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ron' Son has Paranormal Abilities RAW novel - Chapter (92)
남작 아들은 초상능력자-92화(92/252)
제92화
제17편 클레벤의 사정(8)
“아, 아르헬…….”
“쉿.”
“하, 하지만…….”
아르헬이 데모니어스의 입을 틀어막았다.
둘은 복도에 있는 작은 서랍장 뒤에 몸을 구겨 숨어있었다.
“잘 안 들리니까, 조용히 해.”
아르헬이 속삭였다.
아르헬의 신경이 곤두세워진 쪽에는 로빈 톰멀과 한 남자가 있었다.
톰멀 후작의 셋째 아들.
카멜 톰멀.
그들은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분위기는 한껏 날이 서 있었다.
“그렇게 유난을 부리고 싶더냐?”
“…….”
“그 포커드 백작이라는 자가 온 영지를 들쑤시더구나.”
카멜 톰멀이 비아냥댔다.
“너와 함께 말이야. 소문이 흉흉한 넬반 폭포엘 다녀오지 않나. 귀족들을 죄다 끌어모아 우스꽝스러운 쇼를 하질 않나.”
그는 대놓고 로빈에게 면박을 주고 있었다.
“우리 톰멀 가문을 얼마나 우습게 만들어야 하겠니? 네가 그까짓 검술 실력이 대단하다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그 실력은 톰멀을 위해야 할 터.”
카멜의 비난에도 로빈은 아무 말이 없었다.
“쯧, 무식한 놈.”
“형님. 왜 이렇게 화를 내시는지…….”
“정말 모르겠다는 말이냐?!”
카멜은 버럭 소리쳤다.
“너 때문에 큰형님은 물론이고, 너그러우신 둘째 형님까지도 무척 심기가 불편하시다. 아버님은 말할 것도 없지. 어디 감히 세반 가문의 개를 끌어들여.”
“형님!”
로빈이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 언성을 높였다.
“허어, 이것 보게.”
카멜은 그런 로빈의 행동에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감히 네 놈이 내게 큰소리를 친단 말이냐? 언제부터 그리 용감해진 것이냐? 아아, 그래. 이제 아버님의 호위로 다니니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 이 말이지?”
“아닙니다, 형님. 그게 아니라…….”
“아니면! 어디, 밖에서 만난 개가 네게도 한 그릇 나눠 주겠다더냐?”
“그만하십시오!”
이제 로빈 역시 무척이나 화가 난 얼굴이었다.
“화를 내실 거면 제게만 내십시오. 백작님은 형님 입에 그런 식으로 오르내릴 분이 아닙니다.”
“네가 미쳤구나. 어디서 적의 개에게, 분?”
카멜은 혐오스럽다는 얼굴을 했다.
“말조심하십시오. 게다가 적의 개라니요. 아버님께서도 세반 가문은 우리의 적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그저 가문을 위해서 지금껏 부딪혀야 했을 뿐이라고요.”
로빈의 눈이 이글거렸다.
“다시 한번 개니 뭐네 운운하시면 저도 못 참습니다.”
“뭐? 참아?”
카멜의 눈에 한순간 광기가 깃들었다.
“그래. 내게 이를 드러내겠다, 이 말이지?”
짜아악!
로빈의 고개가 꺾였다.
“히, 히이익…….”
데모니어스가 질겁했다.
아르헬은 데모니어스의 입을 더욱 꽉 틀어막았다.
그러나 아르헬 역시 터질 듯이 심장이 뛰고 있었다.
항상 밝은 줄로만 알았던 로빈 톰멀이 저런 대우를 받으며, 저런 표정을 지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한 아르헬이었다.
그저 오늘 대련을 잘 봤다고 인사하기 위해 쫓아온 것이었다.
헌데 이런 상황이 펼쳐져 버린 것.
“내가.”
짜아악!
“감히.”
짜아악!!
“너 따위가 생각 같은 걸 하라고 허락해 줬더냐!”
짜아아악!!
잔인한 마찰음이 복도를 가득 메웠다.
소리가 울릴 때마다 로빈 톰멀의 고개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다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크게 꺾였다.
쿵쿵.
아르헬과 데모니어스의 심장이 뛰었다.
침도 함부로 삼킬 수 없는 긴장감.
‘여기서 나가면, 막을 수 있나? 막으면? 저 사람은 루이드를 싫어하는 것 같은데, 내가 나가면 루이드가 곤란해지려나?’
루이드를 닮은 파란 눈은 파문이 인 호수처럼 일렁였다.
‘루이드라면…….’
“아, 아르…….”
데모니어스가 느슨해진 아르헬의 손 사이에서 입을 움찔거렸다.
그와 동시에, 아르헬은 아주 빠르게 자신의 손안에서 빠져나가는 데모니어스를 감지했다.
“쥐새끼가 있었군.”
