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seball genius who chews up America RAW novel - Chapter (109)
미국 씹어먹는 야구 천재-109화(109/400)
야구에서 포지션 변경은 이따금 일어나는 일이지만 그리 자주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특히나 야수들은 외야수와 내야수로 나뉜다.
그리고 이름처럼 대부분 내야수는 내야 포지션을, 외야수는 외야 포지션을 담당한다.
그렇기에 외야 포지션인 중견수가 느닷없이 내야 포지션인 유격수 수비를 보는 건 흔한 일은 아니었다.
[킴. 유격수로 포지션이 바뀌었어.] [이제 포지션의 비밀이 드러났네. 1회 디에고의 어깨가 덜 풀린 것을 감안해서 장타를 예견했던 거야. FS는 그에 따라 킴을 중견수에 배치한 거겠고.] [결과적으로도 훌륭하게 맞아떨어졌잖아? 크리스가 아무리 어깨가 좋아도 킴만큼은 아니야. 1회를 무실점으로 넘길 수 있었던 건 오로지 킴이라서 가능했던 거야.]-그러면 장타 때문에라도 계속 외야수에 두는 게 좋지 않나?
-그러니까. 3개의 타구가 전부 외야로 향했으니까.
-적어도 중견수 쪽으로 공을 보내지 못하게끔 만드는 게 좋지 않나?
해설은 시청자들의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이미 경기 시작 전에 언급했지만, 크리스는 전문 유격수가 아니야. 유격수 방면으로 타구가 간다면 실수가 나올 확률이 다분해.] [1회를 완벽히 틀어막았어. FS도 킴이 내야로 옮긴 이상 투수는 낮게 낮게 승부하려고 들 거야.]마치 FS의 생각을 읽는 듯이 완벽한 해설이었다.
FS의 작전과 완벽하게 일치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도진이 유격수로 이동한 건 오로지 저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고작 1회를 안전하게 넘겼다고 뷰포드를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2회 말 4번 타자부터 시작하는 뷰포드의 공격.
승리 확률을 높이기 위해 도진은 유격수로서도 마법을 부려야 했다.
* * *
놀란 카브레라가 타석에 들어섰다.
긴장감은 일절 찾아볼 수 없는 평온한 표정의 그는 곧장 타격 자세를 잡았다.
그런 그는 타석에서 자신의 가치를 드러냈다.
따-악!
타구는 우익수 키를 넘기더니 펜스를 직격했다.
우익수는 완벽한 펜스 플레이로 놀란이 3루에 가지 못하도록 묶어놨다.
결과적으로는 장타가 나온 것이지만, 2루와 3루는 천지 차이였다.
“디에고! 괜찮아!”
도진은 손뼉을 치는 행동을 보였다.
그의 언행은 디에고가 짊어진 어깨의 짐을 덜어주기 위함으로 보였지만 이마저도 작전이었다.
‘통할지 통하지 않을지는 모두 내게 달려 있다.’
마이크는 디에고에게 사인을 냈다.
디에고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곧장 2루로 몸을 돌렸다.
도진은 그 즉시 2루 베이스 커버를 들어갔다.
2루 주자가 리드한 틈을 타 견제구로 그를 잡겠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놀란은 반응이 매우 빨랐다.
그는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으로 도진의 태그가 몸에 닿기 전에 베이스를 터치했다.
“세이프! 세이프!”
놀란은 심판의 콜이 들려오자 유니폼을 털면서 일어나더니 입술을 동그랗게 말았다.
“휘유. 견제라. 위험했네?”
도진의 표정은 아쉬움으로 가득했다.
“이걸 사네? 어떻게 되먹은 반사 신경이냐?”
“칭찬 고맙군. 네가 유격수가 아니었다면 긴장을 놨을 수도 있지.”
“유격수로 괜히 복귀한 것 같네.”
도진은 가벼운 대화를 나누며 1루로 공을 던졌고, 1루수는 다시 디에고에게 공을 건넸다.
다시 한번 사인이 나왔다.
마이크는 처음과 전혀 다른 사인을 냈지만, 결과적으론 다시 한번 2루로 견제구를 던지라는 사인을 냈던 것.
하지만 놀란은 FS의 작전에 당해주지 않았다.
그는 이번에도 먼지를 툭툭 털고 일어났다.
“날카롭네. 아쉽긴 하지만.”
도진은 이번에도 1루수에게 공을 던졌다.
그 공은 다시 한번 디에고에게 전달됐다.
‘예상대로 쉽게 당해주지는 않는군.’
하지만 도진의 표정에는 여전히 여유가 있었다.
아직 작전은 끝나지 않았으니 말이다.
‘뷰포드의 5번 타자 부커. 타격이 뛰어나지만, 성격이 급하다는 단점이 있지.’
지금까지 도진의 작전은 놀란을 2루에서 잡겠다기보다는 부커의 인내심을 깎아내리기 위함이었다.
이것이 이번 이닝을 막아낼 시작점이었다.
그 작전은 들어맞았다.
두 번의 견제 플레이로 인해 인내심이 떨어진 부커가 초구부터 배트를 휘둘렀기 때문이다.
