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ron' Son has Paranormal Abilities RAW novel - Chapter (226)
남작 아들은 초상능력자-226화(226/252)
제226화
제1편 검은 왕좌
루이드는 말 위에서 클리아베이든의 아티팩트를 꺼냈다.
펜던트로 된 나침반 모양 아티팩트의 뚜껑을 열자, 익숙한 화살표가 보였다.
사라졌던 화살표들이 다시 선명하게 두 개 떠올라 있었다.
하나는 셜린 세반이 알려준 마법 좌표의 위치를 알려주고 있는 화살표였다.
그가 준 쪽지를 넣으니 자동으로 화살표가 생성됐다.
문제는, 쪽지를 아티팩트에 넣기 위해 처음 열었을 때 이미 화살표가 있었다는 거다.
‘제니라는 그 여자가 완전히 의식이 날아가 버려서 알아내지는 못했지만, 이 아티팩트로 충분하겠지.’
페르디날. 그가 다시 루이드가 조종할 수 없는 금속을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의미였다.
‘그가 군대를 준비하고 있을지 모른다.’
반드시 돌아올 것이다.
돌아와서, 루이드에게 복수할 것이다.
루이드의 미간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페르디날이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루이드 역시 그를 맞을 준비를 해야만 했다.
그러기 위해 먼저 가야 할 곳이 이 다른 화살표가 가리키는 곳.
‘이브가 원하는 곳.’
루이드는 두 개의 화살을 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 * *
검은 대리석과 금빛으로 장식된 화려한 알현실. 높은 천장에 그려진 그림 아래로 마치 종유석이 떨어진 것을 깎아 만든 것 같은 거대한 왕좌가 있었다.
왕좌는 검고, 황금이 박힌 듯이 곳곳이 노랗게 반짝였다.
알현실 자체가 하나의 예술품 같을 정도로 아름다우면서도 절도 있고 권위적인 분위기가 흘렀다.
거기에는 얼굴에 수심이 가득한 소년이 앉아 있었다.
사실 소년이라고 하기에는 이미 꽤 나이를 먹은 자였다.
크라우스 제국의 어린 황제.
요하로델 크라우스.
그의 얼굴에는 핏기가 전혀 없고, 눈 밑은 움푹 파이고 그늘져 있는 데다가 입술을 바짝 말라 하얗게 일어나 있었다.
타고난 허우대는 좋았으나, 기다란 팔다리에 근육이 죄다 빠지고 살가죽만 겨우 남은 모습이 볼품없었다.
텔도라그 대륙의 대부분을 재패한 대제국 크라우스의 황제라고 보기에는 너무나도 허름한 모습이라 할 수 있었다.
추운 겨울의 앙상한 가지 같은 몸을 겨우 왕좌에 기댄 그는 아무도 없는 알현실에 혼자였다.
가신도, 병사들도 없었다.
그는 멍한 눈으로 그저 앞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들이 오고 있어.」
황제는 속삭이는 목소리를 들었다.
커다란 알현실 전부를 울리는 듯한 기묘한 목소리는 미묘하게 달콤했다.
“그래. 아마 그렇겠지. 이제는 이렇게 무능한 황제 따위 그들에게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그가 피식 웃었다.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지. 모두 내게 등을 돌릴 거라고. 그래……. 그걸 모를 만큼 바보는 아니야. 그간 내가 먹고 마시는 음식과 술에 독을 탔다는 걸 알았을 땐 이미 늦었지.”
드드드드. 요하로델은 거대한 알현실의 바닥이 흔들리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아마 착각이 아니리라.
황제의 자리에서 자신을 끌어내리기 위해 에오넬 공작과 타겔 후작의 군대가 오고 있을 터였다.
무장한 군대의 발걸음 탓에 온 대지가 진동하고 있으리라.
왕의 피를 탐하며 거친 포효를 삼키고 있으리라.
“목숨을 겨우 부지한다고 해도, 숨이 끊어질 때까지 허울뿐인 황제로 살아가겠지. 지하 감옥이나 높은 탑에 갇히지 않는다면 다행이고.”
