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ron' Son has Paranormal Abilities RAW novel - Chapter (22)
남작 아들은 초상능력자-22화(22/252)
제22화
제22편 쇠의 신(1)
‘그냥 평범한 구리잖아?’
루이드가 광물을 확인했다.
‘그렇다면, 그 이상한 반응은 뭐였지? 그냥 환생하면서 시스템이 꼬인 건가?’
석연찮았지만, 지금 당장은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뭐, 구리 광산. 좋다. 구리는 쓰일 데가 많으니까.’
본격적으로 광산을 개발하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갱도를 트고 쉽게 이동할 수 있도록 설비를 하는 작업.
“여기서부터는 영지민들을 이용해야겠어.”
루이드가 집무실에서 중얼거렸다. 그러자 대지의 정령사 중 하나가 밝은 얼굴로 말했다.
“저희 중에 담당이 있으면 되겠군요. 혹시 모를 사고를 대비하고 영지민들을 인솔해야 하니까요.”
다른 정령사와 연금술사들도 진지한 얼굴로 대화에 집중했다.
그들은 계속해서 포커드 남작령에 남기를 원했다.
“좋지.”
루이드의 말에 모두 화색이 되었다.
루이드 입장에서도 돈을 조금 들이더라도 이들이 현장에 남아있는 것이 좋았다.
그간 함께 했기에 루이드가 원하는 대로 척척 작업이 진행되었다.
“다만, 무기 공방을 제대로 꾸리기 위해서 대장 기술자가 있으면 좋겠는데.”
“그렇군요. 물론 이곳에도 무기점과 대장장이들이 있지만…….”
에린이 말끝을 흐렸다.
루이드가 원하는 것은 더욱더 전문적이라는 사실을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
이제 에린은 루이드가 척하면, 척이었다.
“맞아. 그리고 인원도 부족해. 다른 영지에도 무기와 방어구를 납품할 수 있는 커다란 무기 공방이 있었으면 좋겠어.”
루이드가 전생의 기억을 떠올리며 말했다.
‘아아, 그땐 장난 아니었는데. 내 이름으로 된 무기를 구하려면 S급 헌터는 되어야 가능했지.’
물론 지금 와서 루이드 본인이 장인의 자리에 앉을 생각은 없었다.
‘전생에선 일 더미에 묻혀 죽을 뻔했으니까 말이야. 지금은 기술자들을 거느리는 걸로 만족해야지.’
그렇게까지만 해놓으면 루이드가 원하는 놀고먹기의 수준이 훨씬 높아질 터였다.
‘어쩐지 일을 자꾸 벌이고 있는 것 같지만.’
루이드는 볼을 긁적였다. 돌이키기에는 이미 일을 너무 많이 벌였다.
“그렇다면 좋은 정보가 있어요.”
에린이 일어나 지도를 가져왔다.
“좀 멀긴 하지만, 그리슨빌이라는 곳에 드워프 대장장이가 살고 있다고 해요.”
“드워프?”
전생의 많은 판타지 소설에서처럼, 이 세계의 드워프도 비슷한 이미지였다.
산과 동굴에 살며 불과 금속을 사랑하는 종족.
땅속의 신비로운 보석을 탐하는 자들.
“드워프라. 그들은 다른 종족을 싫어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루이드는 왕도 용병 길드에서 만났던 엘프를 떠올렸다.
엘프나 드워프들 모두 인간과 적대 종족은 아니었다.
전략적 우호 관계. 인간과 엘프, 드워프는 서로의 국가를 제약 없이 두루 여행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주 친근한 것도 아니었다.
종족들끼리 알게 모르게, 때로는 적나라하게 뿌리 깊은 차별을 드러냈다.
엘프들은 냉소적이고, 드워프들은 자존심이 세고 성격이 불같았다.
“인간을 위해서 작업하려고 하지 않을 텐데.”
“하지만 그는 이미 인간 도시에서 공방을 운영하고 있어요. 아, 정확히는 그곳 영주의 공방에 고용된 거지만요.”
