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ron' Son has Paranormal Abilities RAW novel - Chapter (85)
남작 아들은 초상능력자-85화(85/252)
제85화
제10편 클레벤의 사정(1)
“루이드, 포커드.”
차가운 목소리가 루이드의 이름을 음미하듯 되씹었다.
“신경 쓰지 않아도 될 듯하다.”
“어째서지? 보고 받은 내용으로는, 그와 비슷한 능력을 가진 혈계 능력자라고 하던데.”
굵은 목소리는 화가 난 것 같기도 하고, 불안한 것 같기도 했다.
“후후후, 겁나나.”
나른한 목소리가 비웃듯이 말했다.
“너희 모두 겁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모두 존속의 위협에서 안전하지 못할 테니까.”
“아아, 넌 너무 진지해서 문제라니까. 그렇게 살면 사는 것이 재미나 있을까.”
“삶을 잃는다면 네가 말하는 그 재미도 즐길 수 없어!”
“조용, 조용. 내가 아무런 근거 없이 그런 이야기를 하겠는가? 그는 그와 비슷한 능력을 가졌을 뿐이다. 비.슷.한.”
잠깐의 침묵이 맴돌았다.
“그렇다면 완전히 같지는 않다는 거군.”
“두려워할 필요조차 없다. 그는 우리의 털끝조차 건드리지 못한다. 내가 직접 보았다. 놈은 우리를 컨트롤 할 수 없어.”
“‘그 물질’로 된 물건을 제어할 수 없던가?”
“바로 맞췄다.”
오오오.
공간을 둘러싼 수많은 목소리가 환호하며 감탄했다.
“대단해. 역시 대단해. 그걸 만들어낸 건 정말 잘한 일이야.”
“우리가 한 일 중에 그것만큼 잘한 일이 없지.”
“덕분에 그도 붙들어 둘 수 있었고.”
“후후후, 이 세계가 우리 발밑에 엎드릴 날이 머지않았다.”
“오래도 걸렸지.”
“모두, 우리의 태양이 떠오르기를 기다려라. 때가 도래했다. 각자의 자리에서, 그날을 위해 준비하라.”
차가운 목소리가 외치자 공간이 싸늘하게 울렸다.
사삭, 사사삭.
망토가 끌리는 소리가 공간을 가득 채우더니 이내 사라졌다.
“다시 만나자, 루이드 포커드.”
훅.
바람과 함께 촛불이 모두 꺼졌다.
* * *
“아르헬, 인제 그만 넣자.”
“웅? 벌써? 하지만…….”
“그렇게 뚫어지게 봐도 너도 모르는 건 마찬가지 아냐?”
루이드의 말에 아르헬은 볼에 바람을 잔뜩 불어 넣었다.
루이드는 아르헬이 들고 있던 괴한의 물체, 그러니까 정확히는 검의 날을 받아냈다.
성분을 전혀 짐작할 수 없는 검.
외관으로 보기에는 일반 검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는 검.
이그라의 국왕 카이린 세반을 공격했던 검.
“아이, 참. 왠지 조금만 더 보면 알 수 있을 것 같단 말이야!”
“정말?”
루이드의 물음에 아르헬은 괜히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사건이 있고 곧바로 아르헬을 통해 검을 조사했었다.
아르헬은 검에 마법적인 장치나 주술 같은 건 전혀 없다고 했다.
그 뒤로도 간간이 아르헬에게 검날을 조사하게 했다.
신비 드래곤이자 오리할콘을 주식으로 삼는 아르헬이 검의 물질을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
하지만 아르헬 역시 검을 이루는 물질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클레벤이 코앞이었다.
톰멀 후작령에 들어선 것은 이미 한참 된 일, 성도를 앞두고 안내자가 올지도 몰랐다.
루이드가 검을 챙겨 넣었다.
예상대로 저 멀리 톰멀 후작의 사병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뿌우우.
나팔이 울리고 클레벤의 병사들이 루이드 앞에 섰다.
기사로 보이는 하나가 마차 곁으로 다가왔다.
“안녕하십니까, 포커드 백작님. 먼 길 오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저희는 톰멀 가문의 스피란서스 기사단입니다. 지금부터 백작님의 호위를 맡겠습니다.”
“고맙군.”
루이드의 마차가 그들의 안내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루이드는 슬쩍 마차 창밖을 내다보았다.
이곳까지 오는 내내 검신에 대한 연구를 하느라 진이 빠져 있었다.
그래서 이제야 아르헬과 루이드는 영지의 풍경을 구경할 수 있었다.
‘그래봤자 이곳도 흙길이군.’
얼었다가 녹은 질척한 길이 성까지 쭉 이어져 있었다.
“봐, 루이드! 수로가 잘 되어 있네.”
아르헬이 창문 밖을 가리켰다.
