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ron' Son has Paranormal Abilities RAW novel - Chapter (80)
남작 아들은 초상능력자-80화(80/252)
제80화
제5편 밀라비아의 그림자(1)
문이 열리고 네 명의 사절이 안으로 들어왔다.
“어서들 오시오.”
카이린 세반이 밝은 얼굴로 사절을 맞이했다.
“저희의 청을 수락하여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들은 안내를 받아 테이블의 가장 끝에 앉았다.
“먼 길 오느라 고생이 많았소.”
“아닙니다. 이그라 왕국까지 오는 길은 험난했으나, 이곳에 발을 들이고 나니 어려운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꼬부랑 수염을 가진 사절이 밝은 얼굴로 말했다.
“맞습니다. 영지 어느 곳에서든 쉽게 물을 구할 수 있더군요. 놀라운 일입니다.”
그 옆에 앉은 대머리 사절도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거 고마운 말이군. 확실히 이그라 왕국은 수로 사업을 통해서 물이 부족한 지역에도 수월하게 물을 공급하고 있지.”
카이린은 자랑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지금 대륙의 어떤 나라도 이보다 안정적으로 물을 공급하는 곳이 없습니다.”
대머리 사절이 격정적으로 말했다.
“그 귀중한 기술을 나눠주신다니, 밀라비아는 이그라의 현명하신 국왕께 찬사를 보낼 뿐입니다.”
사절들이 손을 모아 고개를 푹 숙이고 인사했다.
“흠, 흠.”
고위 귀족들은 헛기침하며 카이린의 눈치를 슬쩍 보았다.
“수로 사업에 관한 기술은 무척이나 귀한 것입니다.”
제일 먼저 입을 연 건 재무 장관인 글루 비아노 백작이었다.
“물론입니다. 대륙 전체가 가뭄으로 신음하고 있는 이때, 사람들의 목숨을 구할 기술이 아닙니까.”
“흐음. 그렇습니다. 수많은 사람을 구할 아주 귀한 기술이지요.”
비아노 백작이 눈썹을 으쓱였다.
“본디 이그라와 밀라비아는 이웃하고 있는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교류가 크지 않았소.”
카이린은 사절을 향해 말했다.
“이렇게 우리에게 먼저 연락을 취해온 것도 처음이지. 이번 기회를 통해 양국이 친분을 다지고 교류가 활발히 일어나기를 바라오.”
“물론입니다.”
꼬부랑 수염 사절이 깊은 인사를 했다.
사실 밀라비아의 사절은 단순히 수로의 기술만 얻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 아니었다.
이미 다른 국가에서도 스파이를 보내 수로의 기술을 빼내고 있었다.
여러 국가가 그런 선택을 하는 데에는 다양한 이유가 존재했다.
대륙에서 이그라는 소국.
자존심에 의한 것도 있었고, 국가 간의 관계 때문도 있었다.
밀라비아는 이그라에 비해 훨씬 강력한 국력을 가진 나라였다.
그간 밀라비아와 이그라 간의 교류가 많지 않았던 것은 순전히 밀라비아 측에서 탐탁지 않아 했기 때문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밀라비아에 비해 이그라는 너무 못사는 나라였기 때문.
때문에, 이 회담은 큰 의미가 있었다.
‘폭력이 난무하는 시대에 힘을 앞세워 기술을 내놓으라 엄포를 놓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루이드는 밀라비아의 사절들을 둘러보았다.
거드름을 피우지도, 압도하려고 하지도, 이그라를 깔보지도 않는 자세.
‘밀라비아쯤이나 되는 국가가 이그라를 대우해 주기로 한 것이야.’
아버지인 제이스에 비해 애국의 마음이 옅은 루이드였지만,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밀라비아는 다른 국가와 같이 기술을 훔치는 비겁한 수를 사용하지 않았다.
미래를 내다보며 이그라 왕국과의 교역을 선택한 것이다.
‘현명한 선택이다. 이그라에서 얻어갈 수 있는 것은 수로 기술뿐만이 아니니까. 내가 있는 이상, 이그라는 훨씬 더 강대하고 훨씬 더 높이 날아오를 테니까.’
