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seball genius who chews up America RAW novel - Chapter (160)
미국 씹어먹는 야구 천재-160화(160/400)
160화 스프링 트레이닝은 2개의 리그로 나뉜다.
하나는 Grape Fruit(포도).
다른 하나는 Cactus(선인장).
에인절스는 캑터스(선인장)에 속해있다.
캑터스 리그에 속한 구단은 전부 애리조나에서 훈련한다.
“이야. 여기가 홈 같아.”
공항 게이트를 통과한 상우는 기지개를 켜며 너스레를 떨었다.
도진은 피식 웃었다.
애리조나 가을리그도 결국 애리조나였으니까.
“그러게. 왠지 익숙하네.”
“아. 슬슬 긴장된다.”
투수조와 포수 조는 야수 조보다 4일에서 일주일 정도 먼저 소집된다.
구단마다 다르지만 에인절스는 일주일 먼저 소집했다.
플레이오프도 진출하지 못한 지 10년이 넘어 팀 분위기가 바닥을 마주하고 있었기에 분위기 쇄신을 위한 것이었다.
택시에 오른 도진은 목적지를 말했다.
“템피 디아블로 스타디움으로 부탁드릴게요.”
기사가 뒤를 돌아보더니 미소 지었다.
“에인절스 선수들이시군요.”
“그렇습니다.”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택시가 출발하자 상우는 도진의 옆구리를 툭 쳤다.
“긴장 안 되냐?”
“최선을 다해서 준비했잖아?”
정말 부끄럽지 않게 준비했다.
가을리그 때보다 기량이 상승했다고 확신했다.
물론 메이저리거들 사이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을지는 붙어봐야 알겠지만, 도진의 지금 몸 상태는 살아생전 최고였다.
“그래도 메이저리거들 만나잖아.”
“조금 떨리긴 해.”
도진은 슬며시 주먹을 말아쥐었다.
땀이 흥건했다.
솔직히 떨린다.
그래도 조엘 오스틴과 벨 조이스 같은 걸출한 선수들과도 대화를 몇 번 나눠봐서 그런가?
상우와는 다른 의미의 떨림이었다.
긴장보다는 기대.
메이저리거들과 신분부터 낮은 마이너리거지만 그들과 같이 훈련하고 맞붙을 기회가 주어지는 것 아니던가?
‘여기서 잘해야만 해.’
눈에 띌 수만 있다면 메이저리그 데뷔를 앞당길 수 있을 테니까.
택시에서 내리자 에인절스 관계자로 보이는 남성이 다가왔다.
“킴과 리! 어서 와요. 오는 길 불편하지는 않았습니까?”
“네. 괜찮았습니다.”
“두 선수가 1등으로 도착했네요. 라커로 안내해드릴까요?”
“부탁드리겠습니다.”
라커에 도착한 도진은 짐을 풀지 않았다.
무작정 라커부터 열었던 상우가 물었다.
“뭐 해?”
“마이크가 그랬어. 우리가 먼저 라커 정할 짬밥은 아니라고.”
“젠장. 루키 리그 때는 그런 거 없었는데. 그럼 나머지 선수들 도착할 때까지 기다려야 해?”
“어쩌겠냐? 억울하면 메이저리거 해야지.”
제일 막내로서 캠프에 먼저 도착하는 건 당연하다.
한국인이었으니까.
미국인들이야 시간 내로 오면 그만이지만, 동방예의지국 출신답게 먼저 와서 선수들에게 인사를 건네기 위함이었다.
‘미국인들도 신경 안 쓰는 것처럼 행동하지만, 속으로 좋아하긴 하거든.’
2시간 정도 지났을까.
선수들이 속속히 등장하기 시작했다.
도진은 표정만으로 선수를 구별했다.
‘잔뜩 긴장한 선수들은 죄다 마이너리거지.’
미국인들은 안면이 없어도 먼저 말을 걸어온다.
그런데 지금 도착한 선수들은 오들오들 떨며 눈치만 보고 있었다.
1시간쯤 더 지났을까.
민머리에 수염이 덥수룩 난 남성을 필두로 5명 정도의 인원이 함께 라커룸으로 들어왔다.
“이야! 핏덩이들 투성이네!”
에인절스 소속 메이저리거들이었다.
도진은 즉각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90도로 굽혔다.
“안녕하십니까! 도진 킴입니다.”
라커룸 안을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는 덤이었다.
* * *
세상 어디든 예의 바른 사람을 좋아한다.
메이저리거들이라고 다르지 않다.
도진이 90도로 인사하자 민머리 남성이 관심을 보였다.
“오? 씩씩한데?”
그러면서 도진에게 다가왔다.
‘와우. 위압감이 다르긴 하네.’
남성은 호세 가브리엘.
주전은 아니고 백업 포수였다.
그는 에인절스에서 오래 뛰었기 때문에 백업이라도 여유가 넘쳤다.
이제 나이가 39살이 되었으므로 황혼기지만 그를 건드릴 수 있는 선수는 없었다.
물론 구릿빛 피부에 거대한 근육을 갖춘 덩치도 한몫하겠지.
