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ron' Son has Paranormal Abilities RAW novel - Chapter (43)
남작 아들은 초상능력자-43화(43/252)
제43화
제18편 열렬한 초대장(3)
루이드의 머릿속에서 경보음이 울려댔다.
헬켄 백작.
루이드가 몬드롬과 그의 드워프 식솔들을 빼내 온 영지의 주인.
‘아냐, 진정해. 그는 나에 대해 전혀 모를 수도 있어.’
합리적인 생각이었다.
루이드가 유명해지긴 했어도, 표기법과 수로 때문일 뿐.
이름이 널리 퍼지기 시작한 것도 그리 오래된 것이 아니었다.
‘사교계에서나 남편감으로 오르내린 정도라 했으니.’
전쟁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대부분은 그저 포커드 가문이 크렐리온과의 전쟁에서 승리했다, 정도만 알고 있을 터였다.
게다가 워낙에 소식이 느린 세상이었다.
전 세계의 대소사를 언제든, 정확하게, 금방 접할 수 있는 전생의 지구와는 완전히 달랐다.
‘그나마도 결혼시킬 여식이 있는 집에서나 관심이 있을 테고.’
루이드가 알기론 헬켄 백작의 자식들은 모두 시집 장가를 갔다.
헬켄 백작 본인도 연로하여 사교계에는 관심이 없을 나이.
‘그런 자가 지금 여기 있는 것도 놀라운 일이지. 생각보다 공작의 힘이 약하지 않은 걸지도.’
헬켄 백작이 루이드의 구리 광산과 대규모 무기 공방에 대해서는 아직 모를 가능성이 컸다.
‘그래. 쫄지 말자. 내가 쫄 필요가 어디 있겠어?’
침착하게 생각해보면 쫄 필요는 하나도 없었다.
‘헬켄의 기사들을 쓱싹해버린 건, 좀 켕기긴 하지만. 누가 알겠어. 그날 내가 그곳에 있었다는 사실을.’
루이드는 한껏 부드러운 표정으로 헬켄 백작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헬켄 백작님.”
“그대가 그 유명한 포커드의 삼남이군.”
백작의 유리알 같은 눈이 데굴, 굴렀다.
“백작님께서도 제 동생에 관해 알고 계셨군요.”
엘빈은 자랑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고 보니 헬켄 백작이 중앙 고위 귀족들 사이에서 힘이 좀 있던가.’
헬켄 자체는 중앙에서 힘 있는 가문이 아니었다.
지방에서나 꽤나 영향력 있는 가문. 하지만 중앙에 뒷배가 있는 가문이었다.
무기 제작을 많이 해내는 영지니, 중앙 대귀족들과 거래가 많았다.
‘친교’의 의미로 헬켄을 보호하는 귀족들도 꽤 있었던 것.
‘형님은 헬켄 백작의 힘을 얻고 싶은 걸까? 그러고 보니 형님 이야기를 좀 들을 것을. 킬베리움의 이야기만 했구나.’
뒷배가 없는 엘빈 포커드가 왕궁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떤 전략을 펼치고 있는지, 루이드로서는 아직 알지 못했다.
헬켄 백작이 천천히 입을 뗐다.
“모를 수가 없지. 전하의 마음을 흔들어 놓을 정도로 천재라지?”
“천재까진…….”
“하하하, 그렇습니다. 제 동생은 수와 계산에 능하고 상거래와 건축 그 어떤 것에도 탁월한 재능이 있지요.”
엘빈은 루이드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루이드의 칭찬을 쏟아냈다.
모두 파티에 오기 전, 루이드가 엘빈에게 들려준 이야기들.
‘고맙긴 하지만……. 그렇게까지…….’
엘빈은 하나부터 열까지 꼬박꼬박 늘어놓기 시작했다.
“농업용 수로를 만들고, 영지 전역에 상하수도를 설치한 것이 바로 루이드의 아이디어였답니다.”
“대단하군.”
헬켄 백작이 짧은 대답으로 지루하다는 티를 냈지만, 엘빈은 멈출 생각이 없었다.