몸쪽으로 향하는 공에 스윙한 부커의 타구는 2루수와 유격수 방향으로 쏜살같이 날아갔다.
도진은 이를 악물고 몸을 날렸다.
원바운드조차 되지 않은 타구가 간신히 글러브 끝에 걸렸다.
라인드라이브성 타구. 그대로 아웃이 됐다.
하지만 놀란의 반응 역시 빨랐다.
도진이 재빨리 일어나 2루를 향해 몸을 날려 글러브로 베이스를 태그.
놀란 역시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으로 베이스를 태그했다.
“세이프! 세이프!”
심판의 콜이 들려오자 놀란은 배를 바닥에 깐 채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야. 진짜 미친 수비네.”
도진은 주먹을 말아쥐고 바닥을 쾅 쳤다.
“젠장. 이번에는 진짜 잡을 줄 알았는데.”
두 선수는 몸을 털고 일어났다.
도진은 이번에도 1루 수를 향해 공을 던진 후 놀란을 향해 몸을 돌렸다.
“원래 이래?”
놀란은 고개를 갸웃했다.
도진은 여유롭게 말을 이었다.
“원래 방심 안 하냐고.”
“너라서. 방심하다간 당할 수도 있거든.”
“이거 고마운데? 그런데 말이야. 이미 늦었어.”
도진의 입꼬리가 일순 상승하더니 글러브로 놀란의 어깨를 툭 쳤다.
잠깐 베이스에서 발이 떨어진 놀란은 아차 싶다는 표정으로 서둘러 왼쪽 다리를 뻗어 베이스를 밟았지만.
“아웃!”
도진은 심판의 콜이 들려오자 놀란을 향해 글러브를 펼쳤다.
그 안에는 공이 들어 있었다.
히든 볼 트릭.
지금까지 두 번의 견제구는 모두 실패했다.
하지만 계속해서 1루로 공을 던졌던 이유가 바로 이 한 번의 장면을 위한 것이었다.
‘너를 완벽히 속이려면 한 번으로 불가능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
상대 선수를 집요하게 노려 결국 성공을 거뒀다.
주자가 사라져 어깨가 더욱 가벼워진 디에고는 이닝을 무실점으로 마무리했다.
2회 말.
스코어는 여전히 0:0.
팽팽한 경기 흐름은 모두의 예상을 빗겨나가고 있었다.
* * *
해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히, 히든 볼 트릭!] [와! 이걸 또 보네? 그것도 뷰포드전에서.] [우리가 킴의 히든 볼 트릭 경기를 진행했었잖아?] [잊을 수가 없지. 작년 하이스쿨 인비테이셔널 16강에서 후버를 상대로 농락했잖아? 근데 뷰포드에게도 통했어. 그것도 놀란을 상대로.] [놀란은 실수가 없기로 유명해. 괜히 드래프트 랭킹 1위가 아니야. 타격이나 수비가 훌륭한 것도 있지만, 야구 선수는 실수를 줄이는 게 제일 중요하거든?] [맞아. 놀란은 4년 동안 리그와 하이스쿨 인비테이셔널에서 단 한 번의 실수도 하지 않았어. 그런데 그 실수가 이 중요한 결승전에서 나왔어.] [솔직히 내 의견을 말할게. 실수라고 보기엔 어려워. 이건 그냥…… 하. 킴이 너무 완벽했어. 감탄 밖에 안 나와.]-미쳤다! 뷰포드 상대로 2이닝 무실점! 이거 맞냐고!
-내가 잘 못 보고 있는 거 아니지? 내가 잘 못 보고 있는 거 아니지?
-킴 사랑해! 킴 사랑해!
-뭐해! 경기 중단시켜! 무승부 만들고 당장 메이저리그로 보내!
도진의 활약에 감탄한 건 이들뿐만이 아니었다.
주먹을 말아쥔 캐서린의 두 손은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팀장님! 제가 뭐랬어요? 제가 뭐랬냐고요!”
고작 2회가 끝났을 뿐이다.
경기가 끝나려면 아직 멀었기에 너무 이른 시간의 설레발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2회면 충분하다.
도진은 수비에서 정말 모든 것을 보여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펜스를 넘기는 환상적인 캐치를 시작으로 홈으로 쇄도하는 주자를 어시스트로 잡았다.
거기에 유격수 포지션에서는 환상적인 다이빙 캐치와 더불어 히든 볼 트릭까지.
수비에서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선보이고 있었다.
결승전이며 상대가 뷰포드였음에도 말이다.
고작 수비만으로도 1라운드 상위권에 뽑혀도 이상하지 않은 활약이었다.
팀장은 힘겹게 입을 뗐다.
그의 목소리는 떨렸다.
“하. 하하. 이게. 이게 진짜 말이 되는 건가?”
팀장은 스카우트 출신으로서 선수를 굉장히 잘 보는 편이었다.
도진은 훌륭한 선수임이 확실하지만, 지금 결승전에서 보이는 퍼포먼스는 그저 훌륭하다는 말로는 부족할 지경이었다.
