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seball genius who chews up America RAW novel - Chapter (154)
미국 씹어먹는 야구 천재-154화(154/400)
대기 타석에서 도진을 지켜보던 앤서니의 눈이 번뜩였다.
“가겠네. 가겠어.”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었다.
하나는 타구가 담장을 넘긴다는 것. 다른 하나는 스프링캠프였다.
“요즘 애들 참 무섭다니까.”
요즘 애들은 아닌가?
앤서니는 멋쩍게 웃었다.
오로지 도진만이 궤를 달리하는 선수였다.
‘무슨 스펀지도 아니고. 습득력이 저렇게 빠르냐.’
그는 며칠 전 자신이 건넨 조언을 허투루 듣지 않았다.
‘조언이랍시고 건네긴 했는데. 말하고 후회했었지.’
앤서니는 도진에게 건넨 조언을 떠올렸다.
다시 생각해봐도 참 무책임했다.
패색이 짙은 상황에서 평정심을 유지하기가 어디 쉽던가?
메이저리거라도 불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도진은 보란 듯이 해냈다.
‘저 어린 선수에게 또 배웠네.’
앤서니는 금세 표정을 굳혔다.
트리플 A 소속으로 루키에게 배우기만 해서는 고개를 들고 다닐 수 없었으니까.
‘덕분에 이번 깨달음으로 나는 메이저리그를 갈 거다. 그래서 말인데.’
자신도 도진에게 큰 선물 하나를 전달해주고 싶었다.
타석에 들어선 앤서니는 투수를 노려봤다.
이미 6회까지 완벽투를 펼치던 기세등등했던 투수가 아니었다.
그의 생각이 읽힌다.
1점? 아직 괜찮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런데 이걸 어쩌나?’
너. 루키한테 갈기갈기 찢어져서 전혀 안 괜찮아 보여.
초구부터 패스트볼로 스트라이크를 잡겠다는 네 생각이 전부 읽히는데 이걸 어쩌나?
투수가 공을 던지자 앤서니는 즉각 스윙했다.
따-악!
투수는 고개를 떨궜고.
앤서니는 분위기를 더욱 끌어올리겠다며 배트에 회전을 주며 유유히 1루로 걸어나가며 더그아웃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도진에게 엄지를 치켜세웠다.
* * *
상우와 그레그는 연타석 홈런이 터지자 표정을 굳혔다.
“그레그.”
“왜. 브라더.”
“봤지?”
그레그는 입맛을 다셨다.
“어. 결국 또 해냈네.”
“질 수 없잖아?”
“그렇지. 킴이 우리 미래를 책임져주는 것도 아니고.”
“잘 아네. 나도 언제까지나 도진이 뒤꽁무니 쫓는 것도 지겨워.”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상우는 어금니를 꽉 물었다.
솔직히 캠프에서도 다소 장난스러운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가?
‘그럴 수밖에 없었어!’
자신은 루키 리거.
가을리그 그리고 마이너리그 최약체였다.
1년의 경험을 쌓기는 했지만, 다른 선수들에 비하면 새 발의 피였다.
첫 번째 캠프보다는 좋은 성적을 내고 있었고 가을리그에 참여한 선수들에 비해 부족하다고 생각지 않았다.
이것이 마음을 내려놓아서 나온 결과인 줄만 알았다.
‘전부 도진이 덕분이었을 뿐.’
그는 언제 어디서나 진지하게 임했고, 자신들의 투지를 끌어올린 장본인임을 이제야 깨달았던 것이었다.
8회. 6번 타자는 아웃이 됐지만, 7번 타자가 안타를 치고 나갔다.
대기 타석에 있던 상우는 더그아웃 입구에서 배트를 손에 쥔 그레그를 힐끗 쳐다봤다.
“다녀올게.”
“브라더. 잘해라.”
“어. 걱정하지 마.”
상우는 그레그 옆에 있는 도진도 힐끗 쳐다봤다.
