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ron' Son has Paranormal Abilities RAW novel - Chapter (32)
남작 아들은 초상능력자-32화(32/252)
제32화
제7편 파고, 파고(2)
“정령 술사?”
말칸은 저도 모르게 소리 내어 말하고 말았다.
멜리옌은 말칸 쪽을 보더니 피식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멀티플?”
루이드도 눈을 동그랗게 떴다.
데이슨에게 부탁해 정령사를 영지로 데려와 달라고 한 것은 루이드였다.
그런데 지금의 상황은 루이드에게도 금방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가 원한 것은 물의 정령 술사였다.
“아, 걱정하지 마십시오. 재무관님께서 원하시는 물의 정령을 다룰 수 있는 자니까요.”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멀티플이라는 게 무슨 말인가?”
루이드는 속으로 내심 기대했다.
‘혹시 여러 속성의 정령을 다룰 수 있는 걸까?’
판타지 소설 속에서는 흔히 있는 설정이었다.
주인공쯤 되면 물, 불, 땅 세 속성은 기본으로 다루고 오러도 다루고 마나도 다루니까.
하지만 이 세상에서 그런 정령사는 존재하지 않았다.
하나의 정령과 계약하는 것도 무척이나 힘든 일이었다.
마법사보다도 보기 힘든 것이 정령사.
정확한 이유는 규명되지 않았다.
하지만 인간이란 본래 자연을 거스르고 개척하는 성향이 강했다.
루이드는 아마 이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완전 주인공 재질인데.’
어쩌면 적대적이라고 볼 수 있는 관계인 정령을 하나 이상을 다룰 수 있는 사람.
‘이런 판타지 세상이라도, 전설 속에서나 있는 사람이란 말이지.’
하지만, 바라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옛말에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 이왕이면 창덕궁이라고 했다.
루이드는 멜리옌의 대답을 기다렸다.
“정령을 여럿 부릴 수 있다는 뜻이랍니다. 저는 각기 다른 속성의 정령을 한 번에 소환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는 말은……. 하나 이상의 정령과 계약했다는 말인가?”
루이드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역시 이번 생에는 운이 좋다. 라고 생각하는 루이드였다.
“그렇습니다. 저는 대지의 정령과 물의 정령, 불의 정령까지 세 정령을 다룰 수 있습니다.”
“뭐라고요?!”
이번에 소리친 사람은 아샤라였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한 속성도 다루기 어려운 정령을 세 속성이나 다루는 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런 대단한 사람이 이런 촌구석에 무슨 일로…….”
“아샤라.”
루이드가 아샤라를 흘겨보았다.
하지만 루이드조차도 선뜻 그의 말을 믿기 어려웠다.
“아샤라가 버릇없기는 해도 나 역시 이해가 가지 않는군. 물론 내게는 무척이나……. 좋은 일이긴 한데.”
사기꾼인가, 라는 생각이 먼저 드는 것이 당연했다.
정말로 세 가지 속성의 정령을 부리는 자라면, 지금쯤 대륙에서 이름을 널리 알리고 있어야 할 터.
어디서든, 어떻게든 유명했을 터였다.
믿기도 힘들었고, 믿는다고 하더라도 그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았다.
“어떤 점이 의아하신지 이해는 됩니다.”
멜리옌이 희멀겋게 웃는 얼굴로 말했다.
“그런 대단한 능력이라면, 재무관님께서 모를 리 없다고 생각하고 계시겠지요.”
“상식적으로 그렇지? 아무리 여기가 소식이 느린 곳이라고는 해도…….”
후우욱.
순간 멜리옌의 주변에 바람이 이는 듯하더니, 푸르고, 붉고, 반짝이는 세 형체가 떠올랐다.
“정령.”
루이드는 눈을 의심했지만,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의 영지에는 이미 여럿의 정령사들이 상주하고 있었다.
그들과 일한 지도 몇 개월이나 흘렀다. 못 알아볼 리 없었다.
“증명이 되겠습니까.”
“아……. 어, 그러니까.”
아샤라는 멜리옌과 루이드를 번갈아 보았다.
정말로 말을 잃게 하는 광경.
‘세 속성의 정령이라고…….’
루이드가 말이 없자, 멜리옌이 이를 드러내며 밝게 웃었다.
