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ron' Son has Paranormal Abilities RAW novel - Chapter (93)
남작 아들은 초상능력자-93화(93/252)
제93화
제18편 클레벤의 사정(9)
“오라버니께 복수하실 건가요?”
레미르는 조금 슬픈 얼굴로 물었다.
“아, 복수라고 한다면 거창하겠군요. 하지만 제가 원래 받은 만큼 갚아주는 사람이라.”
루이드는 가볍게 웃어 보였다.
“그에 관해서는 제가 할 말이 없어요. 명백한 오라버니의 잘못이니.”
레미르는 토닥이던 데모니어스의 말랑한 손을 꼭 잡았다.
“그 일만 없었어도, 오라버니는 그렇게 비뚤어지지 않았을지도 몰라요. 안타까울 뿐이죠.”
“사연이 있나 보군요.”
“네. 염치없는 말이지만, 이 이야기를 듣고 백작님께서 조금이나마 오라버니를 측은하게 여겨주시면 좋겠네요.”
“…….”
루이드는 레미르가 말하는 것을 막지 않았다.
아이들을 위기에서 구해 보호하고 있었던 것이 레미르이었기 때문.
“원래는 카멜 오라버니도 뛰어난 기사였지요. 톰멀의 촉망받는 기사였습니다.”
루이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이 알기로는 톰멀 후작의 아들 중에 실력이 가장 뛰어난 것은 로빈 톰멀.
‘동생에게 자격지심을 느끼는 것인가? 그릇이 작은 자군.’
데릭 톰멀도 제리온 톰멀도 뛰어난 기사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카멜 톰멀에 대해서는 그런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던 것이다.
“첫째인 데릭 오라버니께서는 이미 결혼도 하셨고, 영지 운영에 대한 실력도 증명하셨죠.”
“알고 있습니다. 톰멀 가문의 아들들은 많은 분야에서 뛰어나다고 들었지요.”
“둘째인 제리온 오라버니께서도 뛰어난 검술뿐만이 아니라 특출나게 영특한 머리를 가지고 계세요. 국사를 논하는 자리마다 초청되실 정도니까요.”
레미르는 자랑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남매지간에 정이 깊은 모양이로군.’
루이드는 포커드의 형제들을 떠올렸다.
“셋째 오라버니 역시 어린 시절부터 두각을 드러내고 계셨습니다. 제게도 다정한 오라버니였고요. 제가 아프기 시작하자 지극정성으로 절 돌보셨죠. 자신도 어린아이인 주제에 말이에요. 후후.”
레미르의 얼굴에 잠깐 괴로움이 감돌았다.
새하얀 레미르의 손가락이 불안한 듯 데모니어스의 손을 만지작거렸다.
“간지러워요.”
“앗, 미안. 미안.”
레미르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데모니어스의 손을 놓아주었다.
“콜록, 콜록.”
“이야기하기 힘드시면…….”
“아닙니다. 콜록. 실례를 끼쳐 죄송하지만. 계속 들어주실 수 있을까요.”
“……네.”
품에 안긴 아르헬이 루이드를 더욱 꼭 끌어안았다.
“그 시기에 로빈이 태어났습니다. 아이는 톰멀의 피를 이어받은 그대로 훌륭하게 성장했지요. 그때까진 모든 게 평화로웠어요.”
루이드의 시선이 레미르에게 닿았다.
“저 역시 몸이 약해 자유를 잃어버렸지만, 후작가의 귀염받는 단 하나뿐인 딸이었으니까요. 저보다 불행한 사람들도 있다는 걸 잘 알아요.”
루이드는 그제야 레미르의 방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많은 책이 쌓여 있었다.
그녀는 방 밖을 나설 수 없는 대신에 책을 통해 자신의 세계를 넓혀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데?”
데모니어스가 레미르의 말을 따라했다. 레미르는 데모니어스의 머리칼을 쓰다듬어 주었다.
“단순한 대련이었습니다. 그저 손위 형제가 동생을 위해 훈련 상대가 되어준 것뿐이었지요.”
레미르는 먼 옛일을 떠올리는 것처럼 아련한 표정을 지었다.
“사고가 벌어졌습니다. 실수였겠지요. 그런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사람은 결단코 단 하나도 없었을 겁니다.”
“무슨 사고였나요?”
“로빈의 검에 카멜 오라버니가 크게 다쳤습니다. 크게 다칠 일이 아니었는데, 불행은 달을 가리는 밤의 구름처럼 소름 끼치도록 은밀하게 우리의 뒤를 잡는 법이지요.”
레미르는 두손을 모아 손깍지를 꽉 꼈다가 풀었다.
“그 뒤로 카멜 오라버니는 다시는 검을 들 수 없는 몸이 되었습니다.”
“……충격이 컸겠군요.”
“말도마다요. 그 뒤론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으니까요.”
레미르와 루이드는 잠시 아무 말도 없었다.
두 사람 모두 카멜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는 이들이었다.
병으로 일순간에 건강을 잃었던 레미르.
