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ron' Son has Paranormal Abilities RAW novel - Chapter (219)
남작 아들은 초상능력자-219화(219/252)
제219화
제19편 달의 이야기(8)
“내가 그 오랜 세월을 노력해도 이룰 수 없던 일을, 그대는 어떻게 이렇게 손쉽게 이룰 수 있었지?”
셜린 세반은 꿈결에 잠긴 듯한 눈으로, 허망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야 내가 뛰어나서겠죠. 그보다, 아직도 차원 문을 열고 싶은 생각이 남아 있는 겁니까?”
루이드의 말에 셜린 세반의 눈빛이 조금 명료해졌다.
“……아아. 그래, 그런 제안을 했었지.”
루이드는 미간을 찌푸렸다.
‘제안이라니. 거의 협박이었던 것 같은데.’
셜린 세반은 두어 번 눈을 끔뻑거리더니, 흐흐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웃어?’
루이드는 한쪽 눈썹만 들어 올리며 그를 노려보았다.
“내가 졌어. 루이드 포커드. 이런 식으로 나를……. 무력하게 만들어버릴 줄이야.”
그는 마른 얼굴을 매만지더니,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는 동안에도 그의 시선은 카이린에게서 떠나지 않았다.
한시라도 눈을 떼면, 그녀가 사라져버리기라도 할 듯이 불안한 눈동자였다.
그런 셜린의 마음을 깨달은 것인지, 카이린이 그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그대에게 내가 큰 빚을 졌다. 내게는 이미 힘이 거의 남지 않았지만, 내가 그대에게 줄 수 있는 모든 도움을 주겠어.”
“내게 제안했던 것이 더 있었죠.”
이번에는 셜린 세반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리고 루이드의 뒤편에 감옥용 침대에 누워있는 아샤라를 보았다.
“그대의 마법사.”
“그래요. 공작께서 말씀하셨듯이 내게는 소중한 사람입니다. 그녀가 깨어나지 않는 이유를 안다고 했죠?”
“그야 간단해. [……]가 허락하지 않았으니까.”
“뭐라고요?”
루이드가 되묻는 순간, 파지직! 하고 셜린 세반의 입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그리고 그의 입 주변이 순식간에 타들어 갔다.
“셜린!”
카이린이 놀라 그를 붙잡으려고 했지만, 셜린이 팔을 뻗어 제지했다.
셜린 세반의 얼굴 가죽이, 특히 입과 턱뼈가 불에 탄 사람의 얼굴처럼 녹아내렸다.
「하, 이 안의 마법 정도로는 녀석을 피할 수 없군.」
셜린의 의식어가 루이드의 머릿속에 울렸다.
「공작. 이게 대체…….」
루이드는 의식어로 물었다.
「무슨 상황일 거 같아?」
셜린이 묻는 말에 루이드는 선뜻 대답할 수 없었으나, 비슷한 상황을 경험한 적이 있다는 것은 분명했다.
소메네아의 뱀들을 만났을 때.
「더 자세히는 설명할 수 없는 건가?」
「그대도 대충 눈치를 챈 것 같은데. 모든 것에 [……]가 관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파지지직!
셜린 세반의 머리에 한 번 더 스파크가 일었다.
이번에는 그의 머리통이 전부 녹아내렸다. 살뿐만이 아니라, 뼈와 장기들이 새카맣게 변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평범한 인간이었다면, 아마 즉사했을 터.
「보라. 이것이 이 별을 차지한 어린 신의 힘이다.」
셜린은 의식어로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하! 머리를 울리는 의식음 사이로 루이드는 흩어진 퍼즐을 맞추기 위해 눈을 굴렸다.
「그랬군, 그랬어. 이제 와 보니 그 어린 신이 나를 두고 본 이유를 알겠다. 다 그대를 위한 것이었다. 루이드 포커드.」
셜린 세반의 몸이 비틀거렸고, 그의 의식어는 더욱 또렷해졌다.
「나를 통해 그대를 성장시키고 있었던 거군. 나조차도 그 어린 신의 전략 중 하나였었던 거야! 그래, 그게 아니라면 벌써 나는 사라져버렸겠지.」
그는 루이드와 대화를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아예 다른 사람과 대화하는 것 같기도 했다.
「루이드 포커드. 그대의 소중한 마법사를 깨우려면, 내가 알려준 곳으로 향해라. 그곳에서 어린 신의 관문을 넘어. 어린 신은 그대에게 보상을 줄 것이다.」
「그런 말을 어떻게 믿으라고.」
「믿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게 그대의 운명이니까. 내 운명이 이것이었던 것처럼. 그대의 운명도! 그리고 그 녀석도. 전부!」
파직! 파지직! 퍼벅!!
셜린 세반의 몸에서 거센 스파크가 튀기 시작했다.
