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seball genius who chews up America RAW novel - Chapter (110)
미국 씹어먹는 야구 천재-110화(110/400)
관중들은 환호를 내질렀다.
서로를 도발하는 이런 광경은 아무리 아마추어라도 쉽게 볼 수 있는 장면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 가운데 놀란은 양쪽 입꼬리가 치솟더니 눈동자에는 환희를 가득 담았다.
‘큭큭큭. 재밌어. 역시 재밌어.’
놀란은 3년 동안 하이스쿨 인비테이셔널을 두 번이나 우승하며 정말 많은 선수를 만났지만, 그는 늘 이런 생각을 했다.
시시하다.
2학년 때부터 뷰포드의 4번 타자를 꿰찬 자신에겐 아마추어 리그는 너무나도 좁았다.
타카시 사토나 몇몇 훌륭한 선수들과의 맞대결에서도 딱히 흥분을 느끼진 못했다.
그렇기에 이렇게 심장이 뛰는 승부는 처음이었다.
‘쉽게 이 자리를 내어줄 수는 없지.’
혜성처럼 나타난 투타 겸업 천재 도진은 우승만 노리는 게 아니었다.
꾸준히 지켜오던 드래프트 랭킹 1위. 이 자리마저 넘보고 있었다.
‘제대로 가려보자.’
뷰포드와 FS 선수로서가 아닌.
그저 개개인의 선수로서 누가 더 우위에 있는지 말이다.
물론 야구에서는 그럴만한 상황이 자연스레 만들어지지 않는다.
더군다나 무사 만루는 자신이 압도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었다.
그런데도 도진이 뿜어내는 기백은 자신마저도 집어삼키려고 들었다.
전미 최고의 타자를 상대로 말이다.
“자! 와서 빼앗아 가봐라!”
놀란은 타격 자세를 잡았다.
* * *
무사 만루.
마운드 위에 선 도진은 헛웃음을 내뱉었다.
‘이놈의 무사 만루는.’
한 번 겪어보기도 힘든 상황을 2년 사이에 도대체 몇 번이나 겪는지.
순간 놀란과 눈이 마주치자 몸이 움찔거렸다.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 때문이었다.
‘빈틈이 없다.’
어디로 던져도 맞을 것만 같았다.
도진은 한숨을 짧게 내뱉고는 주위를 훑어보았다.
FS 선수들과 일일이 눈이 마주쳤다.
저들의 눈은 한결같았다.
‘날 믿고 있구나.’
누군가의 믿음에 보답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더욱이 상대가 전미 최고의 유망주라면 더욱 그랬다.
압박감에 어깨가 짓눌렸다.
도진은 이런 감정이 처음이었다.
‘결승전이라서 그런 건가.’
도진의 고개가 절로 끄덕였다.
두 번은 없다. 정말 마지막 기회다.
도진은 관중석으로 시선을 돌렸다.
학교 응원단이 보인다.
그들은 열렬히 자신의 이름을 외치고 있었다.
그 옆에는 또 다른 익숙한 얼굴이 보인다.
하리가 양손을 맞잡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옆에는.
근 1년 반 만에 만나는 부모님의 얼굴이 시야에 들어왔다.
도진은 피식 웃었다.
이 낯선 땅에서 이렇게나 많은 응원을 받고 있다니.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지.’
내 공을 믿는다.
그리고 기필코 상대를 넘어선다.
놀란이 타격 자세를 잡았다.
마이크의 사인도 동시에 나왔다.
도진은 고개를 한번 끄덕했다.
와인드업.
공은 손을 떠났다.
굉음을 내지르는 투구는 놀란의 몸쪽으로 향했다.
부웅.
스윙이 나왔다.
하지만 공은 스윙을 지나치며 미트에 꽂혔다.
퍼억.
“스, 스트라이크!”
심판의 콜에 이어 관중들의 환호가 이어졌다.
초구부터 전광판의 숫자는 99.
