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seball genius who chews up America RAW novel - Chapter (146)
미국 씹어먹는 야구 천재-146화(146/400)
공이 스트라이크 존에 꽂혔다.
도진은 주먹을 불끈 쥐며 전광판으로 시선을 돌렸다.
94마일.
온 힘을 다해 던진 공이었으므로 조금 실망스러운 결과.
그래도 실망감보다는 희열이 더 컸다.
‘던졌다.’
물론 입스를 극복한 것은 아니었다.
폼이 완전히 돌아오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도진은 결국 사토를 걸어 내보냈다.
3개의 볼 이후에 스트라이크. 그리고 다시 볼을 던졌으니까.
다음 타자가 타석에 들어섰다.
구속은 여전히 93~4마일 언저리.
제구도 들쭉날쭉했다.
하지만 제구가 들쭉날쭉하다는 것은 볼만 던졌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볼!”
“볼!”
“스트라이크!”
“볼!”
“스트라이크!”
타자가 어림없는 공에 헛스윙을 해줬던 바람에 아웃카운트도 잡았다.
그리고 도진은 그 타자를 마지막으로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 * *
다음 날이 되어서도 도진은 마운드에 올랐다.
그레그와 상우 곁에는 도진 대신 앤서니가 앉았다.
“어이 친구들. 왜 다 똥씹은 표정이야?”
상우는 미간을 구겼다.
“어제 보셨잖아요. 형편없던 거.”
그레그가 되받아쳤다.
“말버릇이 그게 뭐야?”
“어쩔? 내 직속 선배인가? 난 지금 내 친구가 개망신당하기 직전이라 눈에 뵈는 게 없어!”
앤서니는 피식 웃었다.
“에이. 좋아졌잖아?”
“좋아지긴요. 저놈은 저거보다 훨씬 나은 놈이에요.”
그레그도 이번만큼은 상우의 말에 동의한다며 나지막이 읊조렸다.
“그건 그렇지.”
앤서니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되받아쳤다.
“점차 좋아질 거다.”
“점차 좋아져서 뭐 하냐고요. 구속도 구위도 어린 아이 수준이에요.”
“94마일이 어린 아이 수준은 아니잖아?”
“보시면 아시잖아요. 구속만 빨랐지 물공이에요. 한 손으로 쳐도 담장을 넘길걸요?”
상우는 비아냥대고 있었지만, 마운드에 선 도진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초구.
“스트라이크!”
어?
전광판으로 시선을 돌렸다.
94마일. 만족스럽지 않다.
그래도 초구부터 스트라이크를 던졌으니 좋아해야 하는 걸까?
상우는 심장이 간질간질했다.
그레그를 힐끗 쳐다봤다.
누가 봐도 오묘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앤서니는 여전히 여유로웠다.
‘아오. 이 미국인 마음에 안 들어. 동포가 아니라 이거냐?’
앤서니가 자신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상우는 눈을 질끈 감았다.
저 미소의 의미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알아. 안다고. 좋아지고 있다는 거. 시간이 지나면 완전히 괜찮아지겠지.’
그런데 그 시간이 도대체 얼마나 걸릴지는 확신이 없었다.
막상 1년이 걸릴 수도 있지 않은가?
그렇게 된다면 도진의 커리어는 끝이 날 수도 있다.
“베이스 온 볼스!”
심판이 볼넷을 외치자 상우는 더는 참지 못하겠다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는 감독에게 저벅저벅 다가갔다.
“헤이! 감독! 날 내보내 줘! 저놈 공은 내가 받아야 한단 말이야!”
어수룩한 영어를 내뱉어봤다.
감독은 눈초리를 가늘게 찢었다.
“왜지?”
왜? 왜냐고?
저 카심이란 포수는 비록 더블 A지만 나만큼 도진을 잘 알지 못해.
특히나 지금 환자에게 어려운 공만 요구하고 있잖아?
상우는 뻐끔거리기만 할 뿐.
생각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감독은 생각을 읽는 초능력이라도 가지고 있는 걸까?
