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ron' Son has Paranormal Abilities RAW novel - Chapter (78)
남작 아들은 초상능력자-78화(78/252)
제78화
제3편 왕궁에서(2)
“물론 기억하고 있습니다.”
루이드는 예의 그 무해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모르는 척하지 않았다.
이럴 때 의뭉스럽게 꼬리를 감추며 도망치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
“참 죄송할 따름입니다. 저도 혼기가 찼지만, 저희 가문에서 처리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서 말입니다.”
루이드는 일전에 제이스가 거절 의사를 내비친 이유로 밀어붙였다.
단데리온 후작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자, 어떤 식으로 우위를 잡으려 하겠느냐.’
물론 이대로 물러서지 않으리란 것쯤은 알고 있었다.
루이드의 예상대로 단데리온 후작은 더욱 단호한 얼굴을 했다.
“장남도 아닌데, 어찌 그리 가문을 위해 희생한단 말인가? 좀 자유로워도 될 처지 아닌가.”
단데리온 후작은 담담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 말은 모순된 것이었다.
단데리온 후작이 보낸 혼서에 그대로 순응하는 것이야말로 가문을 위해 희생하게 되는 일.
때문에 루이드는 제이스와 대화를 나눌 때 차라리 혼인을 하겠다고 이야기했었다.
하지만 오히려 제이스가 루이드에게 자유를 제안했다.
부모로서, 자식의 행복을 위해.
“포커드는 가족을 지킵니다.”
“……?”
“그것이 저희 집안의 가훈입니다. 새로운 가족을 만드는 것도 좋지만, 이미 함께 하는 가족의 일을 돕고 지키는 것이 기본 바탕이 되지 않겠습니까?”
“허오.”
“그것이 지금껏 제가 배워 온 가문의 가르침입니다.”
루이드의 말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 있었다.
가족이란 혈육뿐 아니라 이그라의 귀족들 사이를 이루고 있는 파벌을 의미하기도 하는바.
결국 단데리온 후작의 편이 되지 않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담은 말이었다.
루이드가 이리 말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제이스의 지지 덕분.
‘귀족이니 이정도 말은 알아듣겠지.’
루이드가 사람 좋은 얼굴로 빙긋 웃었다.
그 얼굴을 한참 들여다보던 단데리온 후작은 콧방귀를 뀌었다.
“흥, 것 참. 정말이지. 그렇게 전하께서 총애하는 유능한 젊은이라고 해서 뭔가 아주 특별할 줄은 알았지만.”
단데리온 후작은 입술을 비죽거렸다.
마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듯한 어조와 표정.
“과연 아름다운 얼굴이군, 그래.”
‘응?’
루이드는 고개를 갸웃했다.
단데리온 후작이 자신을 비꼬고 있다는 것은 알았다.
완곡한 거절을 당했으니 기분이 나쁠 만했다.
‘그런데 웬 얼굴 타령?’
왜 하필 얼굴을 걸고넘어지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젊고 앞날이 구만리인 남자가 그런 얄팍한 방법을 택하다니. 조금 실망이라네. 아니면 소문이 너무 과장됐던 거겠지. 클클클.”
‘기회주의? 방법?’
후작은 루이드의 표정을 넘겨보며 입맛을 쩍쩍 다셨다.
“하지만 단데리온은 자네의 그런 면을 비난하지는 않겠네. 아니? 오히려 그런 점이 우리 가문과 잘 들어맞는다고 생각하는 바라고.”
단데리온 후작의 눈빛은 무척이나 노골적이고, 음흉했다.
“흠결이 없는 고고한 멍청이일까 봐 걱정했는데, 오히려 이야기가 쉽겠어. 그래, 인간이란 원래 다 그런 것 아니겠나. 욕망에 충실하고, 사실 모두 짐승이지.”
그러나 그는 루이드 옆에 서 있는 로빈이 신경 쓰이는 듯 본론을 명확히 꺼내지 않고 빙글빙글 둘러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로빈은 그저 단순히 젊고 영특한 기사가 아니라 톰멀 후작의 아들이었으니까.
