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seball genius who chews up America RAW novel - Chapter (153)
미국 씹어먹는 야구 천재-153화(153/400)
타석에 들어선 도진은 긴장하고 있었지만, 컨디션 자체는 괜찮았다.
‘선두타자인 내 타석 결과에 따라 팀의 분위기가 달려 있어.’
출루할 수만 있다면 초반 분위기를 가져올 수 있다.
도진은 투수를 힐끗 쳐다봤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압도적인 아우라는 자신을 일순 집어삼켰다.
‘어휴. 쉽지 않겠네.’
투수는 마이애미 말린스의 트리플 A 소속 페론 홉킨스.
가을리그에서 1점대 후반대 방어율로 매우 우수한 성적을 내고 있었다.
‘쫄지 말자. 승산은 있어.’
도진은 이미 예비 메이저리거들과 몇 번이나 맞붙어봤다.
이러한 경험으로 상대가 더는 두렵지 않았다.
하지만 강력한 97마일의 패스트볼이 바깥쪽으로 파고들자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스트라이크.”
그가 이 정도의 투수임을 알고 있었지만, 오늘 그의 컨디션은 더욱 좋아 보였다.
투수 페론은 겉으론 드러내지 않았지만, 그 역시도 승부욕에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이 루키만큼은 절대 주자로 내보내서는 안 된다.’
도진이 루키답지 않은 훌륭한 선수였다.
그가 출루하면 오늘 최고의 컨디션으로 마운드에 오른 자신의 마운드 운용 계획이 전부 무너져내릴 수도 있다.
페론은 남다른 위력의 초구를 던졌음에도 포수가 2구로 패스트볼을 요구하자 고개를 저었다.
‘솔직히 오늘 컨디션으로는 이 공을 계속 던져도 웬만해선 맞지 않을 테지만. 지금 타석에 선 저 아이라면 어떻게서든 출루하려고 할 거야.’
초기에 잡아두지 못하면 잡아 먹힌다.
마이너리그에서 7년을 보낸 투수의 감이었다.
‘그러니 비교적 이르지만 내 무기를 굳이 숨기면 안 되겠어.’
사인이 나왔다.
페론은 와인드업했다.
손을 떠난 공은 패스트볼과 흡사했지만, 홈 플레이트 끝에서 속도를 잃고 떨어지며 도진의 스윙을 유도했다.
“스트라이크!”
0-2.
투수가 압도적으로 유리한 카운트.
하지만 페론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상대는 자신과 같은 레벨 혹은 그 이상이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도진을 상대하고 있었다.
포수의 사인이 나왔다.
페론은 희미한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 의도를 알아챘군.’
3구. 공은 손을 떠났고.
도진은 슬라이더에 크게 헛스윙했다.
“스트라이크 아웃!”
페론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메이저리거와 가장 가까운 선수가 이제 고등학교를 졸업한 선수를 잡고 보일법한 세레모니는 아니었다.
그래도 그는 조금도 부끄럽지 않았다.
이것이 프로의 세계이며.
상대는 그만큼 대단한 선수였다.
* * *
야구는 원래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법이다.
타자 전원이 최상의 컨디션으로 경기에 임해도 영봉패가 나올 수도 있는 것이 야구다.
지금 데저트 독스가 딱 그랬다.
선두타자 도진이야 투수가 1회부터 모든 무기를 선보였기 때문에 대응책이 없었다.
그러므로 투수의 구종을 확인한 데저트 독스의 후속 타자들이 분발해줘야만 했다.
그런데 후속 타자들도 투수의 투구에 대응하지 못하며 속수무책으로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만큼 선두타자 도진을 잡은 페론의 기세는 하늘을 찔렀다.
3회 초가 끝난 시점에서 데저트 독스는 0안타 0출루.
하지만 메사 솔라 삭스는 투수의 기세에 힘입어 무려 3점을 앞서나가기 시작했다.
“젠장!”