“네가 킴과 잘 맞는 포수라는 건 안다. 그런데 여긴 애리조나 가을리그다. 늘 같은 선수, 같은 환경에서 훈련한다고 네 실력이 늘까?”
관계없다고…….
하지만 상우는 이번에도 말을 내뱉지 못했다.
그의 말은 틀리지 않았으니 말이다.
호랑이 같던 감독의 표정이 유해지기 시작한다.
그러더니 자신의 어깨를 도닥였다.
“친구를 생각하는 마음은 잘 알겠다. 하지만 친구라면서 그를 잘 모르는 모양이군.”
이건 도대체 무슨 개소릴까?
감독은 대답 대신 마운드를 향해 턱짓했다.
‘젠장.’
도진은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어떻게서든 옛 폼을 찾겠다며 이 악물고 공을 던지고 있었다.
그 때문에 괜히 가슴이 더욱 메어왔다.
더는 볼 수 없어 눈을 질끈 감았다.
“똑똑히 보거라.”
불가능하다니까?
하지만 귓가에 울리는 심판의 목소리.
“스트라이크 아웃!”
그 콜에 상우의 눈이 번뜩였다.
제일 먼저 시선이 향한 곳은 전광판.
여전히 94마일이었다.
실망스러운 한숨이 입 틈을 비집고 뛰쳐나오려는 순간.
“스트라이크!”
전광판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던 상우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95마일.
평생 멈춰 있을 것만 같았던 구속이 올라갔기 때문이다.
감독은 넋이 나간 자신의 등짝을 후려쳤다.
“뭐 하느냐.”
“네, 네?”
“나가서 친구 공 받아주지 않고.”
상우는 오른손을 말아쥐고는 왼손을 강하게 쳤다.
“맡겨 주세요.”
도진이 회복하고 있다.
그리고 누구보다 자신이 그 공을 제일 먼저 받아야만 한다.
상우는 서둘러 포수 장비를 장착했다.
* * *
9회 말.
도진은 다시 한번 마운드에 서게 됐다.
포수는 다름 아닌 상우였다.
지금까지 늘 카심과 합을 맞췄기에 상우와의 배터리는 처음이었다.
상우는 터덜터덜 마운드에 방문했다.
“어쩔래?”
“어쩌긴. 늘 하던 대로 가자.”
“조오치! 그럼 내 마음대로 한다? 솔직히 카심 리드 좀 답답하지 않냐?”
도진은 피식 웃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상우는 미간을 구겼다.
“또 쪼개? 네가 그럴 때냐? 야 김입스. 정신 차려 이 자식아!”
“어휴. 맵네. 매워.”
“매워? 매워어어? 이 자식이 아직도 정신 못 차렸네? 야! 진지해도 모자랄 판에 말장난할 때야? 너 지금 환자야! 알아?”
“멀쩡한 사람 환자 만들지 말아 줄래?”
“멀쩡? 멀쩌엉? 타자가 타율 1할을 치는 것도 모자라 방어율 27도 넘긴 투수가 멀쩡? 무슨 동네 야구 하세요?”
“고맙다.”
“느닷없이 뭔 개소리야.”
“고맙다고.”
도진은 상우가 더그아웃에서 감독에게 열을 내는 목소리가 본인에게도 들렸다.
그만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본인은 인지하지 못한 것처럼 보이지만.
“여튼. 난 카심과 달라. 블로킹 따위는 없으니까 개같이 던지면 직접 공을 줍든 말든 알아서 해.”
“최선을 다해볼게.”
“최선 말고 잘하라고! 잘!”
상우는 그 말을 끝으로 마운드에서 내려갔다.
어느덧 교체돼 나온 그레그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부담 없이 던져라. 내가 다 막아줄 테니까. 네 방어율 지켜주는 요정이라고나 할까?”
“뭐라고요? 요정이요?”
“페어리 몰라?”
그레그는 수비 자세를 잡고 있었다.
저기. 아직 타자가 들어오지도 않았는데 벌써 그러면 오히려 역효과 나는 거 아닌가요?
도진은 괜찮다며 자세를 풀라며 손짓했다.
“근데 그레그가 활약할 일은 없을 것 같은데요?”
