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seball genius who chews up America RAW novel - Chapter (15)
미국 씹어먹는 야구 천재-15화(15/400)
경기 시작 10분 전.
도진은 관중들을 쭉 살피느라 정신이 없었다.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자리를 채운 것은 어찌 보면 미국에서는 당연했지만.
더 나아가 치어리더와 학교 밴드부까지 응원에 투입되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원래 이래?”
마이크는 도진의 질문에 고개를 갸웃했다.
“뭐가?”
“스케일이 달라도 너무 다르잖아!”
마이크는 미간을 구긴 채 도진의 시선을 따라갔다.
그는 현재 치어리더들을 쳐다보며 턱이 벌어져 있었다.
“이놈. 성격 나오네. 침부터 닦아라.”
도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미간을 구겼다.
“하. 그게 아니라 신기해서 본 거야.”
“치어리더가 신기해?”
그럼 안 신기해?
한국에서는 치어리더라면 프로스포츠에서나 볼법한 인물들이다.
그런데 그 인물들이 고등학교 리그 경기에 투입됐다.
이뿐만이라면 모를까 밴드도 합세했다.
소규모 밴드가 아닌 본격적인 밴드가.
그들이 든 악기부터 한국과는 비교가 되었다.
플루트, 클라리넷, 트럼펫, 색소폰, 트럼본까지. 악기들이 하나같이 번쩍번쩍 빛났다.
여기에 바이올린에 드럼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오케스트라라고 해도 믿겠어…….’
정말 미국인들은 이 환경에서 스포츠를 즐기는 건가?
도진의 동공이 놀라움으로 물들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마이크는 도진의 눈빛을 읽고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어. 원래 이래.”
“진짜?”
“그래서 홈 경기가 중요해. 원정 경기는 정반대의 분위기니까.”
정말 그렇겠다.
도진의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빨리 적응해야겠어.’
한국에서도 프로 경기를 보면 홈 경기의 승률이 높은 편이다.
하지만 지금 환경을 보고 있으면 미국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것 같았다.
“이제 치어리더 그만 좀 보고 중계나 봐라.”
“치어리더 안 봤다고!”
아니. 보긴 봤다.
근데 신기해서 본 것이라며 반박하려고 입을 뻐끔거리려는 찰나 마이크의 음흉한 미소 때문에 말문이 턱 막혔다.
“알았어. 중계나 볼게.”
그러다 도진은 마이크와 자신이 내뱉은 말에 잠시 혼란을 느꼈다.
‘잠깐.’
지금 뭐라고 했지?
중계?
중계가 무엇이던가.
‘방송을 중계라고 하잖아? 야구 경기장에서 웬 중계?’
그제야 마이크가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뭐해? 경기 코앞인데 핸드폰을 보고 있어?”
“해설 들어야지. 너도 해설로 듣는 편이 좋지 않겠어?”
“해설?”
이건 또 무슨 개소리더냐.
지금 메이저리그 경기 시간이던가?
‘아직 아닌데?’
마이크는 그런 도진의 얼굴 앞에 펼친 핸드폰 화면을 들이밀었다.
“해설도 모르는 바보냐?”
마이크의 화면 안에는 두 백인 남성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앨런. 드디어 캘리포니아 베이스볼 리그가 개막했습니다.] [그러니까요. 켄. 우리 FS 고등학교는 첫 경기부터 어려운 상대를 만났네요.] [네. 상대는 바로 산타모니카 고등학교죠. 산타모니카는 작년에 아쉽게 2위를 했지만, 이번에는 1위를 위해 이를 제대로 갈고 있어요.]지금 FS 고등학교와 산타모니카 고등학교를 중계한단다.
그보다 우리 고등학교라니…… 편파 해설이잖아?
도진은 떨리는 마음을 추스르고는 마이크에게 물었다.
“이거 진짜 우리 학교 야구 중계야?”
“어. 그런데?”
“그, 그럼 이 해설자분들도 우리 학교 소속이신 건가?”
