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seball genius who chews up America RAW novel - Chapter (121)
미국 씹어먹는 야구 천재-121화(121/400)
“미스터 킴. 반갑습니다. 에인절스 부단장 레너드입니다.”
레너드는 도진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도진은 손바닥을 옷에 문지르고는 그가 내민 손을 맞잡았다.
“도진 킴입니다.”
그 즉시 코비도 도진에게 손을 뻗었다.
“에인절스 스카우트 팀장 코비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이내 레너드와 코비의 시선은 하리에게 향했다.
“오. 킴의 여자친구입니까?”
하리는 입술에 힘을 살짝 주었다.
“대리인입니다.”
레너드와 코비의 눈이 순간 희번덕였다.
하리는 주도권을 놓치지 않겠다며 말을 덧붙였다.
“일단 첫 미팅에 앞서 이 부분을 먼저 봐주시겠어요?”
하리는 도진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도진은 곧장 실내 연습장의 마운드에 올랐다.
진작에 몸을 풀었던 도진은 곧장 투구에 돌입했다.
퍼억.
퍼억.
연달아 과녁에 꽂히는 패스트볼.
하리는 눈만 힐끗 돌려 둘의 반응을 살폈다.
‘만족스러워하고 있어.’
하리는 이 틈을 놓치지 않았다.
“직접 보셔서 아시겠지만, 고작 두 달도 되지 않은 짧은 기간 동안 신체적으로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하리는 미리 준비해둔 스피드 건을 스카우트에게 내밀었다.
퍼억.
퍼억.
힘차게 꽂히는 패스트볼은 굳이 스피드건으로 잴 필요도 없이 훌륭했지만, 언제나 협상에서 중요한 건 증거였다.
레너드는 코비에게 나지막이 읊조렸다.
“구속은?”
“99마일에서 100마일입니다.”
“꽂히는 소리도 예사롭지 않은데?”
코비는 레너드만 들을 수 있도록 속삭였다.
“네. 신체가 급격히 자라 밸런스가 무너지기는 했지만…….”
하리는 둘의 대화가 들리지는 않았지만, 쉽게 유추해볼 수 있었다.
밸런스가 무너졌다. 성장기 선수면 겪는 문제였다.
하지만 도진은 밸런스가 무너지는 와중에도 100마일을 던져대고 있었다.
하리는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말했다.
“물론 킴의 신체가 아직은 완벽하다고는 볼 수 없겠지만, 아시다시피 2년 내내 단 한 번도 발전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런 그가 에인절스 소속이 된다면? 최고의 구단에서 더욱 큰 발전을 이루리라 믿습니다.”
레너드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이내 헛기침을 내뱉었다.
“큼큼. 킴. 거기까지만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코비도 서둘러 말을 덧붙였다.
“잠깐 부단장님과 대화 좀 나눠보고 오겠습니다.”
둘은 그렇게 실내 연습장을 잠시 벗어났다.
도진은 케이지에서 나오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휴. 긴장돼서 혼났네. 반응은 어땠어?”
하리는 눈웃음을 그리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성공인 것 같아.”
도진은 안도의 한숨을 뿜어냈다.
“하아. 다행이네. 고마워. 진짜 고마워.”
하리는 고개를 저었다.
어디까지나 도진이라서 이런 작전이 먹혀들었던 것이었다.
* * *
레너드와 코비는 실내 연습장을 벗어나 학교 정문에서 담배를 입에 물었다.
코비는 으름장을 놓았다.
“어휴. 예상치 못한 복병도 모자라 이런 경우는 처음이네요.”
레너드는 동의한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1라운드 선수의 쇼케이스라니. 내 할 말을 잃었네.”
쇼케이스란 무엇인가.
자신의 기량을 사람들에게 어필하는 것이다.
야구에서는 대부분 눈에 띄는 활약을 펼치지 못한 선수들이 달라진 모습을 구단에 어필하는 것.
하지만 도진은 이번 드래프트 최대어였음에도 쇼케이스를 선보였다.
비록 투구만 선보인 단출한 쇼케이스였지만, 그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미국인 대부분이 계약을 앞두고 있을 땐 당연히 돈 얘기를 제일 먼저 꺼낸다.
그런데 도진은 돈 얘기를 꺼내는 대신 꼬투리를 잡아 협상에 우위를 가져가겠다는 작전을 방지하겠다는 듯 나왔다.
“밸런스가 무너진 상태에서도 정확히 100마일의 공을 스트라이크 존에 꽂았습니다.”
“나도 알고 있다네. 그러니 일단 작전은 틀어졌군. 현실적인 안을 말해보게.”
