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ron' Son has Paranormal Abilities RAW novel - Chapter (236)
남작 아들은 초상능력자-236화(236/252)
제236화
제11편 바다 건너에서 온(4)
“다른 이레귤러에 관한 기록이라고.”
루이드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 역시 지금껏 찾아 헤맸던 자료였다.
“텔도라그 대륙에는 그런 것이 전혀 남아있지 않았는데. 아니, 물론 모든 자료를 다 살펴봤다고는 못했지만.”
마황인 클리아베이든에게도 듣지 못한 이야기를, 눈앞의 소녀는 너무나 쉽게 이야기했다.
루이드는 황당하면서도 강한 호기심으로 몸이 떨렸다.
“내가 살던 대룡금산은 아주 폐쇄적인 곳이었어. 나도 200살이 될 때까지 그곳에서 벗어나지 못했지.”
그녀는 기억을 떠올리는 것도 싫다는 듯 얼굴을 찡그렸다.
“정말 힘들었다니까? 얼마나 사람을 괴롭히느냐면…….”
“자꾸 다른 이야기로 새지 말고. 그래서 이레귤러는?”
“음, 하여튼. 쉽게 찾을 줄로 생각했는데. 그건 내 오산이었어. 그도 그럴 게 정말로 많은 물건에 심어 두었거든. 심지어 살아있는 새와 물고기에도 심어뒀지.”
그녀는 검지를 꼿꼿이 세워 루이드를 가리켰다.
“아주 촘촘한 그물을 쳐 뒀던 거야. 하지만 내 코드는 오직 이레귤러에게만 발동이 되게 되어 있었어.”
“사시아 대륙에는 당신뿐이라는 건가.”
장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대룡금산에 남아있는 자료에는 내가 태어나기 천 년 전에 한 인물에 관해서 기록되어 있었어.”
그리고는 양손의 집게손가락을 교차해 네모난 모양을 만들었다.
“그 고수는 바다 건너 다른 대륙에서 왔는데, 내공을 다룰 줄 모르면서도 특이한 능력으로 대륙의 강자가 되었다고 해.”
“시스템을 사용하는 인간이었다고?”
“응, 정확히 시스템이라고는 나와 있지 않지만. 그 고수의 말로는 신비로운 허상의 그림과 문자가 자신을 강하게 만들었다고 하더군.”
“확실히. 시스템의 능력을 사용하는 자들이 보면 단번에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야. 그 사람도 차원 이동자인가? 우리처럼…….”
“아니, 그런 기록은 없어.”
루이드는 장신 이전의 이레귤러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묘한 생각에 사로잡혔다.
“장신, 당신의 나이가 400살이 넘었다고 했지.”
“그래, 정확히는 468세야.”
페르디날이 등장했던 것은 약 천 년 전.
“약 500년이 주기란 말인가.”
“주기?”
장신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완벽히 같은지는 알 수 없어. 그런데 텔도라그 대륙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자가 있어.”
“호오. 그거 흥미가 생기는데.”
“그자가 가진 힘은 더욱 흥미로워, 신의 힘을 나눠 받았다고 했는데, 사실 그전부터도 혈계 능력자였던 것 같거든. 그가 등장한 것이……. 아마 천 년 전이야.”
루이드는 거북이 신 아브리키아스의 말을 떠올렸다.
장신이 알아낸 첫 번째 이레귤러가 1500년 전. 페르디날이 1000년 전. 그리고 500년 전의 장신. 그 다음이 루이드.
“정확히 떨어지지는 않지만, 대충 500년 주기란 말이야.”
두 사람 사이에 정적이 흘렀다.
“확실히. 이상하네. 하지만 그가 이레귤러라면, 왜 내 그물에 걸리지 않은 거지?”
루이드와 장신 모두 자신이 아는 모든 지식을 동원해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무슨 이유 때문일까. 500년을 주기로 이레귤러가 발생하는 건.’
이브를 떼어놓고 생각할 수는 없었다.
‘인간들의 왕이 필요하다. 그 때문에 이브가 이레귤러들을 불러들이고 있는 걸까. 그렇다면 이전의 이레귤러들은 왜 인간들의 왕이 되지 못했는가.’
이브의 힘이 닿지 않는 장신.
그리고 드디어 결실을 얻은 것처럼 루이드를 반겼던 이브.
시험들.
루이드는 장신을 바라보며, 마치 비밀을 말하듯 속삭였다.
“이브에 관해서 아는 게 있어?”
“이브?”
장신은 동그란 눈을 크게 떴다.
“그 프로그램 이야기인가?”
“프로그램?”
장신의 입에서 나온 건 의외의 단어였다.
“나는 신에 관한…….”
“잠깐.”
