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seball genius who chews up America RAW novel - Chapter (117)
미국 씹어먹는 야구 천재-117화(117/400)
따-악!
따-악!
경쾌한 타격음이 울려 퍼지는 FS의 실외 연습장.
타격 연습을 마친 도진은 케이지를 벗어났다.
제니퍼는 도진에게 수건을 건넸고, 옆에 있던 페르난도는 입술을 삐쭉 내밀었다.
“미친! 몸 커지니까 장타 쭉쭉 뽑아내는 거 보소! 진작에 몸 좀 키우시지.”
도진은 수건으로 이마를 닦아낸 후 피식 웃었다.
“몸을 키웠다면 더 좋은 성적을 낼 수는 있었겠지. 하지만 난 네가 아니란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도진은 그대로 바닥에 털썩 앉았다.
제니퍼와 페르난도도 도진의 좌우에 나란히 앉았다.
“그야. 난 미국인이 아니니까. 동양인 특성상 후천적으로 몸을 키워야 하거든.”
정말 극소수의 선택받은 유전자를 제외하면 동양인은 서양인과 비교하면 체구가 작다.
하지만 후천적으로 몸을 키울 때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대표적인 예가 밸런스였다.
몸이 급격하게 자라면 투구 밸런스가 깨진다.
밸런스가 깨지면 제구, 구속, 구위 전부 잃을 수도 있다.
그렇기에 제일 중요한 건 시간이었다.
밸런스를 유지하며 몸을 키울 수 있는 시간이.
하지만 미국에서 야구를 다시 시작하게 된 도진은 목적을 달성하고자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렸다.
그런 도진에겐 몸을 키울 시간이 있을 리 만무했다.
“난 3학년 때 야구부에 입부해서 4학년까지 오로지 기량 상승에만 초점을 맞췄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여유가 있다?”
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페르난도. 넌 잘 알잖아. 메이저리그 구단과 계약하면 결국 마이너리그는 필수로 거쳐야 하잖아.”
“그렇죠. 고졸 루키가 바로 메이저리그를 밟는 경우는 현대 야구에는 없죠. 역대 드래프트 중 SSS급 선수로 평가받았던 브라이스 하퍼도 마이너리그에서 2년이나 보냈잖아요.”
“응. 나 역시도 마찬가지겠지. 그래서 지금이 딱 몸을 키울 적기야.”
페르난도는 손으로 턱을 만지더니 미간을 구겼다.
“흠. 역시. 구 캡틴은 똑똑하네. 나도 그래야 하려나?”
도진은 고개를 저었다.
“뭐. 네가 얼마나 자랄지는 모르겠지만, 지금도 훌륭하다고 본다. 넌 선, 후천적인 것을 따질 필요가 없어.”
진심이었다.
그리도 도진은 내심 페르난도가 부럽기도 했다.
자신은 알렉산더, 마이크와 마찬가지로 몸을 키우기 위한 운동을 따로 했지만, 페르난도는 딱히 근력 운동을 안 했고, 이제 겨우 2학년임에도 완성된 신체를 보유하고 있었다.
제니퍼가 도진의 옷깃을 잡았다.
“킴! 대화 끝났죠? 가실까요?”
제니퍼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도진도 그녀의 뒤를 따랐다.
둘이 도착한 곳은 실외 야구장 2층 관중석이었다.
그곳엔 어울리지 않은 무테안경을 낀 마이크가 노트북을 두들기고 있었다.
그는 도진을 힐끗 확인하더니 무심하게 내뱉었다.
“왔냐.”
“네가 불렀잖아.”
“앉아라.”
도진이 착석하자 마이크는 노트북 화면을 그에게 슥 밀어 보여줬다.
그러자 도진이 타격과 투구하는 동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일단. 네 영상은 깔끔하게 편집해서 올렸다.”
“고맙다. 밥 한번 살게.”
“안 그래도 비싼 거 먹을 생각이다.”
마이크는 UCLA에 입학하게 됐다.
하지만 입학하기 전까지는 도진의 매니저를 자처했다.
도진의 가치를 높이고자 신체 훈련을 돕거나 이렇게 영상을 편집해서 인터넷상에 올렸다.
무엇보다.
“근 한 달 반 사이에 17파운드나 몸무게가 늘고 근육량도 상당히 붙어서 그런지 타격에서는 힘이 느껴져. 그런데 확실히 투구에서는 밸런스가 가끔 깨진다.”
도진은 한 달 조금 넘는 시간 몸을 키우는 데 주력했다.
그 덕분에 지금은 키 189에 86kg까지 체격이 상승했다.
“어. 나도 느껴진다.”
“정확히 어떤 부분에서 밸런스가 깨지는 게 느껴지는데?”
