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seball genius who chews up America RAW novel - Chapter (143)
미국 씹어먹는 야구 천재-143화(143/400)
불펜에서 몸을 푼 도진은 8회 마운드에 올랐다.
포수를 맡은 카심은 도진에게 쭈뼛쭈뼛 다가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구종은?”
도진은 빙그레 웃었다.
아직도 위축된 걸 보니 그리 나쁜 사람 같지는 않았다.
“포심, 투심, 서클 체인지업 그리고 커브를 던집니다.”
카심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점검차 다양한 구종을 던져보도록 하자.”
“알겠습니다.”
도진은 카심이 확실히 베테랑이라는 것을 느꼈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것은 물론.
이곳에서의 성적이 앞으로의 미래를 좌지우지한다지만, 오로지 성적만이 중요한 건 아니었다.
선수가 얼마나 발전했는지도 관심 있게 지켜본다.
그렇기에 성적이 다소 좋지 못하더라도 큰 발전을 이룬다면 괜찮았다.
도진은 두근거리는 심장을 억눌렀다.
‘내 투구가 메이저리그에 가까운 선수들에 얼마나 먹힐지 실험해보면 되겠어.’
죄다 때려 부수고 곧바로 메이저리그에 합류하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
야구는 특히나 경험이 중요한데 도진은 프로 경험이 짧았다.
‘그러니 지금은 내 약점이 뭔지 파악하고 보완하는 게 먼저지.’
도진은 오히려 포수가 카심이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상우는 타자와 죽자고 승부하려 들었을 테니까.
“후우.”
도진이 심호흡을 고르는 사이 3번 타자가 타석에 들어섰다.
보스턴 산하 트리플 A 타자였다.
도진은 말라버린 아랫입술을 혀로 적셨다.
‘위압감이 확실히 다르긴 해.’
실투가 나오면 가차 없이 담장을 넘길 것만 같은 아우라를 뿜어내고 있었다.
공을 만지작거리던 도진의 손바닥은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패스트볼 사인이 나왔다.
자신 있는 구종. 그 즉시 거짓말처럼 긴장이 멎었다.
와인드업 후 손을 떠난 공은 카심이 요구하는 바깥쪽으로 향했다.
부웅.
타자의 스윙은 허공을 갈랐고.
퍼억.
사방에서는 미트에서 강력한 소리가 나오자 탄성이 터져 나왔다.
“와우.”
“대포를 던지네?”
“이번 해 드래프트 참여자라며? 대단한데?”
직접 공을 받은 카심의 동공이 팽창했다.
타자도 미트에 꽂힌 공을 한번 쳐다보더니 두 눈을 끔뻑였다.
2구.
이번에는 투심 패스트볼.
한복판으로 향하던 공이 우측으로 크게 꺾여 타자는 헛스윙했다.
3구째 서클 체인지업은 2구와 같은 궤적으로 날아가다 속도를 잃었고.
그 때문에 타자의 배트는 애꿎은 허공만 갈랐다.
“스트라이크 아웃!”
타자는 볼을 빵빵하게 불리더니 도진을 멍하니 쳐다봤다.
이내 미소를 띠고는 타석에서 물러섰다.
‘웃는다고?’
삼진으로 물러선 타자가 보일 법한 행동은 아니었다.
왜 그랬을까.
의문에 대한 해답은 바로 찾을 수 있었다.
다음 타자는 4번.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트리플 A 소속의 선수였다.
카심의 사인은 커브.
타자는 도진의 구속과 낙차를 겸비한 파워 커브를 우습게 받아쳤다.
도진은 맞는 순간 허! 하고 짧은 탄성을 뱉었다.
굳이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결과가 눈에 훤했기 때문이다.
‘갔네. 갔어.’
결과는 홈런.
지금까지 홈런을 맞아본 경험이 극히 드물었기에 아랫배가 간질간질했다.
하지만 이내 입꼬리를 치켜세웠다.
‘역시. 쉽지 않구나.’
투수가 평생 실점하지 않는다면 좋겠지만, 세상에 그런 투수는 없다.
무엇보다 도진은 고등학교 때는 느껴보지 못한 벽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었다.
‘그래서 더 즐거워. 벽을 깨부수는 것만큼 재밌는 건 없지.’
흥분해서는 안 된다.
도진은 오히려 더욱 차분하려고 노력했다.
‘지금은 내 약점을 찾는 게 먼저야.’
패스트볼 사인.
도진은 자신 있게 공을 던졌다.