도진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이번 이닝에 임하는지 결과로 드러내 주고 있었으니 말이다.
“휘유.”
놀란은 타석에서 물러서며 휘파람을 불었다.
여유로운 행동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의 미간은 잔뜩 구겨져 있었다.
정비를 끝낸 놀란은 다시 타석에 들어서곤 타격 자세를 잡았다.
도진은 이번에도 사인에 고개를 끄덕였다.
손을 떠난 공은 탑스핀을 잔뜩 머금은 12-6 커브.
이 공은 스트라이크 존을 살짝 벗어났다.
“볼!”
3구도 커브였다.
하지만 일전에 던진 커브보다 빠른 구속의 파워 커브.
놀란은 이번에도 배트를 내지 않았다.
“볼!”
카운트는 2-1.
놀란은 승기를 잡았다는 미소를.
도진은 불리해진 카운트에도 여전히 무표정을 유지했다.
4구째 공이 도진의 손을 떠났다.
한복판으로 향하던 투구는 홈플레이트 앞에서 크게 꺾였다.
놀란은 배트를 냈지만, 공의 아랫부분을 강타.
타구가 뒤로 흐르는 파울이 됐다.
2-2 카운트.
타자와 배터리의 수 싸움은 치열했다.
데일듯한 열기에 선수들의 이마엔 땀이 맺혔다.
도진은 사인에 고개를 한번 저은 후 손가락으로 브이 자를 그려 어깨를 짚었다.
‘체인지업. 체인지업으로 가자.’
마이크가 다급하게 사인을 보냈다.
잘못 걸리면 넘어간다는 의미의 사인이었다.
도진은 그런데도 체인지업 사인을 고수했다.
맞으면 넘어간다.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변화구는 실투가 나오면 넘어가는 법이니까.
하지만 이 방법 말고는 놀란을 잡을 방법이 없다.
실투냐. 아니면 완벽한 체인지업으로 상대의 배트를 끌어내느냐.
‘이겨내지 못한다면 오늘 경기는 불 보듯 뻔해.’
결국 마이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도진은 그 즉시 투구 자세를 잡았다.
예고 홈런과 예고 삼진.
‘정말 그 갈림길에 서게 됐구나.’
등골을 타고 식은땀이 줄줄 흐른다.
글러브 안에 들어간 오른손바닥 역시 땀에 잔뜩 젖어 있었다.
하지만 타자는 아니다.
놀란에겐 여유가 있었다.
무사 만루라는 이점은 그에게 여유를 더해줬다.
빠드득.
도진은 어금니를 강하게 갈았다.
이 갈리는 소리와 함께 공은 던져졌다.
공은 한복판으로 날아갔다.
4구와 같은 코스.
덩달아 놀란은 눈을 번뜩이더니 확신에 찬 스윙을 했다.
‘걸렸다!’
놀란은 이미 체인지업을 제외한 도진의 모든 구종을 눈으로 직접 지켜봤다.
그렇기에 스핀이 걸리는 순간 빠른 판단이 섰다.
‘4구와 같은 투심.’
놀란은 확신했다.
저 공이 투심이 아닐 수가 없다고.
무엇보다 이미 한번 경험해봤기에 타이밍을 완벽히 맞출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놀란의 스윙은 거센 바람만 일으켰을 뿐.
오다가 멈춰버리는 도진의 공과 마주치지 못했다.
퍼억.
“스트라이크 아웃!”
예고 홈런과 예고 삼진의 대결.
그 대결의 승자는 도진이 되었다.
다만 아직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거나 긴장을 늦추기엔 일렀다.
여전히 1사 만루라는 위기를 마주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놀란이라는 거대한 산을 넘은 도진은 5번 타자로부터 유격수 땅볼을 만들었고.
완벽한 병살타로 이닝을 마무리했다.
그제야 FS를 응원하는. 그리고 도진을 응원하는 목소리가 그라운드를 가득 메웠다.
