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seball genius who chews up America RAW novel - Chapter (100)
미국 씹어먹는 야구 천재-100화(100/400)
5회 공격이 끝난 후 NAT의 더그아웃은 침울했다.
주장이자 4번 타자 타일러는 헬멧을 바닥에 던졌다.
빠각.
“다들 뭐 하는 거야! 집중 안 해?”
6회를 맞이하는 시점에서 투수의 공을 건들지도 못하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짐을 싸는 건 본인들은 물론이거니와 상대 투수에게 대기록을 내줄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스며들었다.
“안타 하나면 돼! 그러면 분위기를 가져올 수 있어!”
하지만 쉽지 않았다.
자신도 도진의 공을 건들지도 못했으니 말이다.
‘이게 정말 말이 되는 건가?’
FS 마운드를 지키는 저 아시아인.
그가 대단한 투수인 건 야구를 하는 누구라도 아는 사실이다.
‘그래도 해도 해도 이건 너무 하잖아!’
야구는 혼자 하는 스포츠가 아니다.
하지만 선발 투수가 완봉을 해버린다면 얘기는 또 달라졌다.
결국 점수를 내지 못한 쪽은 승리할 수 없었으니 말이다.
“기습 번트든 뭐든 해서 어떻게든 출루해라.”
하지만 선수들은 이미 죽은 동태 눈이 되었다.
그들에게서 의욕이란 단어는 사라졌다.
타일러도 알고 있었다.
그의 패스트볼은 눈도 깜빡하지 않았음에도 미트에 꽂힌다.
투심은 춤을 추듯 휘어져 들어와 갖다 맞추기가 힘들었다.
두 가지의 커브 역시 낙폭이 워낙 훌륭해 헛스윙을 유발했다.
‘그래도 기록만큼은 절대 안 된다.’
야구에서 새로운 기록은 언제나 나오기 마련.
하지만 그 주인공이 미국인이라면 모를까. 아시아인이 되도록 만들 수는 없었다.
하지만 현실을 마주하면 할수록 타일러의 의욕은 자취를 감추었다.
도무지 고등학생이 던질 수 있는 공이라고 생각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흡사.
하늘에서 야구의 신이 강림한 것처럼 느껴졌다.
* * *
마이크는 점검차 마운드를 방문했다.
“하. 아무리 생각해도 넌 진짜 정상이 아니다.”
도진은 입을 오물거리며 미소를 감추었다.
“좋아?”
“그래. 좋다. 내가 이런 투구를 받아보다니. 이제는 죽어도 여한이 없다.”
도진은 피식 웃었다.
“죽지는 마라. 조금 슬플 것 같다.”
“이야. 나 인생 잘 살았네? 죽더라도 일단 일은 내보련다. 오늘 경기 끝나고 나올 기사 한번 예측해봐도 되냐?”
도진은 한번 해보라며 턱짓했다.
“하이스쿨 인비테이셔널 노히트 노런의 주인공은 FS의 배터리!”
“묻어가겠다?”
“말은 똑바로 해야지! 너 나 아니었으면 노히트 노런 못했어! 완봉이라면 또 모를까.”
“그건 인정. 이제 그 기록까지 12타자 남았다. 기록 세우면 내 덕. 못 세우면 네 탓이다?”
마이크는 즉각 대답했다.
“어. 이번만큼은 진짜 포수 잘못이지. 아직 어깨 싱싱하지?”
도진은 대답 대신 팔을 빙빙 돌렸다.
포수 마스크로 마이크의 미소가 뿜어져 나왔다.
타임은 끝났다.
홀로 마운드에 남게 된 도진은 로진백으로 손을 적시며 마이크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친구야. 기록 한번 세워보자.’
그리고 고맙다.
다시 야구판에 발을 디디게 해줘서.
‘이 기록이 앞으로 우리의 미래에 도움이 됐으면 좋겠네.’
도진은 힘차게 발을 들어 올렸다.
그의 투구는 살아 움직이듯 포수 미트에 정확히 꽂혔다.
오히려 경기 초반보다 훨씬 위력적인 투구를 선보이고 있었다.
“스트라이크 아웃!”
[이번에도 삼진 하나를 곁들여 아웃카운트를 올립니다!] [7회. 애틀랜타의 2번부터 시작하는 타순입니다. 투수가 이번에도 만약 완벽하게 틀어막을 수 있다면 정말 진귀한 기록을 세울 수도 있습니다.]타자가 타석에 들어서자 도진은 마음가짐을 한 번 정리했다.
‘작년에도 16강은 통과했어.’
그렇기에 한번 걸었던 길이 어렵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물론 이런 완벽투를 펼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는 못했지만.’
