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seball genius who chews up America RAW novel - Chapter (136)
미국 씹어먹는 야구 천재-136화(136/400)
경기가 시작되자 타오르던 신경전의 불길은 금세 꺼졌다.
그런데도 도진의 심장은 여전히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시합에 임하는 선수들의 기량이 워낙 출중했기 때문이다.
‘이야. 다들 장난 아니네?’
마운드에 선 투수가 던지는 공은 마치 돌덩이를 던지는 듯한 위력이었으며, 타자의 스윙은 걸리면 담장을 넘길 만큼 강력한 음색을 내질렀다.
도진의 옆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상우는 혀를 내둘렀다.
“어휴. 어째 작년보다 올해가 더 빡세 보이냐?”
“그래?”
“어. 애들 수준이 갑자기 높아진다고? 갑자기 불안하네.”
“그냥 네가 미국 야구가 어느덧 적응돼서 그렇게 보이는 걸 수도 있겠지.”
상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도 있겠다. 작년에는 진짜 내가 뭘 했는지 기억도 안 난다.”
도진은 피식 웃었다.
“긴장만 하지 마라. 올라가야지.”
그때 입술을 삐쭉 내민 그레그도 치고 들어왔다.
“캠프는 3년만인데 왜 이렇게 수준이 높아진 것 같냐.”
“그래요? 그때는 어땠는데요?”
“3년 전이지만, 첫 캠프라 기억은 남아 있거든. 이 정도로 빡세다고 느끼진 않았는데.”
빡세다.
도진은 캠프를 처음 경험해본다.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겠네.’
하지만 상우와 그레그는 두 번째 캠프.
약한 척하지만 여유가 보였다.
‘본인들은 인지하지 못해도 프로에서의 경험 덕분에 여유가 생겨 남들을 살필 여력이 된 거겠지.’
도진은 그레그에게 말했다.
“제 친구도 똑같은 말을 했는데. 둘이 좀 통하네요?”
“통해? 통해애? 뭐가 통해! 하나도 안 통해.”
아니. 왜 저렇게 버럭한다냐?
거짓말을 한 것도 아니며 지어낸 말은 더더욱 아니었다.
상우가 도진에게 물었다.
“야. 코쟁이 왜 화났냐?”
“코쟁이가 뭐냐?”
“코쟁이를 코쟁이라 하지 뭐라 하냐? 어쨌거나 뭐래?”
“너랑 같은 말 하더라고.”
“무슨 말.”
“이번 캠프가 더 빡세 보인다고 하더라고.”
상우는 이내 회심의 미소를 띠었다.
“딱 알았어.”
“뭘?”
“해마다 수준이 느나 보네. 야구가 원래 그렇기도 하고. 저 늙다리가 캠프에 참여했던 시절과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지.”
야구는 해마다 발전하기 때문에 묘하게 일리 있는 말이지만 명확한 근거는 아니다.
그레그가 도진을 보챘다.
“쟤가 뭐랬냐?”
도진은 뒤통수를 벅벅 긁었다.
자신은 야구 선수지 통역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둘이 직접 얘기해보는 게……”
“뭐라고 했냐고!”
아니 왜 또 화를 낸담?
도진은 상우의 말을 그대로 전달했다.
물론 코쟁이 부분은 빼고.
그레그의 눈동자가 이글이글 타올랐다.
“뭔 개소리야! 그냥 구단 사정에 따라 다른 거지. 구단이 어떤 선수를 언제 이곳으로 보낼지는 아무도 모르는구만. 포수가 돼서 그것도 몰라?”
상우는 그레그의 영어를 알아들었다.
“뭐? 포수가 어쩌고 어째?”
“포수가 그것도 모르냐고!”
이제는 둘이 눈에 불을 켜고 서로를 아득바득 노려보고 있었다.
그사이에 낀 도진은 입맛을 다셨다.
‘아오. 뭐 하냐고…….’
우리는 아군이라고.
왜 저러는지는 모르겠으나 도진은 둘의 울분을 경기력으로 보여줬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 * *
2회 말.
선두타자는 도진과 신경전을 벌이던 에인절스 더블 A 소속 선수 5번 카심이었다.
나름 화기애애했던 분위기는 금세 침묵했다.
상우와 그레그도 카심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부웅.
초구부터 커다란 스윙이 나왔다.
190cm가 넘는 체구에서 나오는 스윙은 비록 헛스윙이 되었지만, 힘이 잔뜩 실려 있었다.
‘괜히 더블 A가 아니긴 하네.’
스윙 자체가 지금까지 상대해본 선수들과는 확실히 달랐다.
경험은 무시할 수 없듯이 저들이 더블 A 소속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
말다툼이 있었지만, 그들의 실력까지 깎아내리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도 스윙이 너무 큰데?’
밸런스가 무너지고 있었다.
상우와 그레그도 한마디씩 내뱉었다.
