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seball genius who chews up America RAW novel - Chapter (114)
미국 씹어먹는 야구 천재-114화(114/400)
시간은 흘러 어느덧 졸업식을 눈앞에 두었다.
도진은 손에 쥔 종이를 흔들었다.
“어후. 떨려 죽겠네.”
오늘 그는 졸업생 대표로 강단에 서는 날이었다.
“무사 만루도 견뎌내는 놈이 이게 떨리냐?”
마이크가 코웃음을 치자 도진은 그에게 종이를 내밀었다.
“대신 할래?”
“응. 절대 싫어.”
“쯧쯧. 이제 성인을 앞둔 놈이 여전히 애 같냐.”
“지는.”
도진이 마이크와 투덕투덕하는 사이, 교장이 도진을 호명했다.
“오늘 졸업생들 대표로 연설을 맡은 킴. 단상에 올라와 주시길 바랍니다.”
도진은 마른침을 꼴깍 한번 삼킨 후 교장의 옆에 섰다.
교장은 도진을 흐뭇하게 바라보더니 이내 다시 마이크에 입을 갖다 댔다.
“여러분들도 모두 이 학생을 알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FS 첫 아시아인. 그가 어느덧 졸업하게 됐습니다.”
교장은 여유롭게 말을 이었다.
“이 학생은 정말 많은 업적을 남겼죠. 2년 동안 2번의 리그 우승. 하이스쿨 인비테이셔널 8강과 우승을 달성했습니다. 그럼 우리 학교 영웅의 졸업 소감을 들어보겠습니다.”
교장은 도진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마이크를 건네받은 도진은 헛기침을 두 번 내뱉었다.
“안녕하세요. 이 영광스러운 자리에 서게 돼서 제가 다 떨립니다. 막말로 만루에서 마운드에 오르는 것보다도 그렇네요.”
도진은 종이를 쭉 훑더니 이내 고이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FS라는 명문 학교에서 여러분들과 함께 졸업할 수 있게 되어 영광입니다. 차후에도 좋은 교류를 이어 나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는 야유가 들려왔다.
그 가운데 마이크가 입을 열었다.
“DM 답장도 해주지 않으면서! 나가자마자 입 싹 닫고 ‘누구세요?’ 이럴 듯!”
학생들은 마이크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깔깔 웃어대며 환호를 보냈다.
도진은 뒤통수를 벅벅 긁었다.
하지만 그 역시도 이미 이런 상황들을 수차례 겪어봤다.
“개소리는 무시하셔도 됩니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요.”
도진의 대답이 만족스러웠던 학생들은 손뼉을 건넸다.
“응원할게!”
“꼭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해!”
“충분히 잘하리라 믿어!”
“너 나오는 경기는 죄다 챙겨볼 거다!”
도진은 피식 웃었다.
하지만 가슴만큼은 뭉클했다.
처음엔 미국이 지옥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지.’
오히려 더욱 훌륭한 경험을 할 수 있어서 야구 선수로서도, 인간적으로도 성장할 수 있었다.
그렇게 도진의 고등학교 졸업식은 끝이 났다.
* * *
졸업식이 끝났다고 곧장 학교를 떠나는 건 아니었다.
도진에게는 졸업식보다 중요한 일이 남아 있었다.
야구부 일원들과의 마지막 인사였다.
꽃다발을 한 움큼씩 손에 쥔 도진, 마이크 그리고 알렉산더는 감독의 옆에 섰다.
도널드 감독은 오늘만큼은 천금 같은 미소를 유지하며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이 셋은 오늘 FS를 은퇴한다.”
선수들은 힘껏 손뼉을 치며 축하를 건넸다.
도널드 감독은 만족스럽다며 고개를 끄덕 후 말을 덧붙였다.
“너희도 알고 있겠지만, 이 친구들은 저마다 다른 길을 걷게 됐다. 하지만 누구도 야구를 등한시한 적은 없다. 어떤 일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결국 성공하기 마련. 남아 있는 너희들은 이 선수들을 본받았으면 좋겠구나.”
도널드 감독은 알렉산더를 힐끗 쳐다봤다.
발언권을 얻게 된 알렉산더는 고개를 한번 끄덕했다.
“모두 고마웠다. 덕분에 최고의 위치에서 은퇴할 수 있게 돼서 더할 나위 없이 기쁘다. 나중에 내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다면 언제든지 연락했으면 좋겠다.”
다음은 마이크가 입을 열었다.
“나는 이 두 놈 때문에 고생 꽤 했지. 자격지심? 장난 아니더라고. 그런데 말이야. 결국 최선을 다하니 따라갈 수 있더라. 너희들도 충분히 잘 해내리라 믿는다.”
마지막으로 도진이 입을 열었다.