무엇보다 FS 타선 역시 애를 먹고 있었다.
점수는 여전히 0:1.
알렉산더의 홈런이 유일한 득점이었다.
물론 상대도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 않았다.
지금 당장의 경기를 이기겠다며 불펜 투수를 전부 끌어다 썼다.
도진은 여전히 빡빡한 점수 차에도 입꼬리를 올렸다.
‘어차피 16강에서 우릴 만난 순간 누구라도 짐을 쌌어야 해.’
도진의 와인드업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투구 수가 이제 50개를 갓 넘었기에 여전히 어깨도 싱싱했다.
퍼억.
“스트라이크 아웃!”
타자가 타석에서 허망한 표정을 지었다.
그럴 때마다 도진의 투구는 더욱더 위력적이 되어 갔다.
‘아직 서클 체인지업은 선보이지도 않았는데.’
그런데 미국 최고의 대회에서도 자신의 공이 이렇게나 잘 통하고 있다.
그것이 자신감이 되어 돌아왔다.
퍼억.
타자의 배트는 애꿎은 허공만 갈랐고 타석에서 물러설 때의 표정은 한결같이 허망했다.
4번 타자와의 승부를 앞둔 도진은 주위를 한 번 둘러보았다.
동료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경이로움이 가득했다.
‘눈빛 한번 부담스럽네.’
그래도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오히려 기대를 충족시켜주고 싶네. 이제 4번 타자만 잡으면.’
그는 두 번의 삼진을 당했을 때도 스윙만큼은 흔들림이 없었다.
지금까지의 오랜 연습을 바탕으로 몸이 기억하는 거겠지.
그런데도 도진의 투구엔 자신감이 묻어 나왔다.
타자의 배트는 공과 만나겠다며 굉음을 내질렀다.
하지만 타자는 스윙과 동시에 미간이 일그러졌다.
퍼억.
“스트라이크!”
타자의 입꼬리가 순간 내려갔다.
반대로 도진의 입꼬리는 더욱 치켜 올라갔다.
2구.
타자의 배트는 애먼 헛바람만 일으킬 뿐.
“스트라이크 투!”
4번 타자 타일러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어떻게서든 공을 갖다 맞춰야 한다.’
하지만 집념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그의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포심, 투심, 커브.
어떤 공이 날아올지도 모르는 판국에 2스트라이크로 몰려 있었으니까.
‘포심을 노린다.’
도진이 와인드업하는 동시에 그는 결단을 내렸다.
그리고 원하던 공이 날아왔다.
‘됐다.’
그의 눈이 번뜩이며 배트가 나왔지만, 원하는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스트라이크 아웃!”
제구가 되는 99마일의 패스트볼은 고등학교 레벨에서 절대 칠 수 없는 공이었다.
[캘리포니아를 대표하는 FS! 진귀한 기록을 만듭니다!] [노히트 노런! 하이스쿨 인비테이셔널에서 노히트 노런이 나왔습니다!] [그 주인공은 다름 아닌 먼바다를 건너 넘어온 한국인 선수입니다!]애틀랜타주의 NAT는 기록의 제물이 되었다.
* * *
16강 경기가 전부 끝났지만, 기사는 온통 도진의 얘기로 도배됐다.
<하이스쿨 인비테이셔널 노히트 노런! 주인공은 FS의 킴!>
<14년 만의 긴 침묵을 깨고 다시 모습을 드러낸 진귀한 기록! 역사의 한 페이지를 써 내려간 FS의 도진 킴!>
<9이닝 공 70개 완벽투!>
<애틀랜타의 타일러.
“야구의 신을 상대하는 줄만 알았다.”
>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 도진 킴의 활약에 눈독!>
<그는 고등학생 레벨이 아니다.>
커뮤니티나 SNS도 온통 도진에 관한 얘기뿐이었다.
-King is back!
-원래 있었어 병신아!
-노히트 노런이라니! 긴장감 1도 없었음.
-1회부터 3삼진 잡을 때 왠지 질 것 같지 않더라.
-랭킹 6위는 쉬워도 너무 쉽다! NY나와! 뷰포드 나와!
-이러다가 진짜 우승하는 거 아냐? 이러다가 진짜 우승하는 거 아냐?
-진짜 우승할 것 같아! 진짜 우승할 것 같아!
-우리는 킴과 같은 시대를 살고 있다.
-드래프트 랭킹 정한 놈들 상판대기 한번 보고 싶네. 이런 투수를 10위? 장난해?
-심지어 킴보다 랭킹 높은 타카시 사토나 대학생들도 이런 기록 세우지 못함.
-그냥 한국인 깎아내리는 거야. 킴이 미국인이었어! 봐.
