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ron' Son has Paranormal Abilities RAW novel - Chapter (217)
남작 아들은 초상능력자-217화(217/252)
제217화
제17편 달의 이야기(6)
카이린의 옅은 라벤더색 눈동자가 빛났다.
“드래곤…….”
그녀의 표정은 웃는 것 같기도, 화가 난 것 같기도 한 미묘한 것이었다.
“루이드 D 포커드 백작. 이 소란의 주동자가 누구인가.”
“접니다.”
루이드가 순순히 대답하자, 그녀는 눈을 가늘게 떴다.
“역모를 꾸민 것인가?”
“그럴 리가요.”
“그렇다면 이 사태를 무엇이라 생각해야 할까?”
“제게 기회를 주십시오. 정말 한시가 급한 일이라 그렇습니다.”
“이 앞에서는 못 할 말인가 보지?”
“예. 독대하게 해주십시오. 아니, 제 일행 몇 명과 함께 알현하고 싶습니다.”
아르헬이 천천히 모습을 바꾸었다.
검은 머리에, 푸른 눈을 가진.
포커드 가문의 넷째. 아르헬 포커드의 모습으로.
아르헬은 마법을 사용해 등 위에 있던 가마를 천천히 내려놓았다.
“우, 우오오…….”
“세, 세상에……. 저분은 포커드의…….”
“이럴 수가. 인간이 아니었다고?”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루이드 일행을 둘러싼 기사들과 대신들이 놀라며 조금씩 뒷걸음쳤다.
아직 사교계에 데뷔한 것은 아니었지만, 루이드가 하도 옆에 끼고 다닌 지라 어느 정도 얼굴이 알려져 있던 아르헬이었다.
귀족의 여식이 사실은 드래곤이라니, 그 누가 놀라지 않을 수 있을까?
아직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대신들은 옆에 선 다른 자에게 물으며 야단이었다.
“어쩐지, 혼기도 덜 찬 여식을 계속 밖에 내보인다고 하더니. 이유가 있었군.”
대신들끼리 숙덕거리는 동안 가마의 문을 열고 나온 데모니어스가 그들을 노려보았다.
싸늘한 냉기가 흐르는 눈빛에 대신들은 저도 모르게 입을 합 하고 다물어버렸다.
“하나, 전하. 위험하옵니다.”
용기를 낸 대신 하나가 버럭 외쳤다.
카이린의 시선이 이번에는 크레이브 공작에게 가 닿았다.
“레온 크레이브 공작. 그대는 지금 이 상황이 안전하다고 판단하여 포커드 백작을 왕궁까지 데려온 것이겠지?”
“……안전하지는 않습니다. 하나, 그가 전하께 아뢰어야 하는 일이 긴급하다고 판단했습니다.”
“흠.”
카이린은 콧방귀를 뀌었다.
애초에 루이드의 행동은 왕실의 법도에 어긋나는, 중죄였다.
“내가 아무리 루이드 D 포커드 백작을 아낀다고는 하나, 왕실의 법도를 이렇게 짓밟는 자를 어찌 예우할 수 있을까.”
그녀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레온 크레이브 공작. 왕실 기사단 단장으로서의 명예를 잊지 않았다면, 그대가 루이드 D 포커드의 불경을 바로잡으시오.”
“하나, 전하!”
레온 크레이브 공작이 루이드를 대변하기 위해 입을 여는 순간, 루이드는 그의 의복에 속한 금속을 제어해 공작의 움직임을 막았다.
“……?”
크레이브 공작은 놀라 루이드를 확 돌아보았다.
“…….”
루이드는 맑고 푸른 눈을 그저 굴리고 있을 뿐이었다.
공작은 루이드와 카이린을 번갈아 보았다.
“제대로 답할 생각이 없는 건가. 나의 검이여.”
“아…….”
크레이브 공작은 그제야 카이린의 뜻을 이해했다.
대신들과 왕실 병사들이 모두 지켜보는 가운데 왕궁의 법도를 어지른 루이드와 크레이브 공작은 그 어떤 상황이더라도 죄를 묻게 될 터였다.
특히 레온 크레이브 공작은 더욱 이 사태를 막았어야 하는 위치였으나 그러지 못한 것.
두 사람 모두 훗날 뒷말이 나올 것이고, 큰 형벌을 면치 못할 게 될 것이었다.
그러니 카이린의 권위를 흔들지 않으면서도 긴히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장소란, 감옥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허울뿐인 연극이라는 것을 다른 귀족들도 분명 알 것이다.
하지만 허울이라도 있느냐 없느냐는 큰 차이를 만들었다.
말이 나오면 둘러댈 말이 있으니까.
“……알겠습니다. 저들 모두를 투옥하도록 하겠습니다.”
“좋다. 이런 대범한 일을 꾸몄으니, 그저 평범한 감옥으로는 안 되겠지. 그들을 비밀 감옥에 가둬라!”