“맞아.”
“아! 개막전이라서 그런 건가?”
“아니? 모든 경기 다 해설해주는데? 부모님들이 학교를 매번 찾을 수는 없잖아? 학교는 어디서도 자식들이 활약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게 이렇게 중계해주지.”
프로선수랑 뭐가 다른 거야…….
도진은 차원이 다른 스케일에 놀라느라 한숨을 제어하지 못했다.
“볼 거면 유튭 들어가라.”
“아무나 볼 수 있어?”
“어.”
“공짜네?”
“그럼 공짜지.”
“한국이든 미국이든 유럽이든 아프리카든 어디서든 핸드폰만 있으면 시청할 수 있네?”
마이크는 한숨을 내쉬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도대체 이런 기본적인 것도 모르고 어떻게 살았냐?”
마이크는 이런 당연한 거에 왜 놀라냐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도진은 큰 충격에 휩싸였다.
그간 학교, 집을 반복하며 공부만 해왔기 때문에 몰랐다.
그저 미국은 한국보다 시설이 더 좋다고 생각했을 뿐.
이렇게까지 스케일이 다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참고로 앨런과 켄도 우리 학교 출신이셔. 스카우트 출신이라 야구 해설이 기막히거든.”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방문해서 응원하는 것도 모자라 치어리더와 밴드까지 존재한다.
더 나아가 해설을 동반한 방송까지.
이걸 고등학교 야구라고 말할 수 있는 건가?
그래. 시대가 좋아졌으니 그럴 수 있다고 치자.
‘그래도 이건 너무 부럽잖아.’
한국도 이런 인프라였다면.
사람들이 더욱 관심을 두면 지금보다 훨씬 더 유망한 선수들이 나올 텐데.
한국은 유명 대회 결승전에서나 가끔 티비에서 중계를 해줄 뿐.
결승전을 제외하면 방송을 타는 것이 힘들었다.
무엇보다 그 방송 자체도 시청률이 거의 바닥이다.
하지만 지금 유튭의 시청자는?
5천 명이 넘어가고 있었다.
이뿐만이 아니라 채팅창도 활발했다.
-오늘은 제발 이겼으면 좋겠다.
-매번 산타모니카에 지는 것도 진절머리가 난다.
-알렉산더 부탁한다! 한 방 날려줘!
“마이크. 근데 사람이 왜 이렇게 많이 봐?”
“그야 학교 학생들도 부모님들도 있지만, 야구 관계자들도 보니까? 다른 학교 분탕들도 있고.”
그렇게나 큰 관심을 받는다고?
‘이러니까 고등학교 슈퍼스타들을 전미가 다 알지.’
하지만 부러움도 찰나의 순간일 뿐.
도진의 기대감이 상승했다.
‘나도 야구부잖아.’
오늘 경기에만 참여하지 못할 뿐.
앞으로는 해설의 입에서 자신의 이름도 오르락내리락하겠지.
‘미쳤다.’
도진은 파르르 떨리는 몸을 쉽게 억제하지 못했다.
이제 시합이 코앞인데 시야가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야구 꿈나무들의 목표가 무엇이던가.
바로 프로선수다.
‘야구 프로선수가 꿈인 꿈나무들은 팬들 앞에서 경기를 뛰고 싶어 하지.’
이는 도진 자신의 꿈이기도 했기에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진짜 최고다.’
입꼬리는 금세 솟아올랐다.
‘아. 던지고 싶어 미쳐버리겠다. 내려가서 감독님한테 던진다고 하면 안 되나?’
그때.
제 생각을 읽었던 것일까?
도널드 감독은 1루 측 관중석의 도진을 발견하더니 내려오라며 손짓했다.
“야구부가 거기에서 구경만 하고 있으면 쓰나.”
* * *
“이걸 입게나.”
감독은 갑작스러운 호출에 당황해하고 있는 도진에게 유니폼을 내밀었다.
