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ron' Son has Paranormal Abilities RAW novel - Chapter (225)
남작 아들은 초상능력자-225화(225/252)
제225화
제25편 주인(5)
“멈춰라!”
쇠사슬 끝에 달려있던 루이드의 금속들이 쉬이익 소리를 내며 노예들에게 달려들었다.
그들은 루이드의 공격을 알아차리지도 못했다.
퍼억! 눈 깜짝할 사이에 뒷머리를 가격한 사슬들 때문에 노예들이 쓰러졌다.
“백작님!”
루소 데리오가 놀라 외쳤다.
“괜찮아. 기절했을 뿐이니까.”
루이드는 바닥에 쓰러진 노예들을 보면서 아차 싶었다.
‘한동안은 제어가 안 될 텐데. 메달을 찢어버리는 게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을 걸 그랬나.’
사실 완전히 대비 없이 그런 짓을 한 건 아니었다.
아르헬과 데모니어스의 힘을 합해 그들의 무의식을 깨우고 치료할 수 있다면, 솔라보다 더 이른 시일 내에 치료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루이드는 그들을 계속 노예로 둘 생각이 없었으니까.
‘메달이 있었으면 더 수월하기야 했겠지만…….’
그래도 뭔가 마음이 찝찝했다.
그들은 가혹한 짓을 당한 피해자들이었다.
더는 고통을 지속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루이드는 가슴 속에 품고 있는 다른 메달을 떠올렸다.
사실 루이드는 이전부터 솔라의 기억을 되찾아 주고 싶었었다.
데모니어스가 무의식에 접근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안 뒤로, 그리고 통찰의 눈 능력이 의식 세계에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을 안 다음에도.
하지만 솔라가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진행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그녀의 메달도 섣불리 없애줄 수가 없었다. 그 횟수가 무척이나 줄어들었지만, 솔라는 가끔 제어하기 힘든 발작을 일으켰기 때문이었다.
“일단 그들을 지하 감옥으로 한 명씩 옮겨주고, 아르헬을 시켜 마법으로 힘을 봉해두도록.”
“예! 알겠습니다!”
루소 데리오가 병사들을 데리고 쓰러진 노예들을 옮겼다.
“그 여자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루소가 루이드의 품에 안겨있는 제니에 관해 물었다.
“이 여자는……. 내가 직접 옮기지.”
루이드의 금속들이 스스슥 움직여, 제니의 몸을 감쌌다.
지금 그녀의 몸은 어떤 상태일지 아무도 몰랐다.
그러니 사소한 충격에도 뇌나 신경, 어떤 부위가 상할지 모르는 것.
그래서 루이드는 특히나 조심스럽게 금속의 힘을 이용해서 그녀를 공중에 띄워 놓았다.
그리고 줄곧 등 뒤에 있던 솔라를 보았다.
“솔라, 괜찮아?”
“…….”
솔라는 겁에 질린 얼굴이었다.
“솔라, 이제 괜찮아. 걱정하지 마.”
루이드의 말에 작은 입술이 달달 떨렸다.
“저…… 생각났어요.”
“……전부?”
“전부요…….”
그녀의 손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루이드는 또다시 그녀가 발작을 일으킬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급하게, 그러나 다정하게 그녀의 어깨를 감쌌다.
“솔라. 네 과거는 너를 잡아먹을 수 없어.”
“하지만…… 전, 실패했었어요. 제 과거가…… 저를 삼켰었어요.”
떨리는 그녀의 목소리와 눈빛 속에서 루이드는 많은 감정을 느꼈다.
굳이 통찰의 눈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알 수 있었다.
그녀가 겪었던 고통과 두려움, 슬픔과 불안.
“이번엔 다를 수도 있어. 혼자가 아니잖아.”
루이드는 그녀의 팔을 더욱 굳세게 붙들어주었다.
진심이었다.
솔라는 이제 루이드의 수호단이었고, 그의 가족이다.
“전…….”
솔라는 도망치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루이드와 함께 했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진창에서 짐승처럼 살아가던 자신을 구한 것은 루이드였다.
항상 자신을 제어할 수 없을 때마다, 옆에 그가 있었다.
기억나지 않아도, 할 수 없어도 옆에서 응원해 주었다.
할 수 있도록, 하고 싶도록 노력하게 만들어 준 사람이었다.
다음 날을 기대하도록 만들어준 사람이었다.
더 나은 존재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게 해 줬던 사람이었다.
“할 수 있을까요? 그 모든 걸…… 기억해 내 버렸는데.”
“당연하지. 어려웠던, 어두웠던 기억을 딛고 일어설 수 있다면 더 강해질 수 있을 거야. 너의 뿌리를 몰라서 불안했던 때와 다르게 말이야.”
솔라는 그렇게 말하는 루이드의 목소리가 무엇보다 부드럽다고 생각했다.
