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seball genius who chews up America RAW novel - Chapter (13)
미국 씹어먹는 야구 천재-13화(13/400)
도진은 그 후로 조금 더 알렉산더를 알아봤다.
중학 야구 MVP인 것도 모자라 미식축구에서도 MVP를 따낸 쿼터백이었다.
‘엄친아가 이런 걸까?’
어쨌거나 천군만마를 얻은 도진은 한층 편한 마음으로 몸을 만들 수 있었다.
때마침 감독은 도진은 불러 세우더니 종이 한 장을 내어주었다.
“이게 자네의 훈련 프로그램이라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야구 훈련이 있는 날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이 적혀 있었는데, 얼핏 봐도 대부분이 근력 운동이었다.
“정말로 근력 운동밖에 없네요?”
“몸이 공을 던질 수 있는 수준이 되기 전까지는 캐치볼을 제외하면 투구는 허용하지 않겠네.”
캐치볼은 감각을 유지하기에 더없이 좋은 공놀이다.
그저 공을 주고받는 것만으로도 공은 물론 동료와도 친숙해질 수 있었으니까.
그래서 캐치볼만큼은 예외로 둔 듯했다.
“그런데 감독님. 근력 운동을 할 수 있는 기구가 이 실내 연습장에는 없잖아요?”
감독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그럼 당분간 이곳에 나올 필요 없다는 말로 들리는데요……”
“정확히 알아들었네. 당분간 학교 내 피트니스 센터로 가는 게 좋겠지.”
야구부원에게 야구 훈련장에 나오지 말란다.
이 얼마나 슬픈 이야기인가.
‘하지만 어쩌겠어. 믿고 따라야겠지.’
“알겠습니다.”
“최소 한 달은 근력 운동에 집중해라. 물론 그 전에 몸이 완성되면 정식 훈련과 시합에 곧바로 투입할 수도 있다.”
희망적인 말이었지만, 애당초 한 달 안으로 완벽한 몸을 만드는 건 불가능했다.
‘그래도 몸만 완성되면 바로 투입 시켜준다니.’
아무리 몸을 만들었다곤 해도, 실전 감각을 다시 끌어올리는 작업도 필요하다.
하지만 도널드 감독은 그런 과정은 생략하고, 몸만 만들면 바로 투입 시켜준다고 한다.
도진은 감독의 말에서 자신을 배려하는 걸 느꼈다.
“말이 나와서 그러는데요. 당장 리그가 한 달도 남지 않았잖아요?”
“그렇지?”
“그럼, 저 개막전은요?”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기에 도진은 새어 나오는 한숨을 꾹 삼켰다.
‘후. 개막전은 물 건너갔구나.’
도진은 말라버린 아랫입술을 혀로 쓸었다.
당연히 선수로서 개막전에 참가하지 못하는 건 아쉬웠지만 이마저도 전부 자신을 위한 것.
어쭙잖은 몸으로 마운드에 올랐다가 부상이라도 발생한다면 한 달이 아닌 1년을 쉬어야 할 수도 있다.
‘그래. 좋게 생각해야겠지. 이제는 당장보다는 미래를 볼 때야.’
마음을 굳힌 도진은 눈을 빛냈다.
“완벽한 몸 상태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감독은 주먹을 말아 쥐며 도진에게 내밀었고. 도진도 그 주먹을 톡 건드렸다.
* * *
도진은 근력 운동을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다.
아무리 한국의 운동부가 빡빡하다고 소문이 났을지언정.
어린아이들에게 근육 단련을 시키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근력 운동에 근 짜도 몰랐던 도진은 이번에도 훈련된 조교 마이크를 초청했다.
‘마이크는 골격도 좋지만, 몸도 괴물 같은 근육질이니 PT 트레이너로 적합하지.’
“이쯤이면 개인 트레이너 비용을 지급해야 하는 거 아니냐?”
물론 마이크는 불평불만부터 내뱉었다.
“일주일만. 아니 5일만 부탁한다. 그 이후부터는 내가 알아서 할게. 여기 적혀 있는 운동들만 제대로 배운 이후에 FA로 풀어줄게.”