“뭐야? 또 날 무시하는 거야?”
그 뜻이 아니긴 한데.
심판이 경기를 속행하라는 콜 때문에 도진은 그레그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상관없겠지. 금세 알게 될 테니까.’
상우의 사인이 나왔다.
한복판 패스트볼이었다.
‘상우라서 다행이긴 하네.’
카심이었다면 코너를 찌르는 공을 요구했을 것이다.
하지만 상우는 냅다 미트를 한복판에 고정했다.
“후우.”
심호흡을 뿜어낸 도진은 잠깐 하늘을 힐끗 쳐다봤다.
‘난 복 받았어.’
익숙한 얼굴들이 뇌리를 스쳐 지나간다.
두 발 벗고 나섰던, 하리, 마이크, 도널드 감독님과 조엘.
그리고 이 슬럼프를 극복할 수 있게 도움을 준 지금의 감독님이나 여전히 여유로운 표정을 짓고 있지만, 도움이 될만한 조언을 건넨 앤서니.
자신을 위해 이렇게나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 많을 줄은 꿈에도 알지 못했다.
그것도 이 미국이란 낯선 땅에서.
‘언젠가는 다 보답하고 싶다.’
대신 그 전에.
‘그만한 사람이 되어야겠지.’
도진은 눈이 번뜩였다.
번뜩인 눈동자에서는 각오라는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와인드업은 흐르는 물처럼 자연스러웠다.
그런데 손을 떠난 그의 공은 마치 뜨거운 불길을 뿜어내는 운석처럼 굉음을 내지르며 한복판에 고정된 미트로 날아갔다.
타자의 스윙이 나왔지만, 홈플레이트 앞에서 하늘까지 치솟겠다는 포심 패스트볼에 방망이는 크게 헛돌았다.
퍼어엉.
“스, 스트라이크.”
전원의 시선이 전광판으로 향했다.
100이란 숫자가 전광판에 드러나자 선수들의 입에서 헉 소리가 나왔다.
구속도 구속이지만, 공이 미트에 꽂히는 충격파로 마치 지진이 일어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공을 받은 포수와 그 공을 던진 주인공은 마치 당연하다는 표정이었기에 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다.
상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미트에서 공을 빼냈다.
“뭐. 그럭저럭 받아줄 만한 공이었다.”
그러고는 도진에게 공을 던졌다.
공을 건네받은 도진은 가볍게 고개만 끄덕였다.
2구를 앞둔 도진은 솟아오르겠다는 입꼬리를 간신히 억눌렀다.
‘그래. 이거였어.’
새하얬던 도화지에 익숙했던 그림들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잠깐 가출했던 것들이 돌아오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도진은 글러브 안에 들어 있는 공을 한 번 힐끗 쳐다봤다.
그러고는 대놓고 자신의 펼친 오른손을 쳐다봤다.
그 오른손은 금세 쥐어졌다.
힘도 느껴졌다.
결국 참아왔던 입꼬리가 치솟았다.
감격에 젖어 몸이 파르르 떨렸다.
때마침 몸쪽 패스트볼 사인이 나왔다.
도진은 즉각 와인드업했다.
쉐에에엑.
손을 떠난 공은 굉음을 내지르며 한복판으로 향했다.
그 공이 홈플레이트에 다다를 즘.
걸려버린 역회전 때문에 공의 궤적은 우측으로 크게 휘었다.
퍼어억.
“스트라이크!”
3구 서클 체인지업은 홈플레이트 앞에서 일순 사라져버렸고.
그 때문에 타자의 배트는 애꿎은 바람만 생성했다.
“스트라이크 아웃!”
도진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거였어.’
폼이 완전히 돌아왔다.
아니. 지금 던진 공은 원래 자신의 것과는 달랐다.
3가지 공의 무브먼트가 조금 더 지저분했기 때문이다.
도진은 그간의 부담을 모두 내려놓은 듯한 후련한 미소를 띠었다.
‘자. 이제 시작해볼까?’
애리조나 가을리그는 이미 절반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지만.
도진의 가을리그 점령기는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