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ron' Son has Paranormal Abilities RAW novel - Chapter (34)
남작 아들은 초상능력자-34화(34/252)
제34화
제9편 금강산도 식후경(1)
「이건, 썩은 물 아니야?」
“썩었다고 하는 건 좀 너무하잖아. 사람이 먹는 건데.”
운디네는 얼굴을 찡그렸다.
“멜리옌. 넌 술 안 마시냐?”
“네에, 전 딱히…….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는데 굳이 마실 필요가 없잖아요? 기분만 이상해지고요.”
“하아.”
루이드가 깊은 한숨을 쉬었다.
‘술맛도 모르는 녀석이라니.’
속세에 미련이 없어 세 속성의 정령과 계약한 것은 좋았으나, 정말 미련이 없어도 너무 없는 멜리옌이었다.
그에 비해 루이드는 제 생각보다 미련이 많았다.
삶에 대해서도 일에 대해서도 가족에 대해서도.
‘그러니 내가 지금껏 이러고 있는 거겠지. 하지만, 이건 잘 놀고 잘 먹기에 해당하는 노력이니까.’
이건 루이드에게 절호의 기회였다.
‘맛있는 술을 마실 수 있을 거야. 정령만 있다면 반드시!’
루이드가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예전에 읽었던 소설의 내용 때문이었다.
‘분명히 읽은 적 있어. 운디네가 정화를 이렇게 저렇게 해서 술맛을 극상으로 만들어낸 이야기.’
어떤 원리인지는 루이드도 알지 못했다.
“네 힘을 좀 더 섬세하게 다루는 훈련을 하는 거야.”
「으으으음.」
루이드의 말에 고심하던 운디네가 슈루룩. 하고 술통 안으로 들어갔다.
촤아아.
술통 안에서 술들이 물결쳤다.
「어푸! 마셔봐.」
“된 건가!”
루이드는 조심스럽게 국자를 담갔다.
홀짝.
“윽.”
쓰고 떫고, 원하는 맛이 아니었다. 게다가 너무 독했다.
이것에 비하면 전생의 술은 술도 아니었다.
기준을 바꿔 루이드 입장에서 보자면 지금 눈앞에 있는 것이 술이 아니라 연료처럼 느껴졌다.
‘하아, 역시 안되는 건가. 아니야. 아직 포기하기에는 이르다. 어떻게 찾아온 기회인데.’
루이드는 눈을 부릅떴다.
“한 번 더 해볼까? 좀 나아진 것 같긴 한데. 좀 더 좋아질 수 있을 것 같아.”
운디네를 구슬리기 위해 최대한 부드러운 어투를 사용했다.
「왜! 뭐가 문젠데!」
운디네가 작은 두 손을 통통한 배 옆에다 척 얹었다.
“아냐, 문제는 아닌데. 우리 더 잘할 수 있을 거 같아.”
「……에헴.」
운디네는 가만히 술통을 들여다보다가 다시 그 안으로 다이빙했다.
* * *
“음, 뭔가……. 발효시키고 보관하는 기간과 관계된 걸까나.”
루이드는 무릎에 콘콘을 앉힌 채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운디네와 함께 맛있는 술맛 개발에 뛰어든 지도 이 주째.
큰 진전은 없었다.
둘 다 접근방법을 모르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애초에 운디네에게 ‘맛있다’라는 형용사를 이해시키는 것이 어려웠다.
「재미없어, 루이드.」
멜리옌의 무릎에 앉은 운디네가 툴툴댔다.
성과가 없으니 싫증을 느낀 모양이었다.
“디네! 디네!”
콘콘이 손을 흔들어 보이자 운디네도 생기가 돌아온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
‘콘콘이 있어서 다행이야. 그렇지 않았다면, 벌써 킬베리움을 떠나고도 남았을걸.’
루이드는 생각에 잠겼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눈앞의 구정물 같은 맥주. 맥주라고 부르기도 싫은 맥주를 바라보았다.
‘대체 뭐로 만들면 이렇게 맛이 없…….’
루이드는 깨달았다.
이 이상한 술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이제껏 그저 만들어진 술을 가지고 운디네가 어떻게 해보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그건 바보 같은 짓이었다.
뭐든 발전하기 위해서는 원리를 알아야 했다.
‘이런 실수를 하다니, 지금까지의 성공에 취했던 걸지도 모른다! 한심한……!!’
벌떡.
루이드가 일어나자 멜리옌과 운디네가 놀란 눈으로 보았다.
