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seball genius who chews up America RAW novel - Chapter (126)
미국 씹어먹는 야구 천재-126화(126/400)
로우 A.
1라운드 상위 픽 같은 초특급 유망주를 제외.
고졸 3년 차 혹은 대졸 2년 차가 몰려 있는 곳으로, 루키리그를 통과한 유망한 선수들이 모여있다.
난다 긴다 하는 한국 유망주들도 이곳을 뚫지 못해 유턴하는 경우가 꽤 많았다.
시합을 지켜보던 도진은 오묘한 표정이었다.
‘흐음. 수준이 괜찮긴 한데.’
도진은 미국 초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리그 우승을 시작으로 2년간 하이스쿨 인비테이셔널을 꼬박 밟아가며 우승까지 거머쥐었다.
그렇기에 하이스쿨 인비테이셔널 결승전과 지금 경기의 수준 차이가 크게 나 보이지는 않았다.
‘물론. 선수들 개개인 기량은 우리 FS 멤버들보다 뛰어난 편이긴 해.’
대부분이 알렉산더급 정도?
스윙 소리만으로도 그에 버금가는 실력자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도진이 아는 알렉산더는 고등학생 알렉산더였으며, 여기 선수들은 엄연히 3, 4살 더 많았다.
경험이 중요한 야구에서는 3, 4년은 매우 큰 격차.
하지만 감흥이 확 와닿거나 하지는 않았다.
‘물론. 직접 시합을 뛰면 또 다를 수도 있어.’
먹혔다고 생각한 투구가 담장을 넘긴다거나.
혹은 고등학교 시합에서는 담장을 넘겨야만 하는 타구가 아웃이 될 수도 있다.
그만큼 고등학생과 성인의 힘 차이는 무시할 수 없었다.
‘뛰어보고 싶은데?’
도진은 기분 좋은 미소로 침음했다.
낯선 환경과 돈을 받고 뛰는 프로가 되었기에 전부 새로웠다.
그래서일까? 당장에라도 자신의 입지를 확인하고 싶었다.
그때 경기를 가만히 지켜보던 도진에게 한 백인 남성이 다가왔다.
그는 비어있는 도진의 옆자리에 털썩 주저앉더니 거만한 자세를 취했다.
목소리도 자세만큼이나 거만했다.
“이번 에인절스 1픽이지?”
“네.”
“만나서 반갑다. 그레그 호먼이다. 3년 전 에인절스 1픽이지.”
그레그 호먼은 3년 전 에인절스 15번째로 호명된 선수.
도진은 모호한 표정을 숨기겠다며 이를 악물었다.
‘3년 전? 자랑할 게 아닐 텐데?’
1픽 유망주가 3년간 로우 A에서 머무른다?
이미 구단에서도 슬슬 전력 외 판정을 받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도대체 왜 이렇게 거만한 거지?
그레그는 말을 이었다.
“선배로서 몇몇 조언을 좀 해줄까 해.”
그 즉시 도진은 속으로 미안해했다.
‘자랑하려고 온 줄 알았더니 생각보다 좋은 사람이구나.’
도진은 자세를 고쳐잡았다.
그러자 그레그는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프로에서의 첫걸음. 절대 쉽지 않다.”
도진은 대답 대신 경청했다.
그레그는 말을 덧붙였다.
“나 역시도 고등학생 때는 꽤 잘나갔지. 물론 지금도 잘나가지만. 어쨌거나 네가 아무리 고등학교를 폭격했더라도 이곳에서 그게 통할 리는 없어.”
“명심하겠습니다.”
그레그는 눈을 질끈 감더니 코로 숨을 들이마셨다.
“느껴지냐?”
“뭐가요?”
“경기의 흐름이.”
이게 도대체 뭔 개소리지?
경기 시작한 지 얼마나 됐다고.
난타전이 일어나 긴장감 넘치는 경기가 펼쳐졌던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도진은 끝까지 표정을 관리했다.
“잘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래. 그렇겠지. 고졸 루키들의 약점이지. 나도 처음에는 그랬거든.”
“그렇군요. 그럼 지금 경기의 흐름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습니까?”
그레그는 순간 흠칫하더니 이내 여유로운 미소를 띠었다.
“후후. 그건 영업 비밀이지. 너도 나만치 경험이 쌓이면 자연스레 알게 될 거다.”
도진은 아직까지도 ‘라떼는’을 외치는 그레그가 영 적응되지 않았다.
미국에도 꼰대들이 참 많다더니.
‘틀린 말 같지는 않네.’
그래도 동방예의지국 출신의 도진은 그의 개소리를 끝까지 새겨들어보려고 했다.