어쨌든, 밀라비아의 선택과 태도가 마음에 드는 루이드였다.
입으로만 귀족의 명예를 찾으면서 정작 행동은 길거리 왈패들과 다르지 않은 국가들에 비해 인정해 줄 만한 일이기도 했다.
“아아, 그리고 소개가 늦었습니다.”
카이린이 가만히 앉아 눈을 굴리고 있던 루이드를 보았다.
“루이드 D 포커드 백작입니다. 수로의 기술을 개발한 천재죠.”
“천재…… 흠흠, 천재 맞습니다.”
루이드는 겸손을 떨려다가 말았다.
이렇게 국가 간의 대면 자리에서 기선제압을 할 필요가 있었다.
사절들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허오, 소문을 들었습니다! 이그라 왕국에 포커드의 성을 가진 대단하신 분이 계신다고요.”
“포커드의 영지는 꿀과 기름이 끊이지 않고 흐른다지요? 이런 가뭄 속에서도 푸른 들판에서 꽃이 피어난다고 들었습니다.”
‘응? 아니, 그건 오바인데.’
“히야, 세월의 풍파를 겪으며 지혜를 쌓은 현자의 모습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혈기왕성한 모습이십니다.”
‘혈기왕성…….’
사절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루이드를 관찰했다.
“실례를 범해 죄송합니다. 하지만 정말로 신기한 일이라…….”
“이번 가뭄은 밀라비아의 왕실 점술가도 점지해 내지 못한 재앙입니다.”
“저는 점쟁이가 아닙니다. 그저 영지를 발전시키고 싶었을 뿐인데, 그 시기가 겹친 것이지요.”
루이드의 부드러운 말에 사절들을 더욱 놀라워했다.
“미래를 예견한 것도 아닌데, 그런 기술을 개발해 내다니. 그것은 더욱 대단한 일입니다.”
“맞습니다. 필요가 없는 상황을 개선하기는 어렵지요.”
루이드는 사절들의 말에 웃는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헛웃음을 쳤다.
‘아니, 너네야 불편하지 않았겠지. 원래부터 이런 세상에서 살아왔으니까. 하지만 난 엄청 불편했거든. 참고 사느라 얼마나 힘들었다고!’
하지만 말해봤자 그들은 이해할 수 없을 터였다.
루이드처럼 문명이 발전한 21세기의 지구에서 살아본 사람들이 아니니까.
“대단하신 분을 직접 뵙게 되니 영광입니다.”
“그럼 포커드 백작님께서 직접 저희에게 기술을 알려주시는 겁니까?”
사절들의 눈이 초롱초롱하게 빛났다.
“포커드 백작은 너무 바빠서 직접 가르치기는 어렵소. 대신 숙련된 이그라의 기술자들을 통해 기술을 전수하지.”
카이린의 말에 사절들은 아쉬워하면서도 밝은 얼굴이 되었다.
카이린은 침착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밀라비아의 기술자들을 이곳 이그라에서 가르친 후, 이그라의 기술자들을 밀라비아로 파견 보내겠소. 그곳에서 제대로 공사가 되는지를 확인할 것이오.”
“오오오!”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이그라의 배려에 탄복합니다.”
기술을 전수해주는 것도 엄청난 일인데, 기술자를 직접 보내주는 것은 엄청난 일이었다.
이곳의 어떤 국가에서도 그런 배려를 해 주는 곳이 없었다.
갑들은 처절하게 갑인 것이 이곳의 법이었다.
“그리고 이 이그라에서 사용하는 수의 표기법도 확실히 전수받고 싶습니다.”
“그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 표기법 역시, 이곳에 있는 포커드 백작이 만든 것이지요.”
“오오오, 정말이지. 천재시군요!”
하지만 이런 파격적인 배려 역시 이그라에서도 이번 밀라비아와의 거래를 통해 얻을 것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그라보다 강한 밀라비아와의 친교 자체도 이득이었다.
하지만 그 외에도 밀라비아에서는 특별한 물건을 얻을 수 있었다.