높은 곳에서 들리는 차가운 목소리에 아르헬이 고개를 확 들었다.
카멜 톰멀이었다.
그가 데모니어스의 뒷덜미를 움켜쥐고 있었다.
“케, 켁!”
데모니어스는 허공에 달랑 들린 채 바둥대고 있었다.
“형님……!!”
로빈 톰멀이 다급하게 쫓아왔다.
“그만두십시오! 그분은 포커드 백작님의 동생분이십니다!”
“이 녀석은 아니지. 다 알고 있다. 폭포에서 주워온 거지새끼 아니냐.”
카멜 톰멀이 거칠게 데모니어스를 흔들었다.
“케엑, 켁!”
“그만둬어!!”
아르헬이 소리쳤다.
카멜 톰멀은 재밌다는 듯 눈을 가늘게 떴다.
“왜요? 아가씨.”
그는 아주 일상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처럼 평안하게 말했다.
“왜, 왜냐니! 당신은 모니에게 그럴 자격이 없으니까!”
“자격이 없을까요? 이곳은 톰멀 후작령이고, 이 녀석은 후작령의 영지민일 텐데요.”
아르헬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형님! 그 아이는 백작님께서 거두기로 하신 아입니다. 기억이 전혀 없는 아이이기에 후작령 출신인지도 확실히 알 수 없고요.”
로빈은 카멜을 말리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으나, 그의 옷자락 하나도 건드리지 못했다.
“하하하. 재밌군. 로빈, 넌 바보냐? 이 일대가 전부 톰멀 후작령이다. 말을 타고도 몇 주를 달려야 이 영지를 벗어날 수 있어.”
카멜이 킬킬댔다.
“이 쬐끄만 녀석이 무슨 수로 다른 영지에서 이곳까지 와 폭포에 갇힌단 말이냐.”
“……그건.”
“남의 영지민을 함부로 빼돌리다니. 그건 범죄 행위가 아니냐? 영지민은 영주의 재산.”
거듭되는 카멜의 말에 로빈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따지고 보면 카멜의 말이 틀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 이러고도 포커드 백작께서 가만히 계실 거 같나요.”
아르헬이 벌떡 일어섰다.
가느다란 다리와 팔이 벌벌 떨리고 있었다.
“백작이라. 글쎄. 내가 알기로 백작보다 높은 것이 후작이라 알고 있습니다만, 아.가.씨.”
카멜이 가지런한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아르헬은 그 미소가 뱀의 것보다 소름 끼친다고 생각했다.
“그만 하세요, 오라버니.”
낯선 목소리에 아르헬이 뒤를 돌아보았다.
창백한 복도의 중앙에는 한 여성이 있었다.
치렁치렁한 프릴이 잔뜩 달린 실크 로브 같은 것을 걸친 여성이었다.
그녀는 온통 새하얬다.
길게 늘어진 얇은 실크 로브와 신고 있는 신발까지 모두 눈처럼 하얀색이었다.
생기를 완전히 잃어버린 얼굴과 가느다란 손가락까지.
“누, 누님!”
“……레미르. 네가 어떻게.”
로빈과 카멜 또한 놀란 얼굴이었다.
“제가 아는 오라버니는 어린아이들이나 괴롭히는 사람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요.”
카멜은 마지못해 데모니어스를 잡은 손을 놓아주었다.
쿵!
“케엑, 켁.”
데모니어스는 숨을 몰아쉬었다.
“……몸도 약한 녀석이 왜 이곳까지 나왔느냐.”
“제 침실이 이 근처라는 걸 잊으셨나요? 소란이 끊이지 않아 나와봤습니다.”
카멜은 한껏 자상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사람을 보내도 됐을 것을.”
“콜록, 콜록……!”
레미르는 크게 기침을 했다.
가녀린 그녀의 몸과 치렁치렁한 탈색된 듯 탁한 금발까지도 마구 흔들렸다.
형제애라고는 전혀 없을 것 같던 카멜은 금방 안절부절못하며 그녀에게 다가가려고 했다.
레미르는 손을 들어 보이며 그런 카멜을 저지했다.
그리고 아르헬과 데모니어스를 향해 두 팔을 벌렸다.
“우, 우욱…….”
바닥에 쓰러져 있던 데모니어스는 후다닥 레미르의 품으로 달려갔다.
아르헬도 데모니어스를 쫓아가려다가 뒤를 돌아 시선으로 로빈이 괜찮은지 살폈다.
“……!”
아르헬이 자신을 걱정한다는 사실을 안 로빈은 카멜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소리를 내지 않고 말했다.
‘괜찮아.’
아르헬은 로빈의 입모양을 확인한 뒤 레미르에게로 가 섰다.
“저는 기침이 심해 이만 돌아가도 괜찮을까요, 오라버니.”
“쯧……. 그래라.”