“사연이 있나 보군. 헌데 이미 고용된 입장이라면, 내가 마음대로 데려올 수 없지 않나?”
“흠, 그것이…….”
“에린 씨는 그런 걸 어떻게 이렇게 자세히 알고 있는 거예요?”
조용히 듣고 있던 아샤라가 끼어들었다.
“아아, 저는 기술자 길드에 가입되어 있으니까요. 거기에는 건설업자뿐 아니라 대장장이들의 네트워크도 형성되어 있어요.”
“아하. 그렇구나.”
아샤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길드 내 소문으로 건너 건너 들은 거예요. 여하튼 좀…… 안 좋은 소문이 돌거든요.”
“에엥?”
* * *
광산으로 둘러싸인 검은 영지.
그리슨빌.
따앙! 따앙!
망치가 금속을 내려치는 소리가 요란했다.
몬드롬은 고향을 떠올렸다.
‘하지만 내 고향 포에닉스에 비할 바는 아니지.’
그의 눈이 축축해졌다.
드워프는 울지 않지만, 사라져버린 고향을 생각하면 쇠처럼 단단한 마음도 욱신거렸다.
“어이! 드워프, 제대로 하지 못해?”
잠시 상념에 잠긴 몬드롬에게 껄렁하게 생긴 남자가 소리를 질렀다.
“뭐라?”
“헬켄 백작님의 직속 가신인 내게 감히 말대꾸하는 건가?”
남자가 눈을 부라렸다.
톰보르.
그는 몬드롬의 고용주인 헬켄 백작의 가신 중 하나.
이 영지의 광산과 무기를 담당하는 관리였다.
“……끄음.”
몬드롬은 목까지 차오르는 욕설을 삼켰다.
“헬켄 백작님이 아니었으면, 목숨도 부지하지 못했을 놈이. 네놈들의 나라는 이 지도상에서 사라졌다 이 말이야.”
톰보르가 바닥에 침을 탁 뱉었다.
“이……!!”
“형님.”
참지 못하고 일어서려는 몬드롬의 팔을 트랄릭이 막아섰다.
몬드롬이 돌아보자 서른 명쯤 되는 드워프들이 모두 그를 보고 있었다.
슬프고 지친 눈으로.
그저 이 시간이 얼른 지나가길 원하는 눈빛으로.
몬드롬은 조용히 작업대에 앉았다.
“칫, 정말이지 난쟁이 놈들은 다루기 까다롭다니까. 말일까지 얼마 남지 않았으니, 수량을 제대로 맞추라고. 요즘 대충 만드는 것 아니냐는 말이 많아? 어?!”
톰보르는 비아냥대며 공방을 빠져나갔다.
“에휴, 형님 잘 참으셨습니다.”
트랄릭이 몬드롬의 표정을 살폈다.
“맞습니다. 왕자님.”
“어허, 콜타. 말조심해라.”
“헙.”
어린 듯 보이는 드워프가 입을 틀어막았다.
“…….”
공방의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우리의 포에닉스가 굳건했다면, 이런 일을 당하지 않았을 텐데.”
누군가 훌쩍이기 시작했다.
“그만하시오. 멸망한 나라의 이름을 왜 자꾸 꺼내는 거요. 그럴수록 현실을 이기기 힘들 뿐.”
포에닉스는 멸망했다.
부서졌다.
아름다운 수정 광산을 탐낸 이웃 드워프 국가의 침략에.
몬드롬 라이트숄더는 포에닉스의 왕자였다.
포에닉스의 영웅, 불타는 광산의 주인인 르온의 마지막 후계자.
그러나 이제는 과거의 일일 뿐.
찬란한 드워프 왕가는 동족의 검에 맞아 쓰러졌다.
‘죽었어야 했는데.’
몬드롬은 낮게 신음했다.
전쟁 중 쓰러진 몬드롬을 빼돌린 것은 가장 늙은 가보닌이었다.
그는 살아남은 몇몇 드워프들을 탈출시켰다.
이 자리에 있는 드워프들의 생명의 은인이었으나, 그는 죄인처럼 맨 구석에 앉아 망치만 두들길 뿐이었다.