-인정. 랭킹 1위였음.
-솔직히 캘리포니아인들 제외하면 전부 킴을 저평가하긴 해.
-미국 역사상 유례없는 최고의 투타 겸업 선수니까. 선례가 없으니 어쩔 수 없어.
-다음 경기 보스턴이던데. 4위잖아.
-언제나 4강은 밟는 보스턴.
-심지어 킴도 못 나옴.
-디에고 선발. 아. 좀 불안하긴 한데.
-그러게. 차라리 디에고를 16강에서 냈으면 더 좋았을 거 같은데?
-결과론적인 거다. 오늘 결과를 보면 알다시피 0:1로 진땀승이야.
-그렇네. 하도 편안하게 봐서 10:0으로 이긴 줄.
-디에고가 나왔으면 FS가 애를 먹었을 수도 있겠네.
-오히려 오늘 분위기를 다음 경기까지 끌고 나가지 않을까?
-우리 감독 도널드. 의심하지 마라.
대기록을 세웠지만, 도진은 어떠한 인터뷰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당장 내일 경기를 앞두고 팀 미팅이 있었으니 말이다.
도널드 감독은 손뼉을 3번 치며 선수들을 다독였다.
“다들 고생 많았다. 하지만 알다시피 내일은 8강이다. 그리고 상대는 보스턴으로 확정됐다.”
보스턴.
예상 랭킹 4위.
뷰포드와 NY에 비하면 살짝 모자란다는 평가지만 투타 모두 훌륭한 모습을 보이는 팀이다.
“알다시피 내일 선발은 디에고다. 첫 하이스쿨 인비테이셔널이라 긴장이 될 테니 타자들이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
도널드 감독은 FS가 승리할 방법을 전달했다.
물론 말은 쉽게 내뱉을 수 있지만, 곧이곧대로 흘러갈지는 미지수.
오늘 FS의 타격은 처참해도 너무 처참했기 때문이다.
9이닝 동안 4안타.
평소 FS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하위 타선이 전부 1학년이다.
처음 접하는 큰 대회인지라 몸이 석고처럼 단단하게 굳었다.
결국 빈공은 상위 타순과 클린업트리오에게도 영향이 전달됐다.
물론 누구도 1학년을 나무라지 않았다.
“그럼. 오늘 푹 쉬도록. 해산!”
감독의 전언이 끝나자 도진은 곧장 핸드폰을 확인했다.
[상우: 노히트 노런? 노히트 노런?] [나: 이야. 소식 빠르게 접했네? 근데 너 영어 모르잖아? 기사 어떻게 봤냐?] [상우: 아니. 지금 루키 리그 캠프 왔는데 다 네 얘기뿐이다.] [나: 프로 선수들이 내 얘기도 해주는 건가? 영광이네.] [상우: 고작 16강 이겨놓고 깝죽대긴. 우승이나 하고 와!] [나: 그래. 너도 시즌 준비 잘하고.]축하 연락은 상우에게서만 온 것은 아니었다.
[조엘: 노히트 노런? 아주 정신 나간 퍼포먼스구나.] [나: 운이 좋았네요.] [조엘: 하이라이트 봤다. 운이 아니더만. 타자들을 갖고 놀던데?] [나: 긁히는 날이었어요. 차라리 4강이나 결승에서 이런 날이 왔어야 했는데.] [조엘: 다음 경기 보스턴이지? 쉽지 않겠지만 힘내라.] [나: 감사합니다! 조엘도 시즌 준비 막바지죠? 파이팅 하십쇼!] [조엘: 그래. 또 연락하마.]마지막은 하리의 축하 연락이었다.
[하리: 도진아! 축하해!] [나: 봤어?] [하리: 당연히 봤지! 9회 아웃카운트 잡았을 때 교실에서 소리 질렀다가 혼났다니까?] [나: 위험한데? 괜찮아?] [하리: 괜찮아. 나만 소리 지른 건 아니었어. 알지? 우리 산타모니카도 널 응원하고 있다는걸. 특히 데이브는 얼마나 기뻤는지 책상을 내리치면서 예스! 이랬다니까?]지역 라이벌 선수가 응원한다.
더할 나위 없이 기쁘기도 했다.
그래도 지금의 도진은 답장도 이쁘게 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나: 고마워. 물론 네 응원이 더 힘이 되는 거 알지?] [하리: 그럼 내일 경기도 열심히 응원해야겠다! 푹 쉬어!]핸드폰을 닫은 도진은 입꼬리가 사그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금세 표정을 굳혔다.
8강.
작년에는 이 문턱을 넘어서지 못했으니까.
‘이번에는 기필코 넘어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