타자의 스윙이 나왔다.
따-악.
그리고 그 순간.
도진의 동공이 팽창하며 사정없이 떨렸다.
라인드라이브성 타구가 하필이면 자신의 머리로 향했기 때문이다.
그대로 맞으면 부상은 물론, 어쩌면 목숨까지도 위험할 수 있는 상황.
도진은 빠른 반사 신경으로 얼굴을 글러브로 감쌌다.
퍼억.
다행히도 타구는 그대로 글러브에 꽂혔다.
여기저기서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그다음은 말도 안 된다는 반응 속도에 혀를 내둘렀다.
방금의 타구 속도는 반응하기 벅찰 정도로 빨랐고, 공을 던진 직후의 투수가 피할 방법은 아무리 봐도 없었기 때문이다.
만약 자신들이 그 자리에 있었다면 안면 골절은 기본이었을 거라는 생각에 등골이 오싹할 정도였다.
다행스럽게도 큰 부상은 없어 보였지만, 위험한 사고였던지라 경기는 잠시 멈췄다.
그 틈에 몸이 얼어붙었던 도진은 글러브를 살포시 내렸다.
하지만 쉴 새 없이 뛰어대는 심장은 가라앉을 기미가 없었다.
“허억. 허억.”
과호흡이 찾아왔다.
원치 않은 숨이 입 틈을 비집고 튀어나왔다.
감독은 서둘러 마운드를 방문했다.
“괘, 괜찮나?”
넋이 나간 도진은 무심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감독은 도진의 심정이 이해가 갔다.
누구라도 패닉에 가까운 상태에 빠질 것이다.
하지만 우선은 대처가 먼저.
감독은 재빨리 되물었다.
“손바닥부터 보도록 하지.”
도진은 글러브를 벗고 손바닥을 내밀었다.
벌겋게 달아오르긴 했지만, 다행히 큰 부상이 아니었다.
감독은 도진의 어깨를 도닥였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 심란할 텐데 여기서 더 던져봤자 좋을 건 없다.”
도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마운드에서 내려갔다.
하지만 경기가 끝날 때까지도 그의 심장은 가라앉질 않았다.
* * *
다음 날.
경기 시작을 앞둔 감독은 도진을 불렀다.
“상태는 어떻지?”
“괜찮습니다. 기회가 되면 오늘도 뛰고 싶습니다.”
첫 마운드 등판이 수포가 되어 볼일을 보다 만 느낌이 강했다.
감독도 도진의 청을 흔쾌히 수락했다.
“알겠다. 그러면 5회쯤에 올리겠다.”
도진은 묵묵히 자리로 돌아왔다.
어제 생에 처음 겪는 경험을 했다.
당시에는 좀처럼 감정을 추스르지 못했지만, 지금은 호흡도 맥박도 정상.
다시 마운드에 오르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양옆에서는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늘 하루 더 쉬는 게 어때?”
“그러니까. 하루 더 쉰다고 인생이 바뀌는 것도 아니고.”
도진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일단 내 공이 얼마나 통하는지 알아보는 게 먼저야. 메이저리그가 기다리잖아.”
상우와 그레그는 지독하다는 표정으로 혀를 내둘렀다.
“그래. 누가 널 말리겠냐.”
“에휴. 걱정해줘도 듣는 둥 마는 둥 하는구나.”
도진은 피식 웃었다.
이들의 걱정이 기분 나쁘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래도 지금은 투구 상태를 점검하는 것보다 중요한 일은 없었다.
그리고 그 기회가 찾아왔다.
5회 말.
도진이 마운드에 오르자 포수 카심이 다가왔다.
“괜찮냐?”
도진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어제 못했던 점검을 끝내도록 하자.”
“알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카심이 마운드에서 내려갔다.
홀로 남게 된 도진은 로진백을 집고 손바닥을 적셨다.
사인이 나왔다.
패스트볼이었다.
도진은 지체하지 않았다.
손을 떠난 그의 공은 한복판으로 향했다.
퍼억.
“스트라이크!”
시원하게 꽂히는 패스트볼.
카심은 고개를 끄덕였고 도진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띠었다.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데?’
하지만 도진의 자신감 넘치는 표정은 불과 1분도 버티지 못했다.
2구.
도진의 투심은 타자의 몸쪽으로 휘어들어 갔다.
타자의 배트가 나왔다.
딱!
공이 배트에 제대로 맞지 않았다는 둔탁한 음색.
