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seball genius who chews up America RAW novel - Chapter (10)
미국 씹어먹는 야구 천재-10화(10/400)
메이저리거를 앞에 두고 마운드에 오르자 심장박동이 온몸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후우. 집중하자. 집중하자.’
그간 마운드에서 선 경험이 많았던지라 마인드 컨트롤은 꽤 자신 있었지만.
오늘만큼은 좀처럼 안정을 되찾기 힘들었다.
‘차라리 무사 만루의 상황이 지금보다 덜 긴장되겠네.’
문뜩 옛 기억이 떠올랐다.
한국의 선배들은 이따금 한국 프로 선수들과 악수를 한 것만으로도 영광이라며 호들갑을 떨었던 기억이 났다.
그때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는데 지금은 그 기분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메이저리거잖아?’
자신이 도달하고 싶은 목표점에 도달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런 사람이 무려 자신을 위해 이곳에 왔다.
어찌 떨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도진은 금세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머뭇거려서는 안 돼.’
시간이 없다고 하셨으니까.
도진은 강제로 호흡을 가져가며 곧장 와인드업했다.
조엘과 감독은 나란히 서서 도진의 피칭을 유심히 지켜봤다.
공이 도진의 손을 떠난 순간에는 조엘의 양쪽 입꼬리가 솟았다.
비록 제구는 좋지 못했지만, 조엘은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긴장 되겠지. 야구 꿈나무가 메이저리거 앞에서 공을 던진다는 게 쉽지는 않을 테니까.’
그래도 초구 이후로는 제구가 서서히 잡히기 시작했다.
조엘은 피칭을 계속 이어나가는 도진을 바라보며 감독에게 속삭였다.
“이야. 정말 기가 막힌 재능이네요. 지금 FS 야구부가 감히 모시기 힘든 인재인데요? 감독님이 왜 저까지 불렀는지 알겠어요. 구속이 92마일은 족히 나오겠는데요.”
감독도 도진의 피칭에 스피드 건을 들이대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 93마일이 나오고 있네.”
“메이저리그 평균 구속이네요? 물론 손볼 데가 많지만요. 그건 감독님이 해주실 거죠?”
감독이 고개를 끄덕이자 조엘은 여유롭게 말을 이었다.
“시즌이 끝났다면 모를까. 오늘은 가볍게 대화 정도만 나누면 되겠어요.”
얼핏 봐도 지금 도진의 투구 밸런스는 무너져 있다.
다양한 투수 코치를 접해본 자신이라면 고쳐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다소 시간이 걸리는 일.
‘그러니 그건 감독님에게 맡기는 게 좋겠지. 감독님도 충분히 자세를 잡아줄 수 있을 테니까.’
조엘은 다시 한번 와인드업을 하는 도진을 살펴본 뒤, 지금 당장은 가벼운 조언 정도만 해줘도 충분할 거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이런 조엘의 생각을 읽은 듯 감독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로도 충분하다네.”
조엘은 고개를 끄덕인 채 손뼉을 치며 도진을 불러 세웠다.
“좋은 피칭이었다. 잠깐 나 좀 보지.”
* * *
감독은 조엘과 도진을 사무실로 안내했다.
소파에 착석한 조엘은 자신의 옆자리를 두들겼다.
“와서 앉지.”
도진은 쭈뼛쭈뼛 다가가 눈치를 잠깐 살폈다.
감히 자신이 동경하는 메이저리거의 옆자리에 앉아도 되나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엘이 마치 시간이 없다는 듯 손목시계를 보는 시늉을 하는 바람에 도진은 곧장 그의 옆으로 앉았다.
“본론으로 바로 들어가겠다.”
조엘은 여유롭게 말을 이었다.
“하이스쿨 인비테이셔널 토너먼트를 노린다고?”
도진은 눈을 번뜩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왕 시작했으니 최고의 자리까지 올라가 보고 싶습니다.”
“좋아. 아주 좋아. 야구인이라면 그 정도 배포는 있어야지. 물론 지금은 꽤 엉망인 거 알지?”
도진도 엉망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았다.
공을 몇 번 더 던지고서야 예전의 감이 되살아나고 있었으니까.
구속만 늘었지, 구위나 다른 부분은 아쉬웠다.
투구 밸런스부터 자세까지 엉망진창이었다.
“하이스쿨 인비테이셔널이 어떤 대회인지는 알아?”
“알고는 있습니다. 전미 최고의 학교들이 모이는 대회죠.”
“그래. 잘 알고 있네. 야구인들로서는 그 대회는 축제야.”
예비 메이저리거들을 만날 수 있는 자리다.
그렇기에 메이저리그의 전 구단 스카우트까지 몰려든다.