“너 때문에 여친이랑 데이트도 못 하잖아. 이러다가 헤어지면 책임질 거야?”
젠장. 그건 책임 못 지는데?
마이크는 나라를 잃은 듯한 표정의 도진을 보더니 씨익 웃고는 벤치 프레스 기구를 가리켰다.
“저거부터 해보자. 할 줄은 알지?”
“영상으로 보긴 봤어.”
“근데 날 왜 부른 거야?”
“운동이 다 그렇잖아? 나는 제대로 하고 있다고 느껴도 다른 사람이 보기엔 잘못됐을 수도 있잖아?”
마이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 아네. 그건 그렇고. 우리 교환할 건 제대로 해야지?”
아. 맞다.
마이크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아니었다.
기브 앤 테이크를 정확히 따지는 장사치랄까.
미국인이라 그럴 수도 있겠지만 어쨌거나 이렇게 남의 소중한 시간을 빼앗기만 할 수는 없었다.
“뭘 원하냐?”
“뭐든 괜찮냐?”
“나 거지다?”
“돈 달라고는 안 해. 나도 퇴학당하고 싶지는 않거든.”
미국에서 삥을 뜯는다?
퇴학은 우스운 처벌에 불과하다.
“그럼 나중에 부탁 들어줄게.”
“접수.”
“근데 지금 당장 야구 관련된 부탁은 안 돼.”
“미친놈인가? 그때는 네가 방과 후 활동도 하지 않아서 그런 거고. 이제 야구부인 너한테 일반인들 야구 시합에서 뛰어달라고 부탁하겠냐?”
도진은 뒤통수를 벅벅 긁었다.
‘그것도 그렇네.’
어쨌거나 한시가 급했던지라 도진은 곧장 벤치 프레스 기구에 앉았다.
알렉산더는 그런 도진의 몸 구석구석을 눌러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이야. 너 이런 몸으로 어떻게 그런 구속을 뿌리냐?”
“왜?”
“아니. 이게 운동선수의 몸은 아니잖아.”
“한창 야구 했을 때도 근력 운동은 하지 않았는데?”
물론 그때는 근력 운동을 하지 않았지만, 운동은 꾸준히 했다.
하지만 1년 반의 공백은 역시나 몸의 근육량을 지방으로 바꾸었다.
“그러니까 신기한 거야. 세상에 괴물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게 내 친구라니.”
현재 도진의 몸 상태는 그저 일반인 수준.
전문적으로 측정하지 않아도 그의 근육량이 얼마나 하찮은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아 맞다. 일어나라. 운동 전에는 스트레칭이 기본이잖아.”
“그건 미리 했어.”
“오? 준비성 철저한데? 언제 했냐?”
“스트레칭은 습관처럼 늘 했으니까.”
“습관처럼?”
도진은 기구에서 잠깐 일어나 앞으로 허리를 접고는 팔을 바닥으로 쭉쭉 찢었다.
손바닥이 손쉽게 바닥에 맞닿는 모습에 마이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체조 선수라고 해도 믿겠어. 유연성이 왜 이래?”
“야구 선수는 유연성도 중요하잖아? 스트레칭은 6살 때부터 쉬지 않고 틈날 때마다 했거든.”
어떤 스포츠든 마찬가지겠지만 유연성은 부상을 줄여주기 때문에 중요하다.
도진처럼 어렸을 적부터 쉬지 않고 유연성을 길렀다는 건 행운이었다.
‘준비성 철저한 것 보소. 일반인 코스프레였잖아?’
마이크는 입맛을 다시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어떤 강도를 원하냐?”
“강하게 부탁한다. 몸 완성도 때문에 개막전에 참가하지 못한다더라.”
“진짜?”
“응. 몸 만들기 전까지는 경기에 출전할 수 없대.”
“그럼 노력 여하에 따라 달라지는 거네?”
“그렇지? 감독님은 최소 한 달 보고 계셔.”
마이크는 턱을 매만지며 생각에 잠겼다.
