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seball genius who chews up America RAW novel - Chapter (137)
미국 씹어먹는 야구 천재-137화(137/400)
더그아웃이 아닌 포수 뒤편 관중석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토마스 감독은 흥미롭다는 눈빛으로 턱을 매만졌다.
‘오?’
캠프는 다양한 선수들에게 기회가 주어지지만, 결국 주전과 비주전으로 나뉜다.
이번 경기는 주전을 뽑기 위한 연습 경기.
그러므로 작전을 따로 지시하지 않는다.
솔직한 말로 기대가 되지 않은 선수들을 모아놨다고 봐도 무방한 더블 A 미만 팀.
통칭 하위리그 소속팀.
그런데 기대도 않았던 하위리그 팀, 그중에서도 하위타선이 일을 냈다.
감독의 양쪽 입꼬리는 호선을 그렸다.
‘마치 한 팀에서 오래 뛴 것처럼 완벽한 플레이를 선보였군.’
캠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그림.
개인 기량을 선보이는 자리에서 누가 이런 작전을 선보이겠는가?
그의 시선은 군더더기 없는 완벽한 번트 작전을 수행한 상우에게 향했다.
‘아시아인들이 번트는 기가 막히지. 좋은 모습을 보여줬군.’
현대 야구에서 번트는 독이다.
아웃카운트를 공짜로 내주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전문가 대부분의 평가였다.
하지만 메이저리그에서 번트가 아예 사장됐나?
아니.
승부처에서만큼은 강팀들도 번트를 자주 선보인다.
‘그저 번트를 남발하는 게 문제인 거지 승부처라고 생각하면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지.’
고작 3회가 승부처인가?
누군가 자신에게 그렇게 묻는다면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저 하위리그 팀은 상대적으로 약팀이야. 하지만 야구는 분위기가 중요한 법이니, 그 분위기를 가져올 수만 있다면 승부처지.’
물론 점수는 언제 뒤집힐지 모르지만, 결국 분위기를 가져오지 않았던가?
승부처가 경기에서 고작 한 번일 필요는 없었다.
무엇보다 감독은 작년 가을리그에 참가한 상우를 기억했다.
‘경험이 쌓여서 그런가? 좋아졌군.’
이어서 감독의 시선은 타점을 올린 그레그에게 향했다.
‘음. 스윙이 매우 좋았어. 어디 보자.’
감독은 손에 쥔 A4 용지를 확인했다.
로우 A 출신의 그레그 호먼.
그가 속한 리그에 비하면 정말 멋진 스윙이었다.
‘힘이 동반된 기술적인 타격. 앞으로가 기대되는데?’
그 후 감독의 시선은 묵묵히 경기를 지켜보는 도진에게 향했다.
‘이번 드래프트 최대어지.’
투타 겸업 천재. 소문은 들었다.
하지만 각 구단 모든 유망주를 매해 접하는 토마스 감독은 고졸 루키에 대한 기대는 매우 적었다.
그만큼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선수들은 프로를 몇 년씩 겪어본 선수들 사이에서 기도 못 펴기 마련.
그런데 저 선수는 아니었다.
‘눈도 좋고 주루도 좋지만, 그건 일차원적인 장점이고. 마치 후속 타자들의 컨트롤 타워 같았어.’
그라운드 위의 마에스트로.
그는 출루와 주루로 후속 타자들을 지휘했다.
‘뭐. 운일 수도 있으니 조금 더 지켜보도록 할까?’
그런데도 감독의 미소는 사그라지지 않았다.
언제나 개인플레이만 해대는 애리조나 가을 캠프에서 팀으로 움직이려는 선수들이 시작부터 무려 셋이나 포착됐기 때문이다.
한편.
이들의 활약에 달갑지 않은 선수들도 존재했다.
에인절스 더블 A 소속 오베론과 카심이었다.
오베론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젠장. 엿 같이 플레이하는구나.”
상대 선수를 욕한다는 건 극찬이다.
하지만 욕한 당사자는 극찬의 의미로 말한 것은 아니었다.
정말로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첫 타석에서 꼴사나운 모습을 보인 카심도 동의했다.
“대량 득점으로 분위기를 가져갈 생각은 못 할망정. 하위리그 출신들답게 겁쟁이처럼 경기하네.”
“카심. 다음 타석에서는 왜 우리가 우위에 있는지 확실히 보여줘라.”
“그럴 생각이다. 젠장. 첫 타석에서는 힘이 너무 들어갔어.”
오베론은 그거면 됐다며 카심의 어깨를 도닥였다.
야구에서는 선수를 평가할 때 고작 한 경기만 두고 평가하지 않는다.
하지만 주전이 정해질 수도 있는 이 자리에서 뭐라도 보여줘야 하는 것이 인지상정.
주전을 꿰차지 못할지라도 하위리그 출신들에게만큼은 절대 져서는 안 됐다.
