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seball genius who chews up America RAW novel - Chapter (140)
미국 씹어먹는 야구 천재-140화(140/400)
1회 초.
도진이 속한 데저트 독스는 수비로 이닝을 시작했다.
그레그는 유격수 방면에 선 도진에게 말했다.
“헤이 친구. 오랜만에 키스톤 콤비네?”
“잘 부탁해요.”
“걱정 말라구! 내가 다 잡아줄 테니까.”
도진은 혀를 날름거렸다.
그레그는 미간을 찌푸렸다.
“이 자식이! 날 못 믿어?”
“수비는 믿죠.”
“그런데 표정이 왜 그래.”
“자신감이 넘치는 건 좋지만 과한 자신감은 자만심이 되어 독으로 돌아올 때도 있잖아요.”
그레그는 진절머리가 난다는 표정이었다.
“진짜 넌 더럽게 재미없어. 뉴 브라더가 캠프에 없었다면…… 하! 상상도 하기 싫다.”
하지만 그레그는 결국 자신을 위해 조언을 건넨 도진에게 방긋 웃었다.
‘틀린 말은 아니잖아?’
선수가 흥분한 채로 수비에 임하면 쉬운 타구에도 에러가 나올 수 있다.
에러가 나오면 입지가 줄어들게 된다.
오늘도 결국 9번 하위타선을 맡게 되었지만, 어쨌거나 그레그에게 선발 기회가 주어졌다.
이 기회를 굳히려면 절대 실수를 범해선 안 된다.
그레그와 가벼운 대화를 나눈 도진은 3루에 있는 앤서니와도 눈인사를 나눴다.
앤서니는 미소를 짓더니 나지막이 읊조렸다.
“이야. 로우 A 출신이 선발 유격수이자 1번 타자라니. 대단한데?”
“캠프에서 타순은 의미 없죠.”
“그것도 그렇지만 첫날 넌 지명타자로 나섰잖아. 수비 좀 하나 봐?”
“부족합니다. 잘 부탁드려요.”
“나야말로 잘 부탁하지.”
도진은 연습 투구를 끝낸 상우에게도 진정하라는 제스처를 보냈다.
포수 마스크 사이로 긴장했다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긴장만 안 하면 충분히 잘할 수 있다. 자신 있게 밀어붙여.’
상우는 고개를 살포시 한번 끄덕였다.
그 후 도진은 선발 투수 오베론과도 눈이 마주쳤다.
투수는 그라운드 점검 차 주위를 둘러보는데 무의식적으로 둘의 시선이 마주쳤던 것이었다.
오베론의 미간이 구겨졌다.
하지만 분노가 담겨 있는 표정은 아니었다.
도진은 양쪽 입꼬리를 살포시 올렸다.
어제 일은 괜찮다는 의미였다.
오베론은 도진에게 별다른 제스처를 보이지 않았지만, 주름이 지어진 미간은 곱게 펴졌다.
그렇게 캠프에서의 첫 시합이 시작됐다.
* * *
따악!
초구부터 1루수와 2루수를 꿰뚫는 강한 타구가 나왔다.
그레그가 다이빙 캐치를 시도했지만, 타구는 글러브를 외면했다.
도진은 그레그를 잘 안다.
평소의 그라면 충분히 잡을 수 있을 법한 타구였다.
‘그래도 어려운 타구긴 했어.’
그의 수비 범위가 워낙 넓어서 그런 것이지 일반적으로는 안타성 타구가 맞았다.
‘어쨌거나 몸이 덜 풀렸나 보네.’
하긴.
도진도 지금 심장이 요동치고 있었다.
하위 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은 수준 높은 경기의 중압감을 느낄만하다.
“괜찮아요! 괜찮아요! 아깝네! 거의 다 잡았는데.”
도진은 그레그에게 힘을 불어넣어 주었다.
자리를 훌훌 털고 일어난 그레그는 아쉬워했다.
“아깝다고? 이게 아깝다고?”
“한 끗 차이던데요?”
실제론 한 끗이 아닌 다섯 끗이었지만.
경기 중 선수의 기를 죽일 필요는 없겠지.
“놀리는 거 아니지?”
“글쎄요.”
“하. 이 새끼 놀리네.”
“그래도 에러는 아니잖아요? 힘내보죠.”
“그런가?”
그레그는 방긋 웃었다.
도진은 그가 긴장을 내려놓았다는 것을 알았다.
‘상우만 남았네.’
도진은 상우에게 사인을 보냈다.
‘사인이 급해. 초구 스트라이크를 잡으러 들어가는 건 좋았지만, 아직 투수의 어깨가 완전히 풀린 것 같지 않아.’
상우는 투수에게 잘 맞춰주는 포수다.
하지만 오베론은 첫날 단 1개의 공만 던졌기에 그가 어떤 투수인지 정확히 몰랐다.