4회를 앞둔 데저트 독스의 더그아웃에서는 여기저기서 욕설이 흘러나왔다.
경기는 아직 초반이다.
하지만 투수의 기세를 보자니 오늘 경기가 얼마나 어려울지 감히 상상도 되지 않았다.
어떻게서든 분위기를 되찾아와야 하는 처지.
그런데 그 희망이 고작 바늘구멍만큼이나 작아 난항을 겪고 있었다.
4회 초. 도진이라고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는 없었다.
다시 한번 선두타자로 나섰지만 5구 끝 체인지업에 삼진으로 물러섰다.
“투수의 공이 상당히 지저분하네.”
“하필 오늘 긁히네. 진짜 운도 좋아.”
상우와 그레그는 도진을 위로하고자 한마디씩 건네며 그의 표정을 살피며 말을 이었다.
“분위기를 되찾아와야만 하는데 투수만 긁히면 또 모를까. 상대 타자들의 컨디션도 투수 못지않아.”
그레그도 거들었다.
“이 분위기는 단번에 뒤집을 수 없다. 야금야금 되찾아오다가 한 번에 뒤집어야만 하는데.”
하지만 챔피언십 게임은 단판.
뒤는 없었다.
그런데 도진의 표정은 한결같이 평온했다.
“묘수가 있는 거냐?”
도진은 상우의 질문에 고개를 저었다.
그레그가 거들었다.
“그럼 패배를 단념한 거냐? 생각보다 표정이 괜찮은데?”
“아뇨. 그럴 리가요. 아직 포기하기는 이르잖아요?”
하지만 상황은 점차 악화했다.
6회가 끝났을 때의 스코어는 5:0.
데저트 독스는 여전히 단 한 명의 주자도 루상에 나가지 못했다.
그런데도 도진은 동요하지 않았다.
그레그는 재차 물었다.
“이젠 진짜 단념했다. 그치?”
“아뇨.”
“그런데 왜 이렇게 멀쩡해? 우승에서 멀어지고 있잖아.”
“그렇긴 하죠.”
그레그와 상우는 눈초리를 가늘게 찢고 도진을 의심스럽게 쳐다봤다.
미친놈인가? 실망스러워서 정신이 나가버린 건가?
아군 분위기는 바닥을 기고 있는데 분위기를 뒤바꿀 묘수도 없단다.
그리고 제일 아쉬워해야만 하는 선수가 생각보다 너무 멀쩡했다.
“수비하러 나가죠.”
도진은 묵묵히 글러브를 손에 쥐고 더그아웃을 벗어났다.
그의 등을 멍하니 바라보던 상우와 그레그는 똑같은 말을 내뱉었다.
“저 새끼. 분명 묘수가 있는 것 같은데.”
* * *
6회 말.
데저트 독스의 몇몇 선수들은 이미 경기를 포기했다.
이번 이닝을 무실점으로 틀어막아도 남은 3이닝 동안 최소 5점을 내야 하는데 어디 그게 쉽던가?
지금 투수의 컨디션을 보면 불가능에 가까웠다.
대신 도진만큼은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그의 안광은 여전히 의욕으로 가득 차 있었다.
‘분위기가 전부 넘어갔어.’
그나마 희소식이라면.
‘우리 타자들의 컨디션이 나쁜 건 아니야.’
투수의 컨디션이 상대적으로 월등해서 치지 못하고 있었던 것뿐.
여전히 타자들의 스윙엔 힘이 있었다.
‘기회는 무조건 온다.’
하지만 그 기회가 하늘에서 뚝 떨어지거나 하지는 않는다.
당장 투수에게 압도당하고 있었으므로 타격으로 결과를 낸다는 것은 낭설이었다.
그런데도 도진은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앤서니가 그랬잖아?’
타자가 무안타 경기를 펼쳐도 경기력을 증명할 기회는 충분히 있다고.
지금 당장은 수비뿐이다.
그 장면이 오기만을 숨죽인 채 기다리고 있었다.
