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seball genius who chews up America RAW novel - Chapter (134)
미국 씹어먹는 야구 천재-134화(134/400)
10월 초.
애리조나에 도착한 도진은 상우에게 물었다.
“각 구단에서 7명 초청받는다고 했지?”
“어. 한 팀에 35명. 투수 4명에 타자 세 명이었어. 그런데 우린 투수 넷에 타자 넷이겠네.”
“그럼 우리 팀 투수의 공은 전부 네가 받아야 하나? 중요한 역할을 맡았네.”
상우는 긴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작년엔. 하…… 말을 말자.”
“왜. 무슨 일 있었어?”
상우는 다시 한번 한숨을 내뱉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텃새 장난 아니었어. 감독, 투수들 그냥 죄다 날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었지.”
“그때는 루키 리그 소속도 아니어서 더 그랬겠네. 특히 너 대화도 안 통했잖아.”
“진짜 최악이었지. 천천히 얘기해 달라해도 무시하더라.”
도진은 상우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이번엔 너무 걱정할 필요 없다. 내가 있잖아? 통역 해줄게.”
“그래서 다행이지. 만약 네가 없었다면. 어휴. 내가 영어 실력이 좀 늘었어도 여전히 어렵거든.”
고작 1년 만에 영어 실력이 부쩍 늘 수는 없는 법.
도진은 미국에 도착했을 때 야구를 포기하면서까지 영어 공부를 했음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어느 순간 귀와 입이 트이는 날이 생기지만, 상우는 야구까지 병행해야 했으므로 시간이 조금 더 필요했다.
어딘가 풀이 죽은 상우에게 도진은 농담을 건넸다.
“너 근데 애리조나 가을 리그 폭격했다고 하지 않았냐?”
“닥쳐.”
도진은 피식 웃었다.
상우가 허풍을 떤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애리조나 가을 리그는 상우가 미국에서 첫선을 선보인 무대다.
대화도 문화도 무엇 하나 통하지 않는 이곳에서 처음부터 잘 해낼 리는 없었다.
상우는 도진을 원망스럽게 쳐다봤다.
“폭격했어 임마!”
“성적이 어땠는데.”
“2할 6푼. 조금 더 쳤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
도진은 그래도 잘했다며 손뼉을 쳤다.
“괜찮았는데? 그보다 못했을 줄 알았는데.”
“장난하냐? 처음엔 3할도 넘겼어!”
“원래 타수가 적을 땐 3할은 쉽게 도달할 수 있잖아.”
“……닥쳐! 집중해야 하니까.”
집중은 무슨.
하지만 여기서 성질을 더 긁었다간 상우의 멘탈이 바사삭 내려앉을 수도 있으니 그만두기로 했다.
때마침 구장의 입구에 다다를 때쯤 익숙한 얼굴이 도진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상우는 뒤를 한번 돌아보더니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도진에게 물었다.
“야. 저 미국인 우리에게 손 흔드는 것 같은데?”
“어. 맞아.”
“누군데?”
“3년 전 에인절스 1픽이자 이번 애리조나 가을 리그 참가자.”
그레그는 도진에게 다가오더니 그를 꼭 안았다.
“헤이 슈퍼 루키! 신수 좋아 보이네?”
“그레그. 잘 지냈어요?”
그레그는 굳은살이 잔뜩 배긴 손바닥을 도진에게 들이밀었다.
과장 좀 보태면 손바닥 자체가 굳은살로 이루어져 있었다.
“연습 열심히 했네요?”
“말도 마라. 내가 이렇게나 열심히 할 수 있는 사람인지 처음 알았다.”
그레그는 상우를 힐끗 쳐다봤다.
“Who?”
“제 친구입니다. 작년 에인절스가 픽한 선수기도 하고요.”
“국제 드래프트?”
“맞아요.”
“그런데 친구라고?”
그레그의 눈빛이 서늘해졌다.
그는 상우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손을 내밀었다.
“헤이. 3년 전 에인절스 1픽 그레그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1픽. 그레그 호먼이다.”
1픽을 두 번이나 강조하다니.
국제 드래프트에는 픽이 존재하지 않기에 본인이 우위에 있다는 것을 강조했던 것.
상우는 아직 미국인이 익숙하지 않았는지 잔뜩 움츠러들었다.
“하이. 아임 코리안 베…… 으으 캐쳐.”
“왓?”
“코리안…… 캐쳐.”
베스트는 어디 갔냐?
그 자신감 넘치는 상우는 또 어디 갔고.