카이린의 말과 함께 왕실 기사단이 루이드 일행에게 들러붙었다.
루이드와 일행들은 전혀 저항하지 않았다.
의식이 없는 아샤라까지, 들것에 실려 이그라 왕궁의 가장 깊은 곳으로 향했다.
찰그랑, 찰그랑.
루이드와 일행에게 채워진 수갑에서 쇠사슬이 찰랑거렸다.
진짜 수감 되는 상황이라면, 루이드가 힘을 주지 않아도 간단히 부숴버릴 수 있을 수갑이었다.
계단을 내려갈수록 주위는 어두워지고, 공기는 차가워졌다.
‘이그라 왕궁의 지하 감옥이 이렇게 깊은 곳에 있었구나.’
루이드는 새삼 감탄하며 주위를 구경했다.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을 디딜 때마다 앞에서 등이 켜졌다.
‘마법인가.’
확실히 어느 순간부터 주위에 마나가 흐르고 있었다.
“대역 죄인을 가두는 비밀 감옥이지. 마법이 발동되고 있으니, 전하의 허락 없이는 그 누구도 나올 수 없다.”
앞서 걷던 레온 크레이브 공작이 조용히 말했다.
그에 말에 답하듯, 드디어 도착한 비밀 감옥의 가장 밑바닥은 커다란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다.
“대단하네요. 보통 다른 나라에도 이 정도 감옥을 만들어 놓나요?”
“……글쎄.”
루이드의 물음에 크레이브 공작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글쎄다……. 제국쯤 되면 이런 감옥이 필요할까? 이그라처럼 작은 나라가 가지고 있기에는 생각보다 거창한 감옥 같은데.’
그들이 들어서면서부터 더욱 강력한 마법이 발동되었다.
루이드의 시선에 푸른 마나가 공간을 지배하는 것이 느껴졌다.
또각, 또각.
등 뒤로 구둣발 소리가 들리더니 조금 전 들었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두 물러가라. 죄인은 내가 직접 심문하지. 크레이브 공작은 여기에 남고.”
카이린 세반이었다.
발코니에서 보았던 허술한 차림 대신 몸에 딱 맞으면서도 간결하고 세련된, 재킷과 바지로 된 활동 제복을 입고 있었다.
찬란한 은발은 곱게 땋아 양 머리처럼 좌우에 빙글 돌려 묶여 있었다.
그녀의 명령에 루이드와 일행을 체포하기 위해 왔던 기사와 병사들이 모두 물러났다.
묵직한 발소리들이 멀어지자, 카이린의 표정은 훨씬 부드러워졌다.
“이런 소란을 피우다니.”
“죄송합니다, 전하.”
“대체 무슨 생각인가? 매번 날 이렇게 놀라게 하다니.”
그녀의 시선이 아르헬에게 닿았다.
“포커드 가의 넷째 공녀가, 드래곤이라고? 푸하하하하!”
호탕하게 웃어넘긴 카이린이 눈을 가늘게 뜨고 아르헬과 루이드를 번갈아 보았다.
“아주 앙큼해. 둘 다. 아주, 포커드로군. 이걸 또 이렇게 이 시기에 공개하다니. 아주 사교계를 뒤집어 놓겠어.”
“감사합니다.”
아르헬이 새침하게 예를 지켜 인사하자 손목에 달린 사슬이 절그럭거렸다.
“정말이지…….”
카이린은 귀여워죽겠단 얼굴로 아르헬을 잠깐 보다가, 루이드에게 입을 열었다.
“사슬을 풀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이야기겠지? 그대가 한 일이 있어 한동안은 그렇게 있어야 해. 어쩔 수 없어. 나도 함부로 풀어줄 수 없겠군. 이래 보여도 궁은 보는 눈이 많아서 말이야.”
“스스로 불러온 재앙이니 감내하겠습니다.”
“재앙까지야.”
카이린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서, 이런 짓을 하면서까지 전해야 할 말이 뭐지? 아무리 급한 사안이라도 너무했어. 제국군이 국경선이라도 넘었나?”
“농이 심하십니다.”
레온 크레이브가 다급하게 끼어들었지만, 카이린은 눈썹을 들썩이며 손을 내저었다.
“전하. 셜린 세반 공작에 관하여 알고 계신 것이 있습니까?”
“응? 그 이름이 왜 나오는 거지?”
카이린은 정말 의외라는 듯 멍한 표정을 지었다.
“아는 것이라니……. 그는 내 남동생이지.”
그리고는 곧 얼굴을 굳혔다.
“설마, 누군가 그 아이를 이용해서…….”
“아니, 아닙니다.”
카이린의 얼굴은 복잡해졌다.
‘그녀도 다 아는 모양이로군. 하긴 모를 수 있겠나.’
