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ron' Son has Paranormal Abilities RAW novel - Chapter (238)
남작 아들은 초상능력자-238화(238/252)
제238화
제13편 용과 함께(1)
“……대륙에 이리 불온한 바람이 부는데, 그 아이는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카이린이 창밖을 내다보며 기다리는 이는 셜린 세반이었다.
긴 세월 동안 카이린이 카린의 기억을 되찾기를 바랐던 셜린 세반.
계속해서 그녀를 기다렸던 그녀의 동생.
“내가 그 애를 너무 오랫동안 기다리게 해서, 삐쳤나 봐.”
허망한 듯, 아무렇지 않은 듯, 카이린은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찾지 못해 죄송합니다.”
“으응. 무얼. 그대가 사과할 일이 아니지.”
레온 크레이브는 소꿉친구이자 주군인 카이린의 얼굴을 감히 빤히 바라보았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늘 카이린의 곁에 있었건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와 멀어지는 것 같았다.
카이린은 셜린 세반이 사라진 이후, 차분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가족과도 같은 친구에게, 레온 크레이브에게. 기나긴 세월 동안 살아온 모든 이야기를.
그에게 전해야 할 이야기를 했다.
그 모든 이야기를, 한 번의 삶을 살아온 레온은 다 이해할 수 없었다.
자기 영혼을 옭아매, 천국에 갈 수 없게 한 존재를 용서할 수 있는 아량도.
하지만 그녀를 이해할 수 없게 되었어도, 지금껏 알았던 모습과 다른 모습이 되었어도.
레온 크레이브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그녀의 곁에서 언제까지나 그녀를 지킬 것이라는 마음은.
이미 레온 크레이브의 심장과 영혼은 카이린에게 바쳐진 것이었다.
그는 단 한 순간도 후회한 적이 없었다.
카이린을 처음 만났을 때.
레온 크레이브의 운명은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비록 그녀를 지키기 위해 영혼을 내어준 상대가 셜린이라는 것은 억울한 일이었지만.
사실 레온 크레이브가 그를 찾는 이유 중 하나였다.
그를 찾으면, 자신을 속인 죗값을 받아내겠다고 다짐했으니까.
“전하, 걱정하지 마십시오. 전하와 이 이그라 왕국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목숨을 다 바쳐서 지켜낼 것입니다.”
레온의 말에 카이린은 슬픈 눈을 했다.
“그대의 말은 정말 고마워. 든든하지. 그대가 없었더라면, 나는……. 하지만 내게 얽매여 그대가 날개를 펼치지 못하는 것은 슬퍼.”
카이린은 레온 크레이브를 보며, 셜린 세반을 겹쳐보고 있는 것이리라.
“아닙니다, 전하.”
레온은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살며시 카이린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그 손등에 입을 맞췄다.
“저에게 달린 날개는, 전하를 위해 붙인 것이니. 아무것도 괘념치 마십시오.”
레온 크레이브는 카이린의 걱정 어린 시선이 어깨를 무겁게 할세라, 벌떡 일어나 문밖으로 나섰다.
“공작.”
카이린이 그를 불러세웠다.
“루이드 포커드 백작에게 연락을 넣어봐.”
“……그는 이미 모든 정황을 다 알고 있을 겁니다. 연락을 기다리는 쪽은 늘 우리지요.”
레온 크레이브는 피식 웃더니, 멈췄던 발걸음을 재촉했다.
* * *
“이럴 수가!”
장신이 가부좌를 튼 루이드를 보며 소리쳤다.
그는 두 눈을 꽉 감고, 자세를 다잡았다. 이마에서는 땀이 흘렀다.
“벌써 수련을 시작한 지 일주일인데, 이렇게 내공을 전혀 못 모으는 사람은 또 처음 봤네.”
“하아.”
장신의 말에 루이드가 팔의 자세를 풀고 눈을 부릅떴다.
“원래 내공이라는 게 쉽게 체득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
“그래? 내가 있던 곳에서는 평범한 사람이라도 단전에 기를 모으는 것 정도는 금방 해내던데.”
장신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평범한 사람이라니. 네가 있던 곳 사람들은 용 혼혈의 자손이라며.”
“아, 맞다.”
“아, 맞다가 아니야!”
루이드는 신경질을 내며 옷을 털고 일어났다.
“소설 속에는 잘도 써 놓더니, 모르는 척은.”
“그래도 너는 이레귤러라서 금방 익힐 수 있을 줄 알았지.”
장신은 생글거렸다.
루이드가 자기 소설 이야기를 꺼낸 것이 기쁜 모양이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은 했지만……. 사실, 이 몸은 마나도 오러도 전혀 느낄 줄 모르는 체질이었거든.”
“세상에. 이레귤러가 아니었다면, 엄청나게 고생할 뻔했네.”