그레그는 왠지 모를 승리의 미소를 띠었다.
상우는 반쯤 우는 표정이었다.
“루키 리그인가? 참고로 나는 로우 A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루키가 아닌 로우 A다.”
계속 강조하네?
원래도 그레그는 좀 괴짜였지만, 도진은 오늘 그가 더욱 괴짜처럼 느껴졌다.
상우 역시 그렇게 느꼈는지 도진에게 한국말로 나지막이 읊조렸다.
“야. 이 새끼 눈이 이상해.”
* * *
약속된 장소 안으로 들어가자 정말 많은 인원이 있었다.
한 팀에 35명. 총 6팀이다.
210명이 한 자리에 모여 있었으니 시장통을 방불케 했다.
하지만 도진은 아는 얼굴이 다가오자 절로 미소가 솟았다.
“헤이 킴.”
도진은 손을 흔들며 다가오는 놀란에게 악수를 청했다.
“놀란. 잘 지냈어?”
“잘 지냈을 것 같아? 금액도 뭣도 마음에 드는 게 하나도 없어.”
놀란의 드래프트 금액은 1,100만 달러로 결코 적은 금액은 아니었다.
심지어 도진이 나타나기 전까지만 해도 1위 예정자.
그렇기에 도진은 쉽사리 장난 섞인 농담도 건네지 않았다.
놀란은 농담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농담이다. 1,100만 달러도 만족해. 그리고 무엇보다 구단이 만족스럽다.”
“양키스 입단 축하해.”
“너도 에인절스 입단 축하한다. 그리고 1등도.”
놀란은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말과 표정으로 어떠한 악감정도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이내 눈에 불을 켰다.
“어디까지나 아마추어 한정이라는 걸 잊지 마라. 프로에서는 꼭 널 넘어설 테니까.”
“나도 놀고만 있진 않을 거라서.”
놀란은 피식 웃더니 상우에게 손을 내밀었다.
상우는 손바닥에 땀을 닦더니 그와의 손을 맞잡고 가벼운 인사를 나눴다.
그때 익숙한 흑발의 아시아인이 도진에게 다가왔다.
“킴. 축하한다.”
“사토. 고맙다. 너도 메츠 입단을 축하해.”
타카시는 씁쓸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 역시도 700만 달러 급 계약을 한 일본 최고의 유망주.
더욱이 신흥 강자로 떠오른 뉴욕 메츠 소속이 되었다.
그런 그는 이내 씨익 웃더니 등을 돌렸다.
“경기에서 보자.”
옆에서 가만히 지켜 보던 그레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렇게 보니 네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겠다.”
도진은 그레그의 느닷없는 칭찬에 고개를 갸웃했다.
그레그는 말을 덧붙였다.
“너 쟤네가 누군지 알지?”
“아니까 인사를 나눴겠죠?”
그레그는 아차 싶다는 표정을 짓더니 뒤통수를 벅벅 긁었다.
“놀란 카브레라와 타카시 사토. 나도 쟤들과 붙어봤지.”
그레그가 4학년 때 놀란과 타카시는 1학년.
접점이 있을 만은 했지만…….
“어? 그레그 하이스쿨 인비테이셔널 나갔었어요?”
그레그는 버럭했다.
“단골손님이었어! 이 자식아!”
아. 맞다. 그레그도 1픽이었지.
도진은 표정으로 말했고 그레그의 눈치는 빨랐다.
“와. 내 위상이 이렇다고?”
그레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다시 본론으로 들어갔다.
“어쨌거나 쟤네는 1학년 때부터 하이스쿨 인비테이셔널에서도 날아다녔어. 그런데 네가 쟤네 둘까지 누르고 제일 비싼 금액에 사인했다 이거잖아?”
“운이 좋았죠.”
“F***. 운은 무슨. 그 미친 연습량 덕분이겠지.”
“그레그도 그 미친 연습량을 장착했잖아요?”
그레그는 깨달았다는 표정으로 다시 한번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렇네? 좋은데?”
“네. 좋네요.”
뭐가 좋은지는 잘 모르겠지만, 수긍하지 않는다면 도진은 고막이 괴로워지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 * *
도진과 일원들은 관계자의 인솔을 받아 캐멀백 랜치 스타디움에 도착했다.
이곳은 휴스턴 애스트로스, 시카고 화이트삭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그리고 LA 다저스와 에인절스의 유망주들이 한 팀이 되어 홈구장으로 사용하는 곳이었다.