싸움에서 도망쳐 목숨을 부지하는 것은 드워프에겐 수치였다.
심지어 인간의 나라에 흘러들어와, 검은 빵과 돼지죽을 먹으며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있었다.
신분을 밝히지도 못하고 인간들의 눈치를 보며.
까앙! 까앙!
드워프들이 다시 망치를 들기 시작했다.
‘복수, 과연 할 수 있을까? 모든 것을 다 잃은 내가…….’
몬드롬은 싸움에서 졌으나 죽지도 살지도 못하고 있었다.
살아남아 반드시 복수하자는 가보닌의 부탁에 마지못해서.
하지만 몬드롬은 그것이 살고 싶은 자신의 부끄러운 속내를 감출 그럴듯한 변명이라고 생각했다.
‘내게 다시 한번 쇠의 신이 길을 알려준다면.’
까아앙!!
몬드롬이 벌겋게 달아오른 쇠를 내려쳤다.
* * *
“휘유. 어째 여기까지 오긴 했는데.”
“호오. 포커드 남작령보다 훨씬 큰 성이네요.”
아샤라가 막시무스 위에서 눈앞의 성을 가리켰다.
“넌 가끔 보면 되게 청순하다니까.”
“응? 나, 내가 청순해요?”
아샤라가 잔뜩 기대한 얼굴로 물었다.
“응, 뇌가.”
“뭐예요! 그거 욕이죠!!”
“그럼. 저긴 백작 성이니까 킬베리움 성보다 큰 게 당연한 거 아니겠어?”
아샤라가 어버버거리는 사이 루이드는 재빨리 발을 굴러 화이트를 몰았다.
‘무슨 수로 그들을 데려간다.’
에린의 말대로라면 드워프들은 아주 나쁜 조건에서 일하고 있었다.
‘약점 같은 걸 잡힌 게 분명해.’
헬켄 백작이 쉽게 드워프들을 놓아줄 리 없었다.
싼값에 좋은 기술자들을 쓸 수 있으니까.
‘뭘까. 그들이 이곳에 묶인 이유가.’
루이드와 아샤라는 헬켄 백작의 성도로 들어섰다.
예의 낙후된 시가지.
시커먼 연기를 뿜는 건물이 여럿에다 도로도 질척한 진흙 길이었다.
‘드워프들이 있다고는 해도, 딱히 엄청나게 발달하지는 못했구나.’
루이드가 주위를 살폈다.
그래도 눈에 띄는 것들이 있었다.
‘무기점이 굉장히 많고, 지나는 병사들도 금속으로 된 갑옷을 입고 있군.’
경비병들의 차림이 다른 영지에 비해 출중했다.
‘광산 덕에 돈을 많이 버는 영지답군. 이그라에서도 손에 꼽히는 곳이라지. 하지만 곧 우리가 따라잡을 것이다.’
루이드는 말을 몰아 검은 연기가 많이 나는 곳으로 갔다.
“이곳에 공방이 있을 거다. 불과 쇠를 많이 다루는 곳이니 연기가 자욱할 수밖에 없거든.”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요?”
“이 정도쯤이야, 어린아이도 예상할 수 있지 않겠어?”
루이드와 아샤라가 적당한 골목에서 말을 메어놓았다.
“분위기를 살펴보고 싶은데, 혹시 투명화 마법 같은 걸 걸 수 있어?”
루이드는 최대한 조심할 생각이었다.
영주 관리하에 있는 공방에 기웃대다가 잘못하면 경비병에게 걸릴 수도 있었다.
그럼 모든 일이 허사가 된다.
“두 달이나 걸려서 이곳에 왔는데 허탕치기 싫거든.”
“에?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투명화 상태일 땐 전투는 할 수 없을 거예요.”
“음, 전에 보니까 마법에 걸려도 내 능력은 쓸 수 있던데.”
“제 쪽에서 흔들릴지도 모르니까요.”
“응, 그럼 아주 조심스럽게 움직일게. 오늘은 탐색 정도만.”