단데리온과 톰멀 가문은 라이벌과도 같은 가문이었다.
로빈에게 자리를 비켜 달라고 하는 쉬운 방법도 있긴 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후작 쪽에서 루이드에게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분위기를 망치고 마는 것이다.
루이드에게 애쓰고 공을 들인다고 비치기 싫은 것이다.
한마디로 기 싸움을 하는 것.
루이드는 이런 일이 정말 귀찮다고 생각했다.
‘에휴, 또, 또, 또 그놈의 귀족. 자존심!’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단데리온 후작을 앞에 두고 보는 것이 재밌기도 했다.
‘그런데 자잘한 흠이라니? 내가?’
루이드는 지금까지 딱히 흠이 될 만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
그것도 다른 귀족들이나 단데리온 후작이 걸고넘어질 만한 일은 더더욱 없었다.
‘굳이 따지자면 전쟁을 자꾸 하는 거?’
하지만 그 역시 상대방이 계속해서 걸어온 전쟁. 루이드와 포커드는 도망가지 않고 상대해 준 일밖에 없었다.
‘아니면 너무 완벽한 거? 그게 내 흠?’
루이드는 한쪽 눈썹을 들어 올렸다.
“죄송하지만, 후작님. 무슨 이야기를 하시는지 이해하지 못하겠군요.”
루이드는 어투는 무척 단호했다.
그러자 단데리온 후작은 능글거리고 기분 나쁜 눈빛으로 루이드를 위아래로 훑었다.
“정말로 둔한 것인지, 아둔한 척을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를 속이려 애쓸 필요는 없네. 그 대단한 포커드의 밤 기술은 또 얼마나 대단하기에. 왕좌를 들썩인단 말인가. 껄껄껄.”
후작의 말에 루이드의 얼굴을 딱딱하게 굳어졌다.
‘뭐야, 이거? 뭔 개소리야?’
루이드는 이제 후작이 무슨 말을 하려는 지 완벽하게 파악했다.
‘이자는 내가 카이린 전하의 기둥서방이라도 되는 줄 아는 모양이구나. 황당하네. 저급하고.’
단데리온 후작은 이그라의 국왕, 카이린 세반이 루이드와 포커드 가문을 곁에 두고 아끼는 것이 루이드의 실력이나 뛰어남 때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였다.
젊고 미혼인 카이린이 마찬가지로 어리고 잘생긴 귀족을 곁에 두고 연애 놀음을 하는 것이라고.
루이드 포커드는 권력을 잡기 위해 카이린에게 그런 쪽으로 접근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불경하기 그지없는 발상이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단데리온 후작뿐만이 아니리라.
루이드는 쓴웃음을 지었다.
‘역겹군, 게다가 뭐? 그것이 단데리온과 잘 맞는 일이라고?’
이제 아버지 제이스가 왜 단데리온 후작을 싫어하는지 완벽하게 이해하게 된 루이드였다.
‘아무리 귀족들이 권력을 위해 혼인 장사를 한다지만, 이자는 정말 저급한 족속이로군. 이 작자는 뭐든지 이딴 식으로밖에 생각하지 못하는 자야.’
루이드는 귀족의 자존심을 위한 허례허식이나 가식을 싫어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선이 있다고 생각했다.
예의를 차리는 것과 가식은 다른 것이다.
자신의 말을 마친 단데리온 후작은 무리에게 눈짓하더니 휙 하고 돌아섰다.
돌아서는 발걸음에는 미련이 뚝뚝 떨어졌다.
그는 느릿느릿 저쪽으로 사라져갔다.
‘더러운 오해가 오히려 날 더 탐나게 만들었나. 하아, 짜증 나게 됐군.’
루이드는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 모습을 바로 곁에 있는 로빈은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 * *
루이드와 멀어지는 단데리온 후작의 무리 중, 디바일 자작이 불쾌하고도 조심스러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후작님, 그렇게까지 루이드 포커드에게 너그러우실 필요가 있습니까?”
“흐응?”