이뿐만이 아니라 구단주들까지 큰 관심을 둔다고 했다.
“그러니 그 대회를 출전하는 것만으로도 야구인들은 자신의 꿈에 조금은 다가설 수 있는 거지. 그런데 말이야.”
조엘은 아랫입술을 혀로 핥더니 한쪽 눈썹을 치켜세웠다.
“그 대회를 출전하는 게 쉽지는 않아. 네가 어떤 각오를 내비친 건지 알고 있지?”
“네. 일단 캘리포니아에서 최고의 학교가 되어야겠죠.”
“잘 알고 있네.”
“물론 아직은 갈 길이 멉니다. 혹시 제 꿈이 이루어져 그 대회에 참가할지라도 우승한다고는 말 못 하겠습니다만. 최소 그 대회만큼은 참가하고 싶습니다. 그게 첫 발걸음이 될 테니까요.”
조엘은 도진의 자신감이 마음에 들었다.
그저 뜬구름에 내뱉은 말이 아니다. 현실을 명확히 직시한 채 목표를 향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저 마음가짐이 도진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이제는 그에게 조언과 자신감을 심어줄 차례였다.
“야구를 쉬었음에도 구속이 늘었다고? 혹시 몇 살 때 처음 야구를 접했지?”
“어. 그게 정확히 무슨 뜻이죠?”
정식으로 야구를 접한 시기는 초등학교 5학년이다.
대신 처음 야구에 재미를 느꼈던 건 한창 더 어렸을 때다.
“처음 공을 던져본 시기를 말하는 거야.”
“6살입니다.”
“그리고 15살까지 꾸준히 던졌고?”
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1년 반을 쉬길 잘한 것 같네.”
“어째서인가요?”
도진은 초롱초롱한 눈빛을 띠었다.
“프로 선수만큼의 혹사는 아니었겠지만. 어느 순간부터 어깨가 피로를 느끼고 있었을 거야.”
도진은 어린 시절을 떠올려봤다.
생각해보니 단 하루도 글러브를 손에서 놓은 적이 없었다.
그래도 혹사였을 정도로 많이 던지거나 하지는 않았기에 조엘의 말을 바로 받아들이긴 어려웠다.
조엘은 생각에 잠긴 도진의 표정을 읽었다.
“실제로 1년 반을 쉬고 다시 던지니 구속이 빨라졌다고 했잖아. 그 말은 네가 인지하지 못했어도, 네 몸은 피로감을 느끼고 있었다는 뜻이지.”
그럴 수도 있겠구나.
도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조엘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물론 지금 상태를 보아하니 문제는 없어 보이지만. 앞으로 더 높은 곳을 바라본다면 더욱 관리를 열심히 해야겠지.”
“관리라뇨?”
“대회 성적? 중요하지. 나도 누구보다 FS 고등학교가 좋은 성적을 냈으면 좋겠어. 그것이 너희들의 미래와도 직결될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오로지 자신만 생각해라.
그 어떤 것보다 자기 자신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
“1년 반을 쉬었고, 이제 졸업까지 2년 조금 안 남았지만 조급해하지 말라고. 앞서도 말했지만, 학교보단 본인의 몸 관리가 더 우선시 되어야 해.”
괜히 조급한 마음에 무리하지 말아라.
부상은 네 인생을 송두리째 앗아갈 수도 있다는 말에 도진은 감독을 힐끗 쳐다봤다.
과연 그 역시도 같은 생각일까?
“조엘의 말에 틀린 건 없다네. 학교는 학생들이 성장하는 곳이지, 망가트리는 곳이 아니야.”
들려오는 대답은 충격이었다.
역시 미국은 한국과는 문화부터가 달랐다.
‘내가 한국에서. 중학교 야구 시합에서는 어땠지?’
8강부터 결승까지. 단 한 번도 선발 등판을 거르지 않았다.
도진 자신이 승부욕에 잠식되었던 것도 있었지만, 학교도 우승을 원했기에 등판을 강행했다.
선수 개인의 관리라는 개념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곳은?
개인주의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어찌 보면 이 방식이 선수에게는 더 적합한 것 아니던가.
토너먼트에서 우승하면 메이저리그의 길이 더 빠르게 열린다.
하지만 토너먼트가 인생에 차지하는 부분은 얼마나 될까?
‘그래. 부상 후 재활이라고 생각하고 차근차근 준비하는 게 좋겠어.’
조엘은 마음을 굳힌 도진의 표정을 읽었다.
여태껏 채찍질만 했으니 당근을 주어야겠지.
“넌 지금도 메이저리그 평균 구속을 던지고 있어. 그것도 투구 밸런스가 제대로 잡히지 않은 상태인데 말이지. 그렇다면 밸런스가 잡히면 어떻게 될까?”