“아무리 강도를 높여도 한 달 안으로는 맞출 수 없어.”
“알고 있어. 그래도 최대한 빡세게 부탁한다.”
마이크는 금세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지옥을 보여주마.’
그렇게 시작된 프로그램.
마이크는 말을 쉬지 않았다.
“제대로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으라니까?”
“한 번 더! 한 번 더!”
“아니! 6ft 154lb(183cm 70kg)가 무게 88lb(40kg)도 제대로 못 들어?”
의지가 넘친다고 세상이 호락호락한 건 아니구나. 도진은 그렇게 생각했다.
‘아니. 애당초 지금 몇 세트째인데. 팔이 후들거려 죽을 것 같다고!’
* * *
“오늘 프로그램은 이걸로 끝이네.”
쩌렁쩌렁한 마이크의 목소리에도 도진의 시선은 오로지 마이크가 들고 있는 물통에 고정됐다.
“물 좀.”
물을 벌컥벌컥 마신 도진은 숨을 되찾고는 물었다.
“원래 근력 운동이 이런 거야? 너무 힘든데.”
“당연히 운동은 힘들어야지.”
“그렇긴 한데.”
도진은 오늘 생전 처음 하는 사람에게 이 강도가 맞는지 물어본 것이었다.
“원하던 하드 트레이닝입니다. 고객님.”
“나 첫날인데?”
“어쩌라고. 게으름 피워봤자 좋을 건 없잖아?”
저 또한 맞는 말이지만.
마이크의 사람 굴리는 솜씨는 여간내기가 아니었다.
‘이게 천조국의 헬창인가?’
중학교 때는 야구를 했지만 그건 엄연히 야구다.
근력 운동은 처음이었으며 처음부터 40kg로 설정한다는 것 자체가 어이가 없었다.
물론 대부분 마이크의 도움을 받아 무게를 들어 올리는 데 성공했지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마이크는 허탈한 표정을 짓는 도진을 힐끗 쳐다보더니 간이 의자에 앉아 넌지시 물었다.
“야구부는 어떠냐?”
“글쎄. 역시나 우리 학교의 전력이 그리 뛰어나지는 않더라. 몇몇 빼고.”
“이번에 알렉산더한테 털렸다며? 풋.”
또 어디서 주워들었대?
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강타자더라.”
“알렉산더도 미친 재능의 소유자긴 하지. 걔 중학 리그에서 30경기 60홈런을 갈겼다니까?”
“중학생이?”
“어. 근데 알렉산더와 비견되는 타자는 당장 캘리포니아에도 한 명이 더 있거든.”
도진은 야구 얘기가 흘러나오자 눈에 생기가 돌았다.
“다른 한 명은 누군데?”
“산타모니카 하이스쿨의 데이브라는 놈도 괴물이야. 이제는 데이브가 알렉산더를 능가할 거야.”
캘리포니아 중학 MVP는 알렉산더가 탔지만, 그는 지금 미식축구를 병행하고 있다.
그래서 한눈판 알렉산더보다 하나만 집중적으로 판 데이브가 고등학교 와서는 성적이 더 뛰어나다고.
“리그 성적만 놓고 봐도 데이브가 위야.”
도진은 눈을 번뜩였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듯이. 미국에는 괴물이 판을 친다.
자신은 뒤늦게 괴물들이 판을 치는 세상에 발을 디뎠다.
‘역시 야구 종주국인가.’
심장박동이 머릿속을 지배하기 시작하더니 손바닥이 땀에 흥건히 젖어 들기 시작했다.
긴장과 호기심이라는 감정이 동시에 오감을 감쌌다.
‘붙어보고 싶다.’
마이크는 활활 타오르는 도진의 눈동자를 포착했다.
“안 무섭냐?”
“무섭다니?”
“아니. 알렉산더한테도 제대로 깨졌잖아? 그런데 산타모니카는 FS보다 전력도 뛰어날뿐더러 데이브라는 놈은 알렉산더보다도 괴물이라고?”
“그러니까. 그게 왜?”
이거 완전히 미친놈이네?
마이크는 서서히 벌어지는 턱을 인지하지 못했다.
