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ron' Son has Paranormal Abilities RAW novel - Chapter (237)
남작 아들은 초상능력자-237화(237/252)
제237화
제12편 바다 건너에서 온(5)
크라우스 제국령의 최동단.
말카러스 총독부.
“조공을 40%만큼 인상하라고?”
“예, 총독님.”
말카러스의 총독으로 임명되어 5년 동안이나 이곳을 담당한 제넌이 얼굴을 굳혔다.
“이제 겨우 가뭄이 끝나, 숨통이 트이려는 찰나인데. 무슨 수로 조공을 40%나 더 걷는단 말인가. 이건 말카러스인들 보러 죽으라는 것이나 다름없군. 분명 또 시끄럽게 반발해댈 텐데.”
그의 탄식을 듣던 총독부 관리 게셴이 한 발 더 가까이 다가오며 속삭였다.
“총독님, 조심하십시오. 지금 제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혹여 누군가 듣기라도 한다면 곤란해질 겁니다.”
“…….”
비단 말카러스 뿐이 아니었다. 이번 조공 40% 인상은 모든 식민지에 해당하는 일이었다. 크라우스 제국이 지배하는 모든 나라에 말이다.
‘필시 전쟁을 준비하는 게야.’
제넌이 잔에 든 와인을 거칠게 들이켰다.
오늘따라 포도주가 더욱 쓰게 느껴져 그는 미간을 한껏 찡그렸다.
“제국 내에서는 피바람이 불었다고 합니다. 이곳은 변방인지라 그나마 조용했지만.”
게셴이 목소리를 더욱 낮추었다.
“고위 귀족들 모두 아주 예민합니다. 그분께서 그렇게 되시고…….”
“쉿.”
제넌이 주석 잔을 쾅 내려놓으며 게셴의 입을 막았다.
크라우스 제국의 황제가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르는 귀족들이 없었다.
당연했다. 이미 타겔 후작과 카뭰 공작이 하는 짓거리 또한 모두 알고 있었으니까.
모두 모르는 체하고 있었다.
그들이 왕좌를 차지하기만을 기다리면서.
아무도 요하로델이 왕좌를 지킬 힘이 있다고는 예상하지 못했으니까.
그러니 지금의 이 피바람을 맨몸으로 맞아야 하는 것은 인과응보가 아닌가.
“……어쨌든,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아주 기민하게 살펴야 합니다. 이제 곧 대규모 징집도 있을 겁니다.”
“……그렇겠지. 그때가 되면 이곳은 더욱 난리 통이 될 것이다. 모든 군대가 이곳에 모이게 되겠지. 그런 귀찮은 일에 얽히게 된다니.”
제넌이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긁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그것을 기회로 삼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어떻게 말이냐.”
“황제께서 이곳까지 오실 때, 그때 눈에 띄면 되지 않겠습니까.”
게셴의 말에 제넌은 코웃음을 쳤다.
‘그 정도도 내가 생각하지 못했을까. 하지만 어떻게 드냐는 말이다. 지금 황제는 거의 미친놈이라고. 물론 이전에도 미친 놈이기는 했지만…….’
이런 변방까지 밀려난 제넌이라도, 황궁의 소식을 전해줄 소식통이 있었다.
여동생인 세브리나가 황제의 시녀였다.
그녀가 말해준 황제는 이미 인간의 경지를 뛰어넘은 괴물이었다.
그 소식을 조금만 일찍 들었어도 제넌은 말카러스의 총독 자리를 어떻게든 다른 이에게 떠맡기고 시골로 도망이라도 갔을 터였다.
세브리나의 편지에는 너무나 끔찍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밤하늘처럼 아름답고 영롱하던 황제의 알현실에 가득한 피 웅덩이.
기괴하고 처참한 꼴의 시체들.
그리고 하루아침에 낯빛이 뒤바뀌어버린 황제.
그가 내뱉는 칼날같이 비정한 황명들.
‘드래곤 레어에 잡혀가도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된다고 했다. 그래……. 어디 한 번 와 보아라.’
제넌은 손톱을 물어뜯었다.
* * *
황금과도 같은 꽃이 잔뜩 피어있는 정원에 두 여인이 서 있었다.
“나는 너를 인정할 수가 없다.”
중년의 여인이 바라보고 있는 것은 헤랏산이었다.
이곳은 밀라비아 왕궁의 화원.
헤랏산은 덤덤한 얼굴로 중년의 여인을 바라보았다.
여인의 이름은 글라타시사였다.
헤랏산의 친모.
