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seball genius who chews up America RAW novel - Chapter (127)
미국 씹어먹는 야구 천재-127화(127/400)
어떤 분야든 그렇겠지만, 야구에도 초심자의 행운이 있다.
그렇기에 도진의 환상적인 수비를 본 66ers 팀원들은 도진을 어느 정도 인정하면서도 방금의 플레이를 초심자의 행운으로 봤다.
‘미친 수비네. 그래도 운이 꽤 좋았던 것 같은데?’
‘우와. 괜히 1라운더가 아니네. 그레그 덕분에 타구 속도가 많이 죽었지만.’
‘정상적인 타구 처리는 어떠려나?’
도진을 잘 모르기에 나오는 착각이었다.
물론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했다.
마이너리그에 있는 선수들도 드래프트에서 구단이 어떤 선수를 선택했는지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선수가 정확히 어떤 선수인지 일일이 파헤치지는 않는다.
그냥 에인절스가 선택한 1픽.
이 정도만 알고 간다.
물론 하이스쿨 인비테이셔널에 관심 있는 몇몇 선수들은 특급 유망주들을 줄줄이 꿰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소수였다.
먹고 살기도 힘들어 죽겠는데 남을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
그래서 66ers 팀원들은 그냥저냥 1라운더니까 나름 기대나 해봐야겠다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수천이 넘는 유망주를 지켜봐 왔던 감독은 선수들과는 달리 눈동자에 확신을 머금었다.
‘홀리! 몰리! 에인절스의 다른 1라운더와 비교해도 싹부터가 다른데?’
운이 좋았을 수도 있겠지만, 웬만해서 본인의 안목이 틀린 적은 없었다.
* * *
“나이스 캐치!”
그레그가 도진을 향해 하이파이브를 하자며 글러브를 번쩍 들고 다가왔다.
도진도 글러브로 그의 글러브를 툭 쳤다.
그레그는 그 즉시 나불거리기 시작했다.
“좋은 수비. 하지만 내 덕인 거 알지?”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레그가 타구 속도를 늦춰줬기에 나올 수 있었던 수비였다.
물론.
‘그냥 본인이 처리했으면 더 깔끔했을 텐데.’
라는 말은 내뱉지 않았다.
어쨌거나 아웃카운트는 올렸으니까.
무엇보다 그라운드 내에서 직접 지켜본 타구 속도는 고등학교의 것과는 확실히 달랐다.
타자들의 완성된 체구에서 뽑아내는 타구 속도는 확실히 위협적이었다.
다음 타자가 타석에 들어섰지만 처음 프로 무대에 임하는 도진의 집중력은 남달랐다.
그런데 그레그는 도진의 집중력을 단번에 흐트러뜨렸다.
“어이. 킴. 킴.”
도진이 그를 쳐다보자 그레그는 뒤로 좀 물러나라는 수신호를 보냈다.
2루수와 유격수를 일컫는 키스톤 콤비는 호흡이 굉장히 중요한 포지션.
도진은 그를 오늘 처음 만났기에 그레그가 보낸 신호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강타자인가?’
강타자라면 있을 법한 사인이다.
조금 더 후진해서 수비한다면 아무리 빠른 타구 속도라도 조금 더 편안하게 처리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도진은 일단 그레그의 말을 따랐다.
문제는 그레그는 뒤로 물러서지 않고 제 자리를 고수했다.
‘극단적으로 당겨치는 타자인가 보네?’
타자는 우타자였다.
극단적으로 당겨치는 타자라면 물러서는 것이 맞다.
공은 던져졌고 타자의 스윙이 나왔다.
따-악!
하지만 초구는 1루수 라인을 벗어난 파울 타구.
우타자가 1루수 방면으로 타구를 보냈다는 것은 밀어 친 것이므로 도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뭐야? 극단적으로 당겨치는 타자가 아니잖아?’
도대체 왜 저런 사인을 낸 거지?
하지만 그레그와 사인을 주고받는 걸 감독도 지켜보았을 터.
그럼에도 감독은 딱히 도진의 수비 위치를 재조정하지 않았다.
2구.
따-악!
2루수와 유격수 사이로 향하는 타구가 나왔다.
수비 위치가 앞서 있던 그레그는 타구음이 들려오는 즉시 반응하며 먼저 몸을 날렸지만, 타구는 그의 글러브를 이미 지나치며 뒤로 흘렀다.
하지만 그의 뒤에는 도진이 있었다.
다이빙 캐치로 포구를 끝낸 도진은 벌떡 일어나 1루로 공을 던졌다.