「공작?!」
「이…… 내가…… 할…… 모든…….」
“셜린!”
카이린의 날카로운 비명이 비밀 감옥을 울리고, 셜린의 상반신은 마치 폭죽을 터트리듯 번쩍거리며 타올랐다.
「이…… 브. …… ㅣㅂㅡ……. 이브!! 어린 신의 이름……!」
타다다닥!!
외마디와 함께 셜린의 몸뚱이가 거의 박살 나버렸다.
“이런, 미친.”
루이드는 저도 모르게 입으로 중얼거렸다.
“루이드!”
카이린이 당황한 얼굴로 루이드를 바라보았다.
「걱정하지 마라, 루이드 포커드. 그녀에게 전해줘. 나는 이 정도로 죽지 않는다고.」
셜린의 의식어가 그대로 끊어졌다.
“…….”
“대체…….”
아샤라 근처에 서 있던 아르헬과 데모니어스도 경악한 얼굴이었다.
레온 크레이브 공작도.
눈앞에서 일어난 일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오직 루이드만이. 이것이 이브의 간섭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브. 대체 너는 무엇이길래.’
셜린이 서 있던 자리에는 녹아버린 고깃덩이만이 남아 있었다.
“루이드 포커드 백작!”
카이린이 재차 외쳤을 때, 루이드는 겨우 그녀에게 대답했다.
“그는……. 그는 이 정도로는 소멸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어, 그러니까. 괜찮을 거라네요.”
“이게 괜찮다고?”
카이린은 차마 녹아버린 셜린을 제대로 보지 못하며 차오르는 눈물을 겨우 참아냈다.
“그에게 육체는 얼마든지 새로 구축할 수 있는 겁니다. 셜린 세반 공작은……. 애초에 맡은 공무가 없으니, 요양 중이라고 둘러대면 될 겁니다.”
셜린의 육체에 관한 이야기는 둘째 형인 엘빈 포커드가 해주어 알고 있었다.
“이제 겨우 만나게 됐는데…….”
카이린이 비틀거리자, 레온 크레이브가 그녀를 부축했다.
“머리가 아파…….”
“그 많은 시간의 기억이 돌아온 건, 분명 육체에 부담을 줬을 겁니다. 그러니까 전하께서도 쉬세요.”
루이드의 말에 카이린이 결국 굵은 눈물을 떨어트렸다.
흰 뺨을 가로질러 흐르는 눈물 줄기가 갸름한 턱에서 똑 흘러내렸다.
“다시 만나게 될 겁니다.”
루이드는 카이린을 위로하려 일부러 가벼운 말투로 말했다.
“회복하고 나시면, 두 분의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것도 좋겠네요.”
카이린이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대는 이야기를 좋아하니까.”
“이곳은 당분간 폐쇄해야겠습니다.”
레온 크레이브가 말했다.
“이……. 세반 공작이었던 건 그대로 두어야 하나?”
공작의 물음에 루이드는 고개를 저었다.
레온 크레이브의 녹색 눈동자가 루이드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다른 이들의 많은 이야기가 오갔지만, 두 사람에게는 더 나누어야 할 이야기가 있었다.
하지만 우선은 카이린이 먼저였다.
“이곳의 청소는 제가 하도록 할 테니, 전하를 데리고 나가시죠. 그러고 보니 여기에 잠시 수감 되어야 했었죠?”
레온 크레이브는 고개를 끄덕이고 카이린을 부축해 위로 올라갔다.
그들이 사라지는 동안, 루이드는 품 안에 있던 쪽지를 꺼냈다.
“하아……. 결국은 이리 가야 하는 건가.”
“아샤라를 깨울 방법을 알아내지 못한 건가요?”
조용히 있던 클리아베이든이 모습을 드러냈다.
“셜린 세반 공작과 의식어로 대화했습니다.”
“그런 것 같긴 했는데, 그래서 방법은요?”
“좀 시간이 걸릴 것 같아요. 세반 공작의 말로는 이 장소를 방문해서 실마리를 찾으라고 하더군요.”
“하아…….”
루이드는 고민했다.
알게 된 사실들을 이들과 나눌 수 있을까? 이브의 이름을 입에 올렸다간, 자신도 셜린 세반과 같이 제재를 받게 될까?
“루이드, 여긴 마법으로 정리할게.”
아르헬이 손을 들어 주문을 외웠다.
“클린!”
마나가 주위를 감싸고 탄내와 고깃덩이와 피 웅덩이를 깨끗하게 정화했다.
루이드는 침을 꿀꺽 삼켰다.
“셜린 세반 공작을 저렇게 만든 힘에 관해 눈치챈 게 있나요?”
그의 물음에 클리아베이든이 불꽃을 흔들거렸다.
“음?”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 아무런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어요.”
