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seball genius who chews up America RAW novel - Chapter (129)
미국 씹어먹는 야구 천재-129화(129/400)
도진과 그레그는 5회 3번째 타석을 끝으로 교체됐다.
“이럴 수가.”
그레그는 더그아웃에 몸을 기대더니 머리를 쥐어 싸맸다.
도진은 스포츠음료 한잔을 그에게 내밀었다.
“그레그 고생했어요. 여기요.”
“이건 있어서는 안 될 일이야. 이게 도대체 말이 되냐고.”
주문이라도 외우나?
도진은 종이컵으로 그의 손을 툭 쳤다.
“이거나 마셔요.”
그레그가 컵을 받았다.
도진은 그의 옆에 앉았다.
“에이. 복귀전이었잖아요. 완전한 몸 상태였다면 내기 결과가 달라졌을 수도 있겠죠. 그래도 경기 전 식빵은 그만 먹어요.”
그레그는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도진을 힐끗 쳐다봤다.
도진은 여유롭게 시선을 피하며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시합에서 충분한 양의 땀을 흘린다고 했는데…… 땀을 흘리긴 뭘 흘려요? 지금 그 상태로는 경기 끝나고 추가 훈련은 필수에요.”
그레그의 유니폼은 내일 다시 입어도 손색없을 만큼 깨끗했다.
2루수가 5회까지 타구도 고작 3번밖에 처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첫 타석에서 안타로 출루했지만, 도진이 홈런을 치며 그가 주루로 땀을 낼 기회도 사라졌다.
무엇보다 도진이 홈런을 치는 바람에 그레그의 스윙은 커졌다.
하지만 커진 스윙은 공을 맞히지 못해 나머지 두 타석에서 전부 삼진을 당했다.
그에 반해 도진은 첫 타석에서 홈런을 기록 후 두 번째 타석에서도 안타를 기록했다.
내기는 도진의 압승.
대답이 들려오지 않자 도진은 그레그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툭 건드렸다.
“대답.”
“오우 노우!”
“대답!”
“알았어. 이제 안 먹을게.”
“먹을 거면 경기 시작 2시간 전에 먹어요. 경기 시작 전에 먹으면 둔해지잖아요.”
“네가 뭘 알아!”
“대답.”
“깨갱깨갱.”
그레그는 고개를 살짝 숙이고는 양쪽 손을 개처럼 들어 올리더니 개 소리까지 내었다.
도진은 피식 웃었다.
“너무 상심 말아요. 제가 봤을 땐 그레그 스윙이 훌륭하던데요? 타격 메커니즘도 그렇고요. 민첩함을 살리면 조금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는 사실이었다.
물론 메이저리그는 홈런 타자를 좋아한다.
홈런은 결국 힘에서 나오는 법.
기술적인 타격으로도 홈런을 만들 수는 있겠지만, 그런 선수를 홈런 타자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아마 그 때문에 그레그도 계속해서 몸을 키우려고 했던 것이겠지.
‘물론 사람 몸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지만, 이곳에서 3년을 보냈음에도 몸이 저렇다는 건 홈런 타자가 될 수 없다는 의미야.’
그러니 그레그는 기술적인 타격을 갈고 닦는 게 낫다.
그러면 로우 A를 쉽게 벗어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도진은 나지막이 읊조렸다.
“솔직히 지금 당장 힘이나 타격 기술은 그레그가 나보다 더 좋아요.”
근데 맞지 않는 옷을 입겠다고 고집부리느라 여기서 3년을 보낸 거지.
이 말은 겉으로 내뱉지 않았다.
그레그는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너 무슨 인생 2회차냐?”
“그게 무슨 말이죠?”
“아니. 코치님들과 같은 말을 하네.”
“그래요? 근데 왜 안 고쳤어요?”
“똑딱이가 메이저를 밟을 수 있겠냐고.”
“못 밟을 건 뭔데요.”
“참나. 지 일 아니라고 막말하네.”
도진은 논리적으로 반박했다.
“두 명의 2루수가 있어요. 한 명은 똑딱이고 한 명은 홈런 타자에요. 네. 분명히 둘만 있다면 구단은 홈런 타자를 선호하죠. 하지만 홈런 타자는 기본적으로 힘이 바탕이 되어야만 해요. 힘이 바탕이 되려면 몸을 키워야 하고요.”
“내 몸이 구리다 이거야? 너보다 나아 임마!”
“좀 들어봐요. 하지만 그레그는 2루수에요. 2루수는 타격도 중요하지만, 수비도 그만큼 중요한 법이죠. 민첩한 선수가 수비를 더 잘한다는 걸 잘 알고 있잖아요?”
“머리로는 아는데! 심장은 그게 아니라고 외치는데 어쩌냐?”
“일단 야구가 타격만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 생각부터 버리세요.”
그레그의 턱이 벌어졌다.