루이드는 너스레를 떠는 장신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과연 용의 후손인가.’
그녀는 놀랍도록 강했다.
그녀는 완벽한 체질을 타고났다.
원래 내공을 다루던 힘은 둘째 치고, 마나까지 다룰 수 있었다.
400여 년 동안 모르고 지냈던 것을, 진짜 용을 보게 됐다며 아르헬과 까르륵거리던 도중 알게 된 사실이었다.
게다가 이곳의 모든 무공과 검술을 보는 대로 스펀지가 물을 흡수하듯 배워버렸다.
“후후후, 그럼 나는 슬슬 아르헬한테 가서 마법 이론을 배워 보실까.”
“그러던지.”
장신은 활짝 웃으며 팔랑팔랑 문을 나섰다.
루이드는 멀어지는 장신의 뒷모습과 함께 시스템의 알람을 보았다.
[스킬 길들이는 자 발동 중.]장신이 있던 사시아 대륙의 내공이라는 것을 체득할 수는 없었지만, 사실 딱히 루이드에게 억울하거나 원통한 일은 아니었다.
장신이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두 사람 모두 강해지고 있었으니까.
‘지금 와서 다른 기술의 기초를 배우는 것이 큰 의미가 있겠냐만…….’
아쉬운 마음이 큰 것은 루이드가 어릴 적부터 보고 자라온 고전 판타지나 무협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리라.
‘이게 안 되네…….’
루이드는 눈앞에서 얻어지는 경험치를 바라보면서 창문틀에 몸을 기댔다.
성 아래에 아르헬과 장신의 모습이 보였다.
“좋았어! 자! 나에게 파이어볼을 쏴 봐!”
장신이 아르헬을 향해 손짓했다.
“신……. 그런 식은 너무 위험해.”
아르헬은 난감한 듯 주춤거렸다.
“하여간, 저 녀석도 완전 막무가내라니까.”
사시아 대륙에서 온 배를 타고 소폴레리온에 처음 내렸던 그 날처럼, 장신은 늘 무모하고 거칠었다.
‘하긴……. 400년이나 살았으면, 뭐든 지루할 만하다. 그러고 보니 따지고 보면 클리아베이든이랑 동년배 아냐? 게다가 데모니어스랑도? 이거 복잡해지네.’
루이드가 골몰하는 사이 아래에서는 대립이 과열되고 있었다.
“괜찮다니까, 나는 400년이나 살아서. 슬슬 죽어도 괜찮아!”
“그게 무슨 말이야! 언제는 진짜 용을 봤다고 나랑 천 년 만년 같이 살기로 했잖아!”
“앗, 그랬나.”
아르헬이 미간을 팍 찌푸리더니, 양손을 들어 마주 보게 했다.
화르르륵!
단번에 농구공만 한 불덩어리가 만들어졌다.
“앗, 아르헬. 화났어?”
장신이 엉거주춤하는 사이에 아르헬의 손안에 있는 파이어볼이 사납게 흔들렸다.
“미워.”
아르헬은 장신이 좋았다.
장신은 아르헬을 보자마자 드래곤이라는 걸 알아챘다.
아르헬은 당황했지만, 장신은 자신에게도 용의 피가 흘러서 알아볼 수 있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 증거로 자신은 벌써 400년이나 살았다고 했다.
순간, 아르헬은 눈이 번쩍 뜨이는 것 같았다.
400년이나 살았다면, 이후에도 훨씬 더 오래 살 수 있을 테니까.
사실 아르헬에게는 작은 고민이 있었다.
아니, 사실은 작은 고민이 아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 많은 죽음을 경험할수록.
주위의 모든 것이 영원하지 않다는 걸 배울수록 쓸쓸한 마음이 커졌다.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을 어쩔 수 없는 사실.
인간과 드래곤의 수명 차이.
사실 셜린 세반 사건을 겪은 뒤로 아르헬은 혼자 남겨진다는 것에 관한 두려움이 깊어졌다.
만약 자신에게 루이드가 영원히 살 수 있게 할 힘이 있다면 어떡할까?
그런 생각을 하면 셜린 세반의 기분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물론 자신의 욕심 때문에 그런 짓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는 걸 아르헬은 잘 알고 있었지만, 마음만은 흔들리는 것이다.
아르헬은 이따금 오래도록 자신의 곁에 남아있을 존재들을 헤아려보곤 했다.
데모니어스, 카라젝 그리고…….
쓸데없는 짓이라는 걸 알지만, 아르헬은 그런 생각을 쉽사리 떨쳐내지 못했다.
그러던 차에 나타난 장신.
보통 인간과는 다른 그녀의 존재가 아르헬에게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말대로 용의 피가 흐르고 있기 때문인지, 아르헬 역시 장신을 처음 본 순간부터 편안함을 느꼈다.