“현실적인 안이라…… 정면 승부밖에 없습니다. 1차 협상이라고 킴의 가치를 낮게 책정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도진이 이번 쇼케이스를 통해 자신들에게 어필한 것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여전히 자신의 기량이 훌륭하다는 것.
다른 하나는 끝없는 발전을 이루겠다는 무언의 다짐이었다.
“확실히. 내가 보기에도 웬만해서는 메이저리그를 밟을 것 같군.”
“동의합니다. 특히나 저희는 저런 선수를 보유한 적이 있지 않습니까?”
“그랬지. 정말 야구밖에 모르는 오타니 쇼헤이의 모습이 보였네. 드래프트 당일에도 공을 던지다니. 저 선수라면…… 무조건 성공할 것 같군.”
“네. 무엇보다 오늘만이 아닙니다. 킴은 지금까지 단 하루도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아시아인들이 원래 다 저런가 싶기도 합니다.”
“그럼 미끼로 1,000만 달러의 계약을 제시하는 게 좋아 보이는가?”
첫 협상에서부터 큰 금액을 부르는 구단은 호구나 다름없었다.
코비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킴의 대리인이 예상외로 날카롭지만 그래봤자 어린 여성이죠. 그러니 최대한 싼 금액으로 시작하시죠.”
“그래. 이만 들어가지.”
* * *
넷의 대화는 도널드 감독의 사무실에서 이어졌다.
코비는 서류 가방에서 계약서를 손에 쥔 채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일단 저희 에인절스는 킴을 간절히 원합니다. 그리고 저희가 킴에게 제시하는 금액은 이렇습니다.”
코비는 계약서를 내밀었다.
도진은 그 계약서를 받아 들고 금액을 확인했다.
$10,000,000.
천만 달러.
한화로 100억이 훌쩍 넘는 금액이었다.
코비는 전문가답게 도진의 눈이 휘둥그레지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최근 드래프트 금액 중 단언 최고의 대우라고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사실이었다.
근 15년 사이 1,000만 달러 이상의 드래프트는 없었다.
하리는 도진에게 물었다.
“어때?”
“이 정도면 최고의 대우 아니야? 나는 좋은데?”
무려 1,000만 달러 계약이다.
계약서를 받기 전까지만 해도 500만 달러를 생각했던 도진에겐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어마어마한 금액이었다.
“그래? 난 좀 부족해 보이는데.”
하리의 발언은 도진에게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다.
“이, 이게 부족해?”
“일단 에인절스는 진심으로 널 원하고 있어. 그런데 이 금액이라면 도진이는 만족해도 나는 못 해.”
도진은 그녀의 눈을 멍하니 쳐다봤다.
하지만 미세한 떨림조차 없는 그녀의 눈동자에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부탁할게.”
“맡겨줘.”
하리는 계약서를 양손으로 쥐더니 미소를 띠었다.
아름다운 소녀의 미소였을 뿐이었지만, 그 미소를 접한 레너드와 코비의 등골은 순간 오싹해졌다.
“에인절스의 진심. 잘 봤습니다.”
웃는 표정과는 다르게 한기가 맺힌 목소리.
둘의 대화가 한국말로 이어졌던지라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하리의 태도로 보아 레너드와 코비는 무언가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 잠깐만요.”
“이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을 뿐입니다! 조금 더 대화해보시죠.”
하리는 순진무구한 표정을 유지했다.
“어? 제가 뭐라고 했던가요?”
이번만큼은 하리의 목소리에 한기는 없었다.
당했다는 것을 인지한 레너드와 코비는 혀를 내둘렀다.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에인절스가 킴에게 제안할 수 있는 금액의 한계는 이 정도입니다.”
코비는 서둘러 펜을 꺼내 종이에 숫자를 적었다.
$12,000,000.
하리의 ‘에인절스의 진심을 잘 봤다’는 말 한마디로 20억 이상이 올랐다.
물론 정확히는 하리의 한마디 때문이라기보다는 도진을 놓치기 싫은 에인절스의 간절함의 더 큰 원인이기는 했다.
하지만 이 결과를 이끌어낸 게 하리인 것도 사실이었다.
게다가 아직도 하리는 만족하지 못하는 듯했다.
“이제야 대화가 좀 통할 것 같네요.”
하리는 준비된 자료를 내밀었다.
코비가 이를 받아 펼쳤다.
“킴과 놀란을 비교하는 스카우팅 리포트군요.”
작성자는 마이크였지만, 하리도 이것을 완성하고자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렇기에 하리는 질문에 거침없이 대답했다.