그가 되물었다.
“이름이 뭐라고?”
“도진 킴입니다.”
“두우진 킴?”
“그냥 킴이라고 불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소속은?”
그러자 금발의 백인 남성이 호세의 어깨에 손을 얹더니 고개를 살포시 저었다.
“호세. 내가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 좀 가지고 몇 번이나 말했잖아?”
“1년이라도 더 뛰려면 남 신경 쓸데가 아니야.”
“그래도 이 친구는 알아야지.”
“그러니까 누구냐고!”
“2036년 에인절스 1픽. 1,300만 달러의 사나이.”
호세의 눈이 번뜩였다.
“어, 얼마?”
“1,300만.”
“무슨 내 연봉이랑 차이도 안 나냐? 요즘 드래프트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Fuc**ng 불공평하네.”
“뭔 개소리야. 호세 당신 드래프트 때가 심했으면 더 심했지. 그때는 보장 금액으로 막 퍼줬을 때잖아. 아닌가? 더 전인가? 물론 이 친구가 일시불 계약금은 역대 최고액이긴 하지만.”
“난 못 받았는데?”
“잘 좀 하지 그랬어.”
백인 남성은 레이날도.
에인절스 3선발이었다.
“그럼 이 친구는 나와 비슷한 돈을 받을 만큼 잘하는 건가?”
“비슷하지는 않지. 어쨌거나 저 친구는 계약금이니까. 당신은 연봉이잖아?”
“그거나, 그거나. 어쨌거나 작년에 벌어들인 돈은 비슷하다는 뜻 아니야?”
“그건 그렇네.”
호세는 미간을 잔뜩 구기더니 도진의 얼굴에 본인의 얼굴을 잔뜩 들이밀었다.
“너 근데 몇 살이냐? 15살 정도로 보이는데?”
“18살입니다.”
“18살? 그래도 생각보다 나이가 좀 있네? 역시 아시아인들은 참 동안이라니까?”
도진은 두 눈을 끔뻑였다.
상식적으로 15살이 여기에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래도 준비된 멘트는 내뱉어야겠지.
“저…….”
도진이 머뭇거리자 호세는 눈초리를 가늘게 찢었다.
“나 궁금한 거 못 참는 성격이야.”
“당신도 상당히 어려 보이시는데요?”
도진은 호세를 알았지만, 당신이라는 칭호를 썼다.
이다음에 준비한 멘트 때문이었다.
“뭐? 몇 살처럼 보이는데.”
“트, 써티요.”
원래는 20대라고 말하려고 했다.
그런데 막상 내뱉으려니 염치가 극구 말리는 바람에 30살로 올렸다.
호세는 어금니까지 활짝 드러내며 미소 지었다.
“써티? 그냥 써티? 너! 보는 눈이 있구나? 으하하! 내가 좀 동안이긴 하지.”
레이날도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나지막한 말을 남기고 떠났다.
“저걸 믿네.”
호세는 그러거나 말거나 도진의 어깨를 톡톡 도닥였다.
“신경 쓰지 마. 질투해서 그런 거니까.”
“그렇습니까?”
도진은 끝까지 순진무구한 표정을 유지했다.
차후에 팀 동료가 될 수도 있는 선수들. 좋게 보여서 나쁠 건 없었다.
물론 거짓말을 곁들여 칭찬하는 건 성미에 맞지는 않았지만, 어쩌겠는가?
이 맹수가 넘치는 정글에서 살아남으려면 이 또한 하나의 방법이다.
“어이. 두우 뭐라고 했지?”
“킴이요.”
“그래 킴! 너 드래프트 몇 번째였냐?”
“전체 2픽이었습니다.”
“오? 1픽은 얼마 받았는데?”
“700만쯤이었습니다.”
“그럼 3픽은?”
“1,100만 인가 1,200만이었습니다.”
“사실상 네가 1위네?”
“운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끌. 호세는 혀를 찼다.
“겸손은. 하긴 아시아인들이 대부분 너 같으니까. 어쨌거나 마음에 들었다. 이리로 와라.”
호세는 도진을 헤드락 걸고 자신의 라커 근처로 데려갔다.
“넌 내 오른쪽 라커를 써라.”
“그래도 됩니까?”
“야. 너 내가 누군지 몰라?”
“30살 잘생긴 형이란 거 말고는 잘 모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으하하하! 그래! 이름 따위 뭐가 중요해? 안 그래?”
호세는 직접 라커까지 열어주었다.
“누가 라커 갖고 지랄하면 내 이름을 말해. 호세 가브리엘이다.”
“그럼 감사히 쓰겠습니다.”
도진은 피식 웃었다.
이 라커가 뭐라고.
그런데 야구뿐만이 아니라 다른 스포츠도 라커를 중요하게 여긴다.
그저 짐을 보관하는 자리인데 말이다.
물론 스포츠 세계에서는 자신의 입지를 드러내기엔 라커만큼 좋은 것도 없었다.
도진은 라커에 간단한 짐을 풀었다.
호세는 도진을 위아래로 훑었다.
“너 그런데 왜 이렇게 말랐냐? 투수야?”