‘형님은 왕궁에서 그리 오래 지냈으면서도, 눈치가 없구나. 그러니 지금껏 승진을……. 아차, 나쁜 생각, 나쁜 생각.’
루이드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엘빈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광맥을 찾아, 대형 대장간과 무기 공방을 만들어 영지의 새로운 사업을 개발하다니. 정말 집안의 복덩이입니다.”
그때 헬켄 백작의 눈에 빛이 어렸다.
“광맥을 찾아 무기 공방을 열다니, 그거 정말 대단한 일이로군.”
“그렇지요? 그래서 이렇게 헬켄 백작님께 소개하고 싶었답니다. 앞으로 서로 도울 일이 있을 것 같아서…….”
엘빈은 싱글싱글 웃었다.
‘이런. 어차피 알려질 일이긴 했는데.’
그래도 이런 식은 원하지 않았던 루이드였다.
이렇게, 당장 헬켄 백작을 대면하고 있는 상황에서.
‘아니다. 어차피 저질러진 일. 달랐대도 뭐 얼마나 나았겠어.’
루이드는 흐린 눈으로 엘빈을 보았다.
‘게다가 서로 도울 일이 뭐 있겠어. 이미 왕국에서 큰 역할을 하는 무기 공방에게 우린 그저 파이를 빼돌리는 쥐새끼 같을 텐데.’
루이드는 엘빈에게 조금 실망했지만, 그를 탓할 수만은 없었다.
지금까지 혼자서 왕궁에서 버텨온 사람이었다.
포커드 가문의 이름은 엘빈에게 큰 힘이 되어주지 못했을 것이고, 엘빈은 외롭게 버텨야 했을 터였다.
그래서 택한 줄이라는 게 헬켄 백작인 건 아무리 생각해도 실수 같았지만.
‘형님이 왕궁에서 얼마나 힘이 들었으면……. 아닌가, 지금 이거 나 엿 먹이는 건가? 아차차, 나쁜 생각.’
“포커드 남작령에 있는 광산에서는 구리가…….”
엘빈은 자랑스러운 얼굴로 열변을 토했다.
그 얼굴을 보고 있자니, 루이드의 마음속에 솟아났던 나쁜 생각이 쑥 눌러졌다.
루이드 때문에 고생을 좀 했기로서니, 형제에게 앙심을 품는 성정은 아니었다.
‘포커드 가문은 늘 팔불출이 문제야.’
루이드가 게슴츠레하게 엘빈을 보는 동안, 조용히 있던 헬켄 백작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대단하군. 광맥을 찾는 일이 쉬운 것이 아닌데. 혈계 능력자라더니, 정말이지 대단하군.”
“아실지 모르겠지만, 제 혈계 능력은 금속을 다루는 일이거든요.”
엘빈만 몰랐다.
루이드와 헬켄 백작 사이의 미묘한 기류를.
마치 뱀과 몽구스처럼.
팽팽한 신경전이 흘렀다.
“기술자들은 어떻게 구했나. 그런 기술이 없던 영지에서 갑자기 무기 공방을 운영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말이지.”
헬켄 백작은 루이드를 똑바로 보았다.
루이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맞습니다. 안 그래도 그 이야기를 할 참이었습니다. 엘빈 형님께서 만들어 주신 이 자리가 무척 고맙네요.”
루이드가 엘빈을 보고 방긋 웃자, 엘빈은 더없이 기쁜 얼굴이 되었다.
“무기 공방으로 유명하신 헬켄 백작님과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어 무척 영광입니다. 이런 대화도 나눌 수 있고요. 혼자선 정말 힘들었거든요. 딱히 의지할 데가 없었지요.”
헬켄 백작은 말없이 눈만 빛냈다.
“백작님은 모르고 계시겠지만, 백작님과 전 남다른 인연이 있답니다.”
“남다른 인연이라.”
“제 공방에서 일하는 드워프 장인들이 헬켄 백작님의 영지에서 왔다고 하던데요.”
헬켄 백작의 얼굴이 미묘하게 굳어졌다.
“그들 덕분에 대규모 무기 공방을 시작하는 것이 수월했답니다.”