도진의 눈이 번뜩였다.
하긴. 지금은 하체에 힘도 제대로 싣지 못하고 있다.
투구 밸런스가 제대로 잡힌다면 구속은 물론 공 자체가 훨씬 좋아지겠지.
“그리고 중학생이었던 그때와 고등학생인 지금은 달라. 이제는 야구 선수의 몸을 완벽히 갖춰야 해. 그저 재능만으로 야구를 하는 나이가 아니란 말이지.”
웨이트와 체력훈련이 동반되어야 했으며, 이전보다 훨씬 강해진 힘을 바탕으로 야구를 해야 한다고.
‘맞는 말이야.’
중학생은 웨이트와 체력훈련을 전문적으로 병행하면서 야구를 하지는 않는다.
조엘의 말마따나 그저 재능 하나만으로 야구를 하는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중학생이 아니므로 몸부터 제대로 만들어야 했다.
“감독님 말씀 잘 들어라. 나도 감독님 덕분에 결국 여기까지 왔어. 그리고 한 가지 더 말해주자면.”
조엘은 아주 약간의 질투가 섞인 눈으로 도진을 바라보며 잠시 말을 멈췄다.
“인정하긴 싫지만, 1년 반을 쉰 네가 네 나이대의 나보다 더 뛰어나. 그러니 다시 한번 말하지만, 조바심만 갖지 마라.”
단순한 격려인지 진심인지 모를 말을 남긴 조엘은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다시피 시즌 중이라 오늘은 여기까지만. 조만간 또 보자고. 네가 벽에 가로막혔을 때 딱 나타나 줄 테니까 걱정은 말고.”
도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연신 허리를 굽혔다.
현역 메이저리거의 조언.
천금과도 맞바꿀 수 없는 최고의 조언이었다.
* * *
조엘이 자리를 뜨자 도진은 감독과 조금 더 대화를 나눴다.
솔직히 지금까지 자신의 야구 인생에 감독의 비중을 알 수 없었다.
어려서 그랬던 것인지. 한국에서는 감독의 영향이 크다고 생각지 않았다.
그 생각은 조엘을 만나기 전까지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하지만 조엘은 도널드 감독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자신도 도널드 감독을 믿어봐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때. 혜택은 마음에 들었느냐.”
마음에 들었냐고?
허탈한 질문에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감히 누가 여기서 고개를 저을 수 있겠는가.
야구를 전문적으로 하지 않는 사람들도 이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 알고 있을 테니까.
대답을 기다리시는 것 같아 서둘러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이제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도록 하지.”
도진은 귀를 쫑긋 세웠다.
“들어서 알겠지만, 자네는 아직 공을 던질 준비가 되지는 않았네. 물론 지금도 위력적인 공을 던지고는 있지만. 1년 반의 공백은 무시할 수 없지.”
지금의 몸 상태가 야구를 하는 또래들과 비교해도 여러 방면에서 부족하다고.
“그래서 자네는 몸 상태가 올라올 때까지 마운드에 오를 일은 없을 걸세.”
“네?”
“마운드뿐만이 아니라네. 타석에서도 마찬가지라네.”
백번 다 양보하려고 했지만,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감독은 도진의 표정을 읽고는 여유롭게 말을 이었다.
“야구 선수들이 오프 시즌에도 공을 던지는 걸로 아는 건 아니겠지?”
도진은 이해한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야구 선수들은 대체로 빠르면 10월. 늦으면 11월까지 공을 던진다.
그리고 11월이 되어서 시즌이 전부 끝나면 최소 1달 이상은 공을 손에도 쥐지 않는다.
물론 보강이 필요한 후보 선수들은 시즌이 늦게 시작하는 해외로 나가 보강을 하는 때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그 선수들도 몸이 완벽히 만들어진 상태였기에 가능했다.
반대로 지금의 자신은 0에서 시작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해했습니다.”
감독은 그런 도진의 어깨를 톡톡 도닥였다.
“물론 프로 선수들처럼 그 기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걸세. 그러니 당분간은 몸을 만드는 데 주력하고 빠르게 힘이 되어주게나.”
생각해보니 연습 경기에 참여했던 아군 적군들은 전부 자신보다 체격이 좋았다.
그들의 실력이 뛰어나다고는 볼 수 없었으나 준비 자체는 완벽히 되어 있었다.
그리고 재능은 준비된 자들에게 오는 법. 그들은 언제든 재능을 개화할 준비를 끝마쳤다.
도진은 그와 정반대의 상황이었다.
재능은 이미 깃들었지만, 그 재능을 펼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일단 마운드에 오를 수 있는 몸부터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