물론 그 직후 다시 그라운드에는 긴장감은 다시 맴돌기 시작했다.
아직 뷰포드를 완벽하게 무너뜨린 건 아니었으니 말이다.
* * *
위기 뒤에는 기회가 오는 법.
5회 초. 도진이 선두타자로 타석에 들어섰다.
그리고 FS의 첫 안타를 그가 만들었다.
따-악!
이어서 페르난도가 타석에 들어섰다.
1루로 나간 도진은 건들거리며 투수를 흔들었다.
그의 주루 능력을 익히 알고 있었던 뷰포드의 배터리는 골머리를 앓았다.
그렇기에 오히려 단순하게 생각하겠다며 초구부터 피치 아웃을 선보였다.
주자가 뛰는 것을 감안하고 공을 완전히 빼서 2루에서 잡겠다는 작전.
하지만 도진은 그들의 생각을 읽고 있었다는 듯 일절 움직이지 않았다.
카운트는 1-0.
도진은 다시 한번 1루 베이스에서 두 발치 떨어지며 건들거리기 시작했다.
언제든 뛸 수 있다.
그러니 타자 말고 자신에게 집중하라며 온몸으로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작전은 먹혀들었다.
투수는 결국 중압감을 이기지 못하고 1루에 견제구를 뿌렸다.
하지만 메이저리거들도 실수하는 판국에 아마추어 선수가 완벽할 수는 없는 법.
중압감을 이기지 못한 투수의 견제구는 1루수의 머리 위로 훌쩍 지나갔다.
도진은 그 즉시 2루로 내달려 손쉽게 베이스에 안착했다.
포수는 투수의 멘탈이 흔들리자 신경 쓰지 말라는 제스처를 보냈다.
FS의 5번부터 9번까지 전부 1학년이었으니 말이다.
포수의 다독임에 투수가 안정을 되찾았다.
하지만 도진은 이를 가만히 보고만 있지 않았다.
‘멘탈 한번 강하네. 타자와의 승부에만 집중하겠다?’
좋은 선택이다.
‘하지만 너무 타자에만 집중하는 거 아니냐?’
투수의 공이 손을 떠나자마자 도진은 곧장 3루로 내달렸다.
페르난도는 스윙하지 않았다.
포수는 미트에 공이 꽂히는 순간 곧장 3루로 공을 송구했지만, 도진의 발이 더 빨랐다.
“세이프! 세이프!”
무사 1루에서 어느덧 무사 3루.
전미 최강 뷰포드가 고작 한국인 한 명에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렇기에 페르난도의 입꼬리가 상승했다.
‘캡. 이번만큼은 보답해드리겠습니다.’
하이스쿨 인비테이셔널 대회 내내 표정이 좋지 못했던 그가 드디어 여유를 찾은 것이었다.
무엇보다 도진의 조언도 계속해서 되뇌었다.
‘당신들 지금 나보다는 잘한다는 거 인정할게. 근데 어차피 졸업하잖아?’
그러니 이건 졸업 선물이다.
페르난도는 흔들리는 투수의 실투를 놓치지 않았다.
따-악!
그는 생에 둘도 없을 만큼 화려한 배트 플립을 선보이며 베이스를 유유히 돌았다.
중견수 방면으로 향하는 타구는 속도를 잃지 않고 그대로 담장을 넘겼다.
2:0.
FS가 선취점을 내었다.
* * *
5회 말. 도진은 7번부터 시작하는 뷰포드의 타선을 완벽히 막아냈다.
이미 4회 무사 만루의 위기를 넘긴 그를 막아설 타자는 없는 듯 보였다.
6회 말에도 삼자범퇴 이닝으로 마무리 지은 FS는 슬슬 승리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하지만 놀란 카브레라부터 시작하는 7회 말.
따-악!
그는 도진의 투심 패스트볼을 받아쳐 담장을 넘겨버렸다.
‘젠장.’
도진은 오만상을 찌푸렸다.
처음으로 실점 후 감정을 표출했다.