품에 안겨 있던 콘콘도 루이드를 올려다보았다.
“리듀?”
“다시 시작하자.”
루이드의 의지가 불타오르고 있었다.
* * *
루이드는 곧장 성의 양조사를 찾았다.
영주성에는 양조사가 상주하고 있었다.
이곳의 맥주는 아주 쉽게 상했기 때문에 자주 만들어야 했다.
“자, 술을 어떤 방식으로 만드는지 어떤 것이 들어가는지 한번 말해 봐라.”
“예? 예에, 재무관님.”
양조사는 놀란 얼굴로 천천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방법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다만 손이 많이 가고, 시간이 걸렸다.
‘인내심을 요하는 일이군.’
루이드는 직접 만들어 보기로 했다.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낫고 백 번 보는 것보다 한 번 직접 해보는 것이 나았다.
무슨 일이든 그렇지만, 직접 맥주를 만드는 일은 쉽지 않았다.
루이드는 땀을 뻘뻘 흘려가며 보리를 발아시키고 가열시키고 분쇄했다.
맥아를 만드는 과정만 해도 낯설고 힘들었다.
“후우, 정말이지. 맨날 방구석에 앉아서 맛이 없다고 한탄할 게 아니었어.”
루이드는 흐르는 땀을 닦아내며 중얼거렸다.
눈앞에는 어느새 완성된 맥아가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며 감동하는 이가 있었다.
바로 성의 양조사.
궂은일이었지만, 양조사를 싫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술을 싫어하는 사람이 몇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 이치였다.
하지만 그의 노고를 잘 알아주는 사람 또한 몇 없었다.
그런데 영주의 아들이, 귀족이, 영지의 재무관이 직접 와서 자신의 일을 하고 있었다.
자신의 노고를 알아주고 있었다.
양조사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있던 설움이 조용히 고개를 든 것이다.
어느새 그의 눈이 촉촉해져 있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감동의 소용돌이가 양조사의 마음을 흔들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루이드는 열심히 맥주를 만들었다.
띠링.
[평판 레벨이 올라갑니다.]“응?”
루이드가 시스템 창을 보는 순간.
[평판 보너스를 받습니다.] [새로운 스킬을 획득했습니다.] [새로운 스킬:양조 기술.]“에엥!”
루이드의 외침에 양조사와 운디네, 멜리옌의 시선이 집중됐다.
“무슨 문제가 있으십니까? 재무관님.”
촉촉해진 눈으로 양조사가 다가왔다.
“아니……. 문제는 없고…….”
루이드의 눈에는 양조사가 들어오지 않았다.
시스템 창의 새 스킬에 집중해야 했다.
‘개이득이다.’
루이드의 계획이 들어맞았다.
지금껏 새로운 언어 공부를 하면 언어 스킬을 습득했고, 행정 공부를 하면 행정 스킬을 습득했다.
원리도 원리지만, 이렇게 직접 술을 만들어 본다면 새로운 스킬을 얻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빨리 얻게 될 줄은 몰랐다.
‘아마 평판 시스템의 보너스 덕분인 것 같군. 역시 이번 인생은 개꿀이라니까. 자, 보자. 어떤 스킬일지.’
[양조 기술.]술을 빚을 때 성공할 확률이 높아집니다.
술의 제조법과 정보를 열람할 수 있습니다.
제대로 된 술을 만들 수 있는 팁이 제공됩니다.
루이드의 눈이 빛났다.
‘저거면 되겠는데.’
제대로 된 술을 만들 팁.
이것만 있다면, 지금 이 세계의 술이 뭐가 잘못된 것인지 알 수 있을 터였다.
루이드는 양조사와 멜리옌에게 손짓해 일에 집중하게 했다.
그리고 자신은 시스템 창에 집중했다.
[맥주]맥주는 싹 틔운 곡류(주로 보리)로 즙을 만든 뒤…….
양조 기술 스킬은 아주 친절하게도 술의 종류와 역사부터 가르쳐주고 있었다.
‘우리 시대의 술은, 이쯤이군.’
완전히 고대 수준의 술이었다.
사실 고대의 맥주도 나름의 묘미가 있는 것이었다.
술에 대한 유난한 취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오히려 더 즐거워할지도 몰랐다.
‘내가 원하는 것은 그게 아니야.’
루이드가 21세기의 술과 전생의 보편적인 입맛을 고수한 탓이었다. 그의 입에는 모래를 탄 것 같은 뜨거운 알콜일 뿐이었다.