‘은근히 도움 될 만한 가르침이 나올 수도 있어.’
“하여튼 필요한 거 있으면 나한테 말해라. 66ers 대부분이 내 말 듣고 다 잘됐거든.”
“오. 잘됐다는 게 무슨 뜻인가요?”
“괜찮은 성적을 내고 있다는 거지. 혹시 돌만이라고 알아?”
“잘 모르겠습니다.”
“2년 전 에인절스 1픽. 내 조언을 받고 지금 하이 A에서 활약하고 있지.”
그런데 당신은 왜 아직 여기에?
도진은 허망한 눈동자로 그를 쳐다봤다.
그 눈빛을 알아챈 건지 그레그는 헛기침을 내뱉었다.
“큼큼. 나는 몸 관리를 제대로 신경 쓰지 못해서 그래. 이번 시즌에는 완벽한 몸 관리로 성적도 꽤 잘 나오고 있거든. 아마 조만간 콜업되지 않을까 싶은데.”
“그렇습니까?”
도진의 무미건조한 목소리에 그레그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프로부터는 타구의 질이 달라지는 거 알고 있지?”
“네.”
“내가 키스톤 콤비의 한 축을 담당하는 2루수거든? 그런데 타구 속도가 워낙 빨라서 적응을 좀 못했는데 지금은 아니야. 내 별명이 뭔지 알아? 캘리포니아 이안 킨슬러야.”
이안 킨슬러는 수비에서 제일 뛰어난 활약을 펼친 골든 글러브 2루수였다.
그와 닮았다면 칭찬이 맞다.
문제는 그걸 제 입으로 직접 말하다니.
얼굴에 깐 철판이 상당하다고 느꼈다.
‘자신감이 높은 건 야구에 도움이 되지만, 이건 좀.’
그레그는 말이 참 많았다.
도진은 1회부터 4회까지 1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의미 없는 말들을 듣느라 귀에서 피가 나는 듯했다.
그리고 그때.
“그레그. 5회부터 출전한다.”
감독이 도진을 구원했다.
도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여전히 끝난 것은 아니었다.
“헤이. 오늘 내가 대타로 나선 건 내 실력이 부족해서가 아니야. 휴식 차원이지. 하지만 지금 스코어가 보이지?”
3:5.
66ers가 지고 있었다.
“내 실력을 보여줄 테니 잘 보고 있으라고!”
그래. 백날 말해봐야 뭐하겠나?
2루수라면 타석과 수비에서 보여주면 된다.
도진은 단 한 순간도 그레그의 모습을 놓치지 않겠다며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 결과.
“스트라이크!”
“스트라이크!”
“스트라이크 아웃.”
3구 연속 헛스윙.
그는 더그아웃으로 돌아와 도진의 옆에 다시 앉더니 아쉽다는 어투로 말했다.
“아. 걸리기만 하면 넘어가는데.”
도진은 굳이 그레그의 헛소리에 대답하지 않았다.
걸렸어도 내야조차 벗어나지 못했을 것 같은 스윙이었으니까.
* * *
그레그는 진짜 1픽이 맞나?
도진이 그레그를 바라보는 첫인상이 딱 그랬다.
하지만 그나마 다행이라면 수비에서만큼은 조금 나은 모습을 보였다.
그는 안타가 될 법한 타구를 몸을 날려 막아서는 환상적인 수비를 선보였다.
“봤지? 이게 내 진가야.”
도진도 그 장면만큼은 인정했다.
물론 그 장면뿐이었다.
그 외에는 2루로 향하는 타구는 전부 쉬웠다.
그런데도 그는 마치 매번 메이저리그급 수비를 선보인 것처럼 말했다.
“6회 2아웃에서 봤지? 그거 나 아니었으면 못 잡았다? 마지막에 불규칙 바운드가 딱!”
불규칙 바운드는 없었지만, 도진은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이닝에도 그레그는 신이 난 듯 얘기했다.
“7회 첫 타자 수비 봤지? 내가 빠른 판단으로 전지해서 공을 처리하지 않았다면 타자는 세이프가 됐을걸?”
7회 첫 타자는 120kg이 넘는 거구였는데요?
설렁설렁 처리했어도 아웃 됐을 듯?
도진은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나저나 경기는 언제 끝나려나.’
솔직히 직접 뛰지 않았음에도 경기 자체는 재밌었다.
선수들 대부분이 이 악물고 뛰는 모습이 확실히 고등학교와는 다른 분위기였다.
전부 상위 리그로 콜업 되기 위함이었다.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이곳은 물에 빠져도 입만 둥둥 떠다닐 것 같은 그레그를 제외하곤 완벽했다.