“예전처럼 던지면 너무 약하게 던지는 것 같고, 그렇다고 힘을 주자니 밸런스가 깨져.”
마이크는 만족스럽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가 문제인지를 알고 있으니 고치는 게 어렵지는 않겠지.”
“하지만 시간이 좀 걸리지 않을까? 단기간에 바로 밸런스를 찾는 건 힘들 것 같은데.”
“그래도 상관없어.”
“상관없다고?”
“어.”
마이크는 무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상관없어. 네가 아무리 다양한 구단들의 눈독을 받고 있을지라도 유망주일 뿐이야. 드래프트는 즉시 전력감을 뽑는 게 아니란 말이지.”
선수가 얼마만큼이나 발전할 가능성이나 의지가 엿보이는가.
포텐은 기량만큼. 어쩌면 더 중요시하는 부분이었다.
“게다가 이걸 봐라.”
마이크는 화면을 전환했다.
도진이 지금까지의 타격했던 기록을 작성해 놓은 엑셀이었다.
단타, 장타, 홈런 깔끔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연습 타격이긴 한데, 타구의 질이 계속해서 좋아지는 게 보이지?”
“타격에서는 나도 좋아진 게 느껴져.”
“어차피 메이저리그 기준으로 네 약점을 꼽자면 타격이야. 그리고 넌 투타 겸업을 할 생각이잖아?”
도진은 투타 겸업을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자신이 생각하는 최고의 선수란.
투타에서 모두 MVP를 수상하는 것이었다.
“응. 계속해 봐야지.”
“구단들은 전부 네 타격을 걱정할 거다. 아무리 수비와 선구안이 좋아도 타격이 구리면 반쪽짜리 선수니까. 그런데 밸런스가 살짝 흐트러지긴 했어도 갑자기 타격이 상승해서 온 걸 보면 과연 구단들 입장에서는 걱정이 클까, 기쁨이 클까?”
“기쁨이 크겠지. 밸런스야 다시 잡으면 되니까.”
“내 말이 그거다.”
도진은 마이크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고맙다.”
“징그럽다. 손 떼라.”
도진은 큭큭 웃었다.
“그런데 너 진짜 분석가도 잘하겠네.”
“원래 잘했어. 병신아.”
“마케팅도 잘하는데?”
“네가 아무것도 모르는 거야.”
“어. 그건 인정해.”
하지만 그래서 더욱 고마웠다.
제 일이 아님에도 이렇게 발 벗고 나서준다는 것이.
물론 마이크도 얻어가는 게 있겠지만, 자신이 얻어가는 것에 비하면 새 발의 피였다.
도진은 열을 올려 자신의 데이터를 꼼꼼히 작성하는 마이크를 힐끗 쳐다봤다.
‘고맙다 꼭 보답할게.’
* * *
훈련이 끝난 도진은 카페로 이동해 하리를 만났다.
“볼수록 커지네?”
도진은 오른손으로 뱃살을 집어봤다.
단단히 잡힌 복근 때문에 집히지는 않았지만, 왠지 커졌다는 말에 배부터 확인했다.
“요즘에 진짜 먹기만 하는 것 같아.”
“그래도 이제 좀 야구 선수 같은데? 전에는 좀 마르긴 했지.”
“그래? 일단 음료 주문하고 올게!”
도진은 음료를 주문 후 다시 자리에 앉았다.
“요즘 어때?”
“나는 한가하지. 대학 들어가면 조금 바쁘려나?”
하리는 하버드 로스쿨에 합격했다.
‘말로만 듣던 하버드 법대라니.’
도진이 혀를 내두르며 얼빠진 표정을 짓자 하리는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이제 드래프트가 일주일 남았으니 계획을 좀 세워보자.”
“계획? 우리가 세울 계획이 있어?”
하리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었다.
“물론 있지. 그 전에 도진이는 계약금을 얼마나 받고 싶어?”
“나야 솔직히 말하면 500만 달러 정도는 받고 싶지.”
“뭐야. 왜 이렇게 자신이 없어? 2,000만 달러의 사나이가.”
도진은 학을 뗐다는 표정을 지었다.
“마이크가 한 달 내내 저 금액에 절대 사인할 리 없으니까 까불지 말라고 했어.”
하리는 입을 가리며 웃었다.
“틀린 말은 아니지. 초 대어라도 구단은 2년 동안의 1라운드 드래프트까지 포기하면서까지 선수를 잡지는 않으니까.”
도진은 옛 기억을 떠올리며 얼굴이 시뻘게졌다.
처음에 2,000만 달러 계약을 안겨준다길래 어깨 뽕이 하늘 끝까지 솟아올랐다.
하지만 마이크에게 드래프트에 관해 자세히 듣고 나서 모두 거짓이란 걸 알았다.
‘망할 찌라시.’