그녀의 눈에서도 셜린 세반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것이 느껴졌다.
“전하께서는, 전하의 남동생인 셜린 세반 공작의 모습밖에 모른다는 말씀이시죠?”
셜린 세반 공작이 몇 번이나 되뇌었다던 말. 그녀가 기억을 되찾기만 한다면……. 이라던 말.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를 할 수가 없군. 백작. 내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가?”
답답하다는 듯 되묻는 카이린을 보며 루이드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내쉬었다.
그녀는 정말로 전혀 모른다.
아무것도 모른다.
“지금부터 드릴 이야기는, 믿기 힘드실 겁니다. 하지만 믿게 되시겠죠. 당신의 기억을 모두 깨울 거니까요.”
“기억을……?”
“예, 전하의 전 생애에 걸친 기억을요.”
카이린도 크레이브 공작도 모두 미친 사람을 보는 듯한 얼굴이었지만, 루이드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차피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그를 더 미친놈으로 만들 테니까.
* * *
척척척.
다급한 발걸음이 왕궁의 정문을 찾았다.
“누구십……. 아, 셜린 세반 공작님.”
문지기가 황급하게 창을 거두어 길을 터 주었다.
얕은 금발을 가진 사내가 쌩하니 정문을 지나쳤다.
“이봐, 봤어?”
“어, 으응…….”
“오늘 뭔 일 나는 건가?”
문 양옆을 지키고 섰던 문지기들이 수군거렸다.
“뭔 일이야 벌써 났지.”
“하긴, 오전에 그런 일이 있었지.”
“세반 공작님과도 연관된 일일까?”
“포커드 백작의 일이?”
두 병사의 얼굴이 궁금증으로 가득 찼다.
“저렇게 살벌한 얼굴로 궁을 찾다니……. 아무리 그래도 저런 표정은 처음 봤어.”
“그래, 무심하긴 하지만. 저건 너무…….”
두 사람은 소리 내어 말하지 않았지만, 악마 같은 얼굴. 이라고 생각했다.
‘빌어먹을 루이드 포커드. 감히, 감히!’
셜린 세반은 모든 것을 부숴버리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 찼다.
겨우 유지하고 있는 껍데기가 흘러내릴 것만 같았다.
‘감히 왕궁으로 와?’
이가 갈렸다.
이곳은 그에게 성역이나 다름없었다.
그녀가 있기에.
더럽혀서는 안 된다. 흔들려서는 안 된다.
견고한 그녀의 둥지, 그녀를 보호할 수 있는 보호막.
그런 곳으로 만들기 위해 이제껏 셜린이 얼마나 노력해왔던가.
이번에도 끝끝내 그녀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지만.
그런 곳에 루이드 포커드가 흑심을 품고 침입한 것이다.
“엇, 셔, 셜린 세반 공작님…….”
“루이드 포커드가 왔었지.”
셜린은 마주친 왕실 기사단 하나의 멱살을 쥐어뜯고 싶은 것을 겨우 참으며 물었다.
“예……! 어떻게 아십니까?”
“어디 있느냐.”
“예?”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셜린의 호통에 기사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숨기려고 해도 숨길 수 없는 셜린의 기운이 그의 주위에서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왕실 기사단원쯤 되는 자이니, 정확히 이것이 어떤 힘인지는 몰라도 아주 강력하고 오싹한 것쯤은 눈치챌 수 있었다.
새빨간 실핏줄이 돋아오른 셜린의 눈동자가, 마치 자신을 삼킬 것처럼 두렵게 느껴졌다.
“그, 그, 그것이……. 비, 비밀 감옥에…….”
기사는 침을 꿀꺽 삼키며 바른대로 불고 말았다.
원래 비밀 감옥은 함부로 입에 올려서는 안 되는 곳이었다.
이름부터 ‘비밀’이 붙어 있었으니까. 기사는 아차 싶었으나 되돌릴 방법이 없었다.
셜린의 눈이 더욱 커졌다.
그는 기사를 지나쳐 성큼성큼 나아갔다.
오직 왕족과 왕실 기사단만이 아는 그곳.
망설임도 없이 도착해, 빠르게 계단을 내려갔다.
‘그러고 보니, 원래 비밀 감옥의 문이……. 저렇게 열려 있던가?’
이상함을 눈치챘을 때, 이미 셜린은 비밀 감옥의 가장 밑바닥까지 내려온 상태였다.
그리고 더는 이상했던 점에 관해 생각할 수 없었다.
그의 눈앞에, 그녀가 있었다.
“카…….”
셜린 세반이 이름을 다 부르기 전에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눈빛으로.
카이린 세반이 셜린 세반에게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는 눈빛으로.
카이린 이전에도, 그 수많은 그릇 중 누구도 보인 적 없는 눈빛으로.
“카린.”
셜린이 중얼거리며 그녀의 이름을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