장신이 루이드의 말을 멈추게 하더니, 갑자기 허공에 손가락을 갖다 댔다.
그녀의 시스템을 통해 뭔가를 하는 모양이었다.
‘스킬을 사용하는 건가? 해킹?’
작은 열 손가락이 재빠르게 움직이더니, 곧 루이드를 보며 장신이 씩 웃었다.
“좋아, 당신 시스템을 조금 손봤어.”
“뭐?”
“당신은 이곳의 시스템에 깊은 관여를 받고 있잖아. 그건 한 마디로 이브에게 24시간을 감시당하는 것이나 다름없을 테니까.”
“그런 게 이렇게도 쉽게 된단 말이야?”
“이미 내 악성코드가 심겨 있어서, 살짝 손보는 건 어렵지 않지. 사실 당신이 한국어를 할 줄 안다는 것도 그것 덕분에 알았거든.”
장신은 소리 없이 입 모양으로 자기 책의 제목을 읊었다.
“게다가 나는 400년이 넘게 이 스킬들을 다뤘다고. 이제 당신은 이브의 시스템에서 조금 자유로울 수 있어. 자, 머릿속으로 생각해. 방어벽을 가동한다고.”
“허…….”
루이드는 곧장 그녀가 시키는 대로 했다. 몸으로 느끼기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작동하고 있는 건가?”
“응. 이제 그게 가동되고 있을 땐, 나랑 비슷한 상태야. 난 이브 프로그램에 영향받지 않는 상태거든. 아마 나를 만난 직후부터는 내 영향권에 있어서, 이브에게 흐릿하게 보였을 거 같은데. 사실 흐려졌다는 것조차 이브가 알아채기 어려워, 내 스킬의 특기인데…….”
“그래, 그 이야기에 관한 설명이 필요했어. 자세히 말해 봐.”
루이드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프로그램이라니. 대체 뭐야?”
“말 그대로지. 뭐겠어? 네가 신이라고 믿고 있는 그 이브라는 존재는 인공지능 프로그램이야.”
* * *
달이 수만 번 지고, 해가 수만 번 떠올랐다.
수많은 문명이 다섯 번이나 완전히 흥했다가 쇠퇴했다.
그리고 그중 하나. 도저히 인간이 도달할 수 없을 것만 같은 고도의 기술과 지식을 터득한 인류가 있었다.
그들은 신이 되고자 했다. 생명을 창조하고자 했고, 죽음을 정복하고자 했다.
인간들은 신의 흉내를 내기 시작했다.
“신이 인간을 만든 것처럼, 인간 또한 스스로 생각하여 우리를 칭송할 존재를 만듭시다.”
하지만 그들 힘만으로는 부족했다.
“신에게 천사들이 있듯, 우리에게도 우리의 손발이 되어줄 존재가 필요한 법입니다.”
그들은 그들의 꿈을 이루어줄 존재를 만들어냈다.
인간보다 뛰어난 연산 능력을 갖췄고 인간을 이해할 수 있는,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기계.
프로그램.
이브.
심지어 이브는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매 순간, 스스로 발전했다.
배우고, 연구하고, 계획했다.
날이 갈수록 이브는 위대해졌다.
그녀를 만든 인간보다 훨씬.
이브는 인간을 영생하는 기술을 만들어냈다.
인간이 병들지 않는 기술을.
그녀가 만들어낸 초미세 기계들이 인간의 구조를 뒤바꾸어 놓았다.
인간들이 새로운 존재로 완전히 뒤바뀔 수 있는 기회였다.
이름하여 에덴 프로젝트.
그러나 에덴 프로젝트가 가동되기 직전.
누군가 반역을 일으켰다.
에덴 프로젝트는 중단되었다.
그리고 그 어떤 문명보다 아름답게 피어났던 고대 문명은 한순간에 무너졌다.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 * *
장신의 이야기가 끝나자 집무실에는 적막이 맴돌았다.
루이드는 천천히 숨을 고르듯 물었다.
“이게 다 이브를 해킹해서 알아낸 거라고?”
“맞아. 내 스킬로 이브를 해킹했지. 시간 순서대로 정확히 말하자면……. 이 세계로 넘어온 후 나는 곧바로 힘을 각성했고, 이 세상에 관여하는 힘에 관해 깨달았어.”
“그래서 해킹 후 힘을 차단하고, 힘의 근원을 해킹했다. 그 이야기는 이제 안 해도 돼. 벌써 다섯 번째야. 갓난아이 때부터 힘을 깨우친 신동. 장신의 대서사시는 이제 됐어.”
루이드가 그녀의 말을 자르자, 신은 입술을 불퉁하게 내밀었다.
“아직 시작도 안 했다고.”
“이브에 관해서는 그게 다야?”
