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ron' Son has Paranormal Abilities RAW novel - Chapter (218)
남작 아들은 초상능력자-218화(218/252)
제218화
제18편 달의 이야기(7)
셜린 세반 공작이 비밀 감옥에 도착하기 전.
루이드는 카이린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설명을 끝마쳤다.
셜린 세반이 인간이 아니며, 차원 문을 열기 위해 자신과 접촉했다는. 그리고 어째서인지 카이린에게 집착하고 있다는 것까지.
“정말 황당하기 그지없군.”
이야기를 들은 카이린의 반응이었다.
“그대가 이때까지 내게 했던 그 많은 이야기 중에 단연코 이 이야기가 가장 허무맹랑하게 들리는군.”
그렇게 말하면서도 카이린의 입가에는 전혀 웃음기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 행한 루이드의 행동도 모자라, 방금의 발언까지. 명백하게 왕족에 대한 반역 행위였다.
“내 남동생이 인간이 아니다, 라. 그 사실을 피력하기 위해 굳이 포커드의 넷째 공녀의 정체를 밝힌 것인가? 작은 위로라도 되라고?”
그녀는 확실히 기분이 상한 투로 비꼬았다.
하지만 이런 반응은 이미 루이드가 각오했던 것이었다.
그 누가 이런 말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런 것은 아닙니다. 전하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면, 정말 죄송한 일이지만. 제가 하는 말에는 단 하나의 거짓도 없습니다.”
“하아.”
카이린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레온 크레이브 공작은 더 궁금한 것이 있는 모양이지만, 선뜻 카이린 앞에서 루이드에게 질문하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증명할 수 있습니다.”
“증명한다고?”
“전하의 잃어버린 기억을 깨운다면, 굳이 제가 입 아프게 설명할 필요가 없겠지요.”
“내가 잃어버린 기억이라고?”
“예. 셜린 세반 공작께서 집착하고 있다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전하의 기억.”
“도무지 나는…….”
“전하. 재촉하여 죄송하지만, 시간이 없습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소폴레리온에서부터 셜린 세반 공작에게서 도망쳐 왔습니다. 그가 곧 이곳에 올 겁니다.”
카이린은 미간을 찌푸렸다.
루이드 포커드는 이제 카이린에게 그저 땅을 하사한 신하가 아니었다.
이그라의 많은 귀족 중 하나 정도가 아니었다.
그녀에게는 특별한 친구였다.
신뢰하고, 마음을 주고, 우정을 나누었다고 확신했다.
그런 친구가 자기 혈육을 의심하는 상황. 카이린에게는 무척 견디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대가 말한 잃어버린 기억이라는 것을 내 마음대로 깨웠다 재웠다 할 수 있는 거라면. 그래, 내가 그대에게 협조하지 않을 이유가 없을 것이다. 하나, 내게는 그런 능력이 없다.”
“그러니까 제가 온 것 아니겠습니까.”
루이드는 침울한 카이린의 표정을 살피며 최대한 다정하게 말했다.
“전하께서 허락만 해주신다면.”
“…….”
“무슨 짓을 하려는 거지?”
레온 크레이브 공작이 끼어들었다.
그의 눈에는 루이드에 대한 경계와 카이린을 향한 걱정이 묻어났다.
루이드는 양팔을 들어 아르헬과 데모니어스와 나란히 섰다.
“우리 셋이 힘을 모으면, 영혼의 기억을 되짚어 볼 수 있을 테니까요.”
자신만만하게 말했지만, 사실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일.
하지만 루이드는 아르헬의 축복의 능력과 데모니어스의 무의식을 일깨우는 힘을 합쳐 통찰의 눈까지 사용한다면, 반드시 가능하리라 생각했다.
완벽하게 같지는 않은 상황이지만, 데모니어스의 능력으로 카라젝이 의식을 잃고 작동이 정지했을 때, 다시 끄집어내는 일도 가능했으니 말이었다.
“다만 마음에 걸리는 점이라면, 그 오래된 모든 기억이 돌아왔을 때. 카이린 전하의 영혼이 버틸 수 있느냐는 것이지요.”
루이드의 말에 카이린과 크레이브 공작 모두 숨을 들이켰다.
“전하. 너무 위험합니다.”
“나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어.”
카이린은 고민했다.
안에 무엇이 들어 있을지도 모르는 상자를 눈앞에 두었는데, 그건 결코 선물상자 같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루이드 포커드의 말대로 하는 것이 맞을까. 만약 그가 쓸데없는 공상을 하는 것이라면.
혹여 이 나라의 왕좌를 탐내 벌인 일이라면.
이대로 꼼짝없이 루이드 포커드의 손에 놀아나게 되는 일 아닌가.
한 나라의 군주로서, 카이린이 여기까지 생각하는 일은 당연한 일이다.
그만큼 국왕이 누군가에게 완전히 의지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니까.
하지만 그의 말이 옳은 경우도 생각해야 했다.
루이드 포커드를 믿는다면,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이그라의 위기를 막기 위함이 아닌가.
“그대를 믿어도 되겠는가.”
위험한 모험이라 할지라도 가끔은 과감한 결단을 내릴 필요도 있지 않은가.