그의 눈이 따뜻하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정 어렵다면, 도망쳐도 괜찮아. 쉬어도 괜찮아. 행복해지려고 사는 것인걸. 어느 쪽이 네가 행복하겠어?”
루이드는 솔라의 마음을 다 읽어낸 것처럼 말했다.
쿵. 솔라의 마음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그와 동시에 무한한 자유를 느꼈다.
그 무엇이든, 솔라가 결정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낸시였을 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번번이 실패했던 일이었다.
낸시라는 이름 전에는, 선택지조차 없던 일이었다.
하지만 솔라는 달랐다.
“이걸…… 너무 오래도록 가지고 있었던 것 같네.”
루이드가 품에서 솔라의 메달을 꺼냈다.
솔라는 메달을 보는 순간, 노예의 문양이 있는 목 주변이 화끈거린다고 생각했다.
쩌적, 쩌저적.
루이드의 손 위에 있는 메달이 찢겨 나갔다.
처음 반으로 갈라졌을 때, 이미 솔라는 자신을 옥죄고 있던 속박의 저주가 사라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화끈거린다고 생각했던 목 주변이 화한 느낌과 함께 편안해졌다.
그리고 루이드의 손 위에 있던 메달은 네 조각으로, 여덟 조각으로 계속해서 찢어졌다.
마치 반짝이는 종이를 찢는 것처럼 잘게.
그 행위가 너무나 쉽게 느껴졌다.
몇 년 동안이나 자신을 옭아맸던 물건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메달의 조각은 잘게, 더 잘게 부서졌다. 동전만 해졌다가, 고운 모래처럼 보일 때까지.
루이드가 솔라의 손을 잡아 그녀의 손바닥으로 가루가 된 메달을 흘려보냈다.
사르르륵.
솔라는 루이드의 온기가 남아있는 금속 조각이 따뜻하고 부드럽다고 생각했다.
“솔라, 네가 원한다면 네 기억을 이렇게 만들 수 있을 거야.”
어느 쪽을 말하는 것일까?
잘게 부수어 형태를 알아볼 수 없게 만든다는 것일까?
형태를 완전히 바꾸어서 이전의 용도는 전혀 알아볼 수 없지만, 그래도 아름답게 보이는 이 메달처럼 된다는 건…….
솔라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어떻게 하고 싶어?”
“루이드 님 곁에 있고 싶어요.”
뜨거운 눈물방울이 그녀의 뺨을 따라 턱에서 떨어지고, 후두둑하고 돌바닥을 적셨다.
솔라는 떠올렸다.
알 수 없었던 기이한 본능들, 감각들.
형태를 짐작할 수 없는 두려움과 불안. 이제는 그것이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유년 시절부터 시작된 학대와 잘못된 교육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주변의 도움과 루이드의 가르침 덕분에 지금의 솔라는 정확히 어떤 것이 선인지 악인지 구분할 수 있게 됐다.
어떻게 살고 싶은 것인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무너지지 않고, 삼켜지지 않고, 솔라로 살아가고 싶어요.”
지금까지 루이드와 함께 있으면서, 수호단 일원들과 지내면서 쌓아온 추억들과 마음들을 이어나가고 싶었다.
성공의 기억들,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와 격려의 기억들.
솔라의 이름으로 쌓아온 모든 것들을.
“그래도 괜찮겠어?”
이렇게 물어봐 주는 존재를, 잃고 싶지 않았다.
“네.”
솔라가 고개를 끄덕이자 후두둑, 후두둑. 굵은 눈물이 비처럼 떨어졌다.
루이드는 눈썹을 늘어트리고는 그녀를 꼭 안아주었다.
* * *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었다.
탑의 창으로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방 안의 풍경은 특별할 것 없이 평화로웠다.
고급스럽지는 않지만, 단정하고 흠 없는 커튼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작은 탁자에는 계절에 맞는 싱그러운 꽃이 가득 담긴 화병이 있었다.
여러 가지 무늬가 짜인 카펫과 깨끗한 침대와 침구.
그 풍경들 중앙에 바퀴 달린 의자에 앉은 여인이 있었다.
그녀의 곱슬곱슬한 금발 머리가 등 뒤로 가지런하게 묶여있었다.
끼익, 방의 문이 열리고, 다른 여인이 걸어들어왔다.
의자에 앉은 여인과 같은 머리카락 색을 가진 여인이었다. 그녀는 민트색 스카프로 리본을 만들어 머리띠처럼 장식하고 있었다.
리본 스카프와 같은 색의 눈동자가 반짝거렸다.
한치의 두려움도 느껴지지 않는 눈빛이었다.
솔라. 그녀가 의자에 앉은 여자에게 다가갔다.
“언니.”
솔라가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제야 의자에 앉은 여자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이름은 제니. 솔라의 언니였다.
제니는 솔라와 똑같은 민트색의 눈동자로 그녀를 올려다보았는데, 그 눈동자에서는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감정뿐만이 아니었다.