“너희는 FS가 왕조를 건설할 수 있는 서막에 참여했다고 본다. 그러니 꼭 왕관을 지켜주길 바란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임하다 보면 밝은 미래가 보일 거다.”
페르난도가 손을 번쩍 들었다.
“그런데 알렉산더나 마이크 선배야 야구판을 떠나는 거지만, 선배는 아직이잖아요?”
“그렇지?”
“그러면 계약 전까지 여기 남아서 운동이나 하세요.”
“으잉?”
페르난도는 도진에게서 시선을 거두더니 도널드 감독을 쳐다봤다.
“가능하지 않나요?”
“물론 가능하지.”
도진은 두 눈을 끔뻑였다.
메이저리그 드래프트까지 아직 한 달이나 남았다.
자신도 그때까지 그저 놀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이 좋은 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면?
몸 관리를 더욱 철저하게 할 수 있다.
이번에는 도진이 먼저 물었다.
“정말 그래도 괜찮나요?”
“물론이지. 이사장님이나 교장 선생님도 허락하실 거다. 당분간 어차피 신입생들을 받는 건 아니라서 기숙사도 널널할 테고.”
숙식 제공에 이어 최고의 시설을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다.
도진은 굳이 거절하지 않았다.
“9월까지만 신세 좀 지겠습니다. 그래도 주장은 바뀌어야겠죠?”
도널드 감독은 고개를 끄덕했다.
도진은 선수들과 일일이 눈을 맞췄다.
“정했습니다. 제 선택은.”
도진의 시선이 페르난도에게로 향하자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역시 올드 맨! 보는 눈이 있다니까?”
“FS의 다음 주장은 디에고입니다.”
도진의 시선은 정확히 페르난도의 옆에 앉은 디에고로 향했던 것이었다.
페르난도는 나라를 잃은 표정을 지었다.
“아, 아니 왜!”
“주장은 화를 참아야 해.”
“저도 참을 수 있어요!”
“아니. 넌 참지 마.”
페르난도가 참는다고?
그런 모습은 상상도 할 수 없을뿐더러 그는 팀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괜히 주장이라고 이것저것 참다가 기량이 떨어질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다, 다시 생각해봐요!”
“응. 디에고.”
페르난도는 절규했다.
“당신! 두고 봐! 내가 메이저리그 올라가서 홈런 갈겨 버릴 거야!”
* * *
당분간 FS에 남게 된 도진은 마음이 굉장히 편했다.
안 그래도 계약 후 돈을 받기 전까지 여러 비용이 들어가는데, 그걸 줄일 수 있었으니 말이다.
“일단 남게 됐으니 후배들 연습을 좀 도와줘야겠다.”
도진은 도널드 감독의 제안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했다.
도널드 감독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띠었다.
“이제 프로로 올라가는데 조급함이 전혀 없구나.”
맥락 없이 나온 말임에도 도진은 도널드 감독의 말뜻을 이해했다.
프로를 앞둔 도진은 지금 누구보다 몸 관리가 중요하다.
그런데 다른 선수들 연습을 돕게 된다면 그만큼 개인 훈련 시간이 적어진다는 뜻.
그럼에도 도진이 흔쾌히 도널드 감독의 제안을 수락한 것을 보고 한 말이었으리라.
도진은 괜찮다는 듯 씩 웃으며대답했다.
“선수들을 돕다 보면 저 역시도 깨닫는 바가 있을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그래. 매번 같은 루틴을 이어 나가는 것도 좋지만, 새로운 것을 통해 배울 수도 있는 법이지. 특히나 이제는 완전히 새로운 세상으로 떠나는 네게 충분히 도움이 될 거다.”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 필요한 거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도 된다. 이곳을 졸업했어도 너는 FS 학생이니까.”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그때 제니퍼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감독님. 킴 좀 빌려 가도 되죠?”
도널드 감독은 손을 휘휘 저었다.
데리고 가도 된다는 의미였다.
제니퍼는 도진은 구석으로 데려갔다.
“킴. 이제 슬슬 홀로서기를 눈앞에 두고 있잖아요?”
“그렇지?”
“제가 필요한 것들 몇 개 알려드려도 될까요?”
도진은 당황했다.
이제 고등학교 2학년 올라간 아이가 자신에게 홀로서기에 대해 알려준단다.
제니퍼는 도진의 표정을 읽고 콧대를 세웠다.
“후후. 어리다고 얕보시다니.”
그러더니 느닷없이 핸드폰을 꺼내 셀카를 찍었다.
엉겁결에 사진이 찍힌 도진은 두 눈만 끔뻑였다.
“사진은 왜?”
“킴. 뭐 필요한 거 없어요? 먹을 거라든가.”