물론 다른 선수들과는 다르게 등번호와 이름이 적혀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임시 유니폼이라도 입고 있어야 야구부라는 사실을 사람들이 알 수 있을 거라 생각해 도진은 순순히 유니폼을 받아들였다.
도진은 옷을 받아들고 경기장 밖의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돌아왔다.
이후의 지시는 없었기에 그저 다른 후보 선수들과 함께 더그아웃에 앉았다.
‘이제 시작하는구나.’
인사를 나눈 선수들은 각자의 위치로 이동했다.
홈에서 치러지는 경기였기 때문에 산타모니카가 선공이었다.
‘더그아웃에 있긴 하지만 어쨌거나 개막전에 참여하게 됐네?’
비록 직접 시합을 뛰지 않을지라도 딱히 상관없었다.
자신이 이곳에 있다는 얘기는 최소 다음 경기는 뛸 수 있다는 뜻일 테니까.
한편.
선수들은 듣지 못하는 해설이 이어지며 경기가 시작되기 직전이라는 것을 알렸다.
해설에 따른 채팅의 반응들은 이랬다.
-믿는다! 페드로!
-FS 1선발! 1선발!
-우승 한번은 하고 졸업해야지!
FS의 선발 투수는 무려 14승 2패에 등판할 때마다 2실점 미만을 했다.
FS가 속한 캘리포니아 리그 팀의 합은 총 20팀.
홈과 원정 경기 한 번씩 총 38경기를 치르는데, 절반을 선발로 나가서 14승을 거둔 것이다.
그럼에도 FS가 중위권을 기록했다는 건 학교 내 2선발이 전부 패배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마운드에 선 페드로가 와인드업에 들어서자 도진은 눈을 빛냈다.
‘저 선배가 혹시 캘리포니아에서도 손꼽힌다는 선수가 저 선배인가? 눈여겨 봐둬야겠어.’
마침내 페드로의 초구가 손을 떠나 포수의 미트로 향했다.
초구가 정확히 포수가 요구하는 로케이션에 꽂히자, 도진은 복잡미묘한 감정에서 더욱 벗어날 수 없었다.
‘제구 구위 뭣하나 흠잡을 수 없이 완벽하긴 한데.’
딱히 이렇다 할 정도로 잘한다고 보긴 어려웠다.
‘혹시 이제 시즌이 시작돼서 그런 건가?’
아직 몸이 다 만들어지지 않아서 구속이 덜 나오는 건가?
도진은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아니. 포수 때문이다.’
포수가 포구는 했지만, 어딘가 어설펐다.
그렇기에 투수가 제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렵지. 어려워.’
150km에 육박하는 공을 전문 포수가 아닌 선수가 쉽게 처리하기 힘들 테니까.
하지만 페드로도 여간내기가 아니었다.
저런 포수를 두고도 깔끔하게 1번과 2번 타자를 땅볼로 처리했다.
제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다양한 볼 배합으로 지능적으로 상대를 요리한 것이었다.
하지만.
-2아웃을 깔끔하게 잡아낸 페드로가 3번 타자에게 안타를 맞습니다.
-다음 타자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이 타자 조심해야 하는데요.
-산타모니카의 4번 타자 데이브 앤더슨. 작년 시즌 리그 MVP를 타낸 타자입니다.
그간 근육 훈련을 하면서 하루가 멀지 않게 마이크의 입에서 들어본 그 이름.
‘알렉산더를 능가하는 괴물이라고 했지.’
요주의 인물이 타석에 들어서며 캘리포니아 내 투타 괴물들의 승부가 시작됐다.
* * *
투수와 타자의 승부에서는 투수가 유리한 법이다.
10번 중 3번만 안타를 만들어내도 타자가 우위에 섰다고 말할 정도로 투수가 유리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프로 레벨에서일 뿐.
중학교나 고등학교에서는 타자들의 타율이 5할이 넘어갈 때도 더러 있었다.
‘쉽지 않겠어.’
투수가 최고의 컨디션으로 상대 타자와 붙어도 이길 수 있을지가 미지수인데.