“그래도 좋은 소문이잖아. 적어도 한 개의 구단이 도진이를 원하는 거니까.”
“그건 그렇지. 혹시나 프로에 가지 못한다면 어쩌나 싶었거든.”
계약이 성사될 것이란 걸 알고는 있었지만, 아무래도 드래프트가 다가오자 불안감이 커졌다.
하리는 자신이 걱정하는 부분을 아는 듯 보였다.
“나는 도진이 네가 500만 달러 이상의 계약은 무조건 할 거라고 확신할 수 있어.”
“확신까지?”
“응. 솔직히 도진이 네 꿈을 알고 있지만, 만약 메이저리그 구단들이 네게 500만 달러 계약을 제시한다면 대학을 가는 게 나을 정도라고 생각해.”
500만 달러다.
한화로 60억이 넘는 금액이다.
그걸 포기하고 대학이라.
도진은 패닉에 빠졌다.
하리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에이. 말이 그렇다는 거지. 넌 그보다 훨씬 가치 있는 선수니까. 일단 이걸 좀 볼래?”
하리는 가방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도진에게 내밀었다.
근 3년간 드래프트 데이터였다.
1위부터 3위까지 얼마에 계약했는지 액수까지 나와 있었다.
“금액이 전부 다 다르긴 한데. 최소 금액이 700만 달러잖아?”
“그렇긴 한데. 얘넨 미국인이잖아.”
“음. 솔직히 도진이 너는 한국인이란 이유로 가치가 깎이긴 하겠지…….”
도진이 시무룩한 표정을 지을 새도 없이 하리는 다른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이건 올해 구단이 네게 제시할 드래프트 예상 금액.”
캔자스시티 로열스-750만 달러.
LA 에인절스- 1,100만 달러 이상.
뉴욕 양키스- 1,100만 달러 이상.
밀워키 브루어스- 700만 달러.
도진의 시야를 사로잡는 구단은 다름 아닌 LA 에인절스와 뉴욕 양키스였다.
“내가 정말 이 금액을 받을 수 있다고?”
“응. 난 그럴 수 있다고 봐.”
도진은 어떻게? 라는 표정으로 하리를 쳐다봤다.
“로열스는 스몰 마켓이야. 뉴욕 양키스의 찌라시 때문에 네게 제안하지 않을 가능성이 커. 그럼에도 만약 저들이 도진이 너를 선택한다면 저 금액이 한계일 거야. 물론 저들 입장에서는 최고의 대우긴 하지만.”
하리는 여유롭게 말을 덧붙였다.
“그런데 에인절스와 양키스는 상황이 조금 달라.”
에인절스는 LA 스타를 영입하는 것에 사활을 걸 테며 뉴욕 양키스는 언제나 최고를 원한다.
그렇기에 천만 달러 이상을 도진에게 제안할 가능성이 높았다.
“정말 혹시나 4번째로 넘어가면 밀워키가 저 금액 정도를 제시할 거야. 4번째로 밀렸다는 건 그만큼 싸게 후려칠 수 있다는 뜻이거든.”
드래프트에서는 어떤 구단이 누구를 선택할지 자신들만 알고 있다.
그렇기에 선수가 훌륭한 퍼포먼스를 펼쳤다고 자만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런 걱정거리는 도진에게 해당하지는 않았다.
도진은 훌륭함을 넘어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펼쳤기 때문이다.
“아무튼 어떤 구단이 제안하든 간에 500만 달러는 넘을 거야. 게다가 지금까지 꾸준히 달라진 영상을 올렸지? 그거 때문에라도 구단들은 더욱 고민하고 있을 거야.”
끊임없이 노력하는 도진의 모습을 싫어할 구단은 없었다.
하리는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니까. 도진이 네가 쐐기를 박으면 돼.”
“쐐기? 내가 드래프트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뭔가를 할 수 있다고?”
하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도진의 옆으로 다가가 앉았다.
“SNS 열어서 내가 해주는 말만 받아 적어볼래?”
도진은 SNS에 접속했다.
그러자 하리는 천천히 한 글자씩 또박또박 얘기했다.
“내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고 싶습니다.”
도진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하리를 쳐다봤다.
그렇게 써도 되냐고 묻는 것이었다.
여기서 적절한 평가라는 것은.
에인절스와 양키스가 생각하는 그 금액.
1.000만 달러 이상이었다.
오로지 실력만으로 놓고 본다면 충분히 그 이상의 가치를 하고도 남는다는 것을 본인이 제일 잘 알았다.
그런데도 글자를 적어 넣은 도진은 잠깐 머뭇거렸다.
하지만 하리의 눈동자에는 일말의 떨림도 없었다.
‘그래. 내 가치는 내가 정해.’
도진은 결심을 내렸다는 표정으로 확인을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