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ron' Son has Paranormal Abilities RAW novel - Chapter (42)
남작 아들은 초상능력자-42화(42/252)
제42화
제17편 열렬한 초대장(2)
꿀꺽.
루이드는 침을 삼켰다.
‘복선이었나.’
조금 전 나눈 대화들이 머릿속을 휘저으며 떠다녔다.
용병 살인마.
행방불명되는 용병들…….
‘하지만 내가 그랬다는 증거가 전혀 남지 않았을 텐데.’
이미 시간도 많이 지났고, 그땐 루이드의 얼굴을 아는 사람들도 왕도에 많지 않았다.
‘사실 지금도 없을…….’
“흠흠.”
루이드가 멍하니 있자, 기사가 목을 가다듬었다.
“루이드 D 포커드 공자님이 맞으십니까.”
“아, 맞소만…….”
옆으로 비켜선 헤이란과 요한의 얼굴은 거의 사색이 되어 있었다.
‘이런 쫄보들.’
루이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눈을 똑바로 떴다.
“셜린 세반 공작님의 명으로 왔습니다. 지금부터 저희와 함께 가 주시기를 바랍니다.”
셜린 세반.
현 국왕인 카이린 세반의 동생이자, 이그라의 또 다른 공작.
“세반 공작께서 나를 왜?”
“공작가에서 나흘째 무도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공작님께서는 포커드 공자님께서 참석하시어 자리를 빛내주시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허…….”
루이드는 황당한 얼굴로 눈썹을 찌푸렸다.
그의 소문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예술과 파티를 사랑하며 정치와 전쟁에는 관심이 없는 왕족.
그리하여 공작의 자리에 머물면서도 왕궁엔 발길을 끊었다시피 한 인물.
게다가 지저분한 소문이 가득하다는…….
‘안 간다고 하면, 확실히 공작의 눈 밖에 나겠지?’
어찌 되었든 왕족은 왕족이었다.
게다가 데려가기 위해 눈앞에 기사단을 보냈다.
‘거절 하려야 할 수가 없잖아.’
루이드는 입맛을 다셨다.
“지금, 당장 가야 하는 건가?”
“공작님께서는 그렇게 하길 원하십니다.”
“파티에 참석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해서, 의복도 준비하지 못했고…….”
확실히 긴 여행 끝에 이제 막 왕도에 도착한 루이드와 일행이었다.
좋은 옷을 입었지만, 흙먼지로 꼬질꼬질한 상태.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공작님께서 공자님의 의상을 준비해 두셨습니다.”
입이 떡 벌어졌다.
‘언제……. 하아, 피할 수 없겠구만.’
루이드는 일행을 보며 눈짓했다.
“일행이 있으니, 함께 가겠네.”
“그리하십시오.”
그리고 뒤를 돌아 엘프 직원에게 어깨를 으쓱였다.
“내가 구하던 인원은…….”
“제가 최대한 알아서 잘 구해 놓을게요.”
엘프 직원이 불쌍하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렇게 루이드는 파티장으로 끌려갔다.
* * *
“이게 요즘 젊은 귀족분들 사이에서 유행이랍니다.”
재단사가 루이드의 몸에 걸친 옷에 시침 핀을 꽂으며 나불댔다.
‘해가 중천인데 끌고 온 이유가 있었군.’
어느 정도 평균 사이즈로 이미 제작된 옷을 수선하는 중이었다.
“머시써! 리듀!”
콘콘은 의자에 앉아 루이드를 구경했다.
“후후, 영애께서 멋을 아시는군요.”
‘확실히 멋을 좋아한다는 셜린 세반의 재단사인가.’
루이드의 몸에 걸쳐진 옷은 무척이나 세련되고 아름다웠다.
살결에 닿는 잿빛 비둘기색의 고급 공단은 한없이 부드러웠다.
그 감촉이 얼마나 좋은지 재단사가 끊임없이 말을 걸지 않았다면 까무룩 잠들었을지도 몰랐다.
셔츠와 조끼, 자켓과 망토. 왕족들이나 쓸 법한 비싼 옷감이 잔뜩 쓰였다.
은실로 수 놓인 포인트는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아니, 확실히 부담스러웠다.
모든 옷이 루이드의 밝은 피부와 칠흑 같은 검은 머리카락. 창공보다 푸른 눈에 너무나 어울리는 것이었다.
이 방에 있는 모든 것이 마치 루이드만을 위한 물건인 것처럼.