6회 말.
선두타자가 볼넷으로 출루했다.
무사 1루에서 타석에 선 타자는 초구부터 스윙했다.
유격수와 2루수 사이로 향하는 중전 안타 코스.
여기서 안타가 나온다면? 데저트 독스는 완전히 무너진다.
하지만 난세에는 영웅이 등장하는 법.
암울한 분위기에서도 유일하게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던 도진은 타구음이 들려오는 순간 몸을 움직이며 외쳤다.
“커버!”
함께 타구로 향하던 그레그는 도진의 목소리에 순간 움찔 놀랐지만, 이내 타구가 아닌 2루 베이스로 노선을 틀었다.
그러므로 타구를 쫓는 건 도진 혼자였다.
몸을 날려 손을 뻗었다.
바운드 된 공이 글러브에 꽂혔다.
그래도 안심할 수는 없다.
타구가 외야로 흐르는 것은 막아냈지만, 아직 아웃 카운트를 올린 것은 아니었으니까.
도진은 곁눈질로 주자를 확인했다.
‘빠르다.’
주자의 발은 빨랐고 정상적으로 송구한다면 아웃 카운트를 잡을 수 없다.
유일한 희망이라면 1루로 향하는 타자의 발만큼은 느리다는 것인데.
손을 이용하지 않고 곧장 공을 토스한다면 또 모를까.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공을 그레그에게 토스하기엔 지금 당장 배를 바닥에 깔고 엎드린 자세 때문.
송구 정확성도 떨어질 테고 힘이 실리지도 않아 아웃을 확신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도진은 엎드린 상태로 부메랑 날리듯이 그레그에게 글러브를 통째로 던졌다.
그레그는 공이 아닌 글러브가 날아오자 눈이 휘둥그레졌다.
‘제발. 그레그.’
자신의 바람이 들렸던 것일까?
그레그는 글러브를 정확히 낚아챘다.
“아웃!”
그러고는 도진의 글러브 안에서 공을 빼내더니 곧장 1루로 던졌다.
“아웃!”
심판의 콜에 야수들은 저마다 주먹을 불끈 쥐었다.
병살타를 합작한 그레그는 포효했다.
“이거지? 이거잖아!”
도진 역시 엎드린 채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
스코어는 5:0.
데저트 독스에게 희망이라는 한 줄기의 빛이 내리쬐기 시작했다.
* * *
“나이스! 나이스!”
“수비 좋았다!”
“이 기세 그대로 이어 나가보자!”
6회 말을 삼자범퇴 이닝으로 끝낸 데저트 독스의 선수들은 도진과 그레그에게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레그는 고참들에게서 칭찬이 들려오자 우물쭈물했지만, 이내 도진을 툭 쳤다.
“이거 맞지? 이거 맞잖아?”
칭찬을 바라는 눈치.
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긴 해요. 제 의도를 정확히 캐치했네요?”
“그럼! 내가 원래 한때는 캐처 유망주였어.”
“유머 감각이 최악이네요.”
그레그는 고개를 푹 숙였다.
자신이 생각해도 캐치라는 말을 듣고 캐처라고 내뱉는 어이없는 농담이었지만, 도진이 받아줄 줄 알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지고 있는 팀에서 가벼운 농담이 오가는 것은 좋지 않다.
특히나 오늘 지면 뒤는 없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아니었다.
“푸하하.”
“개그 수준 봐라.”
“그래. 저 때는 저런 농담도 해줘야지. 평소에도 저러면 꿀밤을 갈기고 싶겠지만.”
그간 콘크리트처럼 단단하게 굳어 좋지 못했던 분위기가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한풀 꺾인 선수들의 의지가 다시금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분위기를 되찾아와 희망의 불씨를 살린 두 주인공이 이뻐 보였으니 그럴 수밖에.
물론 여전히 경기는 어려웠다.
그리고 가져온 분위기가 채 5분도 이어 나가지 못하고 다시 뺏길 수도 있었다.