“마음이 너무 앞서는데?”
“아마 우리와 언쟁이 있었던 게 문제가 된 모양이군.”
도진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먼저 시비를 건 건 저쪽이다.
저들이 마음을 추스르지 못하고 경기에 임했다는 건 오로지 본인들 잘못이었다.
‘그래도 아쉽긴 하네.’
이곳에서 다양한 장점들을 흡수하고 싶었다.
카심은 장점 가득한 스윙을 할 줄 아는 타자.
하지만 이미 무너진 마음가짐으로는 결과를 낼 수는 없는 법.
호쾌한 스윙은 허공만을 갈랐다.
“스트라이크 아웃!”
카심은 아쉬워하며 배트를 바닥에 찍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도진은 마음을 고쳐먹었다.
‘남 신경 쓸 때는 아니지.’
그라운드에서 경기를 뛰는 총 35명의 선수는 아군이자 경쟁자다.
주전 자리를 꿰차려면 저들보다 우위에 서야 했다.
이닝은 삼자범퇴로 마무리되자 도진은 그 즉시 헬멧을 썼다.
상우는 도진에게 배트를 건넸다.
“기, 긴장하지 마라.”
내민 팔이 파르르 떨렸다.
도진은 피식 웃었다.
“알았다.”
그러자 그레그가 도진의 뒤에서 나타나 어깨를 주물렀다.
“애, 애리조나 캠프도 뭐 없어.”
말까지 더듬는 거로 보아 긴장하는 건 오히려 그레그였다.
“이번 이닝 저희 셋이 출격하니 힘내보죠.”
그 말을 끝으로 도진은 더그아웃을 벗어나 타석으로 이동했다.
타석에 들어서는 순간 투수가 바뀌었다.
‘아쉽네. 선발 투수의 공이 슬슬 눈에 익고 있었는데.’
물론 선수가 워낙 많아 길어야 2이닝만 던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도진은 선두타자로서 해야 할 일을 명확히 알고 있었다.
‘공을 오래 본다.’
팀을 위한 움직임이기도 했지만 결국 본인을 위한 것이었다.
‘도널드 감독님이 얘기하셨지.’
모든 선수가 돋보이고자 한다면 그 팀은 잘 될 수가 없다.
그리고 이 수많은 유망주를 맡게 된 감독도 알고 있을 터.
‘아직 더블 A나 트리플 A 선수들의 기량이 어느 정돈지는 모르겠지만.’
타격해서 안타가 나오면 좋고 장타가 나오면 금상첨화다.
하지만 캠프의 기간은 한 달 반 남짓으로 너무나도 짧다.
이 기간에 최대한 많은 것을 보여주려면 한 경기라도 더 나서야 한다.
그렇기에 도진은 다른 이들과 생각을 달리한 것이었다.
‘더 높은 확률에 기대를 건다.’
선수가 다양한 무기를 갖췄다는 건 감독의 선택권을 늘려준다는 것과 같은 뜻.
모두가 개인 성적만을 보고 스윙할 때 이런 종류의 선수도 존재한다는 것을 각인시키고 싶었다.
“볼!”
초구는 몸쪽에서 살짝 벗어난 공으로 운이 좋았다.
애당초 칠 생각이 없었지만, 카운트가 유리하게 흘러간다는 건 희소식이었다.
도진은 방금 전 공을 머릿속에 되뇌었다.
‘93마일 패스트볼. 위력적이야.’
투구에서 힘이 느껴졌다.
정타를 맞추더라도 공이 뻗어나갈지는 미지수.
‘작전은 그대로 간다.’
생각과는 별개로 도진은 눈을 빛내며 투수를 노려봤다.
언제든지 스윙할 수 있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었다.
그 때문인지 투수는 슬라이더를 던졌다.
슬라이더의 궤적은 타자의 스윙을 끌어낼 만큼 완벽했지만 도진은 스윙하지 않았다.
심리전에서 앞선 것이었다.
“볼!”
2-0 카운트. 더욱 유리해졌다.
3구.
도진은 투수가 와인드업에 들어가는 순간 그를 흔들고자 번트 자세를 취했다.
이 때문에 투수의 자세가 순간 흐트러졌다.
투수의 공을 떠난 공은 포수 머리 높이로 날아오는 패스트볼.
도진은 공이 미트에 꽂히기 전 배트를 회수했다.
“볼!”
3-0.
투수는 결국 도진과의 승부에서 말렸다는 것을 인지하며 그와의 승부를 피했다.
“베이스 온 볼스!”
첫 타석부터 출루한 도진은 기분 좋게 캠프를 시작했다.
* * *
“나이스! 나이스!”
대기 타석에서 이를 지켜보던 상우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정말 대단한 새끼네.’
애리조나 캠프 첫 타석이다.
충분히 긴장될 법한 상황에서도 도진은 선두타자로서 해줘야 할 일을 명확히 해주었다.