좋게 말하면 센스가 있고, 나쁘게 말하면 소름이 끼쳤다.
‘파티 전까지 완성하려면 힘들겠어.’
와중에 재단사가 걱정되는 루이드였다.
노동하는 자의 노동 계급에 대한 동질감.
물론 루이드는 이제 귀족이지만, 뼛속까지 남아 있는 전생의 기억에 늘 귀족들보다 평민들 쪽에 마음이 갔다.
때문에, 까탈스럽게 굴지 않고 순순히 지시를 따랐다.
“정말 좋은 비율이군요. 이 팔의 길이. 이 다리의 길이. 좀 마르긴 하셨지만, 문제 될 것은 없죠. 요즘은 슬림한 것이 유행이거든요. 아, 그리고 좀 크긴 하겠지만 영애의 드레스도 준비해 놓겠습니다. 동행이 있다고 미리 일러주셨으면 좋았을 텐데. 하긴, 공자님께서도 갑작스럽게 끌려오셨다고 하셨던가요. 세반 공작님께서 좀 기분파세요. 이해하셔요. 하하핫!”
하지만 멈추지 않는 수다에 조금씩 마음의 거리가 멀어지는 루이드였다.
몇 시간 후.
“그럼, 의상이 완성되면 곧장 사람을 보내겠습니다.”
재단사가 루이드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녹초가 된 루이드는 복도로 나와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바! 리듀! 머찌다!”
아름다운 대리석 기둥들과 이국적인 건물 양식, 조각품과 그림들을 보며 콘콘이 발을 동동 굴렀다.
“규모가 왕궁과 다를 바 없네.”
기사들에게 이끌려 온 곳은 왕궁이 아니었다.
성 밖을 나와 마차를 타고 교외로 빠졌다.
이런 일에 왕실 기사단을 써도 되는 걸까.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마땅히 물어볼 사람을 찾지 못한 루이드였다.
그리하여 도착한 곳은 공작의 별장이었다.
어마어마하게 넓은 정원과 손질된 나무들, 높은 분수와 온갖 아름다운 것들로 가득 찬 백색의 저택.
사실 이곳으로 끌려 온 것이 그리 싫지만은 않았다.
귀찮기는 해도, 이런 광경을 볼 수 있는 건 쉽지 않은 기회였다.
‘소설 속 같다.’
루이드가 감탄하며 공작의 저택을 둘러보고 있을 때,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루이드.”
돌아본 루이드의 눈이 커다랗게 떠졌다.
루이드와 빼닮은, 검은 머리에 푸른 눈을 가진 남자가 서 있었다.
다른 점이라곤 머릿기름을 발라 단정하게 넘기고 이마를 드러내고 있는 헤어스타일 정도였다.
루이드의 놀란 얼굴에 남자의 입가에 미소가 퍼졌다.
“형님.”
루이드의 둘째 형.
엘빈 포커드였다.
“오래간만입니다. 형님.”
그는 루이드의 첫째 형인 케인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로 누가 보아도 학자처럼 보였다.
검사로서 능력이 평범했던 그는 일찍이 킬베리움을 떠나 왕궁의 관리로 들어왔다.
루이드 이전에는 포커드 가문에서 가장 머리가 좋은 이였다.
“이게 얼마 만이냐.”
남자는 팔을 벌려 루이드를 꽉 껴안았다.
오래도록 책상 업무만 했을 텐데도 끌어안는 팔의 힘이 강력했다.
각성하지 않은 루이드였다면, 소리를 질렀을지도 몰랐다.
“정말 반갑구나. 녀석. 왕도에 왔으면서 연락도 하질 않고.”
엘빈이 시원시원하게 웃으며 루이드를 놓아주었다.
“아아, 형님께서 바쁘신 것 같아서 말입니다.”
“서운하구나, 동생아.”
“……제가 잘못했습니다.”
엘빈이 장난스레 루이드의 머리를 헝클어트렸다. 그리고선 깜짝 놀라며 손을 뗐다.
“아아, 이제 어린애도 아닌데. 미안하구나.”
“아닙니다, 오래도록 못 뵈었으니까요.”
“그러게. 너를 마지막으로 보았을 땐 아직 꼬맹이었는데.”
엘빈의 눈에서 루이드를 향한 애정이 묻어났다.
루이드는 갑자기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엘빈은 성인식을 치르기 전에 왕궁 아카데미에 입학했기 때문에 루이드가 아주 어릴 때나 함께 했었다.