상우는 도진의 사인을 알아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상우와는 별개로 선두 타자를 출루시킨 오베론은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2번 타자에게도 중전 안타를 맞아 무사 1, 2루.
“괜찮아! 괜찮아!”
도진은 습관처럼 해오던 버릇이 나왔다.
선수들이 위기를 맞이할 때마다 그들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한 응원이었다.
물론 사방에서 그를 쳐다보는 시선은 곱지 않았다.
포수를 제외. 내 외야를 지키는 선수들은 도진보다 전부 높은 수준의 리그 출신이었다.
그때 앤서니도 주먹으로 글러브를 팡팡 쳤다.
“아직 점수 먹힌 거 아니니까 힘내보자고.”
그러자 좋지 못한 시선들은 금세 누그러지더니 더 나아가 환호도 나왔다.
도진은 앤서니에게 감사를 전하기 위해 고개를 꾸벅했다.
앤서니는 도진에게 엄지를 치켜세웠다.
다음 타자가 타석에 들어설 때쯤 도진은 짧은 심호흡을 내뱉었다.
‘역시. 실력이 전부인 세상이라니까.’
로우 A 출신의 격려는 비웃더니 트리플 A 출신의 말은 또 기가 막히게 듣는다.
‘그렇다고 위축될 필요는 없지.’
도진은 플레이로 보여줬다.
무사 1, 2루에서 3번 타자는 3구째 몸쪽 패스트볼을 당겨쳤다.
타구는 2루와 유격수를 꿰뚫을 것만 같은 강한 타구.
중전 안타 코스지만, 타구는 유격수 방향으로 조금 더 치우쳤다.
타구음이 들려오는 즉시 도진은 몸을 날렸고 타구는 뻗은 왼팔의 글러브 안으로 쏙 들어왔다.
‘늦는다.’
송구만을 남겨두고 있었지만 여의찮았다.
벌떡 일어나서 공을 처리하기에는 주자의 발이 워낙 빨랐다.
정석으로 처리하면 올 세이프가 될 수도 있을 터.
베이스 커버를 들어간 그레그도 안절부절못하는 표정이었다.
그렇기에 도진은 엎드린 상태로 오른손의 도움 없이 글러브 안의 공을 그레그에게 토스했다.
송구를 단축할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레그는 순간 흠칫 놀랐다.
메이저리거급 환상적인 수비가 나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질 수 없다며 금세 입꼬리를 올리고는.
서서히 날아오는 도진의 송구를 맨손으로 잡고 그대로 1루로 뿌렸다.
“아웃!”
“아우웃!”
심판의 콜이 들려왔다.
주자는 어느덧 무사 1, 2루에서 2사 3루가 되었다.
그 즉시 사방에서는 탄성이 들려왔다.
“와우!”
“나이스!”
그레그와 상우는 동시에 주먹을 불끈 쥐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이거거든!”
도진은 엎드린 채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휴. 다행이다. 진짜 선수들 실력이 장난 아니긴 하네.”
타구며, 주루 속도며, 지금까지는 경험해보지 못한 수준이었다.
그래서인지 지금처럼 실수 없이 처리했을 때의 희열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었다.
그레그는 도진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좋은데? 정말 좋은데?”
“그랬나요?”
그레그는 입술을 빼쭉 내밀었다.
도진은 그 역시도 칭찬을 바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레그의 맨손 판단도 좋았는데요?”
그레그의 입꼬리가 대놓고 치솟았다.
미국인들은 감정을 잘 숨기지 않지만, 그레그는 보통의 미국인들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다.
그래도 도진은 진심이었다.
‘맨손 판단이 아니었다면 2루 아웃으로 끝났을 거야.’
하지만 야구는 뜻대로 되지 않는 법.
오베론은 4번 타자에게 볼넷을 내주었고 이어서 5번 타자 놀란 카브레라가 타석에 들어섰다.
도진은 그와 눈이 마주쳤다.
싱긋 웃는 놀란.
도진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지만, 광대가 씰룩였다.
‘너구나.’
과연 그는 얼마나 발전했을까?
도진이 바라보는 가운데 놀란은 배트를 빙빙 돌리며 타격 자세를 잡았다.
자신보다 높은 리그에 있는 선수들과 맞붙는 자리였음에도 여유가 느껴지는 행동이었다.
도진의 눈동자에 기대감이 서렸다.
초구.
떨어지는 공을 지켜본 놀란은 카운트를 유리하게 가져갔다.
1-0 카운트에서의 2구.
놀란의 배트가 나왔다.
군더더기 없는 강한 스윙은 마치 태풍을 몰고 왔다.
따-악!
이제 드래프트를 끝낸 선수가 더블 A 선수를 상대로도 환상적인 타격을 선보였다.
타구는 우중간 방면으로 쭉쭉 뻗어나가더니 펜스를 직격했다.
