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seball genius who chews up America RAW novel - Chapter (142)
미국 씹어먹는 야구 천재-142화(14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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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쳐요? 그걸 치냐고요!”
상우는 그레그의 좌측 편에서 소리를 꽥꽥 질러댔다.
“아니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배트를 휘두른 거예요!”
그레그는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자신이 생각해도 미친 짓을 해버렸기 때문이다.
가만히만 있었어도 최소 동점인데 그걸 휘둘러서 경기를 망친다고?
쥐구멍이 있었다면 숨어버리고 싶었다.
“아오! 그레그시치!”
상우의 폭풍 잔소리에 도진은 제지에 나섰다.
“그만해라. 울겠다.”
그레그의 얼굴은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진짜 조금 더 하면 울 것만 같았다.
“솔직히 휘두르고 싶은 공이긴 했지.”
도진은 그레그를 옹호했다.
상우도 결국 흥분을 가라앉혔다.
“그래. 치고 싶은 공이긴 했어. 그래도 치지 말았어야지.”
도진은 그레그의 성격을 아주 잘 안다.
원래 이랬으니까.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하지 말았다면 더 좋았겠지만, 물은 이미 엎질러졌으니 어쩌겠나?
때마침 더그아웃의 선수들도 경기장을 벗어나기 전 그레그에게 위로를 건넸다.
“아쉬웠다.”
“조금 더 신중했으면 좋을 것 같다.”
“뭐. 다음에 더 잘 치면 되겠지.”
비꼬는 것인지 아니면 진심 어린 조언인지는 애매했다.
물론 그레그에겐 전부 조롱으로 들렸을 것이다.
도진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우리도 밥이나 먹으러 가죠. 배고프네요.”
상우는 좋은 생각이라며 도진의 말에 힘을 보탰다.
“뭐 먹을 거야? 어제도 식빵만 먹어서 속이 좀 그래.”
“글쎄. 그레그. 뭐 먹을래요?”
“네가 사냐?”
염치 보소.
도진과 상우의 턱이 동시에 벌어졌다.
그레그는 마른침을 꼴깍 삼키더니 울분을 토해냈다.
“내가 살게! 경기 망친 내가 산다고!”
“그렇게까진 말 안 했는데.”
어쨌거나 범인인 그레그시치가 밥을 사기로 했다.
* * *
도진은 먼저 감독에게 들러 오늘 경기 영상을 요청 후 뒤늦게 식당에 도착했다.
“아오! 그레그시치!”
상우는 그레그를 추궁하고 있었다.
도진은 이유를 알았다.
분명히 상우가 식빵만 먹었다고 전했는데 저녁 식사 장소가 햄버거 가게였다.
‘그레그는 영문을 모를 만하지.’
엄연히 그에겐 식빵과 햄버거는 달랐으니까.
한국 사람이야 빵을 하나로 치지만 미국인들은 그렇지 않다.
그레그는 쭈뼛거리며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데. 그레그시치는 도대체 뭐냐?”
상우는 눈도 끔뻑하지 않고 거짓말을 했다.
“한국에서는 친한 친구를 그렇게 불러요.”
“오! 쌩우시치!”
상우의 눈이 희번덕였다.
“이 개새끼가?”
“방금 그거는 진짜 욕 같은데?”
상우는 애써 흥분한 표정을 감췄다.
“칭찬이에요.”
“억양이 욕이었는데?”
“아 제가 사투리라는 걸 써서.”
도진은 가만히 눈을 끔뻑였다.
‘너 서울 토박이잖아.’
하지만 그레그는 아직까지 상우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눈치였다.
“개이쉐끼 쌩우시치!”
상우는 허탈하게 웃더니 나지막이 읊조렸다.
“영어 특유의 발음 때문이라지만 그냥 개새끼보다 기분이 더 나쁘네.”
이를 바라보던 도진은 쿡쿡 웃었다.
자신은 웬만해선 욕을 내뱉지 않는다.
한국인들도 그렇지만, 외국인들도 욕설 습득 능력이 탁월했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방금 그레그를 통해 욕은 쉽게 배울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됐다.
도진은 서둘러 말을 돌렸다.
“자자. 한국말은 나중에 배우고. 먹으면서 야구 얘기나 하죠.”
상우와 그레그는 도진을 벌레 바라보듯 쳐다봤다.
“우리 방금까지 야구 했는데?”
“30분 전에 우리 경기장에 있었어. 기억 안 나?”
“알죠. 그런데 야구 선수들이 야구 말고 무슨 얘기를 해요.”
둘은 버럭했다.
“얘기할 게 왜 없어! 어? 여자 얘기라든가!”
“그래! 여자 얘기라든가!”
“저희 내일도 경기 있는데요?”
상우와 그레그는 졌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살포시 끄덕였다.
도진은 더블 치즈버거를 한입 베어 물며 말을 이었다.