스코어는 2:1.
앞서가고 있다기보다는 쫓긴다는 마음이 강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4회에 몸도 제대로 풀지 못한 채 올라왔다.
어깨가 뻐근했다.
피로를 느끼고 있었던 것이었다.
16강에서 9회까지 이닝을 책임졌다.
4강에서도 9회까지 공을 던졌다.
3일의 휴식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일주일간 20이닝을 넘게 던지고 있었다.
투수의 어깨가 완벽히 회복되기에는 너무나도 짧은 시간이었다.
“타임!”
마이크는 도진의 표정을 읽고 곧장 마운드를 방문했다.
“야. 괜찮냐?”
도진은 고개를 끄덕했다.
하지만 그의 낯빛은 어두웠다.
“젠장. 이 새끼 하나도 안 괜찮네. 그냥 내려가라. 너 지금 구위가 시원찮아. 감독님께 내가 말할게.”
마이크가 더그아웃으로 몸을 틀자 도진은 그의 어깨를 잡았다.
“우승이 이제 코앞이다. 지고 싶지 않아.”
“너 그러다 부상으로 이어져 임마!”
도진은 피식 웃었다.
‘그럴 일은 없지.’
중학교 때는 이보다 훨씬 많이 던졌다.
이곳에 와서는 완벽한 관리를 받았다.
고작 이번 주에 조금 많이 던졌다고 다칠 거였으면 어깨는 진작에 망가졌겠지.
“조금만. 조금만 시간 좀 끌자.”
이제 3이닝 남았다.
9개의 아웃카운트만 잡으면 우승이다.
어깨가 올라가지 않더라도 마운드를 지키는 건 자신이어야만 했다.
그것이야말로 FS를 최고의 자리에 올리고.
더 나아가 자신이 최고가 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으니까.
“알았다. 대신 지금부터는 내 말을 들어라.”
“뭔데.”
“맞춰 잡자.”
도진의 눈초리가 가늘게 찢어졌다.
하지만 마이크는 자신의 발언에 뒷받침되는 합당한 이유를 내세웠다.
“9회가 문제야. 놀란을 다시 만날 수밖에 없어.”
놀란을 상대로 맞춰 잡는 피칭을 한다는 것은 홈런을 맞겠다는 거나 다름없었다.
그는 어지간한 투구는 담장을 넘겨버릴 힘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방금의 홈런이 미래를 예고해주었다.
“네가 FS를 결승까지 끌고 온 거 인정할게. 그리고 지금 2:1로 앞서는 것도 온전히 네 덕분이야. 그런데 말이야.”
야구는 혼자 하는 스포츠가 아니라 팀을 믿어야 한다.
그리고 이제는 믿음에 보답해줘야 하는 건 도진이 아닌 팀원들이다.
“구속을 대폭 낮추자. 제구로 승부 보자.”
“내가 제구력이 좋은 투수는 아니잖아.”
“그래도 어쩌겠냐. 상황이 이런데. 전력투구해서 어찌어찌 이번 이닝은 막았다 치자. 다음 이닝부터 허덕일 가능성이 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어깨는 휴식을 달라고 외치고 있었다.
물론 맞춰 잡는다고 휴식이 되는 건 아니었다.
‘대신 9회에도 던질 수 있게 되겠지.’
다만 무실점이라는 전제조건이 붙는다.
FS는 1학년이 야수 절반을 차지한다.
그들을 믿기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도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4회부터 마운드에 올랐을 때.
그들은 자신을 믿고 있었다.
‘이제는 내가 동료들을 믿을 차례다.’
“믿을게. 맞춰 잡자. 나 진짜 이기고 싶어.”
마이크는 도진의 어깨를 툭 쳤다.
“알아 이 새끼야. 나도 이기고 싶어. 한 번이라도 정상이란 자리에 올라 보고 싶다.”
마이크의 목소리엔 간절함이 담겨 있었다.