“어머니. 아무리 그러신다고 하여도 지금 밀라비아의 왕은 접니다. 어머니께서 인정하지 못하신다고 하여서 그 사실이 변하지는 않지요.”
글라타시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감히, 네가.”
“어머니께서 아무리 저를 비난하고 깎아내린다고 하여도 제가 죽기 전까지는 왕좌를 떠날 일이 없습니다.”
글라타시사가 헤랏산을 불러내어 원망하는 일은 그녀가 밀라비아로 돌아온 후로 계속되고 있는 일이었다.
왕좌를 놓고 대련이 있기 전이었다. 헤랏산은 밀라비아에 도착하자마자 자신이 혈계 능력자인 것을 밝혔다.
혈계 능력자를 증오하고 혐오하는 글라타시사가 분노하기에는 충분한 이유였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어머니, 어머니께서 본인의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신 것은 안타깝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가 부끄럽거나 잘못된 사람은 아닙니다.”
“닥쳐!”
“국왕께 예를 갖추세요.”
헤랏산의 목소리는 엄했다.
“그리고 아무리 자신의 상처가 크다고 하나……. 다른 이를 상처입힐 권리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하물며 자신의 자식을요.”
조용한 분노가 그녀의 목소리에 묻어났다.
“……크라우스 제국에서 전쟁을 준비한다지.”
분한 얼굴을 하고 있던 글라타시사가 돌연 화제를 바꾸었다.
무거운 내용에도 그녀의 목소리는 밝고 가벼웠다.
“제국이 대륙을 통일하겠다면, 이 밀라비아 왕국도 곧 그들의 발에 짓밟히겠지. 그렇다면 네 운명은 불 보듯 뻔하겠구나.”
어차피 헤랏산은 기대하지 않았다.
“파괴와 죽음, 폭력밖에는 모르는 혈계 능력자. 나의 수치여. 제국의 검에 죽도록 해라.”
하지만 기대하지 않는다고 하여 상처받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당신에게도 당신만의 시간이 필요하겠지요. 하지만 나는 더는 당신을 기다릴 수가 없습니다. 나는 이미 너무도 많은 시간을, 당신을 기다렸으니까요.”
헤랏산은 씁쓸한 표정으로 돌아섰다.
그리고 아무도 들리지 않게 중얼거렸다.
“나는 혼자서라도 나아가야 하니까요.”
글라타시사가 그녀의 머리채라도 쥐어뜯을 듯 손을 허공에 그러쥐었지만, 차마 그러지 못했다.
그녀 역시 눈앞의 장성한 소녀가 밀라비아의 국왕이라는 건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으니까.
밀라비아의 국무대신인 차티페르가 헤랏산이 화원을 벗어나자마자 다가왔다.
“전하…….”
“걱정하지 마라.”
“하오나 이렇게 전하를 불러내는 일이 하루 이틀이 아니온데. 그저 방관하고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국왕이 되니, 사생활이 없어 답답하군. 일과 시간 중에 국정을 더욱 열심히 보살필 테니…….”
“국정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전하를 걱정하는 것입니다.”
그의 까만 두 눈에서 충정이 묻어났다.
헤랏산은 애써 그 눈을 피했다.
“……크라우스 제국의 동태는 어떤가.”
“확실히 전쟁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식민지의 대부분이 벌써 이전보다 40%나 많은 조공을 바치라 명령받은 상탭니다.”
“황제가 역모를 꾀한 고위 귀족과 반란군들을, 그 사촌들까지 죄다 목매단 것도 모자라 곧장 전쟁 준비를 한다, 라. 게다가 갑자기 엄청난 공물을 바치라니. 미쳤군.”
“그러지 않기도 고단할 테죠. 그래도 내부의 열기를 단숨에 제압한 기량이 대단합니다.”
헤랏산이 불쾌한 표정으로 차티페르를 노려보았다.
차티페르는 짐짓 입조심을 하겠다는 듯, 목을 가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거기도 몇 년째 굉장히 썩어 있으니까요. 화살을 바깥으로 돌리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일 겁니다.”
“우리에게서 받아 가던 꿀은?”
“그것 역시 40% 더 많은 양을 요구했습니다.”
“그런 요구는 받아줄 수 없어.”
“그렇지요.”
헤랏산은 도무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차티페르를 보았다.
“전쟁을 피할 수는 없을 겁니다.”
차티페르의 목소리는 아주 담담했다.
“어쨌든 언젠가는 벌어질 전쟁이었습니다. 밀라비아 역시 꽤 오랜 기간을 준비해왔으니, 그리 호락호락하게 당하진 않을 겁니다.”