엘빈은 아카데미 방학 때도 본가로 내려오지 않고 학업에 열중했다.
그 결과 조기 졸업을 이뤘고, 성인이 되기 전 왕궁 관리가 된 엘리트였다.
루이드가 전생자가 아니었다면, 아마 엘빈의 얼굴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그러게, 왕궁에 왔을 때 형님을 좀 뵐 걸 그랬구나.’
어색하게 머리를 긁적이자 엘빈이 루이드를 이끌며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제가 여기 있는 걸 어떻게 아셨어요?”
“세반 공작님께 들었지.”
‘둘이 좀 친한가?’
그런 소식을 서로 전할 사이라면 아주 모르는 사이는 아닐 터였다.
“표정 좀 풀렴. 그분은 그렇게까지 나쁜 분이 아니야.”
“엑. 제 표정이 안 좋았나요? 피곤해서 그런 거뿐입니다!”
루이드가 손사래를 쳤다.
“후후. 괜찮다. 어쨌든 내 말은 진심이란다. 소문보다 훨씬 좋은 분이시지. 게다가 너의 엄청난 팬이란다.”
“팬이요?”
“그래, 그래. 하긴 네가 얼마나 대단한 일들을 해냈느냐. 덕분에 나도 왕궁에서 덕을 봤지.”
엘빈이 한쪽 눈을 깜빡거렸다.
그가 반어법으로 이야기할 때 하는 행동이었다.
“아아, 표기법 때문에 고생이 많으셨겠군요.”
“아하하, 그 표기법이 대단하기는 하더구나. 문제는, 모든 정보를 다 갈아치우는 과정이 쉽지 않다는 것이었단다. 그래도 한바탕 뒤집어엎었더니 이제는 살만하다.”
왕궁의 모든 표기를 바꿔야 했다.
궁정 관리들에겐 루이드가 폭탄을 던지고 간 것이나 다름없었다.
“면목 없네요.”
“수로 설계도 그렇고, 어릴 적부터 네가 명석하기는 했다만. 이렇게 뛰어날 줄은 몰랐다. 대체…….”
신나게 말을 이어가던 엘빈이 잠시 머뭇거리며 멋쩍은 듯 턱을 긁었다.
“이런 이야기를 묻는 사람은 너무 많았겠지? 일 이야기는 두고, 가족들 이야기나 해 주렴. 보고 싶구나.”
풀어지는 엘빈의 얼굴은 루이드가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와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큰형님께 아이가 생겼어요.”
“아! 그래! 그게 문제가 아니라, 그게, 내게 여동생이 생겼잖느냐! 어, 설마. 설마, 지금 네 품의 그 아이가?!”
엘빈이 빽 소리를 질렀다.
줄곧 루이드의 품에 안겨 있던 콘콘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걸 이제야 물어보시다니, 형님도 참.”
“너무 예뻐서 인형인 줄 알았다! 세상에! 게다가 이렇게 얌전할 수가 있는 거냐!”
그리고 무도회가 열리기 전까지, 두 사람은 그간의 소홀했던 가족 간의 회포를 푸느라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 * *
날이 어두워지고, 연회장에 촛불이 하나둘 켜졌다.
그냥 초가 아니었다.
마정석을 이용한 마법 촛불.
빛을 발하는 수정들이 날아올라 연회장 천장을 가득 메웠다.
마치 별이 떠오른 밤하늘 같은 풍경.
옆 벽면에는 유리와 거울이 가득 차 사방이 반짝였다.
마정석과 유리와 거울, 모두 엄청나게 사치스러운 것이었다.
한쪽에 준비된 여러 종류의 핑거 푸드들도 아주 먹음직스러웠다.
루이드는 콘콘을 안은 채 문 앞에 섰다.
끼익.
문이 열리고, 안쪽에 있던 안내원이 외쳤다.
“루이드 D 포커드 공자님이십니다!”
“어라.”
루이드가 들어서자 장내는 물을 끼얹은 것처럼 조용해졌다.
술렁.
곧이어 삼삼오오 모여 있던 사람들이 숙덕거리기 시작했다.
“저분이…….”
“대단해.”
“……멋져.”
“한데 품에 아이는 뭐지?”
“설마, 딸……?”
“아니, 들어보니 포커드 가문의 막내 여식이라는군.”
“휴, 정말 다행이야. 놀랐잖아.”
귀부인들이 쑥덕이며 부채를 펼쳐 얼굴을 가렸다.