마운드에 선 페드로는 불안한 포수를 약점으로 달고 있었다.
‘학교는 포수 자원 없이 빡빡하게 운영했던 거구나. 이번에 전문 포수가 들어오길 기대했을 수도 있겠어.’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도진은 마운드에서의 경험이 상당했던지라 투수의 마음을 백번 이해했다.
결국 투수는 이번 승부가 지옥일 것이다.
‘하지만 경기는 진행 중이지.’
불평을 표출할 수도 없었으며 결국 눈앞에 놓인 난관은 투수 본인이 직접 헤쳐나가야만 했다.
도진은 타자가 아닌 FS 야구부의 주장 페드로에게서 한시도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렇게 초구. 공은 던져졌다.
약점을 달고 있는 투수가 타자를 이긴다는 건 어려운 일.
페드로가 던진 공은 시원하게 배트 중앙에 맞고 홈런이 되었다.
스코어는 2:0. 1회 초부터 FS는 2점을 내줬다.
‘그럴 수밖에 없어.’
요주 인물 데이브의 연습 스윙을 본 도진도 감탄이 절로 튀어나왔다.
그의 스윙은 알렉산더의 것보다도 완벽했기 때문이다.
둘의 스윙이 완전히 같다고는 못하지만.
‘알렉산더가 좀 더 파워에 중점을 둔 느낌이라면. 데이브는 간결하게 공을 갖다 맞추는데 탁월한 컨택 스윙이야.’
컨택 위주의 스윙이라고 장타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190cm의 키와 다부진 몸은 공을 맞히기만 해도 더욱 많은 장타를 생산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힘이 강해도 배트에 공을 맞히지 못한다면 장타는커녕 단타도 만들어내지 못할 테니까.
‘이미 완성형 타자다.’
괜히 캘리포니아 고등학교 야구 리그에서 MVP를 받은 것이 아니겠지.
하지만 도진이 놀란 이유는 따로 있었다.
데이브의 타구는 맞는 순간 홈런이었다.
눈을 감고 들리는 소리만으로도 홈런인 것을 직감할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투수는 타구를 쫓지 않았다.
이 행동엔 여러 이유가 있다.
첫째는 홈런을 직감해 크게 상심하느라 뒤돌아볼 생각도 못 했을 때다.
둘째는 타구를 눈으로 좇다 멘탈이 깨질까 일부러 참는 경우다.
‘이것도 아니라면.’
이 정도 점수는 괜찮다고 생각하는 부류도 간혹가다 존재했지만, 결코 쉽지 않은 생각이다.
‘멘탈이 나가서 그런 걸까?’
하지만 도진의 예상과는 달랐다.
‘내가 틀렸네.’
투수는 홈런을 맞았음에도. 2실점을 했음에도 절대 고개를 떨구지 않았다.
오히려 글러브를 손에서 빼더니 손뼉을 치며 주위를 다독이기 시작했다.
무려 홈런을 맞은 투수가 말이다.
‘저 사람이 캡틴(주장)이라고 했지.’
성숙하디 성숙한 모습을 보이는 투수는 4학년으로 올해가 졸업반.
하지만 그 역시도 아직은 고등학생이다. 홈런으로 크게 흔들릴법한 상황에서 아군을 다독이다니.
‘본받을만한 선수다.’
도진은 FS 야구부가 절대로 약하지 않다고 봤다.
그리고 그는 홈런을 맞았음에도 다음 타자들을 깔끔하게 처리하며 이닝을 마무리 지었다.
* * *
야구에는 흐름이라는 게 있다.
실점해도 상대측에서 곧바로 점수를 따라붙는 게 다반사였다.
고작 2점 뒤지고 있다고 패배를 직감하는 시기는 아니었다.
물론 상대 투수도 뛰어났다.
페드로만큼 잘 던진다고 보는 게 옳았다.
결국 FS는 1회를 삼자 범퇴로 물러섰다.
하지만 2회 말.