루이드가 원하는 맥주는 편의점에서 파는, 캔을 따 쉽게 들이킬 수 있는 가벼운 종류였다.
‘뭔가 있을 텐데. 제조 과정을 자세히 봐 볼까.’
제조 방법을 정독하는 루이드.
그때 눈길을 끄는 문장을 발견했다.
-쌉싸름한 맛과 향을 더해주는 홉을 첨가한다.
“홉?”
루이드의 머리가 밝아지는 느낌이었다.
‘이거다.’
이것이 21세기의 맥주와 비슷한 맛을 내줄 강력한 ‘훅’이었다.
이 세계의 맥주에는 홉이 들어가지 않았다.
루이드는 홉이 들어가지 않는다면 특유의 감칠맛도 없고 보관 기간도 짧다는 내용을 확인했다.
“양조사!”
루이드가 양조사를 불렀다.
“혹시 도전하는 걸 좋아하나? 더 멋진 맥주를 위해서 말이야.”
“네?”
양조사의 눈에는 루이드가 마치 술의 전령사같이 보였다.
그가 그리스의 옛 신을 안다면, 루이드에게 디오니소스라는 별명을 붙였을지도 몰랐다.
* * *
“허억, 허억.”
“하아아.”
루이드와 양조사가 숨을 헐떡였다.
그들의 앞에는 황금빛으로 빛나는 술이 담긴 오크 통이 놓여 있었다.
“드디어 완성이다.”
루이드의 스킬이 알려준 대로 만들었고, 홉도 들어갔다.
며칠간 발효까지 끝마친 상태.
완전한 상태의 맥주.
두근, 두근.
루이드의 심장이 요동쳤다.
‘맛있을까?’
맛있어야 했다.
이 맥주가 맛있기만 하면, 이제 루이드의 삶은 완벽해진다.
“맛보시지요.”
스윽.
루이드가 나무 국자로 맥주를 떠 올렸다.
킁킁.
“냄새가 조금 바뀐 것 같기도?”
홀짝.
“……!!”
입 안에 머금자마자 기분 좋은 쌉쌀함이 확 퍼졌다.
“헉. 대박.”
루이드의 눈이 번쩍 뜨였다.
사실 완벽하게 같은 맛은 아니었다.
전생의 맥주는 훨씬 많은 공정과 비법이 들어갔을 테니까.
하지만 루이드는 이것만으로도 굉장한 만족감을 얻었다.
루이드가 기억하는 맥주로 향하는 첫발을 디딘 느낌?
“어떻습니까?! 공자님!”
“자네도 한번 맛을 봐.”
루이드가 양조사에게 국자를 건넸다.
호로록.
“헉!! 이, 이 맛은……!!”
양조사의 눈이 커다랗게 떠졌다.
풍미가 완전히 달라졌다.
홉을 넣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훌륭한 맛을 낼 수 있다니.
양조사는 감격했다.
이것은 따지자면 마늘이 들어간 미역국과 마늘이 들어가지 않은 미역국의 차이 정도였다.
“어, 어떻게 이럴 수가!”
그는 쉽게 믿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평생 술을 만들어 왔던 그다.
한데 단 며칠 동안 양조 기술을 배운 루이드가 자신이 한평생 일구어 놓은 모든 것을 넘어서 버린 것이다.
허망할 수도 있었다.
‘어떻게 나는 그 생각 한 번을 못 했을까. 그저 전해져 내려오는 대로 만들기만 하고. 루이드 님은 자신의 분야도 아닌데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까.’
하지만 양조사는 슬퍼할 시간이 없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자신의 분야가 아니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 그런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슬퍼만 하기에는 너무나 맛이 훌륭한 맥주였다.
양조사는 속으로 끄덕거렸다.
진심으로 손뼉을 쳐 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맛.
존경심이 우러나오는 맛이었다.
“어떻게 아신 겁니까? 어떻게 시도하실 수 있었던 겁니까? 홉을 쓴다는 생각 말입니다.”
양조사는 취조 하는 것이 아닌, 찬양에 가까운 말투로 말했다.
“혈계 능력자잖아. 뭔가 미각에 영향을 끼친 거겠지.”
루이드는 정말 말도 안 되게 대충 둘러댔다.
“으음, 역시. 그렇군요.”
하지만 이를 의심할 사람은 없었다.
“대단하십니다. 하긴, 공자님께서는 이전부터 술에 손도 대지 않으셨죠. 타고난 미각을 가지고 계셨기 때문이군요.”