“리콜 백작님의 일은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감히 헬켄 백작님의 영지를 침략하여 일족을 멸절시킨 잔악무도한 자가 아닙니까.”
디바일 자작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단 한 명도, 단 한 사람도 살려놓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잔혹한 일을 저지를 수 있단 말입니까.”
“……흠, 그래. 그건 좀 심하긴 했지.”
단데리온 후작이 입술을 삐죽거렸다.
귀족 간의 전쟁이 있더라도, 웬만해서는 멸족을 시키는 법이 없었다.
가문이 끊어지게 하는 일은 피도 눈물도 없는 잔악한 행위라고 평가되는 일이었다.
“심하긴 한 정도가 아닙니다.”
“하지만 영광스럽게 전쟁에 참여해, 전투 중에 불행히도 목숨을 잃은 것을 어떡하나.”
“뻔히 보이는 거짓말 아닙니까? 포커드의 말을 모두 믿으시는 겁니까?”
“사실 그런 점이 꽤 마음에 들어. 생각보다 거친 매력이 있는 자더군. 남자는 자고로 카리스마가 있어야 하는 법.”
단데리온 후작이 낮게 킬킬거렸다.
“게다가 어쩌겠는가. 전쟁과 힘이 이 정의를 다스리는 세상이 아닌가? 또한 헬켄 백작이 먼저 살수를 보냈다고 하던데. 그런 짓을 하려면 들키지나 말았어야지. 쯧쯧.”
“그것 또한 포커드 가문에서 전쟁의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꾸민 일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킬킬킬. 디바일 자작. 그대는 순진한 건가 멍청한 건가? 뭐, 아무렴 어때. 원래 역사란 것은 승자가 쓰는 법이지. 전쟁에서 이긴 포커드가 그리 말하니, 자작 자네는 그리 믿어야 해.”
디바일 자작은 후작의 그런 표정을 보며 경멸감을 감추지 못했다.
후작이 그를 흘겨보자 자작은 곧 표정을 지우고 다시 설득했다.
“후작님께서 친히 보낸 혼서를 거절하기까지 하지 않았습니까.”
“그건 꽤 괘씸한 일이긴 했지. 확실히 이 단데리온의 심기에 벗어나는 일이야.”
단데리온 후작은 마치 죽은 생선의 비늘 같은 마른 손가락으로 자신의 입술을 만지작거렸다.
“하지만 이유가 있었지 않나, 그 고고하신 카이린 여왕의 애인이라니.”
단데리온 후작의 말에 무리의 귀족들이 표정을 굳혔다.
그들이 이렇게 알고 있는 것은 왕궁 마부에게 금화 한 닢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마차를 타고 카이린과 루이드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캐물었다.
마부는 순순히 불었다.
필요 없다고 생각한 부분은 완전히 날려 먹고, 단데리온 후작이 듣고 싶을 만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사실 루이드는 달콤하고 허황된 말로 카이린 세반을 현혹하고 있다고.
그들은 평범한 사이가 아닌 것 같다고.
감히 궁 안에서 깊은 애정 행각까지 벌인다고. 자신이 똑똑히 목격했노라 고했다.
“가까이서 보니 카이린 전하가 왜 그렇게까지 싸고도는 줄 잘 알겠더만. 크크큭.”
음흉하기 그지없는 얼굴이었다.
“그것도 문제입니다. 정말 전하와 그런 관계라면, 국혼이라도 맺게 되면 큰일 아닙니까?”
자작은 애가 타는 듯 호소했다.
“이미 우리에게 반기를 든 포커드 가문이 너무나 강력해지는 것이 아니냐 이 말입니다.”
“하, 그렇기야 하겠는가.”
반면에 단데리온 후작은 여유로웠다.
“그 덜떨어진……. 아니, 우리 존엄하신 여왕께서 그럴 리가 있겠나. 아무리 강력한 귀족들이 줄을 서도, 왕좌가 흔들거려도 결코 손익을 따지는 결혼을 하지 않겠다던 분 아니신가.”
후작은 가래가 잔뜩 낀 목을 쿨럭거리며 웃어댔다.