“정령사니까요.”
악의라고는 한점 찾아볼 수 없는 사람 좋은 웃음.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스친 것도 잠시.
‘아아, 그런가.’
어쩐지 조금씩 이해가 되는 루이드였다.
세 속성의 정령을 다루는 엄청난 능력을 갖추고 있으면서, 그 어떤 곳에도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이유.
‘이자는 속세에 미련이 없는 자다!’
그래서 가능한 것이었다.
세 속성의 정령과 모두 계약할 수 있었던 것은.
자연과 비슷한 마음을 지닌 사람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강한 힘을 가지고 있지만, 그저 강한 힘을 가진 채로 두는 것이다.
그 어느 곳에서 굳이 나타나려 하지 않고, 관여하지 않고. 힘을 휘두르려 하지 않는 사람.
멜리옌은 처음에도 그러했고, 지금까지도 그렇게 살아온 것이다!
정령과 소통하게 되었든, 정령을 부릴 수 있게 되었든. 남들은 이룰 수 없는 경지로 정령과 함께하게 되었든.
그저 바람이 부는 듯이, 그저 비가 오는 듯이.
조용히 혼자만의 시간을 보낸 것이다.
루이드는 감탄했다.
눈앞의 멜리옌은 자신과 비슷하면서도, 자신과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뭐, 대충 알겠어. 그런데 그런 자가 왜 이곳에 왔냐는 말이야.’
루이드의 얼굴에서 의구심이 떠나지 않았다.
그러자 멜리옌은 루이드의 마음을 읽기라도 했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애들이 궁금해하지 뭐예요.”
애들이라 함은 멜리옌 주위를 빙글빙글 돌고 있는 세 정령을 말하는 듯했다.
세 속성의 정령은 각각 다른 형태를 이루고 있었다.
사람의 모양은 아니었다.
새 같기도 하고 물고기 같기도 하고, 파충류 같기도 한.
시시각각 모습을 조금씩 변화시키고 있었다.
“무엇을?”
멜리옌의 눈이 루이드의 품에 안긴 콘콘에 닿아 멈췄다.
“……설마.”
루이드가 놀라자 멜리옌은 그저 방긋 웃을 뿐이었다.
‘콘콘의 정체를 알고 왔단 말인가. 단지…… 궁금해서?’
멜리옌은 여전히 속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몸을 까딱이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어린아이처럼 보였다. 멜리옌은 루이드와 거의 비슷한 체격인데도.
‘……? 그래, 확실히 범인은 아니겠지……만 진짜 이상해 보이는걸. 어쩌면 굉장히 산만해 보이기도…….’
하지만 역시, 저런 사람이니 지금의 경지를 이루고. 또 전혀 바깥에 노출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고. 루이드는 생각했다.
멜리옌 옆으로 소환된 세 정령이 눈을 도륵도륵 굴렸다.
그리고는 저들끼리 마구 속닥거리고 낮게 웃었다.
“해를 끼칠 생각은 없습니다. 아마 눈치채셨겠지만…….”
아직도 루이드가 경계한다는 것을 눈치챈 멜리옌이 두 손을 들어 저었다.
묘하게 힘이 빠지게 하는 얼굴과 제스처였다.
‘확실히. 정령을 셋이나 계약한 자가 굳이 콘콘을 욕심낼 이유가 없겠지.’
욕심.
그것은 자연의 속성이 아니었다.
짐승은, 나무와 바다는.
자신이 먹고 마시고 살아갈 필요 외에는 더 가지지 않는다.
그 외의 것을 더 가지고자 하는 것.
그것은 인간뿐일진대.
그렇다고 해도 루이드는 완전히 방심할 수 없었다.
‘하지만 다른 의도가 있을지도 모르지.’
“아실지 모르겠지만, 정령들이 워낙에 호기심이 많거든요. 저도 사실, 재무관님을 직접 뵙고 싶기는 했습니다.”
“나를?”
“정령들이 이야기해 주었거든요. 재무관님을 눈여겨보라고.”
“그건 좋은 의미인가?”
멜리옌은 그저 희미하게 웃었다.
“전 재무관님을 도와드리러 온 겁니다.”
신나게 땅을 갈아 엎어댄 루이드를 정령들이 좋아할 리는 없었다.
