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ron' Son has Paranormal Abilities RAW novel - Chapter (72)
남작 아들은 초상능력자-72화(72/252)
제72화
제22편 고무, 고무!(2)
“루이드 말씀이십니까.”
대답한 것은 엘빈 포커드였다.
엘빈 포커드 앞에 있는 것은 셜린 세반 공작이었다.
그는 달빛을 받은 장미를 구경하고 있었다.
“으응, 그렇지. 이제 곧 밀라비아에서 사절이 올 것 아닌가.”
셜린 세반 공작은 탐스러운 푸른 장미의 봉오리를 조심스레 어루만졌다.
“헌데 그것이 루이드 포커드와 무슨…….”
“수로 기술의 원작자가 루이드 포커드 아닌가? 그러니 당연히 그가 와야지.”
“……그렇군요.”
엘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루이드가 왕성을 드나드는 일은 과연 좋은 일일까.
포커드 가문이 헬켄의 영지를 함락시킨 이후로 귀족들 사이의 분위기가 꽤 아슬아슬했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무런 힘이 없던 작은 가문이 연달아 전쟁에서 승리하며 전에 없던 기세로 힘을 키우고 있었으니까.
헬켄 백작과의 일로 단데리온 후작 쪽의 반응도 영 신경 쓰였다.
루이드의 짐작과는 달리 엘빈은 헬켄이나 단데리온 후작 라인에 들고 싶은 생각까지는 없었다.
하지만 조심하고 눈치를 봐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 단데리온’에서 아직 아무런 움직임이 없는 것이 놀라울 지경이라고 생각하는 엘빈이었다.
“게다가 그가 와야 재미있을 것 같거든.”
셜린 세반이 어루만지던 장미 꽃봉오리를 손으로 움켜쥐었다.
* * *
“자아, 이렇게.”
루이드가 유리병의 유리 뚜껑을 닫았다.
유리 뚜껑은 주위로 고무 패킹이 되었다.
루이드는 물이 든 유리병을 제대로 닫은 다음 뒤집어 흔들었다.
“자, 확실히 완전히 밀봉 했다.”
“음, 제대로네요. 하나도 새지 않아요.”
아샤라도 내용물을 흔들어보았다.
“그리고 이렇게 끓는 물에 넣고 소독을 한 뒤에.”
루이드는 다른 병에 뜨거운 스튜를 넣었다. 그리고 조금 전과 같이 유리병을 봉했다.
“이렇게 하면 훨씬 오래도록 음식을 보관할 수 있단 말이죠?”
“맞아.”
“문제는 이걸 옮기는 거네요. 유리는 깨지기 쉬우니까.”
“어쩔 수 없지.”
루이드는 허리에 손을 얹었다.
“그래도 이전의 유리에 비해 훨씬 강한 유리입니다.”
젠이 자신감이 넘치는 얼굴로 말했다.
“맞아요. 우리 가문의 유리 역사에 길이 남을, 엄청난 업적이라고요!”
로마도 들뜬 얼굴로 외치다, 핫! 하며 입을 막았다.
“물론, 그대들의 노고와 성과는 내 잘 치러줄 것이다.”
루이드는 웃는 얼굴로 젠과 로마를 격려했다.
사실, 루이드는 젠과 로마가 이렇게 빨리 성과를 내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강화 유리는 열과 압력, 냉기로 특수 제작되어 일반 유리보다 열과 충격에 독보적으로 강했다.
밀폐 용기 뿐만 아니라 모든 곳에서 훌륭하게 사용될 아이템!
말이 쉽지, 강화 유리를 만드는 일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솔직히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루이드가 모든 지원을 쏟아붓더라도 확실한 가망이 없었다.
몇십 년이 걸리더라도 해내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였으니까.
그런데 젠과 로마는 해냈다.
‘실로 대단한 기술자들이다. 대륙에 이보다 뛰어난 유리 장인이 있을까?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들을 내 영지에 계속 머무르게 하고 싶군.’
루이드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젠과 로마를 보았다.
“지내는 데에는 부족함이 없고?”
“물론입니다. 이렇게 편하게 지내도록 배려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젠이 깊이 인사했다.
“뭘, 이렇게 좋은 성과를 내 줄 장인들이니 이 정도 대우하는 것이 마땅한 일 아닌가.”
루이드가 화사하게 웃었다. 예의 그 상대를 녹이는 무해한 미소로.
* * *
사람 좋게 웃는 루이드를 보며, 젠과 로마는 서로 같은 생각을 했다.