원래도 표정 변화가 별로 없는 자였다.
“오호라……. 그자들이 포커드의 영지로 갔군. 킬베리움은 그리슨빌과 굉장히 먼 곳인데…….”
그는 천천히 수염을 문질렀다.
‘하하. 대굴빡 굴러가는 소리가 여기까지 다 들리는구나. 하지만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알기는 어려울걸.’
작은 단서도 남기지 않은 루이드였다.
그리슨빌 성도에 들어설 때도, 루이드는 만에 하나를 생각해 가짜 신분을 사용했다.
데려간 인원도 아샤라 뿐이었다.
마차를 아샤라의 아공간 목걸이에 넣어서 가져간 것도 이유가 있었다.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은밀히 이동하기 위함.
단순히 거추장스러워서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이 도움이 되던가? 드워프들이 대단하다고 들었는데, 밑에 두어보니 그런 것도 아니더군.”
표적을 찾지 못한 화살은 드워프들을 향해 겨누어진 모양이었다.
“그들이 내 영지에 있는 동안에 불길한 일들이 너무 많이 일어나서 말이지. 사실 내가 참다못해 내쫓은 것이네.”
“허, 그렇습니까?”
루이드가 놀란 얼굴로 보자 헬켄 백작이 비릿하게 웃었다.
“원래 이방인들을 들이는 것은 불길한 일이지. 무기 공방에 대해서 내게 조언을 얻고 싶다면, 외지에서 온 더러운 드워프들과는 상종하지 않는 것이 좋다네.”
헬켄 백작은 루이드와 엘빈을 번갈아 보았다.
“그대는 똑똑한 젊은이니, 내 말을 알아듣겠지?”
헬켄 백작이 이를 드러내며 씩 웃었다.
‘아하, 그렇게 나오시겠다? 힘겨루기를 하려는 모양이지.’
루이드가 눈을 가늘게 떴다.
백작은 자신에게 환심을 사려 했던 엘빈의 마음 정도는 훤히 알고 있었다.
헬켄 백작의 말에 엘빈의 표정이 약간 굳어졌다.
알아서 기어. 그놈들을 곁에 두지 마.
백작이 하고 싶은 말은 딱 그거였다.
그리고 그들이 킬베리움을 떠나는 순간, 다시 살수를 보내 복수할 생각까지도 하고 있었다.
“게다가 무척이나 불쾌한 일이야. 그 도둑놈 같은 드워프들이, 그리슨빌의 기술을 훔쳐다가…….”
“백작님.”
루이드가 헬켄 백작의 말을 끊었다.
백작은 짐짓 기분이 상한 얼굴로 루이드를 노려보았다.
“그 말인즉, 제가 백작님의 대장 기술을 훔쳤다는 말인가요?”
루이드의 기세는 흉흉했다.
“뭐…….”
헬켄 백작은 당황한 기색이었다.
기분이 나쁜 것도 나쁜 것이었지만, 루이드의 이런 반응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헬켄 백작님을 존경해 마지않지만, 도둑놈 취급을 당하는 것은 불쾌하군요.”
루이드는 단호했다.
“하, 오해가 있었나 보군. 내가 말하는 건 그대가 아니라 그 드워프들…….”
“오해하지 않은 것 같은데요. 그 드워프들의 고용인이 저이니, 같은 말이지요.”
“…….”
헬켄은 인상을 찡그렸다.
“저와 킬베리움의 장인들은 그 누구의 기술도 훔치지 않았습니다.”
이까지 했으니, 헬켄 백작도 알아들은 눈치였다.
드워프들을 내치라는 헬켄 백작의 명령을 루이드가 거절했다.
드워프들과 루이드는 하나이니, 더는 건드리지 말라는 말.
이 정도면 귀족들의 언어로는 둘러 말하지도 않았다.
헬켄 백작 입장에서는 굉장히 건방지게 보였을 터였다.
“그걸 자네가 어떻게 아는가.”
헬켄 백작은 갑작스러운 루이드의 기세에 잠시 당황한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쉽게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그의 뱀 같은 눈이 형형하게 루이드에게 맞섰다.