루이드가 하는 일들은 죄다 자연을 거스르는 일뿐이었다.
“전해 듣기로는 행보가 대단하시다고 하더군요. 제 관심사는 아니지만, 재밌는 일이긴 하지 않습니까.”
멜리옌은 바람이 빠지는 것 같은 이상한 소리로 웃었다.
‘그렇다면 오로지 콘콘 때문이라는 건가. 아, 혹시.’
경계를 늦출 수는 없었지만, 루이드에게 짐작이 갈만한 것이 떠올랐다.
루이드가 읽은 많은 책 중에서 신비 드래곤에 대한 내용이 있었다.
책의 내용으로는, 신비 드래곤은 만물의 사랑을 받는 존재라고 적혀 있었다.
존재들을 이끄는 힘을 가졌다고 했다.
장성한 신비 드래곤은 신과 같다는 설명도 있었다.
‘어쩌면 부모님께서 쉽게 콘콘을 받아들였던 것도……. 그냥 전설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그 힘이 정령들과 멜리옌까지 이곳으로 이끌었는지도 모르지.’
그렇게 생각하니 멜리옌의 등장이 아주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쫓아낼 수 없었다.
아니, 그럴 이유가 없었다.
어찌 되었건 멜리옌은 루이드가 원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루이드는 이번 생 운이 좋다는 생각을 철회할 마음이 없었다.
“내가 무슨 용건으로 그대를 필요로 하는지 알고 왔겠지?”
“물론입니다.”
멜리옌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그녀의 결심이 필요했다.
멜리옌의 의지뿐 아니라 정령들의 의지도 합쳐 확신을 가지고 일할 때였다.
루이드가 하는 일은 자연의 뜻을 거스르는 것 투성이였으니까.
땅과 바위를 가만히 두질 않고 그 안에서 금속을 뽑아내고 물길을 바꿔댔으니까.
‘신비 드래곤의 힘은 정령들이 그것조차 무시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인가.’
루이드는 품 안의 콘콘의 존재가 조금 더 무겁게 느껴졌다.
“리듀! 리듀! 저게 머야!”
콘콘이 정령을 향해 마구 손을 뻗었다.
“응, 콘콘이 새 친구.”
“칭그! 꺄!!”
콘콘이 웃음을 터트리자 정령들도 신이 나는지 깔깔거리며 멜리옌 주변을 마구 돌았다.
“그런데 궁금한 것이…….”
멜리옌이 말끝을 흐렸다.
세상과 떨어져 지낸 멜리옌이지만, 그녀는 눈치가 빠른 편이었다.
신비 드래곤의 모양새를 보고 루이드가 어떤 식으로 콘콘을 대하고 있을지 예상한 것.
말조심을 하는 것이다.
“응, 콘콘은 포커드 남작 가문의 막내 영애다.”
“영애께서는 어찌 콘콘이라는 이름을…….”
루이드는 눈을 굴리며 데이슨과 행정관을 보았다.
그리고 일어나 멜리옌에게 다가가 속삭였다.
“오리할콘의 콘.”
멜리옌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아하! 아하하, 귀엽네요.”
그녀가 손바닥을 탁하고 쳤다.
“루이드 님!”
루이드의 말은 멜리옌에게밖에 들리지 않았지만, 반응을 보고 무슨 말을 한 지 눈치챈 아샤라가 인상을 찡그렸다.
아직 영지에서는 오리할콘이나 신비 드래곤의 존재는 극비상황이었다.
루이드는 어깨를 으쓱했다.
‘어차피, 정령 때문에 모든 걸 알고 왔는데 숨길 이유도 없어. 이곳까지 온 이상 알게 되는 것은 시간문제지.’
반응을 보아하니, 오리할콘이 묻혀있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멜리옌은 이미 이곳에 있는 대지의 정령사들과 수준이 달랐다.
“어쩐지~그랬군요~하하하.”
그녀는 계속해서 푼수처럼 실실 웃었다.
루이드가 이상한 눈으로 멜리옌을 넘겨보았다.
중간에 낀 데이슨만이 눈을 굴리고 있었다.
“어쨌든, 일만 제대로 해 준다면 나도 상관하지 않겠어. 제대로 보수를 챙겨 줄 거고. 원한다면, 그대의 정체도 비밀로…….”
