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seball genius who chews up America RAW novel - Chapter (150)
미국 씹어먹는 야구 천재-150화(150/400)
2회 초.
오늘 9번에 배치된 상우는 더그아웃에서 어금니를 잘근잘근 씹었다.
‘제엔장!’
6번부터 시작하는 타선이라 주자가 한 명만 출루해도 차례가 온다.
문제는 심장이 뛰어대는 바람에 아직 타석에 들어설 준비가 되지 않았다.
아니. 원래 준비는 됐었다.
저 망할 도진이 말도 안 되는 플레이를 선보여서 부담이 가기 시작했던 것일 뿐.
‘아. 나도 입스 안 오나?’
도진은 입스를 극복하고 다른 사람이 됐다.
그의 외형이나 플레이스타일이 바뀌지는 않았지만, 플레이 자체가 진짜 프로 같았다.
‘솔직히 가을리그 시작부터 입스를 극복하기 전까지는 그저 갓 고등학교 졸업한 선수와 똑같았지.’
성숙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물론 프로도 경험해보지 못한 선수가 성숙할 수가 있나?
아니. 그런 선수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도진은 이 짧은 시간 안에 시련도 극복하고 발전까지 해서 배가 조금 아팠다.
‘저놈은 지금 나한테 도움이 안 돼.’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가 가랑이 찢어진다는 말이 있다.
‘도진이 놈 뒤를 쫓겠다고 무리했다간 내 페이스가 말릴 것이 눈에 훤하다.’
상우는 그레그의 어깨를 툭 쳤다.
“와이 브라더!”
그레그가 해맑게 웃는다.
그를 몰랐을 때는 이 새끼는 상황 파악도 못 하는 정신 나간 새낀가? 라고 생각했겠지만.
안면 근육이 씰룩대는 걸로 보아 그가 긴장하고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우리도 놈처럼 보여줘야 하지 않겠어요?”
“그, 그래야지!”
“떨지 말고요.”
“누, 누가 떨었다고 그래! 나 그레그 호먼이야!”
그래서 뭐 어쩌라고.
한국말로 나지막이 중얼거린 상우는 이내 표정을 굳혔다.
“6번 타자가 출루했어요. 병살타가 나오지 않는 이상 저한테도 기회가 와요.”
그레그가 뜨끔했다.
“너도 날 무시해?”
“그 뜻이 아니라 우리도 합작품 좀 내야 하지 않겠어요? 저 프로도 경험해보지 못한 두 핏덩이처럼요.”
그레그는 스포츠음료를 가지러 간 도진의 등을 쳐다봤다.
그러고는 앉아서 명상하고 있는 놀란도 함께 시야에 담았다.
“인정. 솔직히 우린 프로를 경험해봤잖아? 넌 1년. 난 3년.”
아오. 이 새끼 또 잘난척하네.
라는 말을 망상에서나 내뱉은 상우는 방긋 웃었다.
“사실 전 쟤네랑 동갑이긴 해요. 그레그가 우리보다 완전 선배지.”
“완전 선배까지는 아니야!”
이럴 땐 또 눈치가 빠르다니까?
상우는 그레그를 돌려 까는 것이었다.
프로에서 3년이나 썩었으면서 왜 자신들과 동급이냐고.
물론 상우도 자신을 도진과 놀란의 동일선상에 있다고 생각지는 않았지만, 그에 합당한 핑계가 있었다.
‘난 어디까지나 미국 생활이 아직 적응되지 않았을 뿐이야.’
어쨌거나 지금은 그레그와 의기투합할 때다.
말다툼으로 서로를 까 내릴 필요는 없었다.
그레그는 대기 타석으로 이동했고 상우는 입구까지 따라갔다.
“그레그. 보여줘요! 드래프트 1라운더잖아요! 쟤네랑 다를 게 뭔데?”
“다르긴 한데……”
그래. 솔직히 금액도 포텐도 전부 다르다.
그래도 지금은 다르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뭐가 다른데? 그냥 태어난 시기에 억까 당한 거라고!”
“그런가아?”
“이번엔 그레그시치가 아닌 그레그 호먼이라는 것을 보여 달라고! 절대 병살타는 안돼!”
“그레그시치 칭찬 아니었어?”
“아. 칭찬 맞음. 어쨌거나!”
상우는 팔을 들어 올렸다.
“진짜 보여주자고요! 나 농담 아니야.”
그레그는 상우의 팔을 맞잡았다.
“나 진지한 거 안 보이냐?”
“보여. 처음 봐.”
“다녀오마. 내 뒤를 부탁한다. 날 홈으로 불러들여 달라고!”
“진짜 불러드릴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도 합작품 좀 내보자고요! 대신 그 전에! 시뮬레이션부터 해보자!”
“오케이. 상대 투수는 무사 1, 2루로 흔들리고 있어. 제구가 흔들리고 있으니 나도 첫 타석의 킴처럼 물고 늘어진다!”