그러므로 아주 미세하게 되찾아온 분위기를 이어 나갈 수 있느냐 없느냐는 7회 초 선두타자 도진에게 달려 있었다.
도진은 타석에 들어서며 짧은 숨을 내뱉었다.
“후우.”
그의 표정은 경기 초반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그 때문에 지금까지 퍼펙트라는 완벽한 투구 내용을 선보인 투수 페론은 큰 압박감을 느끼고 있었다.
‘무, 무슨.’
투수가 타자와 대결할 때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이겠는가?
고작 한 부분을 콕 짚어 얘기하기는 힘들지만, 적어도 상대의 심리를 읽는 자가 우위에 설 수 있다.
그런데 지금 타석에 선 저 루키의 감정이 읽히지 않았다.
경기를 포기했다면 모를까.
지금까지 그를 지켜봐 온 바로 서 그는 결코 경기를 포기할 위인이 아니었다.
‘젠장. 도대체 뭘 노리는 거지? 장타? 아니면 출루? 하아. 이놈만큼은 절대 출루시켜서는 안 되는데.’
페론은 고작 어린 선수가 내뿜는 기세에 전신이 짓눌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이너리그에서 이미 산전수전 다 겪은 자신이다.
손쉽게 물러설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너만 잡으면 우리의 승리다. 미안하지만 네 수비 덕에 분위기는 넘어갔을지언정 나 역시도 오늘 최고의 컨디션이다.’
페론은 패스트볼 사인에 즉각 고개를 저었다.
패스트볼만큼은 절대 초구로 던져서는 안 된다고 오감이 자신에게 일렀기 때문이다.
‘놈은 패스트볼을 노릴 거다.’
그러니 변화구로 스윙을 유도해 카운트를 유리하게 간다.
타자의 표정은 여유로웠지만, 속은 그렇지 못할 터.
페론은 슬라이더를 던졌고 스윙이 나올 수밖에 없는 완벽한 공이었다.
하지만 결과를 마주한 그의 동공이 파르르 떨렸다.
타자는 그럴 줄 알았다며 순간 미소를 띠었으니 말이다.
“볼!”
타석에 선 도진은 입꼬리를 유지한 채 어금니를 꽉 물었다.
‘당신. 초구부터 도망간 걸 후회하게 될 거야.’
카운트는 1-0.
고작 1구를 유리하게 가져갔을 뿐이지만 이 1구가 가진 의미는 매우 컸다.
‘이미 패스트볼로 카운트를 잡지 않겠다고 선언한 이상 2구 역시 변화구다.’
투수가 와인드업했다.
예상대로 2구 역시 변화구. 떨어지는 체인지업이었다.
충분히 헛스윙을 유도할법한 완벽한 투구였지만, 치지 않겠다고 선언한 도진은 배트를 내지 않았다.
“볼!”
2-0.
1-0와 2-0 고작 볼 1개가 더 추가됐을 뿐이지만, 의미하는 바는 1개 그 이상이었다.
3구를 앞둔 도진의 눈동자에 광기가 비쳤다.
‘넌 날 절대로 걸어내보내지 않겠지.’
그러니 투수는 이번 투구에서 스트라이크를 꽂아 넣을 거다.
‘구종은 패스트볼이 되겠지.’
그리고.
나는 장타를 노린다.
투수가 와인드업하는 즉시 도진은 입꼬리를 올렸다.
도진의 미소에 움찔 놀란 투수의 공은 포수가 요구하는 몸쪽이 아닌 한복판으로 향했다.
따-악!
도진의 전광석화 같은 스윙이 투수의 공을 후려쳤다.
그 즉시 투수와 야수들의 몸은 얼음장만큼이나 단단하게 굳어버렸다.
타구는 속도를 잃지 않고 그대로 담장을 넘겨 버렸고.
7회 초. 스코어는 1:5.
도진은 티끌도 남기지 않고 상대의 분위기를 전부 빼앗아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