2루 베이스에 도착한 놀란은 손바닥을 툴툴 털며 도진을 향해 방긋 웃었다.
“수비는 여전하네? 그런데 공격도 그럴까?”
도진과 놀란은 하이스쿨 인비테이셔널에서 불망이를 뿜어냈다.
하지만 이곳은 그곳보다 훨씬 수준이 높다.
그런데도 놀란은 해냈다.
‘역시. 재밌어.’
도진은 드래프트 동기의 도발에 승부욕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 * *
1회 말.
도진은 타석에 들어섰다.
‘후우.’
심호흡을 짧게 내뱉은 도진은 투수를 흘겨봤다.
앞서 그레그에게 듣기로 선발 투수는 더블 A 출신이라고 했다.
좌완 투수이며 훌륭한 제구력을 겸비한 기교파 투수였다.
‘기교파 투수는 처음이네.’
고등학생 중에서도 제구력이 뒷받침되는 훌륭한 선수들이 있지만, 그들을 기교파 투수라고 볼 수는 없었다.
프로에서의 기교파 투수는 고등학생들보다 제구력이나 변화구가 각이 훨씬 뛰어나기 때문이다.
‘수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
도진은 기교파 투수와의 승부를 어떻게 끌어나갈지는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초구는 지켜보기로 했다.
보편적으로는 투수는 이닝을 시작할 때 초구 스트라이크를 잡길 원한다.
그리고 투수는 상대적 약자에게 초구 스트라이크를 잡고자 대개 패스트볼을 던진다.
‘그런데 왠지 변화구 던질 것 같아.’
상대도 자신이 누군지 알고 있을 터.
1라운더지만 루키는 루키.
아직 저들이 자신에게 위협을 느낄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신인 대부분이 중압감을 이기지 못해 초구부터 배트를 휘둘렀겠지.’
상우도 그레그도 그랬다고 했다.
무엇보다 자신도 이렇게 떨리는데 이를 이미 경험해본 상대 투수가 모를 리는 없을 터.
‘이 초구의 결과에 따라 이번 타석에서의 승부가 갈릴 거야.’
도진은 휘두르겠다는 마음을 억누르고는 초구를 끝까지 지켜봤다.
한복판으로 향하던 공이 크게 휘며 바깥쪽으로 빠져나갔다.
슬라이더였다.
“볼!”
투수는 이걸 참아? 라는 표정.
반면 도진은 안도의 한숨을 쓸어내렸다.
각이 워낙 날카로워 절대 휘두르지 말자는 마음가짐이 꺾일 뻔했기 때문이다.
‘장난 아니네.’
한국 프로 야구 KBO 용병들은 더블 A나 트리플 A 수준이다.
마운드를 지키는 저 선수도 한국 프로 무대에서 좋은 대우로 뛸 수 있는 기량을 갖췄다는 것.
그렇기에 도진은 초구를 유리하게 가져갔음에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하지만 투수의 눈을 보아하니 언제든 타자의 배트를 끌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서려 있었다.
‘한 번만 더 참자.’
조급하면 진다.
여기서 하나의 공을 더 골라낼 수 있다면 급격하게 유리해질 수 있다.
도진의 예측은 맞아떨어졌다.
폭포수 같은 커브가 조금 높게 형성됐기 때문이다.
충분히 스트라이크와 볼의 경계선에서 심판은 볼을 선언했다.
“볼!”
이제는 도진이 심리적으로 우위에 섰다.
그리고 타자가 노림수를 가져가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2-0 카운트.
‘패스트볼이다.’
아직 투수의 패스트볼 구속을 보지는 못했다.
‘슬라이더가 80마일 초반대인 걸로 보아 패스트볼도 잘 쳐줘야 90마일.’
도진은 그 속도에 맞춰 배트를 휘둘렀고.
따-악!
정확히 공을 갖다 맞추었다.
타구는 유격수 키를 넘기는 안타가 되었지만, 속도가 그리 빠른 공이 아니었음에도 손바닥이 저렸다.
1루에 안착한 도진은 저릿한 손바닥을 한번 쳐다봤다.
그러고는 피식 웃었다.
‘역시. 다들 돌덩이를 던지는구나.’
도진은 프로에 입성하기 전 힘을 키웠다.
그런데 손바닥이 저리다는 것은 그 힘을 온전히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끝없는 발전을 갈망하는 도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일단 경기에 집중부터 하자.’
2번 타자가 타석에 들어섰다.
도진은 더그아웃에서 어떠한 작전도 나오지 않았음에도 투수가 초구를 던지는 순간 2루를 향해 뛰었다.
배터리는 대처하지 못했다.
1년 차 루키가 시합 첫 무대에서부터 도루를 뛴다는 것은 예상 밖이었기 때문이다.
2루에 안착한 도진은 유격수 놀란에게 입꼬리를 올렸다.
“어때?”
놀란은 희열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여전하구나. 아니. 더 좋아졌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