100% 정답만 말하다니.
당황한 상우는 서둘러 엄지를 치켜세웠다.
“좋, 좋은데요?”
그레그는 타석으로 이동했다.
그의 등을 바라보던 상우는 왠지 모르게 믿음이 갔다.
무사 1, 2루.
그레그는 평소답지 않게 신중했다.
이를 대기 타석에서 지켜보던 상우는 희미하게 웃었다.
‘그거야! 그레그! 그거라고! 출루만 해다오!’
주자가 모이면 투수가 더욱 흔들리기 마련.
거기에 무사 만루가 된다?
투수는 구렁텅이에 빠져 정신을 차릴 수 없을 것이다.
‘나에게 기회가 온다!’
“볼!”
“볼!”
“볼!”
3-0.
그레그의 선구안은 오늘 남달랐다.
문제는 그 망할 고질병인 영웅심은 아직 고치지 못했다.
부웅.
헛스윙이 나왔다.
높은 코스로 날아오는 패스트볼은 스트라이크라고 착각할 법한 공이었지만.
‘아오! 또 3-0에서 스윙하네.’
그 때문에 투수는 페이스를 되찾았다.
“스트라이크 아웃!”
그레그는 터덜터덜 더그아웃으로 복귀했다.
상우는 눈에 불을 켜며 그를 죽일 듯이 노려봤지만, 그레그는 자신의 시선을 외면했다.
그래도 이건 누가 봐도 그레그의 잘못 아니던가?
“뭐하냐고! 이 병신같은 놈아!”
어떠한 변명도 들려오지 않았다.
결국 상우는 울분을 삼키고 타석으로 이동했다.
삼진으로 물러섰지만, 아직 1사 1, 2루.
안타 하나면 주자를 홈으로 불러들일 수도 있다.
‘이건 기회야.’
도진과의 거리를 좁힐 수 있는.
그리고 그레그보다 우위에 설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따악!
상우는 초구부터 스윙했다.
잘 맞은 타구.
하지만 하필 유격수 정면으로 향했다.
“아웃!”
“아웃!”
상우는 고개를 푹 숙였다.
더그아웃에서는 유난히 큰 목소리가 고막에 꽂혔다.
“아오! 저 등신 같은 새끼. 그걸 병살타를 쳐?”
우와. 기다렸다는 듯이 목소리 내는 거 봐라.
역시 그레그는 어디서든 살아남을 새끼다.
상우는 그렇게 생각했다.
* * *
“그레그 뭐 해요? 상우 넌 왜 그랬어!”
도진은 나란히 앉아서 고개를 들지 못하는 상우와 그레그를 훈계하고 있었다.
“그레그. 하이 A 가야죠. 상우 넌 왜 신중한 놈이 초구부터 배트를 내냐.”
도진은 아쉬웠다.
둘은 팀의 광대가 아니다. 이보다 더 잘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차려진 밥상이 눈앞에서 사라져 힘이 축축 빠졌다.
‘아…… 한 명만 출루했어도.’
타점을 올릴 기회가 왔었을 텐데.
물론 야구가 뜻대로 되지 않는 건 맞지만, 가을리그 내내 팀플레이를 강조했다.
최선을 다했다가 결과가 좋지 않았다면 또 모를까.
둘의 행동은 누가 봐도 욕심 가득한 플레이였다.
“거, 거기까지.”
“추, 충분히 알아들었어.”
못 알아들은 것 같은데.
그래도 이럴 때는 아니었다.
3회 초.
도진은 다시 한번 선두타자였다.
“다녀올게요.”
“다, 다녀와!”
“자, 잘하고 와.”
“저주나 걸지 마세요.”
둘의 어깨가 파르르 떨렸다.
이 두 놈들 진짜 저주를 걸려고 했었나 보네?
‘그러거나 말거나. 난 내 페이스만 유지하면 돼.’
장타나 홈런이 나온다면 좋겠지만, 뜻대로 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저 한 타석 한 타석 최선을 다하는 것이 선수의 숙명이다.
지금 놀란과 암묵적으로 경쟁하고 있었지만, 그가 홈런을 기록했다고 스윙이 커질 필요는 없다.
이닝의 선두타자로서 맡은 역할을 다할 뿐.
물론 장타를 치는 선두타자라면 더욱 좋겠지만, 폴 스타 특성상 투수가 자주 바뀐다.
그리고 도진은 이번에도 바뀐 투수를 상대해야만 했다.
‘이야. 김도진. 그래도 좀 성장했네?’
도진은 자신을 자찬했다.
예전 같았으면 생각 그대로 홈런이나 장타를 노렸을 것이다.
경쟁자와의 대결에서 뒤처질 마음은 절대 없었으니까.
‘야구도 매번 변하는데 나도 그래야지 않겠어?’