‘그래, 이대로라면 밀라비아와의 교역에서 밀라비아의 꿀을 거래할 수 있겠군. 그게 그렇게 귀하다던데.’
루이드 역시 눈을 빛냈다.
밀라비아에는 ‘로벤’이라는 식물의 군락지가 있었다.
기후가 그리 다른 것도 아닌데, 특별히 밀라비아의 일부 지역에서만 발견되는 희귀한 식물이었다.
이 식물의 꿀은 마법사가 만드는 엘릭서와도 비슷한 효과가 있었다.
밀라비아가 강국이 될 수 있었던 것도 다 이 로벤에서 얻은 꿀 덕분.
심지어 로벤에서 꿀을 얻는 방법이 무척 독특했다.
기술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함부로 채취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 꿀은 밀라비아 왕국에서 특별 관리를 했다.
왕국의 통제를 받는 장인들만이 꿀을 채취하고 가공할 수 있었던 것.
밀라비아 왕국이 크라우스 제국의 침략을 받지 않은 것이 다 이 ‘밀라비아의 꿀’ 덕분이라는 말이 돌 정도였다.
게다가 수출 또한 아주 엄격하게 관리해왔다.
밀라비아와 친분이 없고 소국인 이그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물건이었다.
이그라는 목표가 있었다.
이 기회에 밀라비아와의 교역을 트고, 밀라비아의 꿀을 거래하려는.
화기애애해진 분위기 속에서 사절과 고위 귀족들 사이에서 이런저런 말이 오갔다.
협정을 맺거나 무역에 관한 이야기였다.
‘지루하군.’
루이드는 뉴스를 보는 것처럼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물론 자연스럽게 이런저런 사업 구상이 되었다.
그러나 루이드는 되뇌었다.
‘인제 그만, 일은 그만. 적당히. 적당히. 이만하면 됐으니까. 내가 이 정도 했으니까, 나머지는 전하께서 다 알아서 해야지.’
하는 사업의 영역을 확장하지 않으려는 이유도 있었다.
루이드의 능력이 벌써 레벨 6.
‘그러고 보니 레벨이 오르고 나서 새로 얻은 기술도 있었는데 말이야. 한 번도 제대로 써 보질 못했잖아.’
유리와 고무를 개발하는 사업에 몰두한 탓이었다.
할 일이 너무 많아, 한 가지에 집중할 수 없는 것도 문제였다.
효율을 위해서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것.
‘지금도 일이 많은데 더는 안 돼. 흠, 그러고 보니 로빈 톰멀과 붙을 때 이 기술을 써 볼까. 아냐. 이 기술을 쓸 만큼의 전투는 하지 않겠지. 뭐, 그래도 이건 패시브 스킬과 비슷하니까…….’
루이드는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카이린 세반은 루이드를 완전히 오해하고 있었다.
‘타국의 사절을 만나는 자리가 어색하고 어려울 터인데, 진지한 태도로 임하고 있군.’
카이린의 반짝이는 눈이 심각한 얼굴의 루이드를 담았다.
‘역시 루이드 포커드. 내가 참으로 귀한 인재를 얻었다. 언젠가는 그를 재상의 자리에 앉힐 수 있을까.’
그런 카이린의 생각을 알 길이 없는 루이드는 새 스킬에 대한 생각에 잠겨 들었다.
* * *
“잠시 대화할 수 있겠습니까?”
대머리 사절이 루이드를 불러 세웠다.
이그라 왕실과 밀라비아 사절의 대담이 순조롭게 끝난 직후였다.
“안녕하십니까, 루빈 백작님. 밀라비아 사절단은 곧바로 돌아간다고 들은 것 같은데요.”
“예, 다른 이들은 이미 떠날 채비를 하고 있습니다. 오늘 중으로 모두 이곳을 떠날 겁니다. 사실 밀라비아가 지금 외국에 오래 있을 상황이 안 되어서…….”
루빈 백작은 민망한 듯 두 손을 가만히 두지 못하고 비벼댔다.
“……?”
확실히 이상한 일이기는 했다.
외국의 사절이 방문해서 이렇게 빨리 돌아가는 경우는 없었으니까.
대체로 몇 주간 머물며 환대를 받았다.