“일단 오늘 저희는 전반적으로 괜찮았어요.”
“넌 괜찮았겠지.”
“우린 1안타밖에 못 쳤어.”
도진은 고개를 저었다.
“또 개인 성적만 놓고 얘기한다. 감독님이 개인 성적만 놓고 선수를 선별했을 거라면 둘은 오늘 후보였을 수도 있었어요.”
“우릴 까는 거 같은데 일리 있네.”
“지 자랑인 것 같으면서 틀린 말은 아니긴 해.”
도진은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일단 우리의 목표는 메이저리거지만, 그 전에 승격이 목표잖아요?”
“그렇지.”
“그러려면 이곳에서 확고한 주전부터 따내야 해요. 애리조나 캠프의 결과는 전부 구단의 귀에 들어가니까요. 그러니 저흰 뭘 해야 할까요?”
“잘 쳐야겠지?”
“홈런을 쳐야 하나?”
도진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죠. 주전으로 나서려면 감독 성향을 먼저 파악해야죠.”
“그렇네?”
“똑똑한데?”
도진은 세세하게 설명했다.
“오늘 그레그는 마지막 타석을 빼면 팀으로서의 움직임을 잘 가져갔거든요? 감독님이 만약 내일도 우릴 주전으로 쓴다면 지금 감독님은 팀 적인 움직임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감독일 수도 있어요.”
“그럴 수도 있겠네.”
상우는 맞장구 쳤지만, 그레그는 그러지 못했다.
“난 마지막 타석에서 개짓거리했는데? 내일 주전에 넣어주려나?”
“아직은 모르지만, 주전에 들어가게 되면 팀 적인 움직임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게 더 확실해지는 거죠. 물론 기회가 왔을 때 잡아야 하는 게 선수의 숙명이니까 내일 하루 쉬게 되면 멘탈 관리나 하세요.”
“너넨 경기 뛰고 난 후보로 나서는데 멘탈 관리를 할 수나 있을까?”
도진은 눈을 부라렸다.
“그레그 네가 그것 말고는 뭘 할 수 있는데요.”
그레그는 고개를 푹 숙였다.
앞서 9회 말 마지막 타석이 떠올랐나 보다.
도진은 피식 웃었다.
“어차피 선수가 워낙 많으니 하루 쉰다고 생각하면 편할 거예요. 다른 선수에게도 기회가 돌아가니까요.”
“고, 고맙다.”
아무리 약육강식의 세계지만 셋은 야수라는 것을 제외하면 접점이 없다.
한 명은 포수이며, 한 명은 2루수고, 한 명은 투타 겸업.
서로의 밥그릇으로 경쟁할 포지션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도진은 이 둘도 함께 잘됐으면 했다.
같이 있으면 즐거웠으니까.
물론 이들과의 친분 때문에 같이 잘되기를 바라는 건 아니었다.
‘혼자보다는 다 같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는 게 좋아.’
유망주에게 필요한 건 자극제다.
셋은 지금 비슷한 실력과 입지로 서로에게 좋은 자극제였다.
“그러니 앞으로 자주 얘기를 나누죠.”
그레그와 상우는 진절머리가 난다는 표정을 지었다.
* * *
데저트 독스의 다음 경기는 스캇츠데일 스콜피온스.
보스턴 레드삭스, 클리브랜드 인디언스, 템파베이 레이스, 미네소타 트윈스 그리고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유망주가 속한 팀이었다.
데저트 독스의 선발 라인업이 나왔다.
1. 사무엘 로버츠. SS. R.
2. 조르다인 데칸. 1B. L.
3. 앤서니 앨런. 3B R.
4. 에녹 보라인. LF. L.
5. 카심 피니어스. C. 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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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상우 리. DH. R.
9. 로버트 라우너. 2B. S.
그레그는 절망했다.
“아아……”
그의 이름은 명단에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는 이내 미소를 띠며 도진을 쳐다봤다.
도진의 이름도 선발 라인업에 없었다.
“음. 성적이나 팀 움직임과는 무관한가?”
그레그가 안면에 웃음을 띠며 말을 걸어오자 도진이 멋쩍게 웃었다.
그 모습에 그레그가 미간을 구겼다.
“하. 너 오늘은 투수구나?”
“네. 감독님이 저는 오늘 마운드에 오른다고 하셨어요.”
그레그는 고개를 떨궜다.
도진은 그레그의 어깨를 도닥였다.
“에이. 그래도 이제 알았잖아요? 그리고 솔직히 3-0 노 피어는 좀 너무하긴 했어요.”
“알아. 확인 사살 그만해.”
구단은 선수들이 애리조나 가을리그에서 기량이 상승하길 원한다.
그러나 욕심 가득한 플레이는 감점 대상이었다.
혹시나 어제 3-0에서 그레그의 타격이 홈런이 되었더라도 마찬가지다.