“저를 믿어주세요. 저는, 전하를 믿으니까요.”
카이린의 눈이 잠깐 흔들렸다가 꼿꼿하게 빛났다.
“저는 전하께서 버텨내실 수 있다고 믿습니다.”
슥, 카이린이 손을 내밀었다.
루이드가 그녀의 손을 맞잡았고, 그런 루이드의 팔에 아르헬과 데모니어스가 달라붙었다.
파아앗.
루이드의 눈이 오색으로 반짝이는 빛에 물들어갔다.
몸 안으로 아르헬과 데모니어스의 힘이 섞이는 것이 느껴졌다.
통찰의 눈 스킬을 통해, 그녀의 정보들이 흘러들어왔다.
이전에 알던 것보다 훨씬 섬세하고 자세하게.
그리고 그녀의 눈동자와 마주치는 순간, 루이드의 의식이 카이린의 의식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카라젝의 의식 안에 들어갔을 때처럼, 루이드는 어떤 공간에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곳은 카라젝의 것과는 달랐다.
‘이건…….’
의식 세계는 바깥 현실 세계의 것으로 설명하기는 어려웠다.
무형화된 어떤 에너지 상태 같은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굳이 카이린의 의식을 설명하자면, 덩굴이 잔뜩 엉겨있어 덩굴 외에는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상태의……. 어떤, 숲 같은…….
「루이드.」
카이린의 목소리였다.
루이드는 주변을 훑어보았다. 의식의 넝쿨 속에서 그녀를 찾았다.
「이게 대체…….」
카이린은 의식체의 형태로 있었다. 말하자면 그냥 에너지 덩어리라고 보면 됐다.
다만, 그녀의 형체는 생각보다 또렷했다.
「전하, 제가 보이십니까?」
「그런 것 같은데. 그대가 그저 빛처럼 보여.」
루이드는 손을 뻗어 그녀의 팔을 잡았다.
「……! 그대가 느껴져. 이런, 이건 대체…….」
「여긴 전하의 무의식입니다.」
「무의식? 그게 뭐지?」
카이린에게는 무의식이라는 개념 자체가 처음 들어보는 것이었다.
「어……. 그러니까, 전하의 영혼 깊은 곳에 있는……. 마음이죠.」
「내, 마음…….」
카이린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얼기설기 엉킨 넝쿨 같은 것들은 그리 긍정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인상을 찌푸리는 게 느껴졌다.
「전하. 지금부터, 기억의 조각을 되찾을 겁니다. 하나하나 모두 기억하시는 건 전하의 몫입니다.」
「내가 할 수 있을까.」
카이린의 목소리는 루이드가 들었던 그녀의 목소리 중에서 가장 자신이 없어 보였다.
내면 깊은 곳에서의 그녀는 마음의 벽이 한 꺼풀 더 벗겨진 것이리라.
루이드는 그녀의 팔을 더 꽉 잡았다.
「놓치지 않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카이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루이드가 카이린의 기억을 읽기 시작했다.
지금, 이 순간으로부터 과거로.
이그라 왕국 국왕의 카이린으로부터 기억들이 소환되었다.
왕궁의 기억들, 생활들.
루이드를 처음 만난 그날.
그리고 두려움을 안고 왕좌에 오르던 날.
레온 크레이브와 보낸 나날들. 그와 처음 만났던 기억들.
아주 빠르게 루이드를 스쳐지나가 카이린에게로 쏟아져 내렸다.
그리고 더 어린 시절로.
카이린은 두려운 것인지 루이드를 잡은 손에 힘을 꽉 주었다.
셜린 세반과 여느 남매처럼 막역하게 지내던 시절을 지나, 선대 국왕과 왕비가 살아있던 시절을 지나, 그녀가 태어난 순간.
이제 그 너머로.
그녀의 의식을 가득 메우고 있던 넝쿨들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꾸물, 꾸물. 촤아아악!!
넝쿨들이 루이드와 카이린 쪽으로 뻗어져 나왔다.
휘익! 휙! 루이드는 노련하게 피할 수 있었다.
루이드를 이루고 있는 기운으로 아르헬과 데모니어스의 기운이 명확히 느껴지며, 서포트를 해준다는 감각이 있었다.
‘정확히는 나를 노리고 있군.’
마치 몸속에 들어온 병균을 공격하는 면역 체계처럼 넝쿨은 루이드를 겨냥하고 집요하게 따라붙었다.
‘이대로 계속 피할 수만은 없겠어.’
루이드는 통찰의 눈 능력을 최대 출력으로 끌어내었다. 동시에 아르헬과 데모니어스의 힘이 쭈욱 빨려드는 것이 느껴졌다.
‘맛봐라!’
루이드는 넝쿨에 맞서기로 했다.
손을 뻗어 넝쿨을 향해 힘껏 주먹을 내질렀다.
퍼어어엉!!
폭음과 함께 넝쿨이 갈가리 찢기고 흩어졌다.
그리고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단 한 번의 공격이었음에도 넝쿨들은 마치 기폭제가 눌러진 폭탄처럼 차례차례 터져나갔다.