그녀는 자신의 오라비가 받았을 상실감을 이미 먼저 겪은 사람이었다.
루이드 역시 그랬다.
전생한 뒤론 아무런 능력이 없는 평범한 인간으로 환생했다.
대한민국에서, 40대에, 던전에서 억울하게 비명횡사하기 전까지 그는 뛰어난 각성자였는데 말이다.
그런 사람이 모든 것이 리셋된 채 새로운 삶을 살아야 했다.
전생에서 이루었던 모든 것들을 잃어버린 채로.
심지어 주위 환경은 21세기의 한국인이 버티기 힘든 암흑의 중세랜드가 아니었는가!
그저 어리광쟁이인 막내아들이 되기까지 루이드에게도 남모를 고통이 있었다.
‘신의 장난인지는 몰라도 다시 능력을 갖게 됐지만 말이야.’
레미르는 과거를 회상하는 일이 힘겨웠는지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로빈 그 아이도 참 불쌍하지요. 그 일 때문에 지금껏 죄책감으로 살아왔죠. 어린애가 짊어지기에는 너무 무거운 일일 텐데.”
“그렇군요. 톰멀 가문에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은 참으로 안타깝군요. 하지만 톰멀 경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는 정말 훌륭한 실력을 가졌고, 그 일 또한 극복해 낼 겁니다.”
루이드의 따뜻한 말에 레미르가 미소 지었다.
“……제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감사해요. 오라버니의 잘못에 대한 용서를 바라는 것은 욕심일지도 몰라요. 하지만 저는 톰멀 가문의 사람이자 그의 누이동생이니, 어쩔 수 없군요.”
“레미르 아가씨께서는 무척 상냥한 분이시군요. 이해합니다. 아가씨껜 가족이니까요.”
하지만 루이드는 카멜을 용서할 생각이 없었다.
어린아이들을 상대로, 심지어 아르헬을 상대로 그런 짓을 한 상대였으니까.
“그를 용서할 일은 없겠지만, 아가씨께서 걱정하시는 유혈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루이드는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품에서 아르헬을 내려놓았다.
“루이드…….”
“어른들끼리 대화 좀 하고 올게.”
“대화?”
“응, 사과를 받아내야지.”
아르헬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루이드를 보았다. 그리고 불안한 얼굴로 속삭였다.
“그 자식은 루이드를 싫어해……. 게다가 후작의 아들이고.”
“응, 아르헬. 네가 뭘 걱정하는지 아는데. 말했지? 어린애들은 그런 거 신경 안 써도 된다고.”
루이드는 아르헬의 머리를 마구 쓰다듬었다.
“모니. 미안하지만, 넌 좀 따라와야겠다.”
“우, 우응?”
데모니어스는 겁에 질린 얼굴로 레미르의 손을 꽉 잡았다.
“너도 사과를 받아야지. 네 능력도 좀 쓰고. 유혈사태를 안 일으킬 좋은 생각이 났거든.”
“우, 우어어?”
“어허. 이제 내가 함께 있으니까 걱정 같은 건 하지 말고. 네가 지금까지 해왔던 장난, 하러 가자.”
“자, 장난?”
“응. 장난.”
루이드가 손을 내밀자 데모니어스가 주춤거리며 앞으로 나섰다.
* * *
“형님……!”
“지긋지긋하다! 지긋지긋해! 네놈까지도 날 패배자 취급하는 거지! 쓰레기라고, 쓸모없는 놈이라고!”
카멜이 책상 위에 있던 서류와 책을 몽땅 쓸어 엎어버렸다.
와장창!
꽃병이 박살 나 파편이 마구 튀었다.
“아닙니다, 형님. 제발!”
“거짓말…… 윽!”
카멜은 머리를 감싸며 주저앉았다.
“이 버러지 같은 놈.”
낮고 메마른 목소리가 카멜을 향해 비난을 쏟아냈다.
카멜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아, 아버지?!”
그가 무릎을 꿇은 바로 앞에 페릭 톰멀이 있었다.
그는 무척이나 화가 나 보였다.
“이 쓸모 없고 식량만 축내는 놈. 가문에 도움이라고는 되지 않는 나약한 놈.”
“아버지……. 대, 대체……!”
“아직도 과거에 묶여서, 네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을 탓하면서 망령으로 죽어갈 놈.”
“으, 으으……. 아, 아닙니다. 아버지……. 저는……. 그런 게…….”
카멜은 처참할 정도로 일그러진 얼굴로 거의 바닥을 기었다.
“죄, 죄송합니다……. 아버지의 기대에 미치지 못해서……. 하지만……. 하지만 그건 다 로빈 저놈 때문……!”
“정말 그렇게 생각하느냐.”
더없이 차가운 페릭 톰멀의 목소리가 바닥으로 뚝 떨어졌다.
“예……에?”
“정말로 모두 로빈의 탓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으, 그, 그건…….”
“내가 널 잘못 키웠구나. 정말로 잘못 키웠어. 자신의 운명조차 제어하지 못하는 놈이라니……. 너도 분명 똑똑히 기억하겠지. 그날.”