“아웃!”
그레그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도진에게 터덜터덜 다가갔다.
도진은 그레그를 멍하니 쳐다봤다.
‘혹시. 노린 건가?’
수비 위치를 조정하지 않았다면 안타가 나왔을 테니까.
이 타구를 예상해서 수비 배치를 한 것이 맞다면 그는 그라운드 내 사령관이나 다름없었다.
“나, 나이스 수비!”
그러나 그레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도진은 그가 의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단번에 깨달았다.
‘그냥 본인이 타구를 처리하려고 했네.’
도진은 지금까지 그레그를 지켜봐 온 결과 그의 수비 범위가 넓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완전한 유격수 방면의 타구가 아니었다면 직접 처리하려고 했던 것이겠지.
‘하긴. 여기는 프로지. 마이너리그는 남을 밟고 올라서는 곳이기도 하고.’
팀 동료지만, 엄연히 경쟁자였다.
메이저리그 로스터는 26명으로 한정되어 있었으니 말이다.
‘그 경쟁이 투타 겸업인 나에겐 조금 무색하지만, 대부분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겠지.’
도진은 전천후 멀티 플레이어로서 어떤 포지션에서도 설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레그는 여전히 뻔뻔스럽게 말이 많았다.
“어, 어때? 내 판단이?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선수들 일일이 수비 위치를 조정해주곤 했어.”
“그랬군요.”
도진이 무미건조하게 말하자 그레그는 침을 꼴딱 넘겼다.
“다음 타자는 극단적으로 당겨치는 타자다. 지금과 같은 수비 위치를 고수하는 게 좋아.”
도진은 타석에 들어서는 타자를 힐끗 쳐다봤다.
키 190cm에 몸무게 100kg의 거구였다.
저런 거구의 타자들은 힘을 내세워 극단적으로 당겨치는 부류가 많았다.
“알겠습니다.”
도진과 그레그는 각자 포지션으로 돌아갔다.
그레그는 그 즉시 도진의 포지션을 좀 더 뒤로 물렸다.
“뒤로. 뒤로. 뒤로. 좋아.”
도진은 그레그의 지시에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이건 너무 멀지 않나?’
도진은 내야 그라운드의 흙을 완전히 벗어나 있었다.
과장 좀 보태 손만 뻗으면 좌익수에게 닿을 거리였다.
이 수비는 번트에 정말로 취약했다.
타자가 유격수 방면으로 번트를 보낼 수만 있다면 아무리 거구라도 1루에서 세이프가 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저런 거구라도 번트는 댈 수 있어.’
도진은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그레그는 그에 대한 대비를 한 것인지 2루 베이스 근처에서 수비 자세를 잡았다.
2023년부터 수비 시프트는 폐지됐다.
그렇기에 저 경계선만 넘지 않는다면 수비 시프트에서 벗어날 수는 있었다.
‘수비 위치 조정하는 거 보면 이 방면에서 확실히 재능이 있네.’
1라운더는 역시 1라운더구나.
도진은 투수가 투구 자세를 잡자 수비 자세를 취했다.
초구.
공은 투수의 손을 떠나자 타자가 번트 자세를 취했다.
도진은 경우의 수를 배제하지 않는다.
번트도 염두에 두고 있었으므로 타자가 자세를 바꾸는 순간 뛰쳐나갔다.
하지만 그레그는 아니었다.
번트를 해서는 안 되는 타자가 번트 자세를 취하자 순간 몸이 얼어붙었던 것이었다.
토옥.
타자 역시 번트가 익숙하지 않았던 것인지 타구는 높게 솟아오르며 투수를 지나 유격수 방면으로 향했다.
그레그가 반응이 빨랐다면 다이빙 캐치로 아웃카운트를 올릴 수 있을 법한 타구.
그런데도 그는 멍하니 서 있다가 1초나 늦게 반응했다.
타구를 처리할 수는 있었지만,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공을 잡고 던져봤자 에러가 나올 확률이 높다.
그렇기에 도진은 공을 향해 쏜살같이 달려가며 소리쳤다.
“비켜!”
도진의 외침에 흠칫 놀란 그레그는 발걸음을 강제로 멈추고 우뚝 섰다.
덕분에 도진은 시야에 방해 없이 타구에 눈을 고정했다.
통.
타구는 바운드가 됐다.
도진은 그 즉시 주자도 힐끗 쳐다봤다.
느리다.
하지만 자신의 수비 위치 역시 너무 뒤였다.
‘정석적으로 처리하면 늦어.’
도진은 다시 한번 맨손으로 공을 잡았다.