온갖 진수성찬을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다가 돌아가는 것이 일반적.
“여하튼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워낙에 바쁘신 분이라 들었는데, 귀찮게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포커드 백작님과 꼭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열정만 많은 젊은 사업가에게 관심을 두시니 감사할 따름이군요.”
루이드는 부드럽게 대답했다.
사실 불러세우는 목소리를 들었을 때는 귀찮음이 밀려왔다.
하지만 루빈 백작의 반짝이는 머리를 보니 그런 마음이 사라졌다.
‘대머리에게는 친절하게 대해야지. 결코 그들은 소문과 선입견과 같은 사람들이 아니라고.’
대머리는 사기꾼에 악당 같은 비열한 사람이라는 클리셰.
루이드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하하, 열정만 많다뇨. 사실 밀라비아에까지 백작님의 소문이 쫙 퍼져 있답니다.”
“정말입니까?”
루이드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세계엔 교통과 통신의 문제가 심각했다.
포커드에서 일어난 일을 왕도에 있는 사람이 알기까지도 몇 개월이나 걸렸다.
그나마 마법사들의 통신 마법 덕분에 긴급한 연락들은 비싼 값을 치루고 빨리 전해질 수 있었다.
그러니 이웃하고 있다고는 하나, 거리가 만만찮게 먼 밀라비아에 소문이 쫙 퍼졌다는 사실이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예. 물론 그때는 백작님께서 작위를 받기 이전의 일이라, 아까 소개를 받을 때 놀라긴 했습니다.”
“아아, 그렇군요.”
“하하, 사실. 이렇게 유능하신 분이 작위를 받는 것은 시간문제인 일이었지요.”
“감사합니다. 저도 무척이나 자랑스럽고 뿌듯하게 생각합니다.”
“작위를 받지 않으셨다면, 밀라비아에서 백작님을 섭외하기 위해 갖은 수를 다 썼을 겁니다.”
루빈 백작은 아쉬움이 잔뜩 묻어나는 얼굴로 작게 중얼거렸다.
“아아! 물론! 여러 국가에 작위를 겸임할 수 있다는 사실은 알고 계시겠지요?!”
그는 희망찬 얼굴로 외쳤다.
‘뭐야, 나보고 밀라비아에서 작위를 받으라고?’
루빈 백작의 말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건 루이드가 밀라비아 혈통을 가지고 있을 때의 일이었다.
아니면 밀라비아에 엄청난 공을 세운 경우.
그것마저 아니라면 밀라비아의 사람과 혼인을 해, 국적을 공유하게 되는 경우.
“포커드 백작님처럼 학식이 뛰어나고 영리하면서도, 무예 실력 또한 대단하신 분이 밀라비아를 지켜주실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런지…….”
“밀라비아가 이미 얼마나 강력한 국가인지 잘 알고 있는걸요.”
“하하. 하지만, 그게……. 사실 어쩌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고……. 그러니까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습니까?”
“네?”
루이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에……. 그러니까, 포커드 백작님께서 밀라비아와 함께 해 주신다면 밀라비아가 더 강해지고 완벽해질 수 있을 거라 뭐, 그런 말이지요. 워낙에 밀라비아에서도 패권 싸움이 잦고…….”
루빈 백작은 계속해서 주절주절 말을 늘어놓았다.
‘엥? 뭐 저런 말을 해?’
딱히 구미도 당기지 않고, 영양가 없는 말이었다.
말하자면 밀라비아의 흠이 드러나는 듯한 말.
“아하하, 대단히 고마운 말씀입니다. 하지만 오해하지 말고 들으시길 바랍니다. 저는 지금 제가 맡은 영지의 일이 너무 바빠서…….”
“아아! 지금 당장 급하게 생각하실 필요 없습니다! 밀라비아에서도 백작님께 부담을 드릴 생각은 없고요. 다만, 그 정도로 밀라비아가 백작님께 우호적이니 생각을 한번 해보시란…….”
루이드는 루빈 백작의 말을 어떻게 확실하게 거절할지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
콰아앙!!
멀지 않은 곳에서 폭발음이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