를 바라보았다.
수많은 세월을 살아온, 그래서 존재가 변해버릴 만큼 이 땅에 있었던 셜린 세반.
인간을 뛰어넘은 존재인 그가 인위적인 소드 마스터를 만들어가면서까지 집착하는 사람.
그 사람이 떠올려 주길 바라는 기억.
‘……설마. 내가 소설을 너무 많이 읽은 탓이겠지.’
* * *
“고, 공작님!”
엘빈이 방문을 벌컥 열었다.
눈을 감은 채 침대 위에 누워 있던 셜린 세반이 살짝 눈만 떴다.
“날 괴롭게 할 거라면 그만 가 줘. 포커드에게 하도 시달려서 말이야. 그와 연관된 것을 보면 지금 구역질이 나올 지경이거든.”
그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이제는 조그만 자극에도 쉽게 지쳐버리는 그였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어쩌다가 인간들에게 휘둘리는 존재가 되어버린 것일까.
그까짓 인간들에게.
어서 빨리 루이드 포커드가 차원 문을 열고 원래의 세계로 넘어가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이 혼란스러운 모든 것이 끝날 것이다.
그러면 편해질 수 있다.
무엇이 무엇인지 모를 이 괴롭고 외로운 시간이 끝날 것이다.
그저, 그곳으로 가기만 하면 된다.
저주가 끊어질 것이다.
셜린 세반의 머릿속에서 생각들이 서로 싸우고 죽이며 자신이 옳다고 소리 지르고 있었다.
그는 정말로 인내심을 잃었다.
이제는 정말, 끝내고 싶었다.
무엇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루이드 포커드가 도망쳤습니다!”
엘빈의 입에서 나온 말은 셜린 세반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는 침대에서 아주 천천히 일어났다.
“뭐라고?”
“루이드 포커드가 도망갔다고요. 그의 마법사, 아샤라를 데리고서 왕궁으로…….”
“왕궁…….”
셜린 세반의 붉은 눈이 커다랗게 떠졌다.
“이 미친 새끼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