곳곳에 평범하게 농사를 지은 흔적들이 보였다.
이전에 루이드가 카이린 세반을 이용해 배포한 수로 형식들이 공사되어 있었다.
“좋네. 계획대로 잘 이루어지고 있어.”
덕분에 이곳도 가뭄의 고통에서 조금이나마 해방되어 보였다.
밀라비아 사절에 의하면 다른 국가에서는 농사를 거의 짓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심각한 식량난이 예고되어 있다고.
‘가뭄 덕분에 우리 이그라는 훨씬 더 부강해지겠지.’
이그라 전역에서는 넉넉히 추수할 수 있을 터.
곡식을 수출하여 국력을 키우는 것이다.
루이드의 생각을 읽은 듯 아르헬이 배시시 웃었다.
“루이드 덕분이야. 포커드의 영지뿐만이 아니라, 이그라는 오히려 가뭄 덕분에 더 강력해질 거니까!”
“맞아. 위기는 곧 기회거든. 위기를 잘 읽는 자들이 돈을 벌지. 아참, 그러고 보니 잠시 잊고 있었어. 너 그 축복…….”
루이드가 말을 마치기 전에 덜컹하며 마차가 크게 흔들렸다.
“성문을 열어라!”
밖에서 기사의 외침이 들려왔다.
어느덧 클레벤 성에 도착한 것이다.
‘어우씨, 하마터면 혀 씹을 뻔했네.’
기이이이익.
성문이 열리고 마차가 도시로 들어섰다.
높은 목조 건물과 뾰족한 지붕들, 오래되고 우아한 도시였다.
게다가 과연 후작 가문의 성도.
왕도와 크게 다를 바 없다고 느낄 만큼 거리는 넓고 사람은 많았다.
시가지 곳곳에 마법사들이며, 여행자들, 용병, 기사들이 가득했다.
상점 또한 여러 가지가 가득했다.
심지어는 커다란 마법사 상점도 몇이나 보였다.
“멋지구나, 그야말로 판타지 세상이네.”
루이드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뭐라고? 판타지?”
아르헬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 아, 아니야. 거리가 멋지다고.”
“루이드는 가끔 이상한 말을 한단 말야? 아샤라가 그랬어!”
“엣헴.”
루이드가 딴청을 피우자 아르헬이 창밖을 힐끔댔다.
“정말 멋진 도시다, 루이드! 왕도랑은 또 다른 매력이 있는 것 같아! 하지만 루이드가 손본 포커드 남작령이 더 멋져!”
아르헬이 눈을 부릅뜨며 강조했다.
“고마워, 아르헬.”
루이드는 아르헬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이내 아르헬은 창밖으로 펼쳐지는 후작령의 풍경에 마음을 뺏긴 것 같았다.
“루이드! 성이야!”
드디어 가까워진 클레벤의 성은 위용이 넘쳤다.
“마치 드래곤처럼 보여.”
아르헬은 용의 비늘처럼 쌓은 검은 돌 성을 보며 감탄했다. 루이드 역시 그 품격에 감동했다.
클레벤 성의 마당에는 붉은 꽃으로 가득했다.
‘동백인가?’
검은 성과 붉은 꽃.
그 광경이 자아내는 분위기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무엇인가가 있었다.
“도착했습니다.”
기사가 마차 바깥에서 외쳤다.
루이드와 아르헬이 마차에서 내릴 때쯤, 멀리서 인기척이 들렸다.
“드디어 도착하셨군요, 백작님.”
로빈 톰멀이었다.
“클레벤에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톰멀 경.”
“감사합니다, 경.”
루이드의 인사를 똑같이 따라 하며 아르헬이 무릎을 굽혔다 폈다.
“환영합니다, 꼬마 영애님.”
톰멀이 방긋 웃어 보이자 아르헬은 눈썹을 씰룩였다.
‘꼬마’라는 말이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었다.
로빈 톰멀은 그런 아르헬의 표정을 눈치채지 못하고 루이드에게 시선을 돌렸다.
“괜찮으십니까? 제가 떠난 뒤 왕궁에서 변이 있었다면서요. 이곳에 도착해서야 소식을 들었습니다. 난리가 났더군요.”
그는 심히 걱정되는 얼굴로 물었다.
“다행입니다. 그나마 제 즉위식과 사절의 방문이 여유가 있어서 말이에요. 그러지 않았다면, 더 많은 사상자가 났을 겁니다. 그리고 전하께서 무사하시니, 무엇보다 안심이지요.”
루이드는 씁쓸한 얼굴로 말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그는 분노한 것 같았다.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지요.”
“심란하셨겠습니다. 일단 날이 추우니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로빈은 두 사람을 이끌어 주탑으로 안내했다.
“아름다운 성입니다.”