그가 씨익 웃는다.
상우도 덩달아 미소를 띠었다.
‘김도진. 같이 가자.’
타석에 들어선 상우는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오늘 경기 기필코 이겨야만 한다.
도진과의 격차를 좁힌다는 것이 쉽지 않겠지.
아니. 솔직히 거기까진 바라지 않는다.
조금 뒤처져도 그와 동등한 위치에서 야구하고 싶었다.
‘이어 나가야만 한다.’
지금 필요한 건 최소 출루.
그 목적은 도진이 타석에 들어설 기회를 주기 위함이었다.
‘너는 나를 홈까지 불러줄 테니까.’
바뀐 투수의 초구가 바깥쪽에 시원하게 꽂힌다.
위력적인 투구에 등꼴이 서늘해졌음에도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이상우. 너 칠 수 있어. 대한민국의 4번 타자로 성장할 제목이라고!’
2구를 앞둔 상우의 안광이 번뜩였다.
지금까지는 도진과 다른 길을 걷고자 그의 조언을 강제로 무시했다.
그것이 차별점이라 생각했고 그 길이 메이저리그로 향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옳았다는 것을 안 지금. 더는 욕심을 부리고 싶지 않았다.
투수의 공은 몸쪽 패스트볼.
상우의 투지는 그가 내지른 배트에까지 전달됐다.
하지만 스윙에서는 한 치의 욕심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부드러웠다.
따-악!
타구는 유격수 키를 넘기는 장타 코스.
2루를 밟은 상우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러고는 그레그를 힐끗 쳐다봤다.
평소라면 걱정이 앞서겠지만, 오늘만큼은 아니었다.
타석에 들어선 그레그는 누구보다 진지했다.
‘출루해줘. 주인공이 대기 타석에서 기다리고 있어.’
그레그에게 속마음이 전달됐던 것일까.
그는 7구 끝 승부에서 볼넷을 얻었다.
“베이스 온 볼스.”
그레그는 1루를 밟고 상우를 힐끗 쳐다봤다.
눈이 마주친 둘은 동시에 양쪽 입꼬리를 올리더니 기대감 섞인 눈동자로 타석에 들어서는 타자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부탁한다.’
한편.
타석으로 향하던 도진은 1루와 2루 주자로 나간 상우와 그레그에게 눈길을 주었다.
‘이 자식들이.’
생각과는 별개로 속으로는 싱글벙글 웃었다.
‘이봐. 잘 할 수 있잖아? 하긴 부담이 되긴 했겠지.’
상우는 이제 미국에서 1년을 보냈다.
여전히 이 낯선 환경이 적응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레그는 그간 실패를 꽤 많이 했다.
그 때문에 잔뜩 위축되어 있었겠지.
어쨌거나 둘은 결승전에서 그 난관을 극복했고 경기의 끝을 맺을 기회를 자신에게 넘겨주었다.
‘이제 더 걱정할 필요는 없겠어.’
드디어 둘 다 스스로를 옭아매던 껍데기를 깨고 나온 느낌이었다.
그레그나 상우나 이제는 스스로 헤쳐나가야 할 차례.
이 이상의 참견은 오히려 방해가 될 수도 있다.
‘그럼 내가 할 수 있는 건 보답뿐이지.’
저들을 홈으로 불러들인다.
도진의 목표는 오로지 하나였다.
대기 타석을 힐끗 쳐다봤다.
입꼬리가 절로 치솟았다.
‘내가 투수였다면? 앤서니보다는 루키를 상대하는 게 정석이지.’
그러니 볼넷은 없다.
그리고 그 결과는 자신도 원치 않았다.
1사 만루.
사방에서는 제각각 다른 감정을 담은 시선이 느껴진다.
그 모든 시선은 부담감이라는 감정이 되어 전신을 짓누르려고 달려든다.
그런데도 도진은 한 치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눈동자는 희열이란 감정을 뿜어내고 있었다.