도진은 그제야 한결 편안해진 마음으로 읊조렸다.
“내려가라. 마무리 지으러 가보자.”
마이크는 마운드에서 내려갔다.
도진은 그 즉시 선수들과 일일이 마주쳤다.
알렉산더는 눈에 불을 켜고 있었다.
페르난도는 어금니를 꽉 깨문 채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선수들도 다르지 않았다.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기필코 점수를 지켜내겠다는 의지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 결과.
뷰포드 타자들은 도진의 공을 때려냈지만, 수비에 가로막혀 출루하지 못했다.
9회 말.
스코어는 2:1.
FS가 여전히 1점 앞선 가운데 2번부터 시작하는 뷰포드의 마지막 공격을 남겨두고 있었다.
* * *
검다.
온 세상이 어둡다.
도진이 바라보는 세상의 모습이었다.
목숨을 거는 것도 아니다.
고작 야구라는 스포츠를 하면서 느낄법한 감정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의 시야는 온전치 못했다.
거친 숨소리는 입 틈을 비집고 하염없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허억. 허억.
어깨에 감각마저 느껴지지 않는다.
이 때문에 구속도 이미 90마일 초반까지 떨어졌다.
그만 던지고 싶다. 이제는 좀 쉬고 싶다.
7회부터 이런 생각이 몇 번이나 머릿속을 괴롭혔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도진은 좋지 못한 감정을 휘어잡겠다고 이를 악물었다.
그러고는 몸을 완전히 틀어 전광판을 쳐다봤다.
9회 말. 아웃카운트 3개를 남겨두고 있었다.
‘조금만 더 버티자.’
어차피 이번 경기가 끝나면 원치 않아도 긴 휴식이 주어질 테니까.
‘무엇보다.’
아마추어로서 마지막 무대.
더는 이 자리에 설 수 없다.
최고의 자리를 눈앞에 두고 있었고, 직접 거머쥘 유일한 기회를 눈앞에 두었다.
하지만 쉽지는 않다.
90마일 후반대의 공을 뿌리던 투수가 90마일 초반대를 뿌린다는 것은 구위마저 처참해졌다는 의미.
이런 공으로 배트에 얻어맞는 순간 쭉쭉 뻗어나갈 게 뻔했다.
맞춰 잡는 피칭?
이제는 불가능하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이판사판이다.’
도진은 사인이 나오기도 전에 곧장 와인드업했다.
마이크는 깜짝 놀라 미트를 고정했다.
하지만 도진이 던진 공에 마이크만 놀란 것이 아니었다.
FS와 뷰포드의 더그아웃도 예상치 못한 공에 흠칫 놀랐다.
타자 역시 다르지 않았다.
50마일도 되지 않은 공이 느릿느릿하게 날아왔기 때문이다.
이퓨즈. 혹은 아리랑볼.
타자는 너무나도 허망한 공에 결국 배트를 냈다.
하지만 준비되지 않은 투구를 맞춰봤자 결과는 불 보듯 뻔했다.
내야도 벗어나지 못한 타구는 도미닉이 가볍게 처리했다.
9회 말. 1아웃.
이제 2명의 타자를 남겨두고 있었다.
여전히 갈 길이 멀다.
뷰포드의 3번 타자가 타석에 들어섰다.
이퓨즈는 더는 통하지 않는다.
정면 승부밖에 답이 없다는 마이크의 사인.
그렇기에 도진이 던질 수 있는 모든 구종의 사인을 냈지만, 도진은 전부 고개를 저었다.
마이크는 당황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싸워준 투수의 뜻을 거스를 수 없었다.
도진이 와인드업하자 마이크는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공이 그의 손을 떠나자 눈이 번뜩였다.
이퓨즈가 아니었으니 말이다.
투구는 한복판으로 향했다.
누가 봐도 실수라고 느낄법한 투구였다.
타자는 놓치지 않겠다며 강력하게 스윙했다.