‘가능하다면 이곳에서 영원히 머물고 싶다.’
아무리 기술자들이 귀하다고 하여도 귀족들의 취급은 거기서 거기였다.
높으신 분들이 생각하기에는 농노나 유리 장인이나 매한가지였으니까.
젠과 로마는 이런 곳을 경험한 적이 없었다.
루이드 포커드는 그저 싹싹하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공방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
그 어떤 영지에서도 누릴 수 없었던 일이었다. 어떤 영주도 그들에게 이런 지원을 해주지 않았다.
이곳에서라면 그저 물건을 생산하는 것뿐 아니라 새로운 기술을 연구하는 일도 마음껏 할 수 있었다.
연구비는 고용주인 루이드가 모두 부담했다.
실패하고, 재료가 버려져도 루이드는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투자와 연구에 관대하고 융통성이 있는 고용주.
특히 유리 장인으로 오랜 세월을 일한 젠은 그런 루이드가 정말 남달랐다.
장인들은 늘 그 땅의 영주와 거래관계로 묶일 수밖에 없었는데, 단 한 번도 이렇게 자유로웠던 적이 없었다.
이전까지의 고용주들은 죄다 적은 돈을 주고 젠의 기술과 작품을 착취하려고만 했다.
그의 일생이 전부 그러했다.
그리하여 그는 그의 자식까지도 빼앗겼다.
젠의 감정이 북받쳐 올라왔다.
‘이미 지난 일이다. 나는 그저 로마만 잘 지키면 될 일이야.’
역시 오랜 세월을 살아온 젠이었다.
그는 노련하게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자신의 손녀 로마를 바라보았다.
노련한 그는 손녀의 표정만 보아도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로마 너도 이곳이 좋구나. 그래 그간의 생활은 어린 너에게 너무나 힘든 일이었겠지.’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들에게는 선택지가 없었다.
계약 기간 동안 이 꿈같은 곳을 즐기는 수밖에는.
“어쨌든, 이 성공적인 밀폐 용기를 타이어가 달린 마차로 옮기면 더 보관성이 좋지 않겠어?”
“역시 루이드는 똑똑하다니까~!”
루이드의 말에 곁에 있던 아르헬이 활짝 웃었다.
더없이 행복한 풍경.
로마 역시 이 자리가 무척이나 즐겁고 행복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루이드와 가신들이 모두 물러가고 유리 공방에는 젠과 로마만이 남았다.
도제들은 제2 공방에서 수련으로 바쁜 중이었다.
“로마야,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알고 있다.”
“……신경 쓰지 마세요. 제가 어려서 그런 것이니까요.”
로마의 괜히 성질이 났다.
차라리 할아버지가 모른척해 주었다면 좋았을 텐데.
“딜리언과 마나도 이곳에 함께 왔다면…….”
“됐어요!”
결국 로마는 견디지 못하고 바깥으로 뛰쳐나왔다.
딜리언과 마나.
로마의 부모님 이름이었다.
그 누구보다 유리 제조에 열정을 가졌던 두 사람이었다.
결국 그 마음이 그들을 죽음으로 내몰았지만.
그럴 줄 알았다면, 그런 일이 일어날 줄 알았다면.
젠도 로마도 그들에게 유리에 대한 집착을 버리라 말했을 터였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로마는 상상했다.
할아버지인 젠과 함께 개발한 강화 유리.
이것을 개발할 때 자신의 부모도 함께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들이 그렇게도 원하던 일이었을 텐데.
그랬다면 이렇게 도망을 다닐 일도 없었을 텐데.
로마는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빌어먹을 크라우스 제국.’
로마의 고향은 크라우스 제국령에 속한 곳이었다.
그들의 나라는 오랜 옛날에 크라우스 제국에 침략당했다.
이제 그 나라는 이름도 없었다.
그저 크라우스 제국령 중에 하나로 새로운 도시 이름을 물려받았을 뿐.
로마가 함께 자라온 아이들은 크라우스의 귀신부대를 직접 보며 자랐다.
그들은 늘 숨죽여 살아야 했다.
그건 로마의 부모도 조부인 젠도 다르지 않았다.
그나마 목숨을 쉽게 잃지 않았던 이유는 글라슨 가문이 준 귀족에 속하고, 뛰어난 유리 제조 기술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속국의 민족이 늘 그렇듯, 예기지 않은 불행은 삽시간에 글라슨 가문을 무너뜨렸다.
딜리언은 유리에 대한 열정 때문에 다른 대륙의 유리 장인과 접촉했다.