‘변화구. 변화구를 노려서 장타를 만든다.’
지금까지 욕심 그득한 플레이는 지향해야 한다. 입이 아프도록 말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럴만한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지금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면?
도대체 타자는 언제 욕심을 부려야 하는 것인가?
1사 만루. 병살타가 나오면 게임을 망칠 수도 있다.
뒤에는 앤서니라는 자신보다 걸출한 타자가 기다리고 있었지만, 양보할 생각은 일절 없었다.
도진은 초구부터 배트를 냈다.
그 결과.
떨어지는 공을 예상한 그의 어퍼 스윙은 투수의 체인지업을 후려쳤다.
천둥 벼락같은 소리가 그라운드를 가득 메웠다.
따-악!
2:5로 뒤지던 스코어가 6:5로 뒤바뀌었다.
* * *
도진이 만루 홈런을 치기 전.
관중석에서 그를 지켜보던 코비는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킴은 정말 모든 걸 보여줬어. 경기 승패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우리도 이제 인정할 수밖에 없겠지.’
핸드폰을 열어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단장님. 접니다.”
-코비. 무슨 일이지?
“내년 스프링 트레이닝 명단에 몇 명 더 추가해야 할 것 같습니다.”
-자네가 지금 애리조나에 있던가? 무슨 말인지 알 것 같군. 그래도 조금 이른 것 같기는 하네만.
하지만 그때.
공을 쪼개버리는 듯한 소리가 고막을 후려쳤다.
“절대 이르지 않습니다. 지금…….”
-나도 들었네. 담장을 넘길 법한 타구음이군. 설마 킴인가?
“네. 2:5에서 6:5로 뒤집는 만루홈런이네요.”
-허허. 올려달라고 무력시위를 해버리는군.
“어떡할까요?”
-이미 스스로 결정을 내리지 않았던가?
코비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제가 단장은 아니지 않습니까. 일단 브리핑부터 하겠습니다. 킴은 입단 후 로우 A를 폭격했고 이제는 애리조나 가을리그까지 우승했습니다. 투타 성적 모두 환상적입니다.”
반타작만 해줘도 성공이라고 봤던 유망주다.
그런데 반타작은커녕 가을리그마저 씹어먹었다.
성적만 좋았다면 모를까.
같은 에인절스 동료들과의 마찰에도 웃으면서 넘기는 훌륭한 선수였다.
이제 갓 프로에 뛰어든 선수가 말이다.
코비는 목소리에 확신을 담았다.
“킴은 에인절스에 부족한 위닝멘탈리티를 불어넣어 줄 겁니다.”
에인절스의 마지막 우승은 2002년.
문제는 저 마지막 우승이 첫 우승이었다.
우승을 모르는 에인절스 선수들에게 필요한 건 단 하나뿐.
‘위닝 멘탈리티를 갖춘 리더야.’
-스프링캠프에 올리도록 하지. 더블, 트리플 A 선수들과도 비견될만한 능력을 갖췄으니 메이저리거들 사이에서도 얼마만치 활약할지 궁금하군.
“그럼 플랜B를 가동하도록 하겠습니다.”
경기는 6:5로 데저트 독스가 승리했다.
우승.
고작 한 달 반짜리 캠프의 우승이라 거창한 시상식은 없었지만, 이만큼이나 값진 트로피는 없다며 코비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우리 에인절스의 1픽. 그가 자신의 가치를 증명한 최고의 무대였어.’
경기가 끝난 직후 코비는 경기장 입구에서 에인절스의 보물들을 기다렸다.
그리고 기다리던 얼굴들이 속속히 모습을 드러냈다.
제일 먼저 에녹이었다.
“에녹. 얘기 좀 할까요.”
“네. 말씀하시죠.”
“당신은 다음 시즌 메이저리그로 올라갈 겁니다. 만반의 준비를 하시길 바랍니다.”
평소 무표정한 에녹의 입꼬리가 치솟았다.
