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seball genius who chews up America RAW novel - Chapter (167)
미국 씹어먹는 야구 천재-167화(167/400)
교체된 호세가 마운드에 올랐다.
“답답해?”
느닷없는 질문에 도진은 눈을 번뜩 떴다.
“네?”
“답답하냐고.”
도진은 아랫입술을 살포시 깨물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호세는 미트로 입을 가렸다.
“쯧쯧. 착해빠져서는. 어이. 애송아. 경쟁이 뭔지 몰라?”
도진은 한숨을 내뱉었다.
“압니다.”
“얘기해봐. 경쟁이 뭐냐?”
도진은 어금니를 꽉 물었다.
“남을 밟고 올라가는 것입니다.”
“잘 알고 있네?”
“알고는 있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뭐. 에인절스 동료들이다. 이런 거야? 쟤넨 네 신경 *도 안 써. 왠지 알아?”
“잘 모르겠습니다.”
“넌 루키니까. 메이저리거에 갓 입성한 루키도 아닌 쌩 루키. 그러니 저 친구들은 널 그저 깔개라고밖에 생각 안 해.”
도진의 눈썹이 순간 꿈틀댔다.
머리는 백번 안다고 외치고 있었지만, 경험이 없는 자신은 프로로서의 사고방식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
하지만 호세의 말마따나 자신은 루키이자 깔개다.
그러니 조금 더 질문한다고 부끄러움을 느낄 필요는 없겠지.
“그럼 전 어떻게 해야 합니까?”
“넌 어쩌고 싶은데?”
“제가 더 나은 선수가 되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호세의 눈동자가 순간 빛을 띠었다.
‘이봐라. 이봐라.’
왕의 자질은 아무나 가지고 태어나는 게 아닌가 보다. 호세는 그렇게 생각했다.
일반적인 인간이라면 지금 그가 마주한 처지에서 상대를 누를 방법을 찾았을 것이다.
지금까지 겪어본 다른 유망주들은 전부 그랬다.
그런데 이 아이는 자신이 더 나은 사람이 되겠다고 한다.
호세는 허탈한 웃음을 더는 숨기지 않겠다며 입을 가린 미트를 내렸다.
“원팀. 우승하는 팀만이 갖춘 이점이다. 우리 에인절스에겐 없지. 넌 에인절스가 원팀이 되길 원하잖아?”
“맞습니다.”
“나도 에인절스가 원팀이 되었으면 좋겠다. 동료들이 하나가 되어 더 높은 곳을 바라보면 좋겠다고. 하지만 아직 이르다 애송아. 왜인지 알아? 메이저리거 동료는 메이저리거뿐이니까. 알겠냐?”
도진은 순간 뒤통수에 큰 충격이 왔다.
하지만 이내 솟아오르겠다는 미소를 감추고자 아랫입술을 더욱 강하게 물었다.
‘메이저리거의 동료는 메이저리거뿐이다. 맞는 말이야.’
루키 신분인 자신이 에인절스 소속일까?
아니. 에인절스 소속은 40인 로스터에 든 선수들만을 가리켰다.
상우, 그레그, 더 나아가 1라운더인 자신도 아직 에인절스 소속이 아니다.
그러니 경쟁자들마저 동료라고 인식하려면 저들과의 신분이 동등해야만 한다.
도진은 옭아맨 사슬을 끊어내며 정답에 도달했다.
모순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저들을 하나로 통제하려면 먼저 깨부숴야 한다.
호세는 도진의 눈을 멍하니 들여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정답을 알게 된 모양이군. 경쟁자들은 네 편의를 봐주지 않는다. 그러니 너 역시도 놈들의 편의를 봐줄 필요 없겠지. 그리고 에인절스 포지션 경쟁자들 말고도 네가 당장 상대할 놈들도 경쟁자들이다.”
“조언 감사합니다. 도움이 됐습니다.”
호세는 턱을 치켜세웠다.
“고맙냐? 그럼 내 말 들어라.”
“듣겠습니다.”
“패스트볼만 던져라. 사인 내기도 귀찮다.”
도진은 두 눈을 끔뻑였다.
방금 상대하는 선수들도 경쟁자라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 패스트볼만 던지라고?
무엇보다……
도진은 상대측 더그아웃을 힐끗 쳐다봤다.
“상대해야 하는 선수들이 메이저리건데요?”
호세는 눈초리를 가늘게 찢은 채 입술을 빼쭉 내밀어 어쩌라는 표정을 지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사인은 없다. 요구한 공이 오지 않는 한 포구조차 하지 않을 거다.”
그 즉시 호세는 등을 돌렸다.
그의 등을 멍하니 바라보던 도진은 다소 난감했다.
시범경기다. 자신은 목숨을 내걸고 마운드에 오른 것이다.
하지만 메이저리거인 포수가 패스트볼만 던지길 원하며 아쉽게도 루키인 자신에게는 선택지는 없다.
‘아쉽게도 지금의 난 저 말을 거역할 입지조차 되지 않아.’
그러니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봐야겠지.