“너 내 머릿속이 보이니?”
들여다본 것은 아니지만, 홈런 타자가 아닌 선수들 대부분이 저렇게 생각할 터.
예측이 어렵지는 않았다.
“그리고 똑딱이가 어때서요? 트렌드를 역행해서 성공을 거둔 선수도 있잖아요?”
루이스 아라에스.
대 홈런 시대에 똑딱이로 메이저리그 주전을 따낸 선수였다.
“본인 스윙만 지키면 안타를 몇 개라도 더 뽑아낼 테고. 운이 좋다면 거기서 홈런도 몇 개 더 나오겠죠. 이렇게 생각하면 되잖아요?”
그레그는 도진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얹은 손은 파르르 떨렸다.
“……고맙다. 리그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한번 그렇게 해봐야겠다.”
아마 이대로 가다간 내년에도 로우 A겠지.
올해도 로우 A에 머무른다면 그레그는 은퇴를 심각하게 고민할 것이다.
도진은 그의 타격과 수비 재능이 아까웠다.
물론 이런 조언을 어디선가 들어봤겠지만, 시기가 중요한 법.
난간에 서 있는 그레그에게는 어쩌면 지금 이 순간이 적기였다.
“고맙긴요. 전 그저 입만 뻥긋할 뿐이죠.”
“아냐. 정말 고마워. 야구를 더럽게 잘하는 놈한테 들어서인지 덕분에 달라질 수 있을 것 같아. 그래서 말인데.”
그레그는 도진에게 엄지를 치켜세웠다.
“같이 똑딱이 하실?”
도진은 대답을 회피했다.
* * *
3연전 마지막 날.
경기를 앞두고 감독은 도진을 불렀다.
“헤이 킴.”
“네. 감독님.”
“너 타자로서 매우 유망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
도진은 느닷없이 칭찬이 들려오자 뒤통수를 벅벅 긁었다.
“감사합니다. 감독님.”
“투타 겸업이라고 했지?”
“아직 확정 짓지는 않았습니다.”
“그래. 그럼 오늘은 타석은 버리고 마운드에 올라가는 건 어때? 물론 1이닝만 올릴 거다.”
“저는 뭐든 좋습니다.”
“그럼 5회 이후에나 올릴 테니 천천히 준비해라.”
“알겠습니다.”
도진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자 감독은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흐음. 과연 투수로서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감독은 어제 경기가 끝난 직후 에인절스 스카우트 코비와의 통화를 떠올렸다.
“코비. 킴을 상위 리그로 올리는 게 좋을 것 같다.”
-소식은 들었습니다. 3타수 2안타 1홈런을 쳤다고 하더군요.
“아무리 봐도 이 선수는 여기 있을 선수가 아니야.”
-정확히 어떤 면에서 그렇습니까?
“같은 편한테 시기 적절히 조언도 해주더라고. 그레그 알지?”
-알죠. 3년 전 에인절스 1픽이요. 나름 공을 들였는데 생각만큼 크지 않은 선수기도 하고요.
“도진이 그 선수에게 한 조언이 전문가 뺨쳤어. 고작 고등학교 갓 졸업했음에도 말이지. 물론 이뿐만이 아닐세.”
마이너리그는 여러 가지 다양한 경험을 쌓는 곳이다.
하지만 감독은 도진이 야구에 관심이 참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가 수비를 할 때나, 첫 타석부터 홈런을 쳤을 때나.
세레모니 대신 문제점을 인지하며 더욱 발전하려는 표정이었다.
이런 선수는 굳이 로우 A에 있을 필요 없다.
오히려 수준 높은 선수들과 함께 뛴다면 더욱 빠르게 발전할 선수였다.
“물론 당장 메이저리그로 올리라는 것은 아니네. 하지만 이 선수는 고작 이틀 만에 퀘이크스를 영혼까지 탈탈 털어버리고 있어.”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자료들을 토대로 상부에 보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그가 투타 겸업인 건 아시죠? 몸이 갑자기 커져 투구에서는 밸런스 문제가 조금 있을 겁니다. 그러니 그 부분만 좀 잡아주시겠어요?
“투수는 재끼고 타자로서도 성공할 재능을 갖춘 선수야. 물론 내일은 투수로 올려보겠네.”
그런 이유로 도진은 오늘 마운드 등판이 예정되어 있었다.
한편 앉아있는 도진에게 그레그가 다가왔다.
“푸웃. 오늘 명단 제외네?”
“명단 제외까지는 아닙니다.”
“스타팅 라인업에 없는데? 내가 4번 타자인 거 보이지? 그렇다고 너무 상심 말아라 아이야. 결과가 모든 걸 대변해주는 게 아니야. 야구가 원래 그렇잖아?”
무안타를 기록해도 자신의 스윙을 했다거나.