* * *
더블 A 이상이 모인 팀.
통칭 상위 리그 소속 팀은 4회에 기회가 왔다.
투수는 2번부터 시작하는 타순에게 연달아 2아웃을 잡고 이닝을 기분 좋게 시작했다.
하지만 에인절스의 메이저리그 예정자 에녹은 호쾌한 스윙으로 펜스를 맞추는 3루타를 생성했다.
도진은 혀를 내둘렀다.
“이야. 스윙 봤냐?”
상우의 눈은 휘둥그레졌다.
“장난 아니네? 저 사람 우리 에인절스 소속이잖아.”
“메이저리그 예정자라고 들었어.”
“저 정도는 쳐야 메이저리그 가는 건가? 어렵다 어려워.”
“인정.”
지금까지 만난 그 어떤 선수들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실례.
도진과 상우는 눈빛에 존경을 담았다.
팔짱을 끼던 그레그가 끼어들었다.
한국말을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눈치껏 둘의 대화를 유추해볼 수 있었다.
“에녹. 정말 대단한 선수지.”
“그러니까요. 첫 타석에서도 큼지막한 타구를 생성해내더니 역시나. 몸이 풀렸는지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네요.”
“내 스윙과 비교하면 어떠냐?”
도진은 살포시 고개를 돌려 그레그를 쳐다봤다.
눈초리가 가늘게 찢어진 것이 마치 벌레를 보는 표정이었다.
그걸 질문이라고?
그레그는 당황했다.
“아, 아니! 누가 저 사람과 동등하냐고 물었냐고!”
“그렇게 들렸는데요?”
“내, 내가 저 사람에 비해 부족한 게 뭔지 물은 거야.”
“그런데 왜 더듬어요?”
“아. 날씨가 습해서 목이 턱턱 막히네.”
“습하다고요?”
이보다 완벽한 날씨가 세상에 더 있을까 싶은 날씨인데?
선선한 바람이 피부를 감싸는 경기장은 야구 하기에 딱 좋은 날씨였다.
“F***. 나도 3만 번 스윙했는데…….”
도진은 그레그의 나지막한 읊조림을 듣지 못했다.
“뭐라고요?”
도진이 되묻자 그레그의 동공이 파르르 떨렸다.
“아무 말도 안 했어.”
도진은 눈치가 빨랐다.
“설마 최근에 스윙 3만 번 했다고 으스댄 건 아니죠?”
“누, 누가 으스댔다고 그래!”
“조금 더 분발하죠.”
“그럴 생각이야!”
다음 타자 카심이 타석에 들어섰다.
그는 부담을 내려놓고 완벽한 스윙을 선보였다.
좌익수 방면으로 향하는 희생플라이였지만, 도진의 고개가 절로 끄덕였다.
‘이번에는 제대로 스윙했네.’
첫 타석과 다르게 소프트아이스크림처럼 부드러운 스윙이었다.
덕분에 3루 주자를 손쉽게 홈으로 불러들이는 완벽한 타구가 나왔다.
도진은 상우의 옆구리를 툭 쳤다.
“좋지 않았냐?”
상우는 미간을 구기더니 입술을 빼쭉 내밀었다.
“야. 1시간 전에 우리한테 지랄하던 놈들인데?”
“그거랑 이거랑 뭔 상관이냐? 원수라도 배울 건 배워야지.”
상우는 진절머리가 난다는 표정이었다.
“넌 진짜 야구에 미쳤어. 솔직히 난 방금 저놈 스윙이 기억 안 나. 삼진당하라고 속으로 주문 외우고 있었거든.”
도진은 상우의 마음도 이해했다.
미운 사람에게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부류도 분명 존재했고, 잘못됐다 생각하지도 않았다.
‘선수의 기본 덕목에 인성도 포함이거든.’
하지만 이미 미국 야구에서 다양한 차별을 경험한 도진은 내성이 있었다.
상대가 자신을 싫어해도 딱히 상관없었다.
‘원수의 장점만 쏙쏙 빼먹는 것도 나쁘지 않잖아? 나중에 기회가 생긴다면 저렇게 스윙해봐야겠네.’
생각을 마친 도진은 그레그를 힐끗 쳐다봤다.
그 역시도 미간을 잔뜩 구긴 채 눈에 불을 켜고 있었다.
카심이 멋진 스윙을 선보여서 그런 건가?
도진은 의견을 물었다.
“그레그. 방금 스윙 어땠어요?”
“안 봤어.”
“근데 표정이 왜 그래요.”
“저 새끼 삼진당하라고 주문을 외우고 있었으니까. 넌 그럼 스윙을 본 거야?”
“네. 스윙 좋던데요?”
그레그는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을 띠었다.
“야. 쟤 우리한테 지랄하던 놈 중 하나야. 잊었어?”
“잊진 않았죠. 근데 야구잖아요? 전쟁이 일어난 것도 아닌데요. 배울 건 배워야죠.”