35명의 선수는 애리조나 가을 리그가 끝날 때까지 이곳에서 훈련하고 홈 경기를 치르게 된다.
그리고 이 홈구장을 사용하는 팀 명칭은 글렌데일 데저트 독스였다.
관계자들은 거대한 상자를 옮기기 시작하더니 5개의 상자가 그라운드에 들어서기 시작했다.
상우는 감격스럽다는 말투로 말했다.
“여기서만 느낄 수 있는 뽕이 시작되겠네.”
“무슨 뽕?”
“곧 알게 될 거다.”
상우의 말이 끝나자 관계자들은 선수들에게 지시했다.
“와서 유니폼 받아 가세요!”
하나의 공통된 유니폼이 아니었다.
5개의 상자에는 각 구단의 유니폼이 있었다.
“도진 킴! 와서 유니폼 받아 가세요!”
제일 먼저 호명된 도진은 에인절스가 적힌 상자 앞으로 다가갔다.
관계자는 상 하의로 이뤄진 총 4벌의 유니폼을 도진에게 건넸다.
빨간색의 유니폼.
가슴팍에는 ANGELS라는 단어가 박혀 있었다.
도진의 어깨가 파르르 떨렸다.
상우의 말마따나 희열이 전신을 감싸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다음. 쌩우 리!”
잠깐 멍해 있던 도진은 그제야 정신이 깨어났다.
그 즉시 자리로 돌아갔다.
그레그는 큭큭 웃었고 유니폼을 받고 돌아온 상우는 대놓고 비웃었다.
“어때? 뽕 차오르지?”
“어. 장난 아니네.”
“나도 작년에는 그랬지.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까 슬프더라고.”
“왜?”
“그야 한 달 반 정도는 이 유니폼을 입지만, 돌아가서는 다시 마이너리그 유니폼을 입어야 하니까.”
도진은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대답했다.
“확실히 그렇겠네.”
“응. 그래도 지금을 만끽해야겠지. 나도 이제는 적응된 줄 알았는데 여전히 감회가 새롭긴 하다.”
도진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른 선수들은 각자 구단의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유니폼 착용이 끝나자 원소속 팀원들과 인사를 나누는 시간.
에인절스 에녹을 필두로 나머지 6명의 선수가 그의 앞에 섰다.
에녹은 무심하게 말했다.
“반갑다. 에인절스 트리플 A 소속 에녹이다. 사고만 치지 말고 열심히 해라.”
그 말만 남긴 즉시 그는 자리를 떴다.
그레그는 도진에게 나지막이 속삭였다.
“에녹 보라인. 메이저리그 승격을 앞둘까 말까 한 선수야.”
한참 예민할 시기.
야구가 팀 스포츠라고 해도 메이저리그를 앞둔 시점에서는 오로지 개인만 신경 쓰게 될 수밖에 없다.
메이저리그를 밟는 순간 돈이며 대우며 인생의 전환점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
호랑이가 없을 땐 여우가 왕이라고 했던가?
두 흑인 오베론과 카심이 에녹이 서 있던 위치에 섰다.
그들은 도진, 상우 그리고 그레그를 향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어이 루키들. 이번 캠프에서는 우리 보조에 힘써라.”
“어차피 메이저리그까지 아직 한참 남았잖아? 캠프 생활 편하게 하고 싶으면 우리 말을 따르는 게 좋을 거야.”
가만히 듣던 도진은 눈초리를 가늘게 찢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오베론이 대표로 대답했다.
“쉽게 설명해주지. 트리플, 더블 A 선수들까지 참가하는 이 캠프에서 네놈들이 발악해봤자 성적 내기는 힘들다. 그러니 팀플레이 위주로 가자는 거지.”
도진은 눈을 번뜩이며 깨달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 그러니까 메이저리그를 앞둔 두 분을 잘 보필하면 된다는 뜻이군요?”
“오? 너 이해력이 빠르구나? 나중에 메이저리그로 올라오면 우리가 잘 봐주도록 하지.”
모든 마이너리그가 그렇듯, 애리조나 가을 리그 역시 팀보다는 개인 퍼포먼스, 즉 본인 성적이 제일 중요하다.
그런데 팀플레이를 강조하면서 보조나 하라고?
자력으로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을 수 없기에 이렇게 추한 모습을 보이는 거겠지.
도진은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메이저리그에 올라가면 잘 봐준다고요? 올라갈 순 있고요?”
같은 에인절스 소속?
리그부터가 다르기에 전부 적.
굽힐 이유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