그 틈에 도진은 여유롭게 말을 이었다.
“고작 그런 게 무서웠다면 애당초 시작도 안 했어. 참고로 야구가 뭐냐? 타자는 투수와 10번의 대결에서 3번만 쳐도 승리했다고 하고. 투수는 그 3번을 2번 이하로 줄이려고 노력하는 스포츠잖아.”
마이크는 고개만 살포시 끄덕였다.
“그렇지?”
“나는 지금 알렉산더에게 한 번 졌지만, 남은 9번의 승부에서 전부 이긴다면? 결과적으로 내가 이기는 거 아니겠어? 물론 말처럼 결과가 나오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 결과를 위해 노력하는 거잖아? 그게 야구고.”
마이크는 말라버린 아랫입술을 혀로 핥았다.
“맞는 말이네.”
그러더니 마이크는 이내 씁쓸한 표정을 감췄다.
“소원이 생겼다.”
“벌써?”
도진은 파르르 떨었다.
갑자기 웨이트가 더 필요하다는 건 아니겠지?
다행이라면 마이크는 악덕 트레이너는 아니었다.
“둘 다 이겨라.”
“누구? 알렉산더랑 데이브라는 친구?”
“어.”
“알렉산더는 같은 편인데?”
“알아 임마. 그래도 훈련 때 가끔 만날 거 아냐.”
청백전과 같이 팀 내 연습 경기에서 만날 확률이 있긴 하지만 매우 희박하다.
대신 도진은 마이크가 하고 싶은 말을 완전히 깨달았다.
‘혹시 마이크는 그 두 괴물 때문에 야구를 접은 건가?’
마이크를 힐끗 쳐다보자 그는 도진의 시선을 외면했다.
‘맞네.’
마이크는 학교 내 혜택을 전부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는 야구 동아리 출신이면서 자신의 투구를 우습게 잡아냈다.
즉, 마이크도 야구부 제안을 받은 적이 있다는 뜻일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밖에 없어.’
하지만 모종의 이유로 마이크는 거절했으며 그 이유를 지금 알게 됐다.
‘마이크가 말하는 괴물들에게서 재능 차이를 느낀 거야.’
도진은 마이크의 몸을 만져보고 그가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야구를 가볍게 즐기겠다고 몸을 저렇게 유지한다고?
물론 헬창의 취향을 몰라서 억측일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하기에 마이크는 다른 누구보다 학교 야구부에 관심이 많았다.
‘나서지 못할 뿐이지 여전히 야구 하고 싶으면서. 같이 하면 좋으련만.’
하지만 이곳은 미국. 타인에게 강요는 옳지 않다.
그래도 가스라이팅 정도는 괜찮지 않겠냐고 생각한 도진은 주먹을 말아쥐며 자신의 가슴을 두어 번 두들겼다.
“좋아. 재활 다 끝나면 내가 다 이겨줄게.”
자신감 넘치는 말에 마이크는 서서히 도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미친 자신감이네. 된통 깨진 놈이.”
“야! 한 번 깨졌다. 한 번.”
변화구 던졌으면 내가 이겼어!
진 쪽에서의 변명은 비참했기에 도진은 나오려는 말을 꾹 참았다.
대신.
“노력해서 다음엔 무조건 이길 거야.”
난 노력할 테니 넌 뒤에서 지켜보거라.
자존심 강한 미국인이 이 말을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자신도 그간 집안 사정 혹은 다양한 핑계들을 뒤로한 채 야구를 등한시했다.
‘하지만 다시 야구를 할 수 있게 되자 세상 모든 것을 갖은 기분이었지. 마이크. 너도 그럴 거다. 물론 선택은 너의 몫이지만.’
마이크는 식단도 근력 운동도 전부 도와주고 있다.
도진도 그런 은인에게 보답하고 싶었다.
‘마음속에 사그라든 불씨를 다시 지피는 게 쉽지 않다는 건 내가 제일 잘 알지.’
그러니 일단 몸부터 탄탄히 만든다.
몸소 보여주는 편이 제일 좋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