“하하, 꽤 오래된 곳이지요. 일단, 후작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루이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톰멀 후작은 처음 보는데.’
조금 긴장이 되었다.
톰멀 가문은 대대로 이그라의 기둥이었다. 그러면서도 왕실과는 우호적이지 않았다.
‘꼬장꼬장한 늙은이라고 알고 있는데 말이야.’
그으으으.
검고 무거운 대문이 열리고 클레벤 성의 알현실이 나왔다.
“환영하오, 포커드 백작.”
로빈을 따라 알현실에 들어서자마자 낮고 서늘한 목소리가 루이드를 맞이했다.
영주의 자리에 앉아 있는 노인.
희게 바랜 백발에 비해 정정한 기세의 톰멀 후작이 있었다.
그리고 그의 옆으로 세 사람의 건장한 남성들이 서 있었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감사합니다!”
아르헬이 무릎을 굽히며 인사하자 무표정했던 톰멀 후작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작은 영애께서는 여행길이 힘들지 않으셨나.”
“고단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오나, 클레벤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여독이 훌훌 풀렸답니다!”
아르헬의 애교 넘치는 목소리에 후작과 곁에 선 남성들 모두 흐뭇한 웃음을 터트렸다.
‘아니, 점점 더 말을 잘하네. 우리 아르헬?!’
루이드 역시 미소를 감출 수 없었다.
후작이 손을 들었다.
“이들은 내 아들들이오. 첫째 데릭, 둘째 제리온, 셋째 카멜이오.”
“반갑습니다, 포커드 백작.”
“백작위 수여식에 참석하지 못해 미안합니다.”
“아버지께서 몸이 편찮으신 탓에 형제 모두 성을 떠나기 곤란했습니다.”
톰멀의 아들들이 루이드에게 인사했다.
“아닙니다. 축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게다가 그날엔 로빈 톰멀 경께서 톰멀을 대표해 친히 축하해주셨으니까요.”
그들은 루이드보다 훨씬 나이가 많았다.
첫째 아들은 40대를 훌쩍 넘긴 나이로 보였다.
‘호오, 다들 체격이 좋고 건강해 보이네. 역시 후작가의 아들들이란 말인가.’
루이드가 듣기로는 후작의 아들들 모두 검술 실력이 뛰어나고, 머리도 좋아 후작령과 왕궁에서 두루 역량을 펼치고 있었다.
“왕궁의 소식을 들었소. 어찌 된 일인지 자세히 알려줄 수 있겠소?”
페릭 톰멀 후작이 물었다.
“괴한의 습격이 있었습니다.”
루이드는 왕궁에서 일어났던 이야기를 소상히 말했다.
톰멀 후작 가문이 세반 가문과 사이가 좋지 않다고 해서 굳이 숨길만 한 내용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루이드 입장에서는 하나라도 더 정보를 얻어줄 수 있는 창구가 필요했다.
“거참, 정말 세상이 어떻게 되려는 것인지.”
루이드의 이야기를 모두 들은 페릭 톰멀 후작이 혀를 찼다.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군.”
그의 아들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두다니. 왕실 경비대의 위상이 많이 떨어졌겠습니다.”
셋째 아들인 카멜 톰멀이 비아냥댔다. 그러자 둘째인 제리온이 그에게 눈치를 주었다.
“어찌 되었든 간에 이미 일어난 일이니 어쩌겠소. 범인들을 찾아 죄를 묻는 것이 최우선이지.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방비하는 것도 중요하고.”
톰멀 후작이 까슬까슬한 자신의 수염을 쓸어내렸다.
주름이 자글자글한 눈에는 근심이 가득해 보였다.
‘흠, 적어도 단데리온 후작 같은 성정은 아니군. 혹시나 카이린 세반이 당한 일을 갖고 고소해하거나 하면 어쩌나 했는데.’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으로는 속내를 다 알 수 없기는 했지만 말이었다.
“그러고 보니 후작님께서는 괜찮으십니까?”
루이드의 말에 후작의 눈빛이 너그러워졌다.
“걱정할 만한 것은 아니외다. 늙으면 여기저기가 아픈 법이지.”
후작은 자신의 무릎을 매만지더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찌 되었든, 이곳에서 머무는 동안 편히 잘 지내다가 돌아가면 좋겠군.”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루이드가 인사를 하자, 후작의 세 아들도 루이드에게 인사했다.
로빈 톰멀이 바짝 옆으로 붙었다.
“방으로 안내하겠습니다.”
그를 따라 밖으로 나온 루이드가 두 손을 마주쳤다.
“아, 짐이야 어차피 시종들이 풀 테니까요. 꼭 들르고 싶은 곳이 있는데요.”
“들르고 싶은 곳이요?”
로빈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루이드가 씩 웃으면서 아르헬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