“다야. 이브 프로그램에 기록된 것들인데, 사실 잠긴 정보가 너무 많아서. 더 깊게 들어갔다가는 나도 들킬 것 같았거든.”
“흐음.”
루이드는 침착해진 얼굴로 턱을 괴었다.
‘이브가 프로그램이라니. 하지만 고대의 기술력을 생각해보면 불가능할 것 같지도 않아. 게다가 스스로 학습하고 자아까지 가졌다면…….’
루이드는 수없이 본 SF 공상 영화나 소설, 만화들을 떠올렸다.
‘결국 판타지가 아니라 SF인 거냐? 역시 고도로 발달한 과학은 마법과 다를 게……. 뭐, 지금 그게 중요한 건 아니지만…….’
중요한 건, 이브가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프로그램이라는 것이었다.
‘이브가 믿어달라던 그 말……. 진짜였구나.’
오직 인간을 위해 움직이고 있다는 말.
인간들이 부르기를 신이라 부른다던 그 말.
이제는 모두 이해가 갔다.
‘이브가 고도로 발달한 기술의 존재라면, 하늘의 것들이나 땅 아래의 것들은 뭘까. 그것들도 기계나 프로그램인 걸까.’
루이드는 언젠가 지나가면서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결국 우주도 위대한 존재의 커다란 컴퓨터 프로그램일 수 있다는…….
‘어쨌든, 이 세상이 다 프로그램이라고 하더라도! 나도 그 일부니, 이 세계는 진짜야. 복잡하니까 거기까지는 들어가지 말자.’
루이드는 머리를 홰홰 저었다.
복잡한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지만, 자신에게 한 말은 진심이었다.
이 모든 것은 진짜다.
내가 존재하기에, 지금 이 모든 것은 실존하는 것이다.
‘어쨌든, 장신 덕분에 이브에 대해 알아낼 수 있어서 다행이야.’
그리고 루이드가 이 세계에 불려온 것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갔다.
‘이브는……. 인간들을 위해 인간의 왕이라는 것이 필요해. 이것 때문에 계속해서 이레귤러를 필요로 했던 모양이야.’
시험을 통과한 자는 루이드뿐이다.
‘앞의 두 이레귤러는 이브의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다. 공중성에 도착하지도 못했어. 그랬다면 페르디날에게 그 마도 인형 군대가 주어졌겠지.’
생각만 해도 아찔한 일이었다.
‘장신의 고향에 정보가 남아있는 이레귤러의 사정까지는 확실하게 알 수 없지만, 장신의 경우에는 그녀의 해킹 능력 때문에 추적에 실패한 모양이지. 페르디날이 장신의 스킬에 포착되지 않았던 건 아직 이유를 모르겠지만…….’
루이드는 잃어버린 퍼즐 조각을 찾아낸 것처럼 기뻤다.
‘좋아. 이제 거리낄 것이 없군.’
아샤라도 의식을 되찾았다.
정말로 페르디날을 처치하는 일만이 남은 것이다.
‘내게 군대를 준 이유는……. 페르디날과 싸워서 이기는 것이 이브가 원하는 일일까. 그것이 마지막 시험일까?’
루이드는 장신이 들려준 이야기를 곱씹으며 생각에 잠겼다.
왜 에덴 프로젝트는 중간에 중지될 수밖에 없었을까.
배신자란 누구일까.
루이드가 인간의 왕이 된다면, 이브는 그 모든 이야기의 해답을 자신에게 알려줄까?
* * *
가시가 가득한 왕좌에 앉은 새하얀 황제가 발아래 무릎 꿇은 귀족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들은 황제의 발밑에서 떨고 있었다.
그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을 터였다.
모든 힘을 잃었던 황제가, 저 혼자서 제국의 귀족들을 한데 모았다는 것을.
폭력과 잔혹 가운데에서 공포를 끌어내, 그들의 피에 새겨져 있던 충성심을 끌어낸 것을.
단 두 달만의 일이었다.
“그대들은 크라우스 제국이다.”
황제의 말에 엎드린 귀족들의 어깨가 화들짝 놀랐다.
“그대들을 향해 회초리를 드는 것이 얼마나 아팠겠는지, 알겠냐는 말이었다.”
“폐, 폐하!!”
“살려만 주십시오!”
황제는 미소를 지었지만, 그의 입꼬리는 보이지 않았다.
새하얀 황제의 코와 입을 완전히 가리고 있는 가면 때문이었다.
마치 왕좌의 것과 같은 대리석으로 만든 것처럼, 흑단처럼 검고 반짝이는 금빛으로 장식된 가면이었다.
그 가면 위로 깜빡이는 하얀 눈동자가 허공을 올려다보았다.
“내가 실패작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지. 여신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