마이너스 점수는 되지 않겠지만, 플러스 점수가 될지는 미지수였다.
“메이저리그도 어떤 면에서는 보수적이니까요. 이름도 없는 선수가 해서는 안 될 일을 하는 걸 좋아하지는 않죠.”
“그, 그만해.”
도진이 이렇게까지 되뇌었던 이유는 온전히 그레그가 잘되면 좋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는 누구보다 영웅심이 강한 타자였다.
주기적으로 눌러주지 않는다면 같은 상황에서 똑같은 결과가 나올 수도 있었다.
무엇보다 그레그는 이번 캠프에 승격이 걸려 있었다.
‘가끔 보면 깜빡하는 것 같다니까?’
반면 상우는 한국 야구를 경험했던 바탕으로 해서는 안 될 일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중학교 선배들로부터 쌍욕을 먹으면서 강제로 배웠기 때문이다.
‘가끔은 해줘야 할 때 머뭇거리는 경향은 있지. 미국이란 어색한 나라에서 뛰는 게 쉽지는 않으니까. 그래도 금세 좋아질 수 있어.’
경기는 시작됐다.
도진은 그레그와 함께 더그아웃에 앉아 경기를 지켜봤다.
“포수의 리드가 까다롭네. 투수도 그에 맞춰서 훌륭한 공을 던지고요.”
“어……”
“와. 타자 스윙 봤어요? 떨어지는 공에 자세가 흔들릴 법한데 무너지지 않고 완벽히 컨택했네요.”
“그렇네……”
도진은 그레그를 걱정스럽게 쳐다봤다.
‘어휴. 꽤 오래가겠는데?’
하지만 도진의 예상은 우습게 빗나가버렸다.
상우가 첫 타석에서 삼진을 당하자 그레그의 활기가 돌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상우가 터덜터덜 더그아웃으로 복귀하자 그레그는 턱을 꼿꼿이 세우더니 목소리를 드높였다.
“아휴! 수 싸움에서 완전히 졌네. 나는 패스트볼을 노렸을 텐데 넌 어떻게 루킹 삼진을 당하냐? 풀카운트에서는 과감히 스윙했어야지!”
패자는 말이 없는 법.
상우는 입을 다물었고 그레그는 말을 덧붙였다.
“너는 가만 보면 덩칫값을 못 할 때가 있어. 그 좋은 몸은 전시용이야? 다음엔 확실히 하자?”
연달아 뿜어져 나오는 그레그의 잔소리에 상우는 눈을 부릅떴다.
“틀린 말 같지는 않은데 후보가 뭐라고 하니 좀 그렇네.”
“뭐? 후보? 후보오오오? 난 오늘 그냥 데이 오프야! 어? 휴식이라고!”
“응. 3-0 노 피어. 후보로 강등.”
어떨 때는 사이가 좋았다가 또 어떨 때는 원수였다가.
하지만 서로의 약점을 파악하고 있다는 것만큼은 희소식이었다.
‘굳이 말해주지 않아도 본인들의 약점이 뭔지 잘 아네.’
둘은 저 단점들만 보완한다면 이 캠프는 충분히 성공적일 것.
‘내가 말한 시너지가 이런 방향은 아니긴 한데.’
서로 으쌰으쌰 하는 그림을 원했지. 깎아내리는 것을 원치 않았다.
‘가만 보니 둘에겐 저 방식이 조금 더 맞을지도.’
어쨌거나 경기는 계속해서 진행됐다.
6회가 되자 감독은 상우를 불러들였고 그 자리에 그레그를 넣었다.
그레그는 초구부터 스윙했고.
결과는 유격수 땅볼이었다.
이번에는 분위기가 뒤바뀌어 상우가 그레그를 쏘아붙였다.
“아오. 그레그시치! 분명히 제구 안 되는 거 봤으면 좀 기다리지. 떡하니 볼넷으로 출루했는데 초구부터 그걸 휘둘러?”
그레그는 우물쭈물했다.
“아니…… 손이 나가는 걸 어떡해.”
“참을성이 없어요? 어? 다혈질이에요? 좀 참아라! 좀! 좀! 하루라도 병살타를 안치면 막 몸에 가시가 돋아?”
둘의 언쟁에 도진은 식은땀을 흘렸다.
만약 자신도 저 둘의 조롱 대상이 된다면?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
그러자 그때 감독은 도진을 지목했다.
“킴. 불펜으로.”
불같이 서로를 갈구던 상우와 그레그는 언제 그랬냐는 듯.
서로의 어깨에 손을 얹더니 도진을 향해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도진은 마른침을 꼴깍 삼키며 글러브를 들고 불펜으로 이동했다.
‘역시. 실수하면 피곤하겠어.’
하지만 이내 미소를 띠었다.
애리조나 가을리그 정식 시합에서의 첫 마운드 등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