젊은 청년의 것이라고는 믿기 힘든 탁한 목소리가 쿨럭이며 기침을 해댔다.
기침 속에서 그는 과거를 떠올렸다.
이 왕좌에 앉기까지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나.
어렸을 때부터 그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요하로델 크라우스의 아버지.
대 크라우스 제국의 황제 카마올로 크라우스는 아름답고 힘 있는 가문과 맺어 선발된 황후뿐만이 아니라 수많은 후궁이 있었다.
거기에는 제국의 결속을 위함도 있었다.
수많은 왕위 계승자 사이에서 청소년기까지 버텨낸 이들은 몇 없었다.
대외적으로는 병사하거나, 사냥을 나갔다가 낙마하여 사고사하거나. 신경쇠약으로 인해 자살하거나.
요하로델은 후궁의 아들이었으므로 원래는 왕좌의 앉을 자격이 없었다.
하나, 황후는 아들이 없었다. 그리고 요하로델의 어머니인 후궁은 카마올로 크라우스가 가장 아끼는 후궁이었다.
요하로델은 황후의 얼굴을 떠올렸다.
“무서운 분이셨지. 아무것도 아닌 나를 죽이려고……. 수년을 노력하셨지만, 결국 실패하셨지…….”
그러다 요하로델이 왕위를 물려받기 직전. 황후가 아들을 낳은 것이다.
그야말로 황궁은 어지러웠다.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지만, 모두 물 아래에서 죽기 살기로 물장구를 치는 오리들 같았다.
「아직도 죄책감을 느끼는구나. 그 핏덩이 같은 아이를 네 손으로 죽인 것을.」
알현실을 울리는 목소리가 부드럽게 속삭였다.
“어찌 느끼지 않을 수 있을까. 어린 아기를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는데, 참으로 예쁘더구나. 작은 손이 마치 단풍잎 같아서 쥐면 바스러질 것 같았지.”
요하로델의 고개가 자꾸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는 겨우 왕좌에 앉아 있을 수 있는 지경이었다.
온몸에 퍼진 독이 몸과 머리를 멍청하게 만들고 있었다.
아마 반역을 꾀하는 자들은 자신을 불구자로 만들 생각일 터였다.
목숨만 겨우 붙여서, 왕의 핏줄이 끊어지지만 않게 하려고.
「네가 그들 손에 넘어간다면, 그 귀하고 어린 것이 죽은 의미가 퇴색되지 않겠느냐.」
달큰한 속삭임 속에 요하로델의 고개가 꼿꼿하게 섰다.
“그 어린 아기가 아무것도 모른 채, 나를 보며 웃던 얼굴이 떠오른다.”
그날부터 요하로델의 광증이 시작되었다.
밤마다 아기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단 하룻밤도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금빛이 찬란한 왕관과 왕좌를 차지하는 데 성공했음에도, 수많은 핏자국 위에서 아무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일상을 살아갔음에도.
숨을 쉴 수가 없어서 대신들 앞에 나아갈 수조차 없는 날들이 잦아졌다.
대신들은 게으른 황제라 욕을 했고, 제국의 기강은 흐려져 귀족들끼리 싸워댔다.
‘네놈이 모든 것을 망쳤다. 내가 평생을 지켜온 왕좌를 물려줄 핏줄이 너밖에 남지 않았다니. 네 어미를 사랑했던 지난날을 후회한다. 내가 귀신을 키웠어.’
병색이 깊어 침상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카마올로 크라우스가 말했었다.
그의 병환도 겉으로 드러난 이유였을 뿐이었다.
요하로델은 천천히 눈을 끔뻑이며, 아버지의 마지막 얼굴을 떠올렸다.
크라우스의 모든 피가 요하로델의 손에 묻어 있었다.
왜?
이 자리에 앉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서.
요하로델은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그저 살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저 살기 위해서는, 자신 이외의 모든 것을 죽여야만 했다.