아니면 잘 맞은 타구가 아웃이 됐다거나 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그렇기에 전문가들은 기록에 연연하지 않고 그런 사소한 것들도 염두에 둔다.
그레그는 자신의 스윙이 완벽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그거, 참 다행이네요.”
도진의 반응이 시원찮아 보이자 그레그는 입술을 삐쭉 내밀었다.
“반응이 왜 이래? 현실 외면 중?”
“음. 현실 외면은 아니고 오늘은 투수로 경기에 등판하기로 했거든요.”
그레그는 금세 풀이 죽었다.
내뱉는 목소리에는 한 치의 힘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 맞다. 너 투타 겸업이었지.”
“네. 그리고 투수가 조금 더 자신 있기도 하고요.”
그레그는 이번만큼은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친구야. 여기 로우 A야.”
“저도 압니다.”
“여기 타자들을 고등학생들과 같다고 생각해서는 안 돼. 갖다 맞추는 순간 홈런을 만들 수 있는 타자거든요. 100마일까지 던진댔지? 하지만 물 공은 물 공일 뿐이야.”
도진은 특출 난 케이스지만, 미국에는 빠른 공을 던지는 선수들이 많다.
도진만큼, 혹은 더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들은 마이너리그에도 여럿 있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전부 성공을 거두지 못한다.
아니. 오히려 실패가 더욱 많았다.
미국 야구는 빠른 공 하나만으로 성공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확실히 타자들 힘이 좋아 보이긴 하더라고요.”
“근데 왜 이렇게 덤덤해?”
“그레그. 저 오늘 3일 찬데요?”
그레그의 눈은 죽은 동태의 것과 같았다.
“아. 너 3일 차였지. 잠깐 나보다 오래 있었다고 착각했어.”
그만큼 도진은 고작 두 경기만의 자신을 각인시키는 플레이를 선보였으니까.
“그레그. 괜히 힘들이지 말고 오늘은 본인의 타격을 보여줘요. 분명 좋은 결과가 있을 거예요.”
“알았다.”
그레그는 단념했다.
3일 차인 선수에게 조언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경기는 진행됐다.
그레그는 4회가 끝나는 즉시 다시 한번 도진의 앞에 서더니 근육 자랑을 했다.
“봤냐? 이게 나야.”
그레그는 지금까지 2타수 2안타 2개의 2루타를 기록했다.
힘을 빼고 타격한 결과는 훌륭했다.
“좋은데요? 그런데 그 세레모니는 좀 자제하는 게…….”
“왜?”
“근육도 별로 없잖아요.”
그레그의 얼굴이 붉어졌다.
“내가 근육이 없긴 왜 없어? 너보다 나아!”
“도긴개긴이죠. 저희 같은 부류는 그런 세레모니 안 하는 게 나아요.”
잡담을 나누는 사이 감독이 도진에게 말했다.
“킴. 6회에 올라갈 테니 불펜으로.”
“알겠습니다.”
그 즉시 그레그가 도진을 멈춰 세웠다.
“너무 긴장하지 마라. 오늘은 내가 특급 헬퍼가 되어 줄 테니까.”
그레그는 루키리그를 부수고 그해 로우 A로 승격해 이곳에서만 3년 차.
지금까지 유망한 투수들을 많이 봐왔다.
그런데 빠른 공을 던진다는 투수라도 한결같이 결과가 좋지 못했다.
도진도 그럴 터.
그렇기에 누가 봐도 남인 자신에게도 진심 어린 조언을 건넨 도진에게 힘이 되어 주고 싶었다.
하지만 결과론적으로는 도진이 3일 차라는 것을 또다시 까먹었던 것이었다.
‘저게 무슨 3일 차냐고.’
도진은 마치 10년은 프로에 썩은 선수 같았다.
그만큼 그에겐 여유가 있었다.
물론 3일 차였던지라 오늘 그가 10 실점해도 그 누구도 손가락질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킴의 실점을 최소화해주는 게 내 의무!’
6회.
도진은 마운드에 올랐다.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그레그는 실실대고 있었지만, 생각만큼은 진중했다.
‘킴. 내 쪽으로 향하는 수비는 다 막아줄 테니 마음 놓고 던져라!’
팡팡.
그레그는 주먹으로 글러브를 두 번 치며 도진에게 힘내라는 사인을 보냈다.
얼마나 떨릴까.
그레그는 마운드에 서 본 적은 없었지만, 선수가 느낄 감정만큼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도진의 초구를 접한 그레그는 지금까지의 걱정이 기우라는 것을 깨달았다.
와인드업 후 손을 떠난 공은 잔잔한 바람 소리만이 존재하던 그라운드에 굉음을 내지르며 날아갔다.
쒜에엑!
퍼억.
투구가 미트에 꽂히는 순간 그레그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무, 무슨……”
공이 아니라 대포를 던지냐?
그레그는 드디어 도진이 어나더 레벨의 선수임을 깨달아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