짧은 시간 만에 아주 오랜 단짝처럼 붙어 지낼 만큼 말이다.
얼마나 친해졌냐고 하면 데모니어스가 안절부절못하고 카라젝마저 위기감을 느낄 정도였다.
아무래도 여자들끼리 더 통하는 게 있었달까?
물론 루이드의 수호단이나 아샤라가 아르헬을 자매처럼 대해주었다.
하지만 어쩐지 아르헬은 장신이 훨씬 자매처럼 느껴졌다.
그 역시 장신의 몸에 흐르는 용의 피 때문일지도 몰랐다.
어찌 되었든 아르헬은 장신에게 마음을 활짝 열어버렸는데.
그랬는데, 죽어도 상관없다고 말하다니.
‘괘씸해!’
후우욱!
조그마한 장신을 삼킬 듯이 아르헬의 파이어볼이 쏘아져 나갔다.
‘어쩔 셈이지.’
루이드 역시 놀란 눈으로, 몸을 창문 밖으로 좀 더 빼냈다.
“오오!”
움츠러들던 것도 잠시, 장신이 두 팔을 크게 뻗었다.
한쪽 팔은 하늘 위로, 다른 한쪽 팔은 아래로. 그러더니 마치 공기를 어루만지듯 팔을 휘저었다.
부드럽고 우아한 몸짓이었다.
‘사시아 대륙의 무술인가.’
루이드의 눈이 크게 뜨였다.
장신이 이곳에 온 지 벌써 몇 주나 흘렀지만, 아직 단 한 번도 제대로 자신의 기량을 뽐내지 않았던 것.
늘 한참 선배인 자신이 후배들 앞에서 재롱을 부려야겠냐며, 다른 사람들의 기술들을 흉내 내기만 했었다.
그러던 차에 마나까지 다룰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거기에만 관심을 가지던 장신이었다.
그녀가 손을 휘젓기만 했는데도 주변으로 바람이 일었다.
스으으으.
바람은 그녀의 손을 따라 소용돌이를 만들었다.
“무슨……! 대, 대단해!”
파이어볼이 손에서 떠나보낸 아르헬은 장신의 몸짓과 그녀가 만들어내는 기세를 보며 감탄을 숨기지 않았다.
강대한 바람이 장신을 삼킬 듯 쏘아져 나온 파이어볼을, 마치 공을 받아내는 것처럼 순식간에 궤도를 틀었다.
바람이 파이어볼을 품은 채로 소용돌이쳤다.
“세상에! 마법을…….”
루이드는 말을 잃었다.
장신의 행위는 거의 예술작품을 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루이드는 파이어볼 마법을 상쇄시키기 위해 마법으로 맞대응하는 경우의 수를 떠올렸다.
아주 단순하게는 워터볼을 사용해 불을 꺼버리는 것.
아니면 순식간에 공간을 진공 상태로 만들어 진화시켜버리는 것 등이 있을 수 있었다.
애초에 캐스팅을 무효로 만드는 마법을 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파이어볼을 막아내고, 없애버리는 방법.
‘아르헬의 파이어볼을 마치 자기 것처럼 다루고 있다.’
뜨겁게 타오르는 파이어볼이 장신의 손놀림을 따라 춤추듯 허공에서 흐르고 있었다.
루이드와 아르헬은 물론이고 주변을 둘러싼 성의 구경꾼들이 입을 딱 벌렸다.
“대체 어떻게 한 거야!”
아르헬이 소리쳤다.
“후후후. 마나의 흐름을 응용했지.”
“응용이라고?”
“무릇 힘이라는 것은 부딪히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 법. 조화와 부드러움이야말로 진정한 강함이라네.”
장신이 까만 눈동자를 빛내며 양팔을 재빠르게 비켜 스치게 하고는 좌우로 확 벌렸다.
그러자 공중에서 커다란 원을 그리며 뱅글뱅글 돌던 아르헬의 파이어볼이 훅! 하고 순식간에 흩어졌다.
아르헬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갑자기 이상한 말투로 묘한 말만 하지 말고!”
“흐음. 글쎄. 아르헬 네게도 기운을 다스릴 힘이 있어. 축복의 힘이라고 했던가? 그거 말이야.”
“그건…….”
장신의 말에 아르헬은 미묘한 표정이 되었다.
“그건 내 힘이긴 하지만……. 사실은 잘 모르겠어. 확신이 없달까. 아니, 그 힘 자체는 확신이 있지만……. 아직 완벽하게 내 것이라는 느낌은 잘 안 들어.”
아르헬은 되찾은 기억을 떠올렸다.
많은 것을 깨달을 수 있었지만, 늘 자신이 가진 힘을 100% 끌어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흐음…….”
장신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묘한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