카멜이 신경질을 내며 돌아섰다.
로빈은 레미르에게 인사한 뒤 카멜을 따라나섰다.
“놀랐지.”
“우, 우응…….”
데모니어스는 레미르에게 안긴 채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자, 가자. 일단 내 방으로 피해 있자.”
레미르를 두 아이를 이끌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타악.
문이 닫히고 적막이 방을 메웠다.
“……콜록, 콜록.”
레미르는 아르헬과 데모니어스를 쇼파에 앉힌 다음, 누울 수 있는 기다란 쇼파에 기대 쓰러졌다.
“괘, 괜찮아요?”
아르헬이 그녀에게 다가가려고 했지만, 레미르가 손을 저었다.
“으응, 신경 쓰지 말렴. 나는 원래 몸이 약해서……. 그나저나 너희는 괜찮은 거니?”
“네?”
“내가 오라버니를 대신해서 사과할게. 그걸로 너희가 받은 충격과 상처를 다 치료할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레미르는 따뜻한 눈빛으로 아이들을 훑어보았다.
“다친 곳은 없니? 너희들이 포커드 백작님과 함께 온 손님이라는 걸 알아. 시종을 보냈으니, 백작님께서 금방 오실 거야.”
레미르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문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들어오세요.”
“아르헬! 모니!”
루이드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한참 찾았어. 갑자기 말도 없이 사라지다니, 여긴 왕성만큼 넓다고. 아이들을 보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가씨.”
루이드는 레미르에게 인사하며 곧장 아르헬과 데모니어스의 앞으로 섰다.
“아, 아르헬?”
루이드가 방에 들어올 때까지만 해도 씩씩한 얼굴을 유지하고 있던 아르헬의 눈에서 눈물이 왈칵 터져 나왔다.
“흑……. 흡…….”
“이런…….”
레미르는 가까스로 몸을 일으켜 아르헬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자신의 백설같은 흰 옷자락으로 아르헬의 눈물을 닦았다.
“가여운 아이. 무서웠지.”
“아르헬, 무슨……?”
루이드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다.
아르헬의 푸른 눈은 마치 쏟아지는 넬반 폭포 같았다.
“흑……. 흑흑, 흡. 나, 나아……. 내가…… 막을 수, 로, 로빈 경이……. 맞는 걸 지켜만…….”
“오. 아르헬…….”
루이드는 아르헬을 안아 들었다.
“울지마, 아르헬.”
“으와아아앙!”
아르헬은 엉엉 울어버렸다.
30분 정도 눈물을 쏟아낸 아르헬이 루이드의 품에 꼭 안긴 채로 웅얼거렸다.
“훌쩍, 훌쩍. 나, 나아……. 사실은, 엄청 고민했는데. 훌쩍, 근데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서……. 바보같이 그냥 보고만 있었어.”
강하고 특별한 종족.
드래곤인 아르헬과 데모니어스였지만, 정신은 아직 어린아이와 같았다.
아직 성숙하지 못한.
그래서 제대로 대처할 수 없는.
루이드는 자신이 지켜주지 못한 상황이 미안했다.
“뭐가 바보 같아. 아르헬. 애초에 너희들이 휘말려선 안 됐지만. 어쨌든 그런 상황을 너희가 해결하려고 하지 않아도 돼. 너흰 어린애들이잖아.”
“하지만……. 난 힘이 있는데……. 내가 루이드였다면, 현명하게 상황을 잘 막았겠지?”
“힘을 사용하려고 했어?”
루이드는 아르헬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천천히 방 안을 걸었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레미르와 데모니어스가 바라보고 있었다.
레미르는 자신의 곁에 앉아 안정을 찾은 데모니어스의 손등을 토닥이고 있었다.
“으응. 그런데 제어를 잘하지 못할까 봐 그것도 무서웠어. 내가 여기서 사고를 치면 루이드도 곤란해지고…….”
“미안해, 아르헬. 내가 네 곁에 없어서 이렇게 됐어.”
“아니야, 루이드 잘못 아니야. 내가 잘못했어.”
“아니라니까! 아르헬은 잘못한 게 없어.”
루이드가 강경하게 말하자, 아르헬은 안심했다는 듯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무서웠어…….”
“이제 괜찮아, 아르헬.”
루이드의 품 안에서 콧물을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루이드는 이제 아르헬이 완전히 진정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르헬 그래도 내 가슴에 코 풀면 안 된다?”
“그냥 죽여버릴걸……. 목격자가 없으면 암살…….”
아르헬이 중얼거렸다.
“응, 아니야. 아르헬. 그건…….”
“왜, 루이드가 알려준 거잖아.”
“응, 그렇긴 한데. 참자, 아르헬.”
루이드가 아르헬의 등을 토닥였다.
“복수는 어른이 하는 거야.”
루이드가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