한때는 장타와 출루율이 중요했던 ops가 주목받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도 여전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지만 이외에 다른 중요한 기록들이 ops를 앞서기 시작했다.
지금은 선수가 득점에 얼마나 이바지했는가를 보는 조정득점생산력 지표인 wRC+가 주목받는 시대였다.
‘특히나 후속 타자가 놀란 같은 강타자라면 내가 굳이 무리할 필요는 없어.’
전문가들의 눈은 정확하다.
자신의 노고를 모를 리가 없었다.
‘그리고 저 둘도 깨달았으면 좋겠네.’
둘은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심장이 용납하지 않는 부류.
완벽히 깨우치게 만들려면 직접 보여주는 수밖에 없다.
도진은 초구부터 패스트볼을 노렸다.
그리고 그 공이 날아오자 배트를 휘둘렀다.
부드러운 스윙. 앞서 그레그, 상우의 홈런 스윙과는 완전히 대조됐다.
따악!
잡아당긴 타구는 3루수 강습.
3루수가 멋진 다이빙 수비로 포구에 성공했다.
아웃이 눈에 훤했다.
그런데도 도진은 1루를 향해 전력으로 질주했다.
‘절대 포기할 수 없지.’
그 때문에 3루수가 글러브 속의 공을 한 번 더듬었다.
이미 앞서 도진의 주력을 똑똑히 보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아웃이 뻔한 상황에서의 전력 질주.
흔히 접할 수 있는 광경이 아니었으므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세이프! 세이프!”
적군 측 더그아웃에서는 탄성이.
아군 측 더그아웃과 관중석에서는 환호가 쏟아져 나왔다.
몇몇 관중들은 일어서서 기립박수까지 쳤다.
프로에 발을 디딘 선수에게서 보고 싶었던 광경이었기 때문이다.
도진은 전광판을 슥 훑어봤다.
‘오? 에러가 아닌 안타네?’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안타가 아닌 에러로 기록됐을 수도 있다.
하지만 발이 빠른 선수에게는 이따금 안타를 준다.
최선을 다해서 달렸더니 결과까지 완벽했다.
‘이보다 좋을 수 없지.’
그런데 도진은 이대로 만족하고 싶지 않았다.
주자로 나간 도진은 베이스에서 두 발짝 떨어져서 어깨를 흔들며 건들거리기 시작했다.
투수의 신경을 건드리는 것이었다.
투수는 짜증 섞인 표정으로 견제구를 던졌다. 이를 예상한 도진은 재빨리 1루로 귀루했다.
투수가 다시 투구 자세를 잡았다.
도진은 다시 한번 두 발짝 리드 후 건들거렸다.
또다시 견제. 도진의 입꼬리가 치솟았다.
‘걸려들었어.’
투수가 자신을 의식하고 있다.
주자로서 100% 제 역할을 다하고 있다는 의미.
그러니 더 흔들어줘야겠지?
도진은 더욱 과감하게 세 발짝 베이스를 리드했다.
투수의 선택은 또다시 견제.
하지만 세 번째 견제구는 1루수의 머리를 훌쩍 넘겼다.
도진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곧장 2루로 내달렸다.
뒤늦게 1루수가 뒤로 흐른 공을 포구해 2루를 힐끗 쳐다봤지만, 도진은 이미 2루에 안착해 있었다.
“젠장!”
투수가 울분을 토해냈다.
포수는 마스크를 벗더니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도진의 광대는 더욱 꿈틀댔다.
‘아직 안심하면 안 될 텐데?’
2루를 내준 투수는 단념하고 초구를 던질 터.
예상대로 맞아떨어졌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3루를 향해 내달렸다.
포수는 미간을 와락 구기며 미트에서 공을 빼내 3루로 던졌다.
하지만 평정심을 잃은 포수의 송구는 3루수 키를 훌쩍 넘겼다.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으로 3루 베이스를 터치한 도진은 공이 뒤로 흐르자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홈으로 쇄도해 베이스를 밟았다.
단타로 출루했던 도진은 2루를 돌아 3루 그리고 홈까지 밟았다.
“이야. 야구 혼자 하네?”
놀란은 도진에게 손을 내밀었다.
도진은 그의 손을 툭 쳤다.
“칭찬 고맙다.”
도진은 다음 타석에서 아웃이 됐지만, 그다음 타석에서는 펜스를 맞추는 2루타를 기록했다.
타석에서의 기록은 4타석 3타수 2안타 1볼넷 2득점.
최고들만 모아 놓은 경기에서 최고의 결과를 기록하고 있었다.
하지만 도진의 활약은 이대로 끝이 아니었다.
감독은 경기가 막바지로 치닫자 도진을 불렀다.
“팬들에게 마무리 인사는 제대로 해야 하지 않겠어?”
체력이 괜찮냐고 묻는 것이었다.
“네. 충분히 뛸 수 있습니다.”
도진은 불펜을 명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