이지가 전혀 없는 듯한 텅 빈 눈이었다.
제니의 입술이 달싹거렸다.
“우, 우으…….”
그러나 짐승처럼 뭉개지는 소리만 들릴 뿐. 언어가 되지는 못했다.
“불쌍한 언니.”
솔라가 한쪽 손을 내밀어 제니의 뺨을 감쌌다.
제니는 처음에 놀라는 듯하다가 그녀의 손에 뺨을 기댔다.
솔라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아주 사랑스러운 상대를 바라보는 것처럼 다정한 표정이었다.
“결국 언니가 무시하고 막 부리던 사람들처럼 되어버렸네. 그 높은 곳에 올라갔다가 진창에 처박힌 기분은 어때?”
“우어어.”
“안타깝네. 자기 처지도 제대로 모르는 상태라는 게. 언니는 똑똑해서, 항상 뭐든지 똑바로 하는 걸 좋아했잖아.”
“우아……. 으…….”
“알아? 언니는 지금, 아무것도 남지 않은 사람이 되어버렸어. 루이드 님이 그러는데…… 언니의 머릿속에서 뭔가 잘못됐대. 언니에게서는 기억도 읽어낼 수가 없대. 데모니어스도 그랬어. 그냥…… 무의식도 의식도…… 그냥…… 다…….”
솔라가 제니의 남은 뺨에 천천히 자기 뺨을 갖다 댔다.
“언니. 나는 자유를 얻었어. 나도 언니도 그렇게도 원하던 거였지. 그런데 결국 가진 건 나였어. 언니는 영원히 내가 갖지 못할 거라고 했었잖아. 그렇지?”
제니의 민트색 눈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데굴데굴 굴렀다.
그녀는 약간 겁먹은 것처럼 보였다.
“언니가 그랬었어. 난 영원히 불행하고,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더럽고 나쁘다고. 타고나기를 그렇다고. 바뀔 수 있을 리가 없다고. 도망칠 수 없다고. 내게 매일 매 순간 말했었지. 그게 진짜인 것처럼. 내가 믿을 때까지 그랬어. 정말…… 오랫동안.”
솔라는 눈을 감고 웅얼대는 제니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래도 나는 언니랑은 달라. 불쌍한 언니를 거두어줄게. 물론, 루이드 님께서 허락하시니 가능한 일이지만……. 어떻게 생각해? 나 착하지?”
“우으으…….”
“걱정하지 마……. 내가 평생 언니를 돌봐줄게. 루이드 님도, 언니를 고치는 데 힘써주신대. 망가져 버려서 도움도 안 되는 언니에게, 그럴 필요까지는 없는데도……. 그분은 참 상냥한 분이셔. 그렇지?”
“아아아…….”
제니가 허우적거리자 솔라가 그녀의 팔을 꽉 잡았다. 그리고 그녀를 한참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언니, 나는 과거에 매몰되지 않을 거야. 앞으로 나아갈 거야. 내가 어디에서 왔든, 상관하지 않을 거야. 난 그걸 믿고 새로운 사람이 될 거야.”
하지만 마주친 같은 색의 눈은 여전히 흐리멍덩했다.
“…….”
솔라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녀에게서 손을 거두었다.
“당분간은 만날 수 없을 거야. 루이드 님과 잠시 먼 곳으로 떠날 거거든. 하지만 이곳의 친절한 사용인들이 언니를 돌봐 줄 거야.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솔라는 천천히 걸음을 뗐다.
“우, 우으으……. 으으으!”
제니가 솔라의 옷을 붙잡으려고 버둥거렸다. 그러다가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아이참…….”
솔라는 순간적으로 경멸스럽게 바라보았다가 표정을 고쳤다.
그리고 그녀를 일으켜 다시 의자에 앉혀주었다.
“착하지……. 잘 기다리고 있으면 선물을 가져올게. 약속해. 내 말 알아듣겠어?”
제니는 알아듣지 못하고 그저 솔라를 바라볼 뿐이었다.
똑똑. 누군가 문을 두드렸고, 솔라가 대답하자 사용인이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솔라 님. 시간이 되었습니다.”
“……언니가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네. 좀 도와줄래요?”
“네.”
사용인이 다가와 제니가 붙든 솔라의 팔을 떼어 붙잡았다.
솔라는 이번에는 돌아보지 않고 방을 나섰고, 단숨에 계단을 내려갔다.
탑 밑에서는 이미 출발 준비를 마친 루이드와 수호단 일행이 있었다.
“인사는 마쳤어?”
말 위에 타고 있던 루이드가 물었다.
“네!”
솔라가 밝은 얼굴로 대답했다.
솔라를 향해 마주 웃어주는 루이드의 손에는 셜린 세반 공작이 주었던 쪽지가 들려 있었다.
“자, 그럼. 출발해 볼까?”
솔라가 마지막으로 말에 올라타자, 루이드와 일행이 새로운 여정을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