“자네도 들었지? 그 표기법이…….”
“아아, 그자.”
“오호라…….”
“그 수로를 개발한…….”
“젊은데.”
“천재라고 하더군.”
“전하께서 눈여겨 보고 계신 모양이야.”
호기심과 선망이 담긴 눈빛들이 쏟아져 루이드에게로 꽂혔다.
피부가 따가울 지경이었다.
“루이드.”
이야기를 나눈 후 잠시 헤어졌던 엘빈이 루이드를 향해 걸어왔다.
“잘 왔다. 모두 네 이야기뿐이야.”
“그런 것 같긴 하네요.”
루이드는 엘빈의 손에 이끌려 앞으로 나아갔다.
시선의 끝에는 아주 키가 큰 사내가 서 있었다.
카이린 세반과 같은 은색 머리.
좀 더 금빛 같은 은발이었다.
존귀한 왕족을 상징하는 색.
“공작 각하.”
엘빈의 목소리에 남자가 돌아보았다.
“오, 엘빈. 덕분에 파티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군.”
“뭘요. 하나부터 열까지 다 공작님께서 하신 일이지요.”
붉은 눈동자가 순식간에 루이드를 훑어보았다.
놀랍도록 카이린 세반을 닮은 얼굴이었다. 루이드는 카이린과 셜린이 쌍둥이였던가 하고 기억을 되짚었다.
“그대는…….”
“제 동생입니다. 루이드 D 포커드, 포커드 남작가의 셋째죠. 그리고 이쪽은 막내, 콘콘. 아직 아명을 쓰고 있습니다.”
엘빈의 소개에 루이드가 예를 갖춰 인사했다.
“아명을 쓰는 어린아이가 벌써 사교계에 데뷔하다니.”
셜린이 비꼬듯 쿡쿡댔다. 콘콘은 기분이 상했는지 루이드의 옷깃을 꽉 쥐었다.
“루이드 포커드. 소문대로 미남이군.”
“과찬이십니다.”
“외모도 외모지만, 아주 똑똑한 녀석입니다.”
엘빈은 루이드의 자랑을 하고 싶어 온몸이 근질거리는 듯했다.
“흐응, 나는 항상 껍데기에 관심이 많아서. 역시 잘 어울려.”
셜린 세반이 손가락을 빙빙 저으며 루이드와 콘콘의 옷을 가리켰다.
“아아.”
루이드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두 셜린 세반이 준비한 옷과 장신구였다.
“감사합니다, 정말 훌륭한 의상입니다. 센스가 엄청나시더군요. 제 여동생의 드레스까지도요.”
“내 선물이니, 잘 챙겨가도록. 오늘 입어본 모든 것들, 걸쳐본 모든 것들. 전부.”
“전부 말입니까?”
“어차피 그대에게 맞춰 주문한 옷이니까. 설마 그걸 나더러 입으라는 말은 안 하겠지? 내 옷도 두 번 입는 적이 없는데.”
루이드는 아연실색했다.
‘그래도 그렇지, 씀씀이가 장난 아니네.’
그런 루이드의 표정을 훑어보며 셜린 세반이 입을 열었다.
“갑작스러웠을 텐데 내 초대에 응해줘서 고맙네.”
“저야말로 영광입니다.”
그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루이드와 콘콘을 바라보았다.
“아름다운 광경이야. 남매가 놀라울 정도로 닮았군.”
그의 눈에 이채가 감돌았다.
“각하께서도 전하와 무척 닮으신걸요.”
루이드의 말에 붉은 눈 위로 알 수 없는 감정이 떠올랐다가 이내 흩어져 버렸다.
화가 난 것 같기도 하고 슬픈 것 같기도 한 눈빛이었다.
‘응? 뭐지? 실수했나?’
셜린 세반은 순식간에 아무렇지도 않게 바뀐 얼굴로 활짝 웃었다.
“내 아름다운 저택을 본 소감은?”
“예? 아, 예술에 조예가 깊으시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었습니다. 게다가 이 저택과 저택 내부를 채운 각종 예술품의 수준이 무척 높더군요. 아름다웠습니다.”
세반 공작은 루이드의 대답에 만족스러운 듯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왜 이 저택을 아름다운 것들로 채우는지 아나?”
“……글쎄요.”
공작은 루이드의 말을 듣고도 계속 대답을 기다렸다.
‘황당하군, 왜냐니. 그건…….’
루이드는 자신이 책을 모으는 이유를 떠올려 보았다.