시범경기 첫 마운드 등판에서부터 페널티를 잔뜩 껴안은 도진은 오히려 투쟁심에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 * *
[킴. 마운드에 오릅니다.] [시범경기 성적이…… 없네요. 첫 등판입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글쎄요. 상대해야 하는 선수들을 보자면 어려워 보이는 것은 확실합니다. 3연속 메이저리거니까요. 그나마 희소식이라면 호세가 마스크를 썼다는 점이겠네요.] [그렇죠. 호세는 수비가 굉장히 뛰어난 선수죠. 리드 역시 남다르지 않습니까?] [킴의 스카우팅 리포트를 보면 70 스케일로 어마어마한 패스트볼을 던집니다. 18세에 70 스케일이라니. 보면서도 여전히 믿기지 않습니다.] [하지만 상대는 메이저리거. 80 스케일의 패스트볼도 곧잘 쳐내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더군다나 킴은 구단과 계약한 지 아직 반년밖에 안 된 루키죠. 기대는 선수에게 큰 부담이 될 수도 있습니다.]도진이 마운드에 오르자 SNS도 활활 탔다.
-두구두구! 에인절스 1픽이 드디어 마운드에 올랐어!
└해설 말 못 들었냐? 기대하지 말라고!
└인정. 솔직히 그가 아직 메이저리거들과 붙을 만한 기량은 아니지.
└왜? 공은 더럽게 빠르잖아?
└작대기면 105마일도 우습게 쳐내는 게 메이저리그다.
└맞아. 타이론이 올린 영상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그의 패스트볼은 확실히 위력적이지. 하지만 어디까지나 아직 메이저리그급은 아니야.
└투심도 던지잖아?
└스카우팅 리포트 안 봄? 싱커성 공은 50점으로 킴의 투심 가치는 고작 평균 수준이지.
└이렇게 보니 이번 이닝을 넘기는 것 자체가 힘들겠는데?
└그렇지. 그러니 큰 부담을 주지 말라는 거야. 어디까지나 발전 가능성이 있는 선수니까.
한편.
이번 이닝에 타석에 들어서는 로키스 타자들도 마운드에 오른 도진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누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고 누구는 한숨을 쉬었다.
다른 하나는 기가 찬다며 혀를 찼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로키스의 하위타선을 맡는 선수들이지만 메이저리거였으니까.
“나 참. 어이가 없네. 풋내기를 상대하라고?”
“이건 선을 강하게 넘었지. 우리도 기량 점검 좀 하게 해줘야 할 거 아니냐.”
“에인절스도 확실히 갈 데까지 갔어. 인간적으로 쌩 루키를 스프링 트레이닝에 올리는 구단이 어딨어?”
백번 양보해서 참여는 시킬 수 있다.
그래도 경험만 맛보게 해주고 1주 차에 탈락시켰어야지.
셋은 호세와 대화를 나누는 도진의 표정이 바뀌자 입을 모았다.
“건방지네. 우리랑 같은 레벨이라고 으스대는 건 아닐지 모르겠어.”
“자신감 넘치는 표정 봐라. 이미 같은 레벨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마음에 안 들어. 손 좀 봐줘야 속이 후련해지겠는걸. 어때 제군들. 나와 함께 하겠나?”
셋은 키득키득 웃었다.
“애 상대라. 오히려 재밌을지도? 이왕 할 거면 제대로 하던가. 저 아이 그래도 꽤 빠른 공을 던지잖아.”
“콜! 빠른 공을 던져봤자지. 핏덩어리 작대기 직구에 헛스윙이라도 할까.”
“아무리 우리 몸이 100% 올라오지 않았지만, 저 핏덩이에게 구위에서 밀리기라도 할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듯싶다.”
“그럼, 우리 중에서 출루 못 하는 놈이 오늘 저녁 내기하는 건 어때?”
“쪽팔리는 것도 모자라 돈도 내야 한다? 나쁘지 않은데?”
“출루로 괜찮겠어? 적어도 장타는 뽑아야 성에 차지 않겠냐 이 말이지.”
“성적순으로 가. 대신 삼진이나 아웃당하는 놈은 일주일 내내 저녁 사는 페널티를 더 물던가.”
“내기 성립이다.”
이닝의 선두 타자는 여유를 가득 머금고 타석에 들어섰다.
그러고는 비웃음을 일 발 장전 후 도진을 힐끗 쳐다봤다.
‘어이 루키. 수준 차이를 보여주마.’
초구가 손을 떠났다.
타자는 그 즉시 눈을 번뜩였다.
‘왔구나. 작대기.’
부웅.
번개처럼 번쩍이는 강하고 빠른 스윙이 나왔다.
하지만 들려와야 할 둔탁한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퍼억.
“스트라이크!”
타자는 팽창한 동공으로 도진을 흘겼다.
‘뭐, 뭐야?’
작대기인 줄만 알았다.
하지만 직접 타석에서 그의 패스트볼을 마주하니 일반적인 포심 패스트볼이 아니었다.
‘라, 라이징 패스트볼이라니.’
라이징 패스트볼은 실질적으로 공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런데 왜 저런 명칭이 붙는 것인가.
회전이 많고 회전 방향이 거의 수직에 가까워 타자는 공이 떠오른다고 느낀다.
마그누스 효과. 공이 떨어지는 중력을 방해해서 나타나는 것이다.
쉽게 말해 강한 회전으로 중력의 영향을 덜 받기 때문에 가라앉질 않는다.
하지만 숱한 경험이 있는 타자는 당황하지 않았다.
‘흐음. 접수 완료.’
라이징패스트볼은 히팅 포인트를 더 높게 가져가면 그만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는 2구째도 같은 공에 헛스윙했다