“잘 준비하겠습니다.”
“뭐 좀 물어봐도 될까요?”
“그럼요.”
“직관적으로 묻겠습니다. 킴. 어떤 것 같습니까?”
에녹은 입꼬리를 올렸다.
“굳이 제게 의견을 묻지 않아도 결론을 내리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도 제 의견을 물어보시니 대답은 해드리겠습니다. 그는 저와 같은 레벨에서 뛰어도 손색없는 것 같습니다. 물론.”
에녹은 체력적으로 검증되지 않아 걱정된다고 말하려다 말았다.
코비도 그가 무슨 말을 할지 알고 있었으므로 굳이 되묻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답변 감사합니다.”
그다음은 조르다인, 카심, 그리고 오베론이 모습을 내비쳤다.
“조르다인은 다음 시즌 트리플 A에서 시작하게 될 겁니다.”
조르다인은 승격에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카심과 오베론. 다시 한번 더블 A로 가시면 됩니다.”
둘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방출당해도 할 말 없었지만, 다시 한번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이번 애리조나 캠프에 참여한 영건 3인방이 서로의 어깨를 감싸며 모습을 드러냈다.
정확히는 도진을 사이에 두고 상우와 그레그가 그의 어깨에 손을 얹은 채로.
코비가 손을 번쩍 들어 올리자 도진이 자신을 발견했다.
“어? 팀장님?”
그 즉시 그레그와 상우의 시선이 따라오더니 도진의 어깨에서 손을 떼고 차렷 자세를 했다.
코비는 미소를 띠며 다가갔다.
“우승. 축하드립니다. 다들 정말 멋지게 잘해주셨습니다. 이번 가을리그는 에인절스의 독무대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도진이 대표로 대답했다.
“에인절스 소속으로서 최선을 다했을 뿐인데 결과가 좋아서 다행입니다.”
“그렇게 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쨌거나 좋은 소식을 들려드리고자 이렇게 왔습니다.”
도진의 표정은 평온했다.
코비는 어이없다는 듯이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어떤 내용인지 알고 계시나 봐요?”
도진은 고개를 저었다.
“음. 전혀 예상이 가지 않는데요?”
“후후. 킴 선수는 그라운드를 제외하면 표정이 정말 잘 읽힙니다. 맞습니다. 제 앞에 있는 세 분은 스프링 트레이닝에 초청될 것입니다.”
상우와 그레그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도진 역시 미소를 굳이 숨기지 않았다.
코비는 말을 덧붙였다.
“물론 캠프에 합류한다고 메이저리거가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알고 계시죠?”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참여하지 못하는 다른 유망주들보다는 더욱 기회가 생기는 셈이기도 하죠. 저는 에인절스의 미래인 여러분들이 스프링캠프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줘 본인들의 가치를 더욱 높이셨으면 좋겠습니다.”
스프링캠프. 혹은 스프링 트레이닝.
거기서는 무려 메이저리그 선수들과 함께 훈련하며 그들과 맞붙을 기회가 주어지는 것.
코비는 들떠 있는 셋의 기분을 조금 억누르고자 현실적인 얘기를 꺼내려고 입을 뻐끔거리려는 찰나.
도진이 그의 말을 가로챘다.
“이번 겨울에 더욱 발전한 모습으로 캠프에 참여하겠습니다.”
코비의 턱이 벌어졌다.
대개 유망주들이 처음 캠프에 참여할 때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잘 준비해서 참여하겠다고?
이 뜻이 무엇이겠는가?
‘어휴. 메이저리거들도 누를 기세네?’
그렇기에 미소를 숨길 수 없었다.
현실적으로 쉽지는 않겠지만, 루키에게서 보고 싶은 패기였으니까.
“좋습니다.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기쁜 소식을 전달한 코비는 이만 가보겠다며 등을 돌리자 도진은 그를 멈춰 세웠다.
“팀장님. 계약 옵션을 발동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