“하하하, 아니요. 돈은 필요 없습니다. 놀러 왔으니까요, 아니, 그러니까. 정령들이요.”
루이드는 놀랐다.
‘그러니까, 그 말은 정령들이 콘콘을 구경하는 값이라는 거지? 나 원. 정령들이란 정말 이상한 존재로군.’
납득이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루이드가 읽은 많은 문헌에도 정령들은 정말 이상하다고 골백번은 쓰여 있었다.
“제가 먹을 음식과 잠잘 공간만 보장해주시면 됩니다.”
세 정령과 멜리옌이 비슷한 얼굴로 히죽거렸다.
‘뭐, 나로선 손해 볼 것 없지. 대신 콘콘을 곁에서 떨어트리지 말아야겠군.’
멜리옌이 콘콘에게 흑심을 품을 것 같지는 않았지만, 만에 하나를 대비해야 했다.
루이드가 조금 힘을 주어 콘콘을 꼭 끌어안았다.
콘콘은 루이드를 올려다보며 까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대신 어머니 아버지가 좀 슬프시겠구먼.’
* * *
“휘유.”
멜리옌이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
“힘든가?”
“아유, 지금껏 일이라는 걸 해본 적이 없어서요.”
“혼잣말을 멈췄다면 덜 피곤했을지도.”
루이드가 말하자 멜리옌이 파하하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혼잣말이었나요? 저는 루이드 님과 대화하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에요~ 너무해.”
시종일관 웃는 얼굴.
루이드의 일을 위해 두 사람은 말을 타고 성을 나섰다.
그 후로 지금까지 멜리옌은 혼잣말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나도 질려버릴 만큼 말이 많은 사람은 처음이에요.”
아샤라가 툴툴거렸다.
“난 둘이 죽이 잘 맞을 줄 알았는데.”
“죽이 잘 맞기는요. 전 루이드 님처럼 잘 들어주는 사람이 차라리……. 어 흠흠.”
아샤라가 헛기침을 했다.
귀는 괴로웠지만, 덕분에 멜리옌에 대한 것을 많이 알게 된 루이드였다.
멜리옌은 평범한 평민의 자식으로 태어났다고 했다.
그녀가 태어나 인지력을 갖췄을 때, 이미 대지의 정령 노움과 함께였다고 했다.
형제가 엄청나게 많았고, 그래서 그의 부모는 가장 어린 멜리옌까지 잘 챙기지 못했다고 했다.
그래도 다행히 또 다른 부모처럼 자신을 챙기는 정령 덕분에 배곯은 일이 없었다고 했다.
‘참 신기한 일이란 말이지.’
루이드 입장에서는 멜리옌이 마치 살아있는 소설책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너무 맹해. 주인공 재질은 아니야. 호구 잡혀서 댓글란이 난리 날걸.’
루이드는 지금 이 상황도 멜리옌이 호구 잡힌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거 처음 해봐. 멜리옌이 힘들 거야.」
물의 정령 운디네가 루이드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호수처럼 맑은 물빛의 운디네는 멜리옌을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멜리옌은 정령 친화력을 타고난 타입.
그러나 세 속성의 정령과 계약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능력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살았다.
정령의 힘으로 뭔가를 할 생각이 전혀 없었던 것.
그저 먹고 잠자는 것만을 위해 살았다.
그러다 보니 정령들과의 친화력은 더할 수 없이 깊었으나, 정령들의 힘이 진화하지는 못했다.
세 속성의 정령을 다룰 수 있었지만, 그들 모두 아직은 하급 정령에서 발전하지 못한 상태.
‘대단한 능력을 썩히고 있었어. 완전 자연인 상태야.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 건지. 나 원 참.’
멜리옌의 현 상태는 원석 그 자체.
그래도 루이드는 멜리옌이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했다.
‘능력을 개발시킨다면, 대륙을 좌지우지할 수 있을 만큼 강해질 텐데. 아깝다.’
우선 멜리옌 개인의 일은 뒷일이었다.
루이드는 당장 그와 함께해야 할 일이 있었다.
‘어쨌든, 내가 원하는 바는 애초에 큰 힘이 필요한 건 아니었으니까.’
루이드가 물의 정령사가 필요했던 이유는 바로.
지하 암반수를 얻기 위함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