아샤라가 조용히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녀의 주위로 작은 일렁임이 생기더니, 곧 아샤라와 루이드의 몸이 투명하게 변했다.
“오, 역시 대단해. 아샤라!”
“흥. 별것 아니라고요. 후후후.”
“자, 가자. 조용히.”
루이드가 먼저 움직였다.
“앗, 어, 어디로 가요!”
쿵.
“아야야!”
아샤라가 루이드의 등 뒤에 부딪혀버렸다.
마법에 걸린 당사자끼리도 서로를 분간할 수 없기에 일어난 일.
“흠, 안 되겠군.”
루이드가 아샤라의 손을 덥석 잡았다.
“힉……!!”
아샤라가 크게 숨을 들이마시었다.
“조용히 따라와.”
루이드와 아샤라는 공방 깊숙이 들어갔다.
“아샤라 너 손에 땀이 왜 이렇게 많아?”
“…….”
루이드가 속삭였지만, 아샤라는 묵묵부답이었다.
“어이! 드워프, 제대로 하지 못해?”
별안간 울리는 소리에 루이드가 걸음을 멈췄다.
인간 남자가 공방을 채운 드워프들에게 소리치고 있었다.
“헬켄 백작님이 아니었으면, 목숨도 부지하지 못했을 놈이. 네놈들의 나라는 이 지도상에서 사라졌다 이 말이야.”
‘저게 무슨 소리지.’
루이드는 숨을 죽이고 현장으로 더욱 가까이 다가갔다.
남자는 신경을 긁는 말을 얼마간 덧붙이더니 곧 공방을 빠져나갔다.
“에휴, 형님 잘 참으셨습니다.”
“맞습니다. 왕자님.”
남자가 사라진 후, 드워프들이 서로를 다독였다.
‘뭐? 왕자?’
루이드의 눈이 커졌다.
‘어라, 이거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드워프들은 자기들끼리만 있는 줄 알고 혼잣말도 크게 했다.
“그만하시오. 멸망한 나라의 이름을 왜 자꾸 꺼내는 거요. 그럴수록 현실을 이기기 힘들 뿐.”
훔쳐 듣는 루이드에게는 좋은 일이었다.
‘이거 어째 상상이 되는걸?’
루이드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전생에서부터 소설을 좋아하던 루이드는 이 정도 이야기만 들어도 전말을 충분히 상상할 수 있었다.
‘망국의 패잔병, 신분을 숨긴 왕자. 그래서 안 좋은 대우를 받으면서도 선뜻 다른 곳으로 떠나지 못한 거야.’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는 루이드였다.
‘헬켄 백작도 이 모든 걸 알고 있는 걸까?’
운 좋게도 드워프들은 루이드의 걱정에 대한 답을 내놓았다.
“몬드롬님. 견디기 힘드시다면, 백작과의 계약을 파기하고 다른 영지로 떠나도 됩니다.”
루이드는 안심했다.
‘호오, 백작 쪽에서는 이들의 깊은 사정은 모르나 본데.’
아무리 그들이 떠나고 싶어도 정체가 모두 탄로 났다면, 빼내 오기가 쉽지 않을 터였다.
헬켄 백작뿐만이 아니었다.
망국의 살아남은 왕족. 불온의 싹을 자르기 위해 어떤 자들이 꼬일지 알 수 없는 일.
“……쇠의 신을 볼 낯이 없는 내가 이보다 더 귀한 대접을 받으려 하겠다고? 너무나 큰 욕심이다.”
루이드가 보기에는 망국의 왕자, 몬드롬은 자존감이 많이 떨어진 상태인 것 같았다.
‘그럴 만하지. 왕족이었다면, 일가족이 몰살당했을 거다. 살아남은 게 대단한 일이야. 게다가 제정신을 유지하는 건 더더욱.’
그런 그를 설득하는 일이 관건이었다.
“쇠의 신이 내게 답을 주실 때까지. 너희도 버텨다오.”
몬드롬이 침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쇠의 신.
지붕 위에서, 루이드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