완벽하다.
이 단어를 제외하면 그를 수식할만한 단어는 존재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그를 저평가했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만이 도진을 저평가한 것은 아니었다.
경기장을 찾은 30군단의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
그들은 지금 매우 바빴다.
누구는 펜을 쥐고 메모를 남겼고 누구는 노트북 자판을 두들겼다.
또 누군가는 어딘가로 전화를 걸더니 상기된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제각각 다른 행동을 보이고 있었지만, 호들갑을 떠는 이유는 같았다.
결승전에서마저도 월등한 모습을 보이는 도진의 가치는 쭉쭉 상승하고 있었다.
* * *
3회는 잔잔하게 흘러갔다.
뷰포드의 선발 투수는 FS의 하위타선을 상대로 삼자 범퇴 이닝을 만들었다.
3이닝 퍼펙트. 완벽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디에고는 3회만큼은 삼자 범퇴로 이닝을 마무리 지었다.
그는 여태껏 2명의 주자를 내보내긴 했지만, 도진의 활약으로 삼자 범퇴 급 이닝을 펼친 것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FS의 타자들은 여전히 상대 투수를 뚫어내지 못했다.
4회 초 역시 삼자 범퇴 이닝.
단 한 명의 주자도 출루하지 못했다.
대신 뷰포드는 달랐다.
그들은 전미 최고의 팀임을 증명하듯 타순이 한 바퀴 돈 4회 말에 디에고를 난타했다.
1번 타자 아드리엘이 중견수 앞 안타를 치고 나갔다.
2번 타자 테이어는 3구째 커브를 받아쳐 우중간 펜스를 직격하는 장타를 쳤다.
무사 2, 3루.
수준의 차이를 느낀 디에고는 잔뜩 위축됐다.
3번 타자를 맞이하는 그의 제구력은 형편없었다.
“볼!”
“볼!”
“볼!”
“볼!”
스트레이트 볼넷.
4회 말.
무사 만루.
다음 타자는 하필이면 전미 랭킹 1위 놀란 카브레라.
그는 입꼬리를 한껏 상승시키더니 타석으로 유유히 걸어 들어갔다.
‘숨통을 완벽히 끊어주마.’
놀란은 처음 도진과의 대결을 머릿속에 그렸다.
U-18 대회.
그는 자신을 상대로도 기죽지 않고 완벽한 모습을 보였다.
‘난 네가 이번 대회 결승전에 오를 거란 걸 알고 있었어.’
그뿐일까?
굳건할 것만 같았던 랭킹 1위라는 자리가 위협될 수도 있다고 확신했다.
투타 모두 환상적인 모습을 보이는 타카시 사토 역시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지 못했음에도 말이다.
그런 그가 오늘 자신을 넘어서려고 한다.
이미 지금까지의 상황을 놓고 보자면 그에게 평가가 더욱 몰리기 직전이었다.
‘왕관을 빼앗아 가겠다?’
타석에 들어선 놀란은 배트를 빙글빙글 돌리더니 자신감에 절인 목소리를 쩌렁쩌렁 내뱉었다.
“쿠데타는 불허한다.”
무엇보다 다음 나온 그의 행동은 관중들의 탄성을 불러일으켰다.
외야를 향해 배트를 뻗었으니 말이다.
예고 홈런.
놀란이 선보인 행동이었기에 거만하다고 볼 수 없었다.
지금까지 그가 보인 퍼포먼스라면 충분히 홈런을 생성해낼 만한 선수였다.
하지만 그때.
경기장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그라운드를 가득 메웠다.
[Pitcher change. No. 51 Do Jin Kim.]마운드에 오른 도진은 디에고의 어깨를 도닥였다.
“고생했다. 디에고. 최고의 피칭이었어.”
뷰포드 상대로 3이닝 무실점.
그 어떤 훌륭한 선수도 해내지 못한 기록이었다.
디에고는 고개를 떨궜다.
그의 어깨는 하염없이 떨렸다.
“캡. 죄송합니다. 더 잘 던질 수 있었는데.”
“아니. 넌 뷰포드 상대로 무실점했어. 그거면 충분해.”
디에고는 힘겹게 고개를 들어 올렸다.
무실점.
어디까지나 무사 만루인 이번 이닝을 실점 없이 넘겨야 가능한 이야기였다.
그런데 도진은 무실점 피칭이라면 미리 단정을 지었다.
이 뜻이 무엇이겠는가.
디에고는 손에 쥔 공을 도진의 글러브에 쏙 넣고는 마운드에서 내려갔다.
홀로 마운드에 남게 된 도진은 놀란과 눈이 마주쳤다.
놀란은 도진을 마주하게 됐음에도 다시 한번 외야로 배트를 겨눴다.
‘예고 홈런이라.’
도진은 허! 하고 짧은 탄성을 내뱉더니 이내 입꼬리를 올렸다.
그러고는 글러브 안에서 공을 빼내더니 팔을 뻗어 손에 쥔 공을 그대로 정면을 향해 내밀었다.
예고 홈런에 맞서는 예고 삼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