루이드는 그 모습이 어쩐지, 이 순간을 기다려왔다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퍼엉! 펑! 퍼어엉!!
어쩌면 불꽃놀이처럼 보이기도 하는 폭발 속에서 카이린이 루이드의 팔을 잡아당겼다.
「포커드 백작……!」
「갑시다.」
루이드는 크게 도약하여 진실을 마주하기 위해 전력을 다해 폭발 사이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보았다.
할 수 있는 것을 끝낸 뒤 카이린의 의식으로부터 튕겨 나올 때, 루이드는 입술을 씰룩거리며 중얼거렸다.
“이거 미친 새끼네.”
* * *
“카린…….”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셜린 세반은 전혀 헐떡이지 않았다.
마치 원래부터 숨을 쉬지 않는 존재인 것처럼.
공간이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셜린.”
창백한 달빛을 머금은 듯한 머리칼을 가진 여인이 대답하자, 셜린 세반은 거의 무너져 내렸다.
주저앉아버렸다.
여인은 안쓰러운 얼굴로 그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겨우 입을 뗐다.
“그렇게 오랜 세월을…….”
그녀는 말을 다 잇지 못했다. 전 생애의, 환생의 모든 기억을 되찾은 여인은 아직 혼란스러웠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불안한 붉은 눈동자가 온 힘을 다해 살폈다.
“내가 보고 싶었어?”
벌벌 떨리는 셜린 세반이 그녀에게 건넨 첫 말이었다.
수없이 많은 밤을 지나 재회한 상대에게 물은 첫 마디였다.
무척이나 간절해서, 듣는 사람이 애가 탈 정도였다.
며칠이나 굶은 아이가 사탕을 구걸하는 것만 같은 목소리였다.
“……너를 다시 볼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어. 그날, 그 마지막 밤에.”
울 것 같은 얼굴로 셜린 세반을 향해 말하는 여인은 카이린이 아니라 카린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또 카이린이기도 했다.
“어째서 그런 짓을 한 거니……. 어쩌자고, 그 오랜 세월 동안 나를 기다린 거니?”
“네가 나를 좋아해 줬으니까. 네가……. 나에게 가르쳐줬으니까.”
셜린은 거의 기다시피 무릎으로 걸어와 카이린의 발 언저리까지 다가왔다.
“나를 받아준 건 처음이었으니까. 소중하게 대해 준 건, 소중하다는 게 뭔지 알려준 건. 잃어버리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게 한 건. 이 별이 아름답다고 느끼게 한 건. 그렇게 네가…….”
셜린은 카이린의 발에 입을 맞추었다. 그것은 오래도록 사모해온 스승에게 바치는 예였다.
“나를 망가트려 버렸으니까.”
그의 목소리에 담긴 감정은 복잡했다.
증오와 사랑, 그리움, 광기, 수줍음, 원망, 열렬함, 냉소적임.
이 별에서 그가 배운 모든 것들이 녹아있었다.
카이린의 눈에는 그가 활활 타오르고 있는 것 같았다.
안쓰러울 정도로 뜨거운 불꽃 그 자체.
타인은 물론이고 스스로까지 하나도 남지 않을 정도로 태워버릴 광염.
그런 그가 안타까웠다. 처음 만났던 그때도, 그리고 지금도.
그녀는 천천히 무릎을 굽혀 셜린의 어깨를 감쌌다.
떨리던 그의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고생했어. 외로웠지.”
카이린은 천천히, 그리고 진심을 담아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너 역시 나를 변화시켰어. 엉킨 매듭은, 차차 풀어나갈 수 있겠지.”
그녀는 자신의 영혼이 망가졌다고 말하지 않았다.
비정상적인 셜린을 비난하지도, 밀어내지도 않았다.
가녀린 입술이 내뱉는 말들은 담담하고, 강하고, 긍정적이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평범한 인간이라면, 아마 셜린을 이해하지 못했을 터였다. 하지만 이미 전 생애의 기억을 모두 받아들인 그녀는 더는 평범한 인간이 아니었다.
아니, 어쩌면 그녀가 원래부터 가지고 태어난 본성일지도 몰랐다.
조금의 거짓도 담기지 않은 그녀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따뜻했다.
셜린이 그 이름을 가지기 전에 들었던 그때처럼. 처음처럼.
“셜린, 나는 한 번도 너를 내 가족이라고 생각한 걸 후회하지 않아. 내 작은 마음까지도 특별하게 생각해 주었으니까. 그러니까, 인제 그만 괴로워하렴. 인제 그만 외로워하렴.”
무릎을 꿇은 채 그녀를 올려다보던 셜린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의 표정이 서서히 부드럽게 풀어졌다.
오래도록 자신을 짓눌러오던 모든 저주에서 해방된 것처럼.
‘과연, 놈이 목멜 정도로 매력적인 영혼의 소유자라 이건가. 솔직히 성녀 수준의 멘탈이라고.’
루이드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흠흠.”
루이드의 헛기침에 셜린은 몽롱하게 뜬 눈으로 루이드를 보았다.
“어찌 됐든, 이제 내가 원하는 것도 들어줘야지?”
루이드가 목소리를 굳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