“그러니까 만약 루이드 포커드가 전하의 조건에 맞는 자라면…….”
“크하하하! 그거 정말 웃기는 일이로군. 웃기는 일이야!”
폭소하던 후작은 웃음기를 지우지 못한 채로 입을 열었다.
메마른 입술에서는 침이 줄줄 흘러나오고 있었다.
“루이드 포커드 백작이 순순히 협조한다면 정말로 혼인하는 일이 오히려 도움이 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자빠뜨려야지.”
“예? 그게 무슨…….”
자작이 의심스러운 눈으로 묻자 후작은 별것 아니라는 듯 심드렁하게 말했다.
“어두운 밤, 백작의 방에 내 딸 중 하나를 집어넣으면 그만이지. 크크큭. 큰 소문이 한바탕 일어나면 여왕의 짝은 될 수 없을 터.”
그의 눈이 뱀처럼 빛났다.
축축하고, 음침한 눈이었다.
‘그런……. 본인의 딸을…….’
자작은 경악했다.
그는 후작이 소를 팔아치우듯 딸들을 이용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런 짓에까지 동원한다는 것은 몰랐다.
자작의 생각에도 너무나 천박한 짓거리였다.
“그까짓 계집애들, 어차피 그러려고 낳은 것들 아닌가. 그런 일에조차 못 쓰면 무슨 쓸모가 있어.”
디바일 자작의 얼굴에 짙은 혐오감이 어린 것을 보며 후작은 중얼거렸다.
하지만 자작은 더는 후작을 비난할 수 없었다.
그랬다가는 정말 큰일이 나는 것은 자신일 테니.
“자네도 그를 너무 미워하지 말게.”
“…….”
“포커드와 단데리온이 힘을 합하게 된다면, 지금 내뱉은 말들이 그대에게 가시가 되어 돌아가지 않겠나.”
냉기가 뚝뚝 흐르는 말이 디바일 자작의 귀를 파고들었다.
마치 뱀이 기어들어 오는 것 같아, 자작은 어깨를 떨었다.
‘질투하기는.’
단데리온 후작은 디바일 자작을 보며 혀를 찼다.
하지만 후작 역시 자신의 마음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 발칙한 젊은 귀족이 여왕의 마음을 사로잡다니.
꽤 거슬리는 일이었다.
그 때문에 자신이 보낸 혼서가 거절당하다니.
왜 그렇게 조그만 가문이 까부는 것일까 생각했더니, 단단히 믿을 구석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후작은 무척이나 기분이 나빠졌다.
감히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그런 짓거리를 하다니.
게다가 허울뿐인 세반 가문에게 밀리다니.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이었다.
어떻게든 루이드 포커드를 곤경에 빠트리고, 괴롭게 만들 생각이었다.
헌데 루이드 포커드를 마주한 순간, 어쩐지 너그러운 마음이 든 것이다.
묘한 그의 기운이 순식간에 단데리온 후작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전보다 훨씬 더 포섭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기왕이면 평화적으로.
하여 이전에 생각해 둔 더 강압적인 대화는 시작하지도 않은 것이다.
‘카이린 세반이 애지중지 다루는 이유를 알 것 같군. 상당히 매력적인 청년이야.’
단데리온 후작이 입맛을 다셨다.
* * *
“엣취.”
루이드의 숙소.
오후의 작은 티파티가 열린 참에 테이블에 앉아 있던 루이드가 코를 훌쩍였다.
“응? 감기에 걸렸느냐?”
맞은 편에 앉아 차를 마시던 엘빈이 동그랗게 뜬 눈으로 루이드를 보았다.
“루이드가 감기에 걸렸다고?! 말도 안 돼!”
아르헬은 만지작거리던 문스톤 목걸이를 확 놓고 루이드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열은 없는데?”
“감기가 아냐.”
“그럼 뭔데?”
루이드는 귀를 후벼댔다.
“누가 내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
“루이드. 그렇게 귀를 후비다니, 티테이블 예절이 형편없구나.”
엘빈이 웃으며 얼굴을 찡그렸다.