카멜의 얼굴이 공포로 얼룩졌다.
“이제 막 검식을 익힌 아이에게 진검으로 대련하자고 했던 사람은 바로 카멜 너 아니었더냐.”
“으으……. 으으으……. 으아아아!!!”
카멜이 끔찍한 절규를 토했다.
“이런. 정말 악몽이로군.”
이번에 들린 목소리는 페릭 톰멀의 것이 아니었다.
카멜은 거의 귀신 들린 사람의 얼굴로 목소리를 확인했다.
그의 눈앞에 있는 것은 루이드 D 포커드였다.
루이드의 품에 안긴 아이는 그의 귀에다 대고 무어라고 계속 속삭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으로 충격에 빠진 듯한 로빈의 모습이 보였다.
“무, 무슨……. 내게 무슨 짓을…….”
“그대의 악몽을 실체화시킨 것뿐.”
카멜의 분노가 그의 검은 눈 안에 이글거렸다.
“보아하니, 자신도 이미 잘 알고 있는 것 같아.”
“뭣이라?”
“그 모든 일이 로빈 톰멀 경 탓이 아니라는 사실 말이야.”
카멜뿐 아니라 로빈의 미간도 구겨졌다.
“톰멀 후작께서 아들 교육을 완전히 실패하신 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루이드가 악몽의 내용을 알게 된 것은 모두 데모니어스 덕분이었다.
데모니어스는 자신의 악몽 마법에 당하는 사람이 어떤 것을 보는지, 듣는지 알 수 있었다.
계속해서 루이드의 귓가에 속삭이던 내용이 바로 카멜이 보고 있는 것을 중계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카멜의 악몽 내용은 루이드와 데모니어스만 알 뿐.
로빈은 전혀 알지 못하고 쓰러져 비명을 지르는 자신의 형을 보며 놀란 상태였다.
“이 괘씸한…… 쓰레기가!! 감히 내게 사특한 마법을……!!”
카멜이 벌떡 일어났다.
그는 바닥에 떨어진 촛대를 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바로 루이드에게 휘두르려고 했다.
타악!
그의 팔을 막은 것은 로빈이었다.
“형님, 안 됩니다!”
“뭐라고? 네놈도 보지 않았느냐! 저 자식이 내게 마법을 건 것을……! 이건 톰멀 가문에게 칼을 들이대는 것이나 다름없다!”
“아무 데도 다치신 곳이 없지 않습니까!”
로빈은 카멜의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뭐, 뭐……?”
으드득.
이가 갈리는 소리가 났지만, 카멜은 힘으로 로빈을 이길 수 없었다.
“윽…….”
로빈이 움켜쥐어 드러난 카멜의 오른팔에는 커다란 흉터가 있었다.
카멜이 고통스러워하자 로빈이 움찔댔다.
“힘줄을 이어 붙이려고 무리한 수술을 했군.”
루이드의 말에 카멜과 로빈 모두 크게 놀랐다.
“네놈……. 어떻게…….”
카멜이 부들부들 떨었다.
‘어떻긴, 내겐 의술 스킬이 있거든.’
루이드는 눈앞에 깜빡이는 시스템 창을 보았다.
카멜의 흉터가 왜 생긴 것인지.
어떤 치료가 행해졌는지.
어떤 식으로 실패했는지.
‘레미르 아가씨가 들려준 이야기가 있어서 스킬을 사용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전반전으로 모든 스킬들은 내가 얻은 정보들에 영향을 받는군.’
루이드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마음 같아서는 아주 개박살을 내주고 싶지만, 레미르 아가씨의 청을 생각해서 그러지 않고 있는 겁니다.”
“뭐?”
“못할 것 같습니까?”
루이드의 푸른 눈에 빛이 어렸다.
루이드를 보고 있던 로빈의 뒷덜미에 소름이 쭉 올라왔다.
“당신 정도는 이곳에서 내가 손가락 까딱 안 하고도 죽일 수 있어. 그 잘난 후작 가문의 자존심을 지켜주느라 이정도에 그치는 거라고.”
“무……. 이 미친…….”
“감사히 여겨. 후작 가문과 척지게 되는 것을 내가 조금이라도 두려워할 것 같나? 전쟁? 하지 뭐. 난 안 무섭거든?”
쉬이이익!
순식간에 방 안에 있던 모든 금속 제품이 날아올랐다.
물건들의 날카로운 면들이 모두 카멜을 겨누고 있었다.
“네가 이 힘을 이해할 수 있겠어? 마법사도 이해하지 못할 힘이야.”
쿵.
쿵.
카멜의 심장이 세게 뛰기 시작했다.
살기, 분노.
그런 단순한 것이 아닌 오오라가 일렁이고 있었다.
“내가 사람 흉내 내고 있을 때, 굽힐 기회 줄 때 알아서 숙이고 들어오지?”
덜덜덜.
카멜의 손이 떨렸다.
“뭐, 뭘…….”
“이 녀석한테 사과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