갓난쟁이인 배다른 형제도, 아버지도. 수많은 살수와 첩자들, 위협이 되는 모든 이를.
요하로델 크라우스는 몸도 몸이었지만, 정말이지 정신은 산 사람이라고 볼 수 없었다.
이만큼 숨길 수 있는 것도 대단한 일이었다.
에오넬 공작이 아니었다면, 그럴 수 없었을 터였다.
그런데 그 에오넬 공작이 지금 요하로델을 왕좌에서 끌어내리려고 군대를 데려오고 있었다.
죽기 살기로, 영혼을 팔아 쟁취한 왕좌를 요하로델에게서 빼앗으려고.
“그래, 내가 에오넬 공작에게 너무 기댄 탓이겠지. 그 누구에게도 약한 모습을 보여선 안 됐는데.”
요하로델이 긴 한숨처럼 들리는 말을 뱉어냈다.
「그래, 그러니. 그 아이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왕좌를 굳건히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달콤한 울림이 알현실 안에 메아리를 만들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목소리가 요하로델의 귓가에 윙윙 울려댔다.
“어떻게? 이미 무장한 병사들이 코앞까지 왔다. 이 땅 울림이 느껴지지 않는가. 이 바짝 긴장한 공기가 느껴지지 않는가. 피를 부르는 사내들의 살기가!”
요하로델이 왕좌에 앉은 채로 주먹을 꽉 쥐었다.
길게 자란 손톱에 손바닥이 상해, 손잡이 부분으로 피가 배어 나왔다.
「나를 받아들여라. 황제여.」
목소리는 한층 달콤하고, 끈적했다.
「나를 그대의 그릇에 담아다오. 그대가 지키고자 했던 왕좌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않도록 만들어주겠다.」
목소리가 메아리쳐 사방에서 달콤한 유혹이 쏟아졌다.
「내가 그렇게 만들어주겠다. 그대가 원하는 끊이지 않는 강력한 힘을, 내가 가지고 있다. 오직 담길 그릇을 찾고 있다. 나를 받아들인다면, 그대는 신이 되리라.」
요하로델의 눈이 크게 떠졌다.
「빛이 바래지 않는 영광스러운 왕좌의 합당한 주인이 되게 하겠다. 누구에게도 이 빛나는 자리를 빼앗기지 않도록 해주겠다!」
격앙된 목소리가 천장과 벽, 기둥 사이를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것과 함께, 쿵쿵쿵! 땅이 울리며 알현실의 정문이 벌컥 열렸다.
열린 문으로 병사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모두 무장을 하고 검과 창을 들고 있었다.
그들은 빠르게 알현실을 채우고 왕좌를 포위했다.
사방에 둘러싼 병사들의 무기가 요하로델에게 겨누어졌다.
그리고 정문에서부터 천천히, 그러나 아주 당당한 발걸음으로 들어오는 이가 있었다.
그의 호박색 눈이 높은 천장의 창으로부터 들어오는 빛을 받아 보석처럼 빛났다.
에오넬 공작. 요하로델은 그 익숙한 얼굴을 단숨에 알아보았다.
뱃속에서부터 끓어오르는 분노가 차마 목구멍을 넘지 못하였다.
요하로델에게 에오넬은 하나밖에 없는 친우였다.
매일매일 목숨이 오가는 살얼음판 같은 곳에서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자였다.
어떻게 그리 마음이 잘 맞던지, 요하로델은 에오넬의 영혼 일부가 자신으로 태어났다고 생각했다.
원래는 하나였던 영혼이 둘로 갈라져, 각기 다른 몸으로 태어났다고 생각했다.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것도 에오넬 덕분이었다.
그가 곁에 없었다면, 자신은 버틸 수 없었을 거라고 굳게 믿었다.
믿었었다.
그런데, 그랬는데. 그의 입에서 칼날 같은 말이 튀어나와 요하로델의 가슴을 찔렀다.
“무능한 요하로델 크라우스는 들어라! 크라우스 제국의 안위를 그대에게 맡길 수 없다는 것을 하늘도 아실 터!”