차티페르가 회심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제국의 기세가 약해진 동안 식민 지배를 받는 국가들에서도 여러 움직임이 있었지요.”
“저항군이 있다는 말인가?”
그는 얇은 입매를 말아 올려 씩 웃었다.
“그들에게 밀라비아의 꿀과 자금을 대고 있었습니다.”
“뭐라고? 그런……! 선왕께서 지시하신 일인가? 아니면, 그대 독단으로?”
헤랏산의 재촉에 차티페르는 어깨를 으쓱였다.
“루시빌 가문의 뜻이로군.”
“그렇다고 봐야겠지요.”
루시빌은 밀라비아의 꿀을 생산해내는 꽃 로벤을 다룰 줄 아는 유일한 가문.
그러니 당연히 밀라비아에서의 재력과 권위가 가장 높은 가문이었다.
그리고 차티페르 역시 루시빌 가문의 사람이었다.
“저항군의 힘을 키워뒀으니, 적절한 시기에 도움이 될 겁니다. 게다가 선대의 힘을 계승하신 헤랏산 전하께서 밀라비아를 이끌고 계시지 않습니까. 저는 전하의 힘을 믿습니다.”
“차티페르…….”
“전하께서 왕위 계승권을 놓고 왕자들과 겨루실 때, 저는 정말 놀랐습니다. 제가 아는 모습과 정말 달랐거든요.”
차티페르가 따뜻한 눈으로 헤랏산을 내려다보았다.
“어머니의 눈에 들고 싶어서, 사랑받고 싶어서 전전긍긍하던 가여운 소녀는 온데간데없었습니다. 전하께서는 단단한 분이 되어 계셨지요.”
그의 얼굴에서 복잡한 감정이 피어올랐다.
그가 처음 왕궁에서 만났던 헤랏산은 7살의 어린 소녀였고, 커다란 눈으로는 늘 어머니의 뒷모습을 쫓고 있었다.
넓은 밀라비아 왕궁에서 그 누구도 그 작은 소녀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사랑과 관심을 갈구하던 소녀는 하루가 다르게 메말라갔다.
막 관직을 받아 궁의 일에 적응하기 바빴던 차티페르에게도 훤히 보이는 비극.
어느 순간부터 어린 소녀는 천방지축으로 날뛰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그 어미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그것이 차티페르가 알던 헤랏산의 모습이었다.
돌연 궁에서 사라진 소녀를 찾는 이는 없었다.
왕위 계승권 후보에 올라 있는 자들은 많았고 나이가 차도록 어미의 사랑을 받지 못해 덜자란 소녀는 필요하지 않았으니까.
그녀의 소식을 궁금해하던 것은 차티페르 한 사람뿐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다시 나타난 소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녀는 더는 어미의 사랑에 절절매는 소녀가 아니었다.
왕이 될 준비를 하고 나타난 여인.
그녀는 자기 자신의 힘으로 왕좌를 쟁취했다.
헤랏산이 세 가지 경합에서 우승을 거머쥐었을 때, 밀라비아의 귀족들은 그녀에게 제대로 한 방 얻어맞았다.
밀라비아의 예법대로 그녀는 왕이 되었고, 아무도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차티페르는 그녀의 불타는 검을 본 그날, 영원히 그녀의 곁을 지키겠노라 맹세했다.
먼 곳에서 찬란한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비밀스럽게, 불의 여왕에게 심장을 바치기로 맹세했다.
“정치를 못 한다고 항상 타박만 하더니. 그래, 어디 한 번 그대의 계획대로 되는지 기대해 보지.”
“물론입니다. 이러니저러니 하여도 우리는 밀라비아니까요.”
차티페르와 헤랏산이 나란히 걸으며 미소를 주고받았다.
헤랏산은 루이드를 떠올렸다.
‘크라우스 제국이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면……. 대륙을 통일하겠다는 전 황제의 뜻이 재개되는 것이라면. 이그라도 안전할 수는 없겠지.’
루이드 D 포커드 백작의 푸른 눈동자를 떠올렸다.
윤기가 흐르는 검은 머리카락을, 가지런한 치아를 떠올렸다.
‘크라우스 제국은 우리 밀라비아의 선에서 막아낸다.’
헤랏산은 결의가 가득한 눈을 빛냈다. 그녀의 눈동자 속에 마치 불꽃이 타오르는 것 같았다.
* * *
카이린이 성의 발코니에 서서 멀리 내다보이는 왕도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전하.”
그녀가 뒤를 돌아보자, 레온 크레이브 공작이 예를 갖춘 인사를 했다.
“아직 찾지 못했지?”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