전 대륙에서 책을 모으는 일은 꽤 돈이 많이 드는 일이었다.
그에 비해 책을 읽는 취미는 이 세계에서는 좋은 취급을 못 받는다.
이곳에서 좋은 취급을 받는 취미란, 전쟁에 유용하거나 가문의 힘을 강하게 만들 것들.
따지고 보면 셜린 세반의 아름다운 저택도 그런 종류와는 다른 것이었다.
차라리 루이드의 취미와 비슷하다면 비슷한.
루이드는 생각을 정리했다.
자신이 책을 모으는 것.
그건 지식과 문학은 결국 인간을 성장시키고 더 나은 길로 어쩌고 하는 거창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그런 걸 하는 이유는…….’
루이드는 잠깐 셜린 세반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좋아하니까요?”
“푸하!”
셜린 세반은 고고한 외모에서 예상할 수 없었던 경박한 웃음을 터트렸다.
“대단하군.”
하지만 루이드는 자신의 대답이 뭐가 대단하다는 것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래, 맞아. 나는 아름다운 것을 좋아한다. 본질은 거기에 있군. 하지만 하나 더 알려주자면……. 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을 손에 넣지 못했거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
루이드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을 손에 넣지 못했다니.
그건 그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을 안다는 말이었다.
무엇일까? 실제로 보았을까? 사람이 손에 넣을 수는 있는 것일까?
루이드의 마음에 강렬한 호기심이 일었다.
“그래서 허무한 마음에, 이렇게 많은 아름다움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네. 어쨌든, 그대는 내 예상보다 훨씬 만족스럽군. 오늘 이토록 아름다운 두 사람을 보았으니, 흡족하기 이를 데 없다. 다른 것에는 흥미가 떨어지군.”
루이드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에 대한 질문을 하려는 순간, 셜린은 마시던 잔을 손에서 놓아 버렸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새하얀 대리석 바닥으로 말이다.
와장창!
유리잔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산산조각이 났다.
순식간에 모든 이의 시선이 셜린 세반에게로 꽂혔다.
“그럼 여러분들은 파티를 계속 즐기도록.”
그의 말에 당황한 건 엘빈이나 루이드뿐이 아니었다.
파티에 모인 모두가 놀란 얼굴로 멍하니 서 있었다.
‘이거 완전 또라이 아냐?’
소문이 자자한 셜린 세반이었지만, 소문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 루이드였다
“벌써 들어가시는 겁니까?”
셜린은 대답하지 않은 채 휙 돌아섰다.
루이드는 어쩐지 맥이 쭉 빠지는 것 같았다.
국왕의 남동생인 공작이 자신을 불렀으니, 무슨 일이라도 벌어질 줄 알았다.
“뭡니까, 형님. 공작님께서 제 팬이시라면서요.”
“원래 저런 분이시다. 너를 납치하다시피 데려와서 그 많은 선물을 냅다 선물한 걸 보면 모르겠느냐?”
“하긴 그것도 그렇네요.”
“기분이 자주 널뛰시거든.”
“소문과는 달리 좋은 분이라고 하셨던 것 같은데요.”
루이드가 추궁하는 눈빛을 보내자 엘빈은 재빨리 말을 돌렸다.
“그나저나 잘 되었다. 이 자리에는 소개해줄 사람들이 아주 많아.”
“예에?”
“넌 사교계에서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지 않냐. 물론 사내들은 공을 세워 이름을 날린다고는 하지만.”
엘빈은 들뜬 얼굴이 되었다.
“대귀족들과 유명한 귀부인들, 누구나 탐내는 영애들이 잔뜩 모였단다. 너도 슬슬 장가를 들 때가 되지 않았느냐.”
“이런, 잊었습니다. 형님께서 어머니의 성정을 빼다 닮았다는 것을요.”
루이드가 슬쩍 몸을 뺐다.
“하하, 그게 무슨 소리냐? 아, 마침 저기 계시는구나. 네가 관심을 가질 만한 분이시지.”
엘빈이 루이드를 잡아끌었다.
두 사람의 앞에 비쩍 마른 고목 같은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싸늘한 눈매가 오싹한 느낌을 자아내는 남자였다.
“안녕하십니까, 헬켄 백작님. 이쪽은 제 동생인 루이드 포커드입니다.”
엘빈이 밝은 얼굴로 루이드를 소개했다.
남자의 서늘한 눈이 루이드의 푸른 눈과 마주쳤다.
‘아, X 됐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