“하하하, 죄송합니다. 형님. 사실 예절 시간에는 좀 졸았거든요.”
“아버지께서 너를 자유분방하게 키우신 건 알고 있다만.”
“전 그저 한량으로 살면서 가문의 재산만 축낼 생각이었단 말입니다.”
루이드의 말에 엘빈이 황당하다는 얼굴을 했다.
“그래 놓고서는 백작위를 받았구나.”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말이에요.”
“형님이 물려받을 남작위 보다도 높은 작위를 받았으니, 네가 책임져야 할 일이 많을 거다.”
“……일 이야기가 나온 김에 실례되는 말일지 모르겠지만, 형님께선 가문의 영지로 돌아오실 생각이 없으십니까?”
“넌 정말이지, 말하는데 거침이 없구나.”
엘빈의 표정이 조금 슬퍼졌다.
“형님 기분을 상하게 했다면 죄송합니다. 하지만 지금 영지에는 일손이 아주 부족합니다.”
“너와 형님으로 족하지 않으냐.”
“그럴 리가요. 이전에 기억하고 계신 모습과는 다릅니다. 포커드의 땅은 형님이 계실 때보다 열 배는 더 넓어진걸요.”
엘빈은 고심하는 듯했으나 고개를 저었다.
“내가 이곳에서 하는 일이 있다. 다른 이들이 생각하기에는 하찮을 수 있겠으나, 내게는 중한 일이야.”
“형님! 절대로 형님의 일이 하찮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저는 형님께 도움을 청하고 있는 거라고요.”
루이드가 다급하게 덧붙이자 엘빈은 그제야 풀어진 얼굴을 했다.
“그리 말해주니 고맙구나.”
“정말이라니까요.”
루이드는 엘빈의 표정을 살폈다.
‘은근히 여리단 말이야.’
엘빈은 찻잔을 내려놓고 창문 밖을 보았다.
“곧 밀라비아의 사절이 올 거다.”
“사흘쯤 더 걸린다고 그러셨던가요.”
“그래. 전하께서 회의에 네가 참석하기를 원하시니 그때까지 머물도록 해라.”
“들었습니다. 한데, 제가 할 게 뭐가 있습니까?”
“네 기술이니 당연한 일이지. 좀 더 자긍심을 가지도록 해.”
“사흘 동안 왕궁 구경이나 실컷 해야겠네요.”
“바삐 둘러보아도 다 둘러보지 못할걸? 왕실 도서관이라면 네가 좋아할 책들도 많을 거다.”
“오! 그거 좋네요.”
루이드의 눈이 빛났다.
왕궁의 도서관!
루이드가 구하지 못한 귀한 책이 잔뜩 있을 터였다.
“사절들이 길게 머무르지 않는다고 하니, 그날 회의가 끝나면 킬베리움으로 돌아가면 될 것이다.”
“못가요.”
루이드가 찻잔의 차를 후후 불며 말했다.
“응?”
“일정이 끝난 후에 톰멀 후작령에 가야 하거든요.”
“톰멀?”
“네, 초대받았습니다.”
엘빈의 얼굴에 이채가 돌았다.
“……톰멀 후작가에 초대를 받았다라.”
“왜요? 뭔가 있습니까?”
“음? 아니, 아니다. 나는 이만 정무를 보러 일어나야겠군.”
엘빈이 찻잔을 밀어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앗, 벌써 가십니까?”
“너는 푹 쉬고 있거라. 밀라비아의 사절이 오면 바빠질 테니.”
엘빈은 빙긋이 웃고는 겉옷을 챙겨 입고 루이드의 방을 나섰다.
문이 닫히고 루이드가 손가락으로 자신의 턱을 두드렸다.
“아르헬.”
“응?”
“너는 엘빈 형님이 어떤 것 같아?”
“오라버니?”
아르헬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뭔가 꺼림칙한 게 있는 것 같은데…….”
“오라버니는 대박 멋있어. 신기한 마법도 부리ㄱ……! 헐.”
아르헬이 다급하게 입을 틀어막았다.
“응? 형님이 마법을 부린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