“Two way player입니다.”
“투, 뭐?”
도진이 다시 입을 뻥긋하려는 순간 입구 쪽에서 대답이 대신 들려왔다.
“Two way or maybe three way.”
벨 조이스였다.
그가 말한 Two way player는 투수와 타자를 의미했다.
하지만 벨 조이스는 도진이 수비까지 뛰어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수비까지 포함해 Three way라고 말했던 것.
그는 도진의 옆 라커를 열었다.
“몸 많이 좋아졌구나.”
“안녕하세요.”
호세가 끼어들었다.
“뭐야? 벨. 이 아이를 알아?”
“작년 말쯤 구단에서 프로모션 했던 호텔 알지? 거기에서 만났어.”
“거기 5성급으로 비싸잖아? 이 코흘리개가 돈이 어딨. 아. 나만큼 벌었지. 그건 그렇고. 뭐? 투웨이? 그래. 그거까진 이해할게. 쓰리웨이는 뭔 개소리야?”
“차차 확인해 봐. 그리고 이 친구 좀 던져.”
“네가 그렇게 말할 정도라고?”
벨 조이스는 더는 대답하지 않았다.
호세는 익숙한지 개의치 않다는 표정으로 도진의 어깨에 손을 얹더니 나지막이 속삭였다.
“오늘 네 전담 포수는 나다. 다른 포수한테 공 던지면 죽여버릴 거다.”
* * *
에인절스 선수들은 준비 운동과 캐치볼을 끝내고 라이브 피칭을 앞두고 있었다.
도진은 제일 마지막 순번. 철조망에 등을 기댄 채 시야를 넓혔다.
‘음. 상우는 잘하고 있네.’
이곳에 초청받은 포지션 중 포수가 제일 바쁘다.
투수들의 공을 전부 받아줘야 했으니 말이다.
‘가만히 내버려 둬도 투수들은 막내인 상우를 알아서 찾겠지.’
그러니 지금 상우는 비록 정신이 없을지언정 금세 적응할 것이다.
그리고 다 좋은 경험이 되겠지.
‘그러니 나도 나만 생각한다.’
몇 번 언급했지만, 시범 경기에 돌입하기도 전에 퇴출 통보를 받을 수 있는 마이너리거들은 시한부다.
캠프에 합류 후 1주일 만에 이곳을 떠나야 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여유가 없는 지금, 남 신경 쓸 때는 아니었다.
도진은 눈을 부릅뜨고 투수들의 피칭을 눈여겨봤다.
아직 몸이 만들어지지 않은 선수들이기 때문에 구속은 빠르지 않았지만, 포수 미트에 꽂히는 투구 음은 예사롭지 않았다.
‘내 100마일 투구보다 더 위력적으로 들리는 것 같네.’
오늘은 예정된 훈련은 라이브 피칭이 전부다.
원래도 메이저리그 구단은 선수들을 자유롭게 내버려 두지만, 더욱이 첫날이었다.
피칭을 끝낸 선수들이 하나둘씩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오늘 뭐 먹을래?”
“글쎄. 고기 어때? 근처에 맛있는 레스토랑 하나 생겼다던데.”
“좋지. 슬슬 갈까?”
여유롭게 잡담을 나눌 수 있는 선수들은 메이저리거.
도진은 그들이 부럽기도 했다.
그리고 때마침 자신의 차례가 왔다.
“킴. 네 차례다.”
코치의 말에 도진은 모자를 고쳐 쓰고 마운드에 올랐다.
상우가 전담 포수였지만, 호세가 그의 앞에 섰다.
“어이. 아가. 비켜라.”
호세의 잡아먹을 듯한 눈빛에 상우는 숨소리마저 참고 자리를 비켜줬다.
퇴근을 앞둔 선수들은 이 이상 현상에 전부 시선이 쏠렸다.
도대체 왜 메이저리거가 루키의 공을 받겠다고 루키 포수의 자리를 뺏는 거지?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특히나 호세는 언제나 체력 핑계를 대며 먼저 퇴근하는 선수 중 한 명이었다.
도진은 짧고 강한 숨을 내뱉었다.
‘정말 내 공을 받을 생각이네.’
솔직히 농담인 줄 알았다.
죽여버린다는 다소 살벌하게 말했지만 진짜 포수 자리에 앉을지는 꿈에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 때문에 오히려 입꼬리가 치솟았다.
‘오히려 잘 됐어.’
현역 메이저리그 포수한테 평가받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니던가?
‘마이크 고맙다.’
어느 때보다 완벽한 몸 상태.
그 자신감을 바탕으로 도진은 와인드업했다.
왼쪽 발이 지면을 강하게 밟았다.
손을 떠난 포심 패스트볼은 섬광처럼 번뜩이며 날아갔다.
퍼어어억.
호세의 미트에 꽂히는 순간 천지를 뒤흔드는 굉음이 울려 퍼졌다.
그 즉시 좌측과 우측. 후방에서도 떨리는 목소리가 속속히 존재를 드러냈다.
“뭐, 뭐야?”
그리고 정면에서도.
“F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