‘이렇게 나올 거라고 예상했지.’
새파랗게 어린 공자의 말에 헬켄 백작이나 되는 귀족이 꼬리를 내릴 수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드워프들을 풀어준 뒤 기사들을 보내 처단하려 했던 그 비열함.
“그럼, 이 자리에서 증명해 보면 어떻습니까.”
“증명?”
“그리슨빌의 검과 킬베리움의 검으로 겨루기를 하면 어떻습니까.”
“세상에.”
헬켄 백작과 루이드 주위의 귀족들이 술렁였다.
‘관심 없는 척하면서 다들 듣고 있었구만.’
루이드는 호기롭게 헬켄 백작을 바라보았다.
어차피 들통난 마당에 헬켄 백작에게 강수를 놓을 생각이었다.
이대로 루이드가 꼬리 내린다면, 헬켄 백작은 조언을 핑계로 사사건건 킬베리움 공방 일에 간섭하려 했을 터였다.
드워프들을 내칠 때까지 압박을 주고, 괴롭히고.
또 도와주는 척하며 루이드의 공방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게 술수를 쓰고.
어쩌면 필요할 때 이용하고 가차 없이 버려질 수도 있었다.
백작의 민낯을 이미 목격한 이상, 그의 비위를 맞춰줄 필요는 없었다.
아니, 그런 자가 아니었다고 해도 이용당해줄 생각은 없었다.
노란 싹은 제때 자른다. 그래야 앞으로도 시비가 붙지 않을 터였다.
“겨룬다라, 지금 내게 결투를 신청하는 것인가.”
헬켄 백작의 서슬 퍼런 눈앞에서 루이드는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 헬켄 백작도 루이드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노란 싹은 제때 잘라야 한다.
드워프들이 사라진 후 흔들리는 그리슨빌의 무기 공방을 위해서라도.
킬베리움의 무기 공방은 헬켄에게 눈엣가시다.
“기술을 베껴 만든 검이라면, 원조를 이기지 못할 테니까요.”
“좋다.”
헬켄 백작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러나 이렇게 노쇠한 늙은이에게 검을 쥐라고 하지는 않겠지.”
“물론입니다.”
“올슨. 타르반을 데려와라.”
주변에 대기하고 있던 헬켄 백작의 기사가 밖으로 나갔다.
“루이드, 대체 뭘 하는 거냐.”
“아, 형님. 이거. 죄송하게 됐습니다. 헬켄 백작의 마음을 얻고 싶으셨을 텐데 말입니다. 저도 제 사정이라는 게 있어서.”
엘빈의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
“그, 그런 것 아니다.”
“그런가요? 그렇다면 다행이고요. 앞으로 꺼림칙한 사이가 될 터이니 말입니다.”
엘빈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그래도 괜찮겠느냐?”
“괜찮을 겁니다. 형님께선 좀 고생하시겠지만요.”
엘빈은 낮게 한숨을 쉬었다.
“상관없다. 포커드의 명예가 더 중한 것이니. 공작님껜 내가 설명하마.”
‘역시 형님은 나쁜 마음으로 헬켄과 대면시킨 것이 아니었던 모양이군. 모르긴 몰라도 머리 아프시겠군.’
루이드는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함께 엎지른 물.
두 사람 다 옷깃이 젖을 수밖에.
“부디 잘 말씀드려 주세요.”
파티의 주인인 셜린 세반 공작.
귀족의 자존심이 걸린 일이니, 공간을 빌려줄 수밖에 없을 터였다.
하지만 그의 자존심을 위해 허락은 구해야 했다.
쿠웅.
쿵!
바닥을 울리는 발소리.
“꺄악!”
귀부인들이 겁에 질린 얼굴로 비틀댔다.
파티장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거한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냥 거한이 아니었다.
‘근육 돼지!’
루이드의 감상이었다.
전신에 두른 강철 갑옷 밑으로도 훤히 보이는 우락부락한 몸. 팔뚝은 웬만한 성인의 허리둘레.
고블린을 빼닮은 얼굴은 흉터가 가득했다.
“나 대신 출전할 자네.”
백작이 미소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