그런데 도진은 순간 몸이 움츠러들었다.
움츠러든 몸은 파르르 떨리기까지 했다.
타구가 자신에게 다가오기는커녕 3루 측 파울 라인을 벗어났음에도 말이다.
꿀꺽.
도진은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하지만 전신을 괴롭히는 진동은 멎지 않았다.
“후우. 후우.”
전신을 통제하고자 심호흡을 연달아 내뱉었다.
하지만 이것이 심호흡인지 과호흡인지 착각이 들 지경.
주먹을 불끈 쥐어봤다.
힘이 들어간 것인지 분간도 되지 않았다.
카심은 미트에서 공을 꺼내 도진에게 던졌다.
도진은 그 쉬운 송구조차 제대로 받아내지 못했다.
바닥에 떨어진 공을 집어든 도진은 심판에게 공을 바꿔 달라며 포수에게 공을 던졌다.
심판은 도진에게 직접 공을 던졌다.
도진은 이번에 제대로 받았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을 뿐이지만, 호흡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다행이다.’
안도한 도진은 표정을 굳히고는 사인을 기다렸다.
카심은 패스트볼 사인을 냈다.
고개를 끄덕인 도진은 즉각 와인드업했다.
한 치의 흐트러짐 없는 일관적인 투구폼.
하지만 그가 던진 공의 궤적은 평소와 달랐다.
쉐에에엑.
굉음을 내지르며 날아가던 투구는 카심이 낸 바깥쪽이 아닌 그의 머리 높이로 향했기 때문이다.
퍼억.
“볼!”
도진은 그 즉시 미간을 구겼다.
어금니에 힘도 들어갔다.
‘뭐지?’
손이 공에서 빠진 것도 어깨에 힘이 들어간 것도 아니었다.
평소처럼 던졌고 결과도 평소와 같았어야만 했다.
그런데 결과는 너무나도 엉뚱했다.
카심은 진정하라는 제스처를 보낸 후 도진에게 공을 건넸다.
도진은 최대한 진정한 후에 공을 던졌다.
하지만.
“볼!”
“볼!”
“볼! 베이스 온 볼스!”
도진은 원하는 코스로 단 한 번도 투구하지 못했다.
물론 투수라면 누구나 겪는 흔한 상황일 뿐.
영점이 제대로 잡히지 않은 것일 뿐이었으니까.
“베이스 온 볼스!”
“베이스 온 볼스!”
하지만 연달아 발생할 때는 문제가 되는 것인데.
도진은 총 13개의 공을 던졌고 초구를 제외 단 한 번도 스트라이크를 던지지 못했다.
타자가 코웃음을 치며 걸러낼 만큼 아슬아슬하지도 않았다.
결국 문제를 느낀 감독은 마운드를 방문해 도진에게 공을 달라며 손을 내밀었다.
도진은 눈을 질끈 감고는 떨리는 손으로 감독에게 공을 넘기고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 * *
도진에게는 이틀의 휴식이 주어졌다.
심리적으로 안정되지 못한 선수에게 경기 출장은 독이었다.
타석은 괜찮을까 싶어 올려봤지만, 오히려 계속해서 삼진만 당하는 역효과가 나왔다.
이틀의 휴식이 끝난 도진은 다시 마운드에 올랐다.
시즌 중 나름 긴 휴식에 속했으므로 처음 마운드에 올랐을 때의 표정은 좋았다.
하지만.
“베이스 온 볼스.”
단 하나의 스트라이크도 던지지 못한 도진은 다시 마운드를 내려갔다.
더그아웃으로 돌아온 도진은 수건으로 머리를 덮고 얼굴을 가렸다.
내면은 부글부글 끓고 있었지만, 이 울분을 밖으로 표출할 곳은 없었다.
‘젠장! 젠장!’
뭐가 문제일까.
도진은 자신에게 물었다.
애석하게도 질문에 대한 정답은 너무 쉬웠다.
‘입스.’
입스는 불안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근육이 경직되는 현상을 말한다.
평소에는 잘만 했던 동작들이 거짓말처럼 되지 않는 것을 뜻한다.
도진은 스트라이크를 던지는 법을 까먹었던 것이었다.
아무리 되뇌어봐도 야구 지식으로 가득해야만 하는 그의 머릿속은 새하얀 도화지와 같았다.
‘이러면 메이저리그와 멀어진다.’
도진은 어금니를 악물었다.
그런데도 언제나 활활 타오르던 그의 기세가 한풀 꺾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