그 즉시 1루로 송구하겠다고 몸을 틀었다.
그로 인해 몸의 균형이 우측으로 완전히 기울어진 채로 송구했음에도 속도와 정확도는 완벽했다.
터억.
“아웃!”
3아웃. 공수 교대.
타자는 허망해하며 헬멧을 바닥에 내던졌다.
더그아웃으로 돌아가야 했던 66 ers 선수들은 일제히 몸이 굳어버렸다.
아무 일 없다는 듯한 묵묵한 표정으로 더그아웃으로 향하는 건 도진뿐이었다.
그레그는 도진이 자신을 지나치려고 하자 본인도 모르게 글러브를 들어 올렸다.
“파, 판타스틱.”
도진은 글러브로 그레그의 글러브를 톡 쳤지만 잠깐 머뭇거렸다.
키스톤 콤비는 하나라고 봐도 무방하듯 칭찬을 기대하는 눈빛이었다.
하지만 결국 그의 도움 없이 온전히 본인이 아웃카운트를 올린 것 아니던가?
칭찬할만한 단어가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이내 도진은 적절한 단어를 찾고 이내 미소를 띠었다.
“음. 잘 비키셨어요.”
* * *
도진은 8회와 9회에 수비 맛만 봤을 뿐 타석과 마운드에 오르지는 않았다.
경기는 퀘이크스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모두 수고 많았다. 내일도 퀘이크스와의 대결이 있으니 잘 쉬길 바란다.”
감독은 선수들에게 해산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러고는 자신은 즉시 사무실로 부리나케 달려가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감독님! 무슨 일이세요?
“아니. 코비!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던가!”
감독의 목소리는 다소 상기됐다.
코비는 영문 모르겠다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자세하게 얘기 좀 해주시겠어요?
“킴 말일세! 투타 겸업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투타 겸업 맞습니다. 두 부분에서 훌륭한 기량을 보유했죠.
“투타 겸업이 유격수까지 본다고? 메이저리그를 호령했던 오타니 쇼헤이도 수비는 보지 않았네.”
-오타니 쇼헤이 선수와는 결이 조금 다르긴 합니다. 그런데 무슨 일 때문에 그러세요? 킴이 대단한 일이라도 냈을까요?
감독은 오늘 도진 활약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일단 수비만 놓고 봤을 때 그는 여기에 있을 선수가 아니네.”
이곳은 루키리그가 아닌 로우 A다.
초특급 유망주도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몸을 완성하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도진의 재능이 너무 아까웠다.
-희소식이군요. 물론 첫 경기라서 좀 애매하긴 하지만요.
“아니! 메이저리거급 수비를 3번 연달아 선보였다니까? 그렇다고 안정적인 수비가 안 되는 것도 아니고. 자네. 내가 누군지 까먹었나?”
수천의 유망주를 봐왔다.
자신이 보는 눈이 틀릴 리가 없다는 것을 어필하는 것이었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그를 고작 대수비 요원으로 뽑은 게 아닙니다.
감독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뒤늦게 도착한 도진의 프로필을 살폈다.
그 즉시 눈이 번뜩였다.
“배, 백 마일을 던진다고? 완벽한 유격수 수비를 선보인 선수가? 아. 어쩐지 송구가 말이 안 되긴 했는데.”
-괜히 황금세대 1번급 선수가 아니죠.
“이 선수는 내가 어찌 할 수 있는 수준의 선수가 아니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원래도 킴은 수비에서만큼은 메이저리그에서 곧바로 활약해도 괜찮다는 구단의 결론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앞서도 말씀드렸듯이 저흰 그를 대수비로 뽑은 건 아닙니다.
“알겠네. 무슨 말인지 알겠어. 일단 내일 경기에는 다른 포지션으로 한번 올려보겠네.”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래도 오늘 찍힌 영상은 바로 보내주겠네.”
-감사합니다.
통화를 끝낸 감독은 몸에 힘이 푹 빠져나가 의자에 몸을 맡겼다.
다시 한번 도진의 프로필을 확인한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수비도 완벽하고 100마일까지 던지는데 도대체 왜 여기로 보낸 거야?”
고작 한 단계지만 이곳보다 수준이 월등히 높은 하이 A에 배정받아도 전혀 손색없는 실력이었다.
에인절스는 그간 성적에서 바닥을 기며 대부분 드래프트에서 상위 라운드를 배정받아 다양한 유망주들을 얻었다.
도진은 그 선수들보다 우위에 있었다.
고등학교를 이제 갓 졸업했음에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