하지만 홈플레이트 앞에서 꺾이는 도진의 투구는…….
늘 던지던 투심의 방향이 아니었다. 정반대의 방향으로 꺾여버렸다.
그 때문에 타자는 정타를 맞추지 못했다.
파악!
배트의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산산조각이 난 배트를 보면 결과를 알 수 있듯이 타구는 도진에게 데굴데굴 굴러갔다.
도진은 공을 포구 후 1루로 던졌다.
“아웃!”
투심이 아닌 커터.
준비된 것이 아닌 즉석에서 기지를 발휘해서 던진 구종이 통했다.
9회 말. 2아웃.
타석엔 4번 타자 놀란.
그는 어금니를 빠득 깨물며 타석에 임했다.
‘커터라고?’
위력적이어서 놀랐던 것이 아니었다.
예상할 수만 있었다면 홈런을 만들법한 허접한 투구. 전혀 완벽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는 커터를 던졌다.
통한다는 확신이 없었다면 던질 수 없었겠지.
‘빌어먹을.’
9회 말. 1점 차.
놀란은 이제 도진이 자신보다 한 단계 위의 선수라는 것을 인정했다.
만약 그가 온전한 컨디션이었다면.
혹은 조금 더 뎁스가 뛰어난 학교의 선수였다면.
뷰포드는 그를 넘어서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기는 건 나다.’
그는 지쳤다.
‘저런 어쭙잖은 공은 절대 내게 통하지 않는다.’
놀란은 타격 자세를 잡았다.
숨통을 끊겠다는 야수의 눈빛을 뿜어냈다.
지는 그림이 일절 그리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래야만 할 터였다.
손을 떠난 도진의 공은 한복판으로 날아왔다.
부웅.
“스트라이크!”
하지만 놀란의 배트는 애꿎은 허공만 갈랐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90마일 초반대까지 떨어졌던 포심 패스트볼의 구속이다.
그런데 지금 던진 공은 96마일을 기록했다.
도진은 미트에 꽂힌 공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어깨가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넌 이긴다.’
2구 역시 티끌의 힘까지 전부 끌어모아 던졌다.
굉음을 내지르며 날아가는 그의 투구는 정확히 마이크의 미트에 꽂혔다.
“스트라이크!”
관중들이 웅성거렸다.
전광판에 적힌 숫자 때문이었다.
타자 역시 이번에도 헛스윙할 수밖에 없었다.
99마일의 패스트볼. 완전히 예상을 벗어났다.
하지만 놀란은 3구를 앞두고 완벽히 깨달았다.
마운드에 선 투수가 패스트볼 밖에 던지지 못한다는 것을.
투심이나 커터가 아닌 3구 역시 포심 패스트볼일 것임을.
3구.
도진의 선택은 포심 패스트볼이었다.
그는 치켜올린 왼쪽 다리를 바닥에 강하게 내디뎠다.
수만 개의 바늘이 어깨를 찌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지만 이를 악물고 견뎌냈다.
공이 손을 떠났다.
머리에 얹혀 있던 모자는 역동적인 투구 동작에 못 이겨 도진의 머리를 떠났다.
쉐에에에엑!
굉음을 내지르며 포수의 미트로 향해 날아드는 패스트볼.
타자의 스윙이 나왔다.
99마일 포심에 맞춘 스윙이었다.
하지만 놀란은 스윙과 동시에 눈이 번뜩 뜨였다.
퍼엉.
배트가 공이 만났을 때 들려와야 할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미트를 찢어버릴 듯한 소리만이 그라운드를 가득 메웠다.
전광판에는 처음으로 구속을 표기해주는 숫자가 두 자릿수가 아닌.
100.
세 자릿수가 기록되어 있었다.
“스트라이크 아웃!”
그리고 동시에 관중석에서 막대한 함성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겨, 경기가 끝났습니다! 결국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머나먼 바다를 건너 미국까지 넘어온 선수가 하이스쿨 인비테이셔널의 왕관을 거머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