우정을 논하던 입술에서, 뱀의 독을 가진 것처럼 차갑고 감정 없는 말들이 쏟아져나와 요하로델의 영혼을 물어뜯었다.
“오늘부터 황제는 왕좌에서 물러나고, 제국 의회의 관리하에 운신할 것을 고한다!”
요하로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제국 의회? 그딴 게 어디 있단 말인가.
그들의 관리하에 운신하라고?
감히 누가 황제에게 명령한단 말인가.
바들바들 떨리는 요하로델의 핏발 선 눈에서 광채가 흘렀다. 그리고 그가 외쳤다.
“그래!!”
그의 대답이 알현실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요하로델의 말에 가장 놀란 것은 에오넬 공작이었다.
그의 눈이 커다랗게 떠졌다. 그리고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걸렸다.
‘바보 같은 황제. 자존심도 없는가. 순순히 그 왕좌를 내놓겠다는 것인가. 이리 많은 병사를 끌고 온 것이 부끄러울 정도다.’
에오넬 공작은 헛웃음을 삼켰다.
다 끝났다. 이렇게 순순히 끝날 줄이야! 알현실을 가득 채운 병사들도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자신들이 완전히 착각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요하로델이 대답한 상대는 에오넬 공작이나 병사들이 아니었다.
「좋다! 좋다! 좋다!」
끔찍한 목소리가 알현실을 가득 채웠다.
쿠우우웅!! 건물 전체가 크게 뒤흔들렸다.
“무, 무슨……!”
에오넬 공작과 병사들이 크게 당황했다.
“화, 황제를……!”
“그를 잡아!”
“어, 어?!”
그들이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높은 천장의 그림에서부터 시커먼 것이 쭈욱 늘어났다.
점토 같은 모양이었는데, 그 크기가 왕좌를 삼킬 만큼 큰 것이었다.
검은 것은 순식간에 요하로델을 덮쳤다. 마치 진흙을 뒤집어쓴 것처럼 요하로델의 몸이 시커먼 것에 뒤덮였다.
에오넬 공작과 병사들은 바로 알 수 있었다.
이건 보통 일이 아니다.
끔찍한 기운이 알현실 내부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필시 불길한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그들의 모든 감각이 비명을 지르듯이 날카롭게 알려주고 있었다.
“헉……!”
“공작님! 어, 어쩔……!”
푸촤학!!
뭔가가 꿰뚫는 소리와 함께 알현실 내부가 정적에 휩싸였다.
또옥. 똑…….
액체가 흐르는 소리가 났다.
요하로델이 서 있던 자리, 요하로델을 뒤덮은 검은 물질로부터 검은 가시 수십 개가 뻗쳐 나와 알현실 내부의 병사들을 모두 꿰뚫어 버렸다.
굳이 비유하자면 그것은 거대한 성게의 형상처럼 보였다.
또 어떻게 보면 가시나무나, 넝쿨이나, 거미줄처럼 보였다.
가시들은 알현실 구석구석을 놓치지 않았다.
안에 있는 자라면 모두 여러 군데를 꿰뚫렸다.
가시를 타고 병사들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어……. 크헉……. 억…….”
에오넬 공작만은 아직 의식이 남아있었다.
그는 경지가 높은 검사이기도 했기 때문에 급소를 찔리고도 아직 숨이 붙어있었다.
쩌적.
가시가 뻗어져 나온 중심인 검은 기둥 왕좌에서 균열 소리가 났다.
쩌저적……. 검은 기둥이 갈라지더니, 그 안에서 광채가 나는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짙은 검은 머리에 햇빛을 전혀 받지 않은 사람처럼 희고 투명한 피부를 가진 나신의 사내가 걸어 나왔다.
찰박. 찰박.
그가 발을 내딛자 물기 어린 소리가 났다.
“보아라, 세계의 왕이 왔도다.”
검은 왕좌에서 걸어 나온 사내가 활짝 웃었다. 그의 입안은 온통 새카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