“먹을 거? 학교에서 잘 나오잖아?”
“아뇨. 학교에서 나오는 것들 말고요. 예를 들어 우리 오빠는 단백질 크레아틴 같은 종류를 죄다 챙겨 먹던데요? 이제 킴도 슬슬 그럴 때 되지 않았나요?”
“그렇긴 하지.”
도진은 지금까지 몸을 억지로 키우려고 들지 않았다.
성인이 될 때까지는 알아서 몸이 자랄 수 있을 만큼 자라길 바랐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몸을 훨씬 키워야 한다.
189cm에 80kg는 야구 선수로서 그리 좋은 몸은 아니다.
물론 한때 지구 1선발이라 불렸던 제이콥 디그롬 역시 자신과 비슷한 체형이긴 했다.
그는 뛰어난 유연성을 바탕으로 강속구를 뻥뻥 뿌렸다.
하지만 도진은 투타 겸업이다.
그리고 성인 무대에서는 기술적인 타격도 중요하지만, 힘 적인 부분을 결코 등한시해서는 안 된다.
피지컬 차이 때문에 한국에서 30홈런 이상을 우습게 때려내는 타자가 메이저리그에서는 10홈런밖에 치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니까.
‘몸을 키워야지. 그러면 구단과의 계약에서 플러스 요인이 될 수도 있어.’
“제니퍼. 고마워. 도움이 많이 됐어. 그런데 사진은 왜 찍은 거야?”
제니퍼는 대답 대신 도진에게 핸드폰을 내밀었다.
방금 찍은 사진은 그녀의 SNS에 올라가 있었다.
무엇보다 문구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협찬?”
“네. 굳이 돈 쓸 필요 없잖아요. 물론 제가 아니라 킴이 직접 해도 돼요. 근데 킴은 SNS 공포증 있잖아요. 그래서 이번만큼은 제가 대신해줬어요. 슬슬 반응이 올 텐데? DM 열어보시겠어요?”
도진은 그녀의 말마따나 DM을 열었다.
그러자 다양한 회사들의 연락이 속속히 들어와 있었다.
전부 운동에 필요한 보충제를 협찬해주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역시. 모두가 킴을 놓치고 싶어 하지 않나 보네요.”
“하, 하하.”
헛웃음이 절로 튀어나왔다.
사람은 성공해야 한다는 말이 조금은 와닿는 순간이었다.
“이거 진짜 다 공짜로 주는 거야?”
“그렇죠? 계약 기간에 따라 제품 사진 몇 개 찍어서 SNS에 올리면 끝! 그리고 돈도 받고요.”
“보충제도 공짜고 돈까지 받는다고?”
“그렇죠? 꽤 받을걸요? 알렉산더 오빠가 얼마 받더라? 홍보 3회에 2만 불이었나?”
“고작 사진 3개 올리고 2만 불을 받는다고?”
“네. 알렉산더 오빠는 엄청 유명하잖아요. 물론 킴은 알렉산더 오빠보다는 덜하지만, 대우가 섭섭하지는 않을 거예요.”
알렉산더는 미국인이자 미식 축구에서마저도 이름을 날렸다.
당연히 도진보다 인지도가 월등히 높았다.
“물론 팁을 좀 드리자면 계약 기간은 최대한 짧게 하는 게 좋아요. 킴이 구단과 계약한 이후라면 더 좋은 조건들이 올 거거든요.”
“이 DM 중 하나 골라서 답장하면 돼?”
“네. 그러면 계약서 들고 직접 방문할 거예요.”
도진은 인플루언서의 힘이 대단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직접 체감해보지 못해 쉽사리 믿을 수 없었다.
그래도 밑져야 본전이다.
다양한 시도는 도전해봐도 괜찮았다.
물론 생각과는 다르게 첫 난관에서 막혀버렸다.
“어디랑 해야 하지?”
제니퍼는 고민하지 않았다.
“여기 괜찮을 거예요. 캘리포니아 회사거든요.”
* * *
계약은 일사천리로 해결됐다.
제니퍼의 말마따나 계약하겠다고 하자 곧장 계약서를 보내왔다.
물론 제품도 함께 도착했다.
일주일에 1번씩 한 달에 총 4번.
먹는 모습 사진만 찍어 올리면 끝난단다.
그리고 돈은.
‘1만 불이나 받다니.’
도진은 돈이 부모님에게 전달되길 바랐다.
계약한 회사 측에서도 부모님에게 전달해준다는 약속을 받았다.
드래프트 계약서에 사인하기 전까지 달라진 모습을 보이려면 운동에만 매진해야 하는 도진은 돈이 당장 필요하지 않았다.
그렇게 FS와 합동 훈련으로 평화로운 나날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드래프트를 앞둔 구단들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