그게 상식적으로 가능한 거야?
그레그는 눈빛으로 말했다.
도진은 어금니를 꽉 문 채 무표정을 유지했다.
상우와 그레그의 반응이 너무나도 똑같고 재밌었기 때문이다.
‘정말 죽이 잘 맞는다니까?’
도진은 다시 경기에 집중했다.
그렇기에 눈에 불을 켜고 이를 바득바득 갈며 서로를 노려보는 둘을 발견하지 못했다.
‘코쟁이 자식. 내가 너보다 훨씬 도진이와 합이 더 잘 맞아!’
‘아오. 로우 A 출신 사이에 루키리그 소속이 껴 있으니 될 것도 안 되겠네.’
둘은 마지막 생각마저도 완벽히 일치했다.
다음 타석에서 자신이야말로 도진과 영혼의 파트너라는 것을 타격으로 증명하겠다고.
* * *
도진은 두 번째 타석에서 행운의 안타를 뽑았다.
변화구 각이 예상했던 것보다 더 예리해 빗맞은 타구가 나왔다.
깎여 맞은 타구는 2루수와 우익수 사이에 안착했지만, 상우는 삼진을 당했고 그레그는 유격수 땅볼로 병살타가 되었다.
둘은 더그아웃에서 도진을 사이에 두고 불평을 내뱉었다.
“코쟁이 새끼. 천금 같은 기회를 병살타로 기회를 날려 버리네.”
“얌전히 번트나 댈 것이지. 괜히 삼진당해서 투수 기나 살려주고 있어!”
도진은 으르렁대는 둘 사이에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 원수는 저쪽이라며!’
왜 둘이 더 원수 같은 건데?
도진은 이번 이닝에서 아쉬운 점을 토론하고 싶었다.
더 좋은 이닝을 만들어 낼 수 있었지만, 둘의 스윙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왜 갑자기 둘 다 홈런 스윙을 갈기는 거냐고.’
상우는 파워 히터지만, 몸이 휙 돌아가도록 큰 스윙은 하지 않는다.
그레그도 처음 봤을 때의 옛 버릇이 그대로 나와 있었다.
‘계속 저러면 주전 자리가 멀어질 텐데.’
도진은 일단 중재하고자 나지막이 말했다.
“상우야. 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진정해.”
상우는 버럭했다.
“진정? 진저엉? 따라잡을 기회를 날린 저 코쟁이의 플레이를 보고도 진정하라고?”
점수는 1:3으로 역전되어 있었다.
‘……상우는 잠시 이대로 좀 내버려 두고.’
도진은 그레그의 어깨를 도닥였다.
“그레그 진정하죠. 저희 주전 자리 꿰차야죠.”
그레그도 분노의 오오라를 뿜고 있었다.
“진저엉? 진저어어엉? 진루타만 쳐도 내 완벽한 타격이 대기하고 있었는데 진저엉? 삼진으로 투수 기나 살려준 저 플레이를 보고도 그런 말이 나와?”
하아.
둘 다 똑같이 못했는데.
도진은 그냥 양쪽 모두 내버려 두기로 했다.
‘에휴. 나나 잘하자. 진정되면 알아서 잘하겠지.’
현재 1타수 1안타 1볼넷으로 좋은 성적.
이 성적을 유지한다면 곧 있을 첫 경기에서 주전을 꿰찰 것이다.
그렇기에 맞은편 더그아웃에서 도진을 노려보던 오베론은 지금 상황이 달갑지 않았다.
“젠장. 운도 따르는군.”
도진의 2번째 타석에서는 운이 따른 건 맞다.
하지만 헛스윙 될법한 투구였음에도 완벽한 배트 컨트롤로 결국 안타가 나왔다.
적이 아니었다면 칭찬을 했을 것이다.
‘저놈. 로우 A 수준이 아니야.’
한참 아래라고 생각했던 선수가 자신의 자리를 위협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분노가 덮쳐왔다.
“오베론. 다다음 이닝에 올라간다.”
오베론은 불펜으로 이동했고 어느덧 마운드에 선 자신을 발견했다.
그리고 타석에 들어선 선수는 다름 아닌 도진이었다.
‘개 같은.’
마운드에 선 오베론은 심적으로 흔들렸다.
자신이나 카심은 이 캠프가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것을 본인들이 제일 잘 알았다.
이미 마이너리그 생활만 5년.
여기서 올라가지 못한다면 은퇴라는 미래뿐이었다.
그래서 이번 캠프의 결과는 중요했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동기 중에서는 메이저리그를 밟은 선수도 있다.
거기까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핏덩어리들에까지 본인들의 자리를 내어주기 일보 직전.
결국 어긋난 마음가짐 때문에 나와서는 안 될 일이 발생했다.
오베론의 손을 떠난 공은 미트가 아닌 도진에게로 향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