크라우스 제국에서는 이를 반역행위라 칭하며 글라슨 가문을 벌했다.
모두 죽었다.
젠과 로마만이 겨우 도망쳐 나왔다.
그들은 망명자이자 도망자였다.
로마가 크라우스 제국의 이야기에 흠칫 놀라던 이유가 모두 이것 때문이었다.
할아버지와 함께 크라우스 제국령을 벗어나기 위해 온갖 고생을 한 로마였다.
끔찍하게 차가운 강을 맨몸으로 건넜다.
몬스터가 우글거리는 숲에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워야 했다.
제국의 손길이 뻗치지 않은 이곳 이그라 왕국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엄청난 행운이라고밖에 설명할 길이 없었다.
무자비한 세상이었지만, 인정이 살아 있었다.
가난한 농노 가족이 그들을 숨겨주었다.
눈치 빠른 상인이 그들을 수레에 태워주었다.
그렇게 이그라에 도착했다.
이그라는 대륙 변방의 작은 나라였다.
하지만 크라우스 제국의 손아귀에서 많이 벗어난 곳이었다.
젠과 로마는 이곳에서 한숨 돌린 뒤, 여비를 벌어 배를 탈 생각이었다.
크라우스 제국의 손길이 영원히 뻗치지 않을 다른 대륙으로.
포커드 남작령에서 계약직을 구한 이유였다.
빨리 돈을 벌고 대륙을 벗어나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 작은 대륙은 언젠가 크라우스 제국의 손에 완전히 점령당할 테니까.
그런데.
로마는 어쩐지 이곳에 남고 싶어졌다.
이곳은 그리 멀지 않은 크라우스 제국령과는 완전히 다른 곳이었다.
이그라의 다른 곳은 몰라도.
이곳, 포커드 남작령만큼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로마가 꿈꿔왔던 천국은 이런 곳이지 않을까?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걸까.
꿈이라면 깨고 싶지 않을 만큼 이곳의 생활은 안락했다.
“훌쩍, 훌쩍…….”
“어어~! 이야~! 이곳도 역시 장난이 아니구만!”
눈물 때문에 어른거리는 풍경 너머로 왁자지껄한 소음이 들려왔다.
“이전보다 훨씬 더 빠르게 공사가 끝난 것 아닌가? 역시 루이드 님은 대단하시다니까……!”
“……정말이다, 우리 없이도 이렇게 훌륭한 공사가 끝나다니. 어쩐지 섭섭한걸.”
소음의 정체는 한 무리의 드워프들이었다.
“어이! 소녀여! 여기 유리 공방으로 가려면 어떻게 가야 하나?”
“에?”
“트랄릭. 우리 소개부터 해야지.”
“에엥, 몬드롬 형님 무슨…….”
“소녀여, 우리는 킬베리움의 무기 공방에서 온 대장장이들이다. 그리슨빌의 성주인 루이드 포커드 님을 뵈러 왔다. 그분이 유리 공방에 계시다고 전해 들었는데.”
몬드롬이 정중하게 말하자 로마는 축축한 눈을 끔뻑였다.
“제, 제가 안내…… 여기가…… 아, 아니다. 루이드 님은 주탑으로 돌아가셨어요. 막 방금이요.”
“아아, 엇갈렸나 보군.”
드워프들이 주탑 방향으로 돌아섰다.
“고맙네, 소녀여.”
몬드롬은 인사를 하고 로마에게서 떠나갔다.
‘드워프 대장장이들이라니.’
사실 드워프는 크라우스 제국에서도 꽤나 익숙하게 볼 수 있었다.
크라우스 제국이 점령한 나라 중에는 드워프들의 국가도 있었다.
허나 이곳은 대륙의 변방, 종족 간의 차별이 꽤 깊은 외진 국가였다.
‘공방으로 돌아가기 싫네.’
그렇게 로마는 공방 주위를 한참 맴돌았다.
어느덧 노을이 질 때까지.
‘이제 슬슬 돌아갈까.’
하지만 할아버지의 얼굴을 보면 또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괜히 드워프들과 마주친 탓에 제국 생각만 더해진 탓이었다.
스윽.
그런 로마의 앞에 짧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소녀여.”
“엇. 드워프님.”
로마는 운이 나쁘다고 생각했다.
하필이면 또 드워프와 마주치다니…….
자신을 몬드롬이라고 소개했던 드워프는 주위를 살폈다.
“……?”
인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몬드롬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크라우스 제국의 망명자인가.”
로마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