그리고 고막에서 피가 나올 뻔한 도진의 노고를 감독이 알았던 것일까?
감독은 8회를 앞두고 도진을 불렀다.
“킴. 잠깐 와보지.”
도진은 즉각 그의 앞에 섰다.
“오늘은 가볍게 그라운드 맛만 보는 것이 어떤가?”
“좋습니다.”
“그래. 포지션이 투타 겸업이라고?”
“넵.”
“수비도 볼 줄 아나?”
“가능합니다.”
“포지션은?”
“고등학교에서는 중견수와 유격수를 봤습니다.”
감독은 말없이 눈만 끔뻑였다.
“투, 투타 겸업이라고 하지 않았나?”
“투타 겸업 맞습니다.”
그런데 수비 포지션이 왜 그래?
도진은 감독의 표정을 단번에 알아챘다.
“학교에서 저를 많이 배려해줘서 가능했습니다.”
“그랬겠지. 어쨌거나 이곳은 아마추어 리그가 아니다. 타구의 질부터 달라서 어려울 수도 있다.”
“명심하겠습니다.”
감독은 도진의 어깨에 손을 얹더니 두 번 도닥였다.
“어차피 승패에 너무 연연할 필요는 없다. 누구라도 데뷔전부터 잘할 수는 없거든. 중견수는 6회에 바뀌었으니 유격수를 보기로 하지.”
도진은 급작스레 팀에 합류했다.
66ers는 그에 대한 정보가 하나도 없었다.
“알겠습니다.”
감독은 흡족한 미소를 띠었다.
“글러브 챙겨서 나가봐라.”
도진이 글러브를 챙기는 사이 그레그가 다가왔다.
“이번 이닝부터 유격수 본다며?”
“그렇게 됐네요.”
“원래 포지션이야?”
원래 포지션이라.
솔직히 유격수가 주 포지션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타자로서는 전천후 멀티플레이어였기 때문에 도진은 고개를 저었다.
“주 포지션은 아닙니다.”
“그래? 유격수가 쉬운 포지션은 아닌데?”
유격수는 쉬운 포지션이 아니라 제일 어려운 포지션이다.
하지만 그레그는 이내 도진의 어깨에 손을 얹더니 미소를 띠었다.
“후후. 그래도 걱정하지 마라. 내 수비 범위 봤지? 웬만한 공은 내가 다 커버해줄게.”
프로에서의 첫 스타트라서 그랬을까?
도진은 이번만큼은 이상하게도 그레그가 믿음직스러웠다.
“부탁드리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도진은 그라운드를 밟았다.
실전에서는 처음 밟은 그라운드의 잔디.
마치 미국에서 처음 야구를 했을 때의 감정이 새록새록 피어올랐다.
‘후우. 긴장되네.’
그간 훈련을 등한시하지는 않았지만, 엄연히 훈련과 실전은 다르다.
하지만 도진은 이내 입꼬리를 올렸다.
‘몸 상태는 최상이다.’
힘이 붙었다.
덩달아 속도도 붙었다.
‘실전 경험만 좀 쌓이면 아마추어 시절보다 훨씬 좋은 모습을 보일 수 있을 거다.’
8회 초. 첫 타자가 좌타석에 들어서더니 초구부터 배트를 냈다.
따-악!
타구는 2루수 정면으로 향했고 타구 속도는 굉장히 빨랐다.
원바운드 된 타구는 그레그의 글러브를 맞고 우측으로 흘렀다.
흐른 타구가 정확히 도진에게로 향했지만 조금 높았다.
도진은 타구를 확인함과 동시에 주자도 스윽 훑어봤다.
‘빠른데? 정석대로 처리하면 늦겠어.’
정석이라면 글러브로 포구 후 송구를 뜻했다.
도진은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더니 맨손으로 타구를 잡고 그대로 1루 베이스로 던졌다.
쉐에에엑!
바람을 가르는 경쾌한 소리와 동시에 공은 1루수 글러브에 정확히 꽂혔다.
“아웃! 아웃!”
심판의 목소리가 퍼진 이후 그라운드에는 침묵만이 감돌았다.
그도 그럴 것이 방금 장면은 프로에서 첫선을 보인 선수가 보일 법한 움직임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특히나 도진의 바로 옆에서 수비를 지켜보던 그레그는 턱이 바닥과 닿을 만큼 크게 벌어져 있었다.
그런 그는 눈을 끔뻑이며 조용히 읊조렸다.
“무, 무슨 수비가…….”
메이저리거도 쉽사리 선보일 수 없는 힘든 수비 장면이 나왔던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