그와 동시에 더그아웃 입구에서도 주먹을 불끈 쥔 선수가 있었다.
그레그였다.
“나이스 eye!”
그 즉시 둘은 눈이 마주쳤다.
서로는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돌렸다.
어쨌거나 이제는 타석에 임해야 하는 상우는 마른침을 꼴깍 삼키며 천천히 걸어 나갔다.
잔뜩 긴장한 그는 머릿속이 좀처럼 정돈되지 않았다.
‘어떡해야 하지?’
미국은 개인 성향이 강하다.
개인 성향이라는 맞지 않은 옷을 입겠다고 무리해서 스윙했다가 말 그대로 망했다.
‘내가 작년에 캠프 중반부터 망가진 게 그 때문이었지.’
상우는 금세 입꼬리를 올렸다.
할 수 있는 플레이를 마음껏 뽐내는 도진을 보지 않았다면 이번에도 똑같았을 것이다.
‘하지만 올해는 아니야.’
상우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이제는 명확히 알 수 있었다.
‘스코어는 0:0. 실력은 우리 팀이 열세. 중요한 건 선취점이다.’
상우는 도진과 눈을 맞췄다.
도진은 그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시즌이 끝나고 도진과 훈련을 진행하며 다양한 대화를 나눴다.
‘뭘 더 추가한다기보다는 기존의 것들을 강화했지.’
개인적인 퍼포먼스를 끌어올리고자 개인 훈련을 했다.
하지만 경기 내에서의 진행 방식에 관한 토론은 정말 쉴 새 없이 나눴다.
그리고 그중 하나를 지금 선보일 차례.
상우는 투수를 노려봤다.
그는 1루에 나가 있는 주자를 신경 쓰고 있었다.
‘저 심정 잘 알지.’
고작 연습 게임이다.
실점한다고 인생이 무너져내리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쉽지 않거든. 나도 그랬잖아?’
작년 캠프에서는 안타를 치는 날에는 세상을 다 가진듯했지만, 안타를 치지 못한 날에는 모든 것이 무너져내린 심정이었다.
일희일비했던 과거는 좋은 경험이 되어 돌아왔다.
투수는 무실점으로 막고 싶을 터.
‘투수가 이번 이닝을 뜻대로 가져가려면 초구 스트라이크뿐이다.’
공이 투수의 손을 떠날 즘 상우는 번트 자세를 취했다.
이미 도진에게 당한바 있던 투수는 이번만큼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렇기에 상우는 웃었다.
‘걸렸어.’
토옥.
상우는 그대로 번트를 댔다.
투수와 포수는 예상치 못한 번트에 우왕좌왕하며 3루 측으로 데굴데굴 굴러가는 공을 향해 내달렸다.
거리가 조금 더 가까웠던 투수가 포구하더니 그 즉시 1루를 향해 공을 던졌다.
“아웃! 아웃!”
간발의 차이로 공이 더 빨랐다.
그런데도 상우의 입꼬리는 치솟았다.
주루 능력이 워낙 뛰어난 도진은 2루를 돌아 3루에 안착했기 때문이다.
또한 이미 눈빛으로 작전을 나눴기에 자신이 번트 자세를 취하는 순간 도진은 스타트를 끊었다.
‘작전 성공.’
상우는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더그아웃으로 향하는 도중 그레그와 눈이 마주쳤다.
새어 나오는 한숨을 꾹 삼켰다.
‘하. 1사 3루. 이 코쟁이가 제대로 마무리는 해주려나?’
그레그는 상우의 눈빛을 읽었다.
‘하. 루키 자식이 날 못 믿어? 어? 너 내가 누군지 알아?’
그레그는 눈에 불을 켠 채 타석에 들어섰다.
그러고는 초구부터 배트를 강하게 휘둘렀다.
‘나 그레그 호먼이야!’
마음속으로 크게 울부짖은 그레그의 배트가 공을 만났다.
따-악!
한 달 동안 3만 번 스윙했다.
강하게 휘둘렀음에도 그의 자세는 무너지지 않았다.
물론.
투수의 구위는 강했다.
로우 A에서는 충분히 홈런이 나올 법한 완벽한 스윙이었지만, 타구는 중견수 플라이.
그래도 도진은 3루 태그업을 통해 홈을 밟았다.
더그아웃 근처에서 도진을 만난 그레그는 엄지를 치켜세웠다.
“좋은데? 눈 좋은데? 주루도 좋은데?”
도진은 피식 웃었다.
“그레그도 스윙 좋은데요?”
도진은 기분 좋은 미소를 띠며 상우 옆에 털썩 앉았다.
“번트. 좋았다.”
상우는 말 없이 주먹을 들이밀었다.
도진은 상우의 주먹을 톡 쳤다.
스코어는 1:0.
더블 A 미만으로 이뤄진 팀의 하위 타선이 완벽한 단독 작전으로 선취점을 만들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