점수는 여전히 2:0.
알렉산더는 고작 타석에 들어섰지만, 존재감만으로 분위기를 완전히 뒤바꾸었다.
‘슈퍼스타가 갖는 이점이지.’
아직 결과가 나오지도 않았는데 이곳에 모인 모든 이들의 눈동자엔 기대감이 서려 있었다.
알렉산더는 풍선껌을 질겅질겅 씹어대며 타석에서 위압감을 뽐내고 있었다.
[알렉산더 로데온. 타석에 들어섭니다.] [FS의 자랑. FS의 슈퍼스타. 더 나아가 전미 슈퍼스타 알렉산더. 미식축구를 병행하면서도 작년 리그에서 40홈런을 때린 강타자죠.]-너 보러 왔다!
-알렉산더 갈겨버려! 데이브 따위는 뭣도 아니라는 걸 보여줘!
-너네만 괴물 타자 있냐? 우리도 있다!
해설의 목소리엔 희망이 실렸고.
채팅창도 더욱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한편 더그아웃에서 알렉산더를 지켜보던 도진은 다른 이들과 같은 마음이었다.
‘알렉산더. 네가 해줘야 한다.’
여기서 한 방 날리지 못한다면 오늘 경기는 어려워진다.
마침내 리그에서 40홈런이나 때린 강타자, 알렉산더가 타석에 들어섰다.
홈 관중은 알렉산더의 활약에 온 신경이 집중됐다.
하지만 캘리포니아 리그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저 개자식들이?’
포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옆으로 한 발짝 빠졌기 때문이다.
산타모니카는 알렉산더를 상대로 정면승부 대신 회피를 선택한 것이다.
[아. 고의사구입니다.] [선두타자가 출루한다는 건 기쁜 소식입니다만. 그 타자가 알렉산더라는 건 아쉽네요.]-야! 이 개자식들아! 그러고도 네놈들이 남자냐?
-쓰레기 같은 놈들. 야구도 쓰레기처럼 하고 매너도 쓰레기네.
-그렇게 이기고 싶냐? 이 치사한 새끼들아!
도진은 꿀렁거리는 아랫배를 제어하지 못하며 주먹을 꽉 쥐었다.
더그아웃에 있었던지라 채팅창과 해설을 듣지는 못했지만.
자신도 FS의 일원으로서 다른 이들과 똑같은 마음이었다.
“고의사구라니. 치사하잖아!”
하지만 산타모니카의 작전은 완벽히 들어맞았다.
5번 타자가 병살타를 쳤고.
6번 타자가 삼진을 당하며 허망하게 2회를 날려버렸기 때문이다.
‘이게 약팀인가.’
이닝의 선두타자를 주자로 내보내는 것은 야구에서 절대 지향하는 일이다.
하지만 결국 최고의 타자를 묶어둠으로써 산타모니카는 이닝을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이것이 FS 고등학교의 현주소였다.
뛰어난 투타를 한 명씩 보유했지만 그게 전부였다.
‘이렇게 져서는 안 돼.’
어느새 경기는 6회. 점수는 9:0.
2실점밖에 하지 않은 페드로는 타선의 득점 지원은 받지 못했고.
선발 투수를 대신해서 등판한 계투는 난타당하기 일쑤였다.
도진은 무기력함을 느꼈다.
고작 앉아서 응원조차 하지 못하는 상황이 달갑지 않았다.
하지만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과는 별개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자 그때.
감독이 도진을 불렀다.
“킴.”
“준비됐습니다.”
도진은 감독이 왜 자신을 불렀는지 알고 있었다.
이대로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하고 지게 된다면 학교는 차후의 경기에 지장이 생기기 때문이다.
적어도 학교를 응원하는 응원단들에게.
크게 패배하고 있는 선수들에게 희망이라는 씨앗을 심어줘야 했다.
감독은 도진을 향해 입꼬리를 한껏 상승시키고는 여유롭게 말을 이었다.
“불펜으로. 7회에 등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