“뭐라고요? 아무런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뇨. 그건…….”
루이드는 그렇게 말했지만, 확실히 스파크가 튈 때의 그 감각을 설명할 수 없었다.
“그러니까, 그건…….”
“셜린 세반 스스로 그런 행동을 한 것 아닌가요?”
“정말로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고요.”
이브의 힘은 루이드만 느낄 수 있는 것일까?
아무리 지금은 위습의 형태라고는 하나, 에벨리의 마황인 클리아베이든조차 눈치채지 못하는 힘이라니.
그건 셜린 그 자체가 뿜어내는 힘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복잡하군.’
루이드는 셜린의 말을 떠올렸다.
‘나를 성장시키려고, 이용한 것이라고 했다. 아득히 먼 옛날, 차원을 넘어온 기이한 존재인 그조차도.’
그리고 클리아베이든을 보며 물었다.
“이브에 대해서 얼마나 알죠?”
“이브?”
클리아베이든은 불길을 갸웃거렸다.
“애초에 질문이 이상하잖아요. 어떤 이브를 말하는 건지, 제대로 설명해야죠. 이브의 어원에 관해서 묻는 건지, 아니면…….”
그가 조잘거렸으나, 셜린 세반이 타올랐던 것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성장시키려고 한다는 말에 믿는 구석이 있어서 내뱉어본 건데. 역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게다가 클리아베이든에게서도 아무런 반응이 없군. 그렇다는 건 이브의 실체에 관해서 아는 사람의 발언에만 이브의 제재가 가해진다는 거다.’
루이드는 조금 더 용기를 내서 말했다.
“고대의 신 중 하나.”
클리아베이든의 눈은 조금 더 호기심이 담겼다.
“그거라면…….”
너무 큰 도박일까.
클리아베이든이 이브에 관한 진실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다면, 그는 셜린 세반과 같이 이브의 제재 때문에 녹아내려 버릴까?
쿵쿵. 루이드는 세차게 뛰는 심장 소리에 맞춰 급하게 클리아베이든의 입을 틀어막았다.
하지만 틀어막았다고는 해도 위습의 발성기관은 인간의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기에 그의 대답을 막을 수 없었다.
“이브에 관한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아요. 이제 그녀를 믿는 존재도 거의 없고요.”
“…….”
루이드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속으로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마황쯤 되는 존재도 잘 모르는 정도의 신이라.’
“고대 유적을 봤죠? 원래라면 보통 인간이 절대로 찾아낼 수 없는 곳이라고요. 거기서도 흔적은 조금밖에 남아 있지 않았지만…….”
“그녀라고 했죠? 신에게도 성별이 있나요?”
“뭐, 이름부터가 여성명사잖아요? 그래서 그녀라고 부르는 거예요. 음……. 그러니까, 남아 있는 기록을 따지자면……. 그런데, 이건 갑자기 왜 묻는 거죠? 이게 아샤라를 깨우는 것과 연관이 있나요?”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아서요.”
“흐음.”
루이드의 말에 클리아베이든이 입을 쩌억 벌렸다.
불꽃 모양의 몸체가 쭈욱 길어져, 그의 입안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그 입안에서 작은 인형극 같은 것이 펼쳐지고 있었다. 루이드의 눈에는 그냥 휴대폰으로 동영상을 튼 것처럼 보였지만.
“태초에 아무것도 없었답니다! 공허. 힘의 기원인 거친 에테르만이 가득했죠.”
차가운 불길 속에서 빙글거리며 모래들이 춤추었다.
“에테르의 흐름 사이에서, 여러 존재가 깨어나기 시작했죠. 하늘과 땅의 신들이 태어났어요.”
춤추던 모래들이 뭉쳐, 날개가 달린 사람이나 특이한 모습의 동물로 변했다.
“이때 우리가 이름을 아는 많은 신들이 생겼다고 해요. 기라단이나 제메스, 로단, 게카운, 소타. 그리고 신의 자녀들도 태어났죠.”
이번에는 모래가 루이드에게도 익숙한 문양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그때, 혼돈이 나타났죠. 이 땅의 에테르를 탐내서.”
모래는 수많은 인간의 모양을 만들었다가, 그것을 한순간에 무너트리는 커다란 주먹으로 변했다.
푸화악! 손짓 한 번에 인간 모습의 모래들이 죄다 흩어졌다.
“혼돈을 물리치기 위해, 신들과 그의 자녀들은 무척 애를 쓰죠. 하지만 혼돈을 완전히 몰아낼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신의 자녀들은 자신들을 도울 새로운 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흩어졌던 모래들이 다시 한데 모여 한 여인의 모습을 만들어냈다.
“새로운 신이 태어났죠. 그게 바로 이브입니다.”
루이드는 생각했다.
‘이 신화는 전부 틀렸나 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