이 세계는 어린아이들부터도 술을 마신다.
마실 수 있는 깨끗한 물이 적은 것도 그런 문화에 한몫했다.
그런 와중에 루이드는 이곳의 술맛 때문에 굳이 물을 고집해 왔다.
귀족이니까 가능했다.
‘사실 물맛도 끔찍했는데, 이젠 물맛과 술맛 모두를 잡았어!’
루이드의 얼굴에 진심 어린 미소가 피어올랐다.
이제, 루이드도 술을 마실 수 있었다. 취할 수 있었다!
“잠깐 기다려 봐.”
루이드가 후다닥 양조장을 벗어났다.
“아~샤라~!!!”
그리고 쩌렁쩌렁하게 외쳤다.
“……시원하게 해 달라고요?”
루이드의 부름에 도착한 아샤라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곳에서는 술을 모두 따뜻하게 해서 먹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냉장고가 없기 때문.
하지만 21세기의 지구에서 전생을 보낸 루이드는 달랐다.
시원한 맥주가 마시고 싶었다.
기껏 전생의 술맛과 비슷한 맛을 구현해 냈는데, 술은 아직도 미지근했다.
“하, 정말이지……. 술 만들기를 하면서 나를 이제 부른 것도 괘씸하고.”
“앗, 맞아. 너 꽤나 주당이었지.”
“주당이라뇨. 애.주.가.”
아샤라는 투덜대면서도 중얼중얼 주문을 외웠다.
양조사 역시 어리둥절한 얼굴로 루이드와 아샤라를 볼 뿐이었다.
스오아아아아!!
잔에 담긴 맥주에서 금방 허연 김이 올랐다.
데워진 것이 아니라, 금방이라도 얼 것처럼 차가워진 것.
“다 됐어요.”
아샤라가 손을 탁탁 털었다.
“자, 다들 마셔보자.”
루이드가 아샤라와 양조사에게도 권했다.
두근, 두근.
잔은 향해 뻗는 루이드의 손이 떨렸다.
‘전생의 맛…….’
두근, 두근!
꿀꺽, 꿀꺽, 꿀꺽!
“오, 맛있다!”
아샤라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럴 수가. 시원하게 마시니 완전히 주스 같군요. 훨씬 가볍고 독한 기운도…….”
양조사가 루이드를 보며 감상을 말하다가 멍하니 멈추었다.
꿀꺽, 꿀꺽, 꿀꺽.
루이드는 멈추지 않았다.
잔에 담긴 차가운 맥주를 계속해서 목구멍으로 넘겼다.
탄산처럼 톡 쏘는 맥주가 루이드의 목을 시원하게 긁어 내려갔다.
“크하아아아아!!!”
타아악!
잔을 완전히 비운 루이드가 테이블 위에 엎어졌다.
‘전생의 맛……!!!’
차가운 맥주에 골이 띵했다.
엄청난 감동이 몰아쳤다.
몇 년 만이던가.
‘20년 만이군.’
루이드의 눈이 촉촉해졌다.
어쩐지 전생의 지구로 날아가 버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
재앙으로 인해 많은 타격을 받은 지구였지만, 각성자들 덕분에 빠른 속도로 이전의 사회를 회복했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루이드가 좋아했던 것은 여름밤, 편의점에서 맥주 한 캔을 사 입구에서 바로 따 먹는 것.
눈앞에 21세기 한국의 여름밤이 펼쳐진 것 같았다.
‘이래서 형님들이 그리웠다 노래를 불렀군.’
전생에는 처음 겪는 것이었기에 그리운 맛이 아니었지만, 지금의 루이드에게는 확실히 그리운 맛이었다.
“후후, 후후후……. 치킨 먹고 싶다.”
“루이드 님, 괜찮아요?”
아샤라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안절부절못했다.
“괜찮아. 너무…… 행복해서 그래.”
“미친 사람 같아요.”
아샤라의 모난 말에도 루이드는 웃음을 흘릴 뿐이었다.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아.”
“죽으면 안 되죠!”
아샤라가 빽 소리를 지르는 동안, 시원한 맥주를 계속 홀짝이는 멜리옌이 있었다.
“와, 이렇게 하니까. 저도 먹을 수 있겠어요. 맛있는데요?”
「…….」
행복한 인간들이 가득 찬 양조장 안을 운디네가 둘러보았다.
「루이드는 정말 이상해.」
운디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술통으로 풍덩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