“차세대 캡틴 아메리카와 캘리포니아 왕의 비교 분석입니다. 보시면 아시다시피 능력적인 면에서 킴이 놀란에 비해 부족한 점이 없습니다.”
야구에서 타자를 평가하는 가치는 타격이 전부가 아니었다.
점수를 낼 수 있는 출루율과 장타율을 합친 OPS가 주목받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보다 중요한 지표가 있었다.
현대 야구에서는 타자가 얼마나 많은 득점을 가져다줬는지 판단하는 지표인 wRC+.
통칭 조정 가중 득점 생산력.
혹은 공격, 수비, 베이스러닝 같은 모든 능력을 포함한 팀 승리 기여도 WAR의 가치를 제일 높게 평가한다.
코비가 자료를 세세하게 살펴보는 가운데 하리는 말을 덧붙였다.
“wRC+나 WAR에서 도진보다 뛰어난 선수는 없었습니다.”
도진은 투수와 타자 두 부분에서 어떤 지표든 전부 1위를 거뒀다.
그런데도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드래프트 예상 가치 2위였다.
레너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 역시도 현실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네. 킴이 아마추어에서 제일 훌륭한 모습을 보였다는 건 인정합니다. 그러므로 저희도 킴을 선택했던 것이고요. 하지만 아마추어와 프로의 세계는 조금 다른 면도 있습니다. 아, 킴의 가치를 깎아내릴 생각으로 말한 건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현실이 그렇다는 말입니다.”
하리는 눈 하나 끔뻑하지 않고 당당하게 대답했다.
“맞는 말인 건 압니다. 하지만 드래프트는 아마추어 선수를 뽑는 자리가 아니던가요?”
레너드는 본전도 찾지 못했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리는 말을 덧붙였다.
“킴은 한국인입니다. 마케팅 측면으로만 보면 미국인인 놀란보다 부족한 부분도 있겠죠.”
하리는 상대에게 생각할 틈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킴은 투타 겸업입니다. 분명 마케팅 부분에서 놀란에 비해 조금은 부족할 수 있겠지만, 야구에서는 오히려 놀란보다 가용성이 뛰어날 겁니다. 지금도 그렇고, 미래에도요.”
레너드는 코비를 힐끗 쳐다봤다.
의견을 묻는 것이었다.
코비는 고개를 끄덕였다.
레너드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얼마를 원하십니까?”
하리는 기다렸다는 듯 자료 하나를 더 꺼냈다.
“양키스가 놀란에게 제시할 예상 금액입니다.”
$12,000,000~ $12,500,000.
“그리고 제 옆에 있는 선수는 그 금액보다 더 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
적혀 있는 금액은 1,200만에서 1,250만 사이.
도진은 1,250만 달러 이상을 받아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레너드는 심호흡을 크게 들이마시더니 내뱉었다.
“저희 둘이 결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닙니다.”
하리는 미소를 지었다.
“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대신 빠르게 선택해주시길 바랍니다. 이 선수는 하루하루 기량이 상승하고 있거든요.”
괜히 간 보다가 몸값이 더 오를 수 있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었다.
누가 뭐래도 이 협상에서 도진이 에인절스보다 높은 위치에 있었으니 말이다.
* * *
“하아. 힘들었다.”
에인절스와의 첫 만남을 끝낸 하리는 기지개를 켰다.
도진은 여전히 얼이 나간 표정이었다.
‘하리의 도움이 없었다면 어땠으려나?’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1,000만 달러에 냉큼 사인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1,200만 달러는 확보해놓은 것이나 다름없었으며 협상은 아직도 진행 중이었다.
도진은 파르르 떨리는 입술을 꽉 깨물고 애써 입을 열었다.
“고마워.”
“고맙긴. 아직 사인 안 했는걸?”
“그래도 고마워. 나였다면 1초 만에 사인했을 거야.”
“에이. 난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는걸. 어디까지나 도진이 네가 훌륭한 선수라서 가능했던 거야.”
하리는 끝까지 숟가락만 올렸다며 너스레를 떨었지만, 도진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최종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매우 큰 성공을 거뒀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다음 계약 때도 와줄 거지?”
“그래도 돼?”
“응. 그래 줬으면 좋겠어.”
하리는 해맑게 웃었다.
“이렇게 내 꿈과 직결되는 경험도 해보고. 이래서 친구를 잘 둬야 한다니까?”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야.”
한평생 야구 밖에 할 줄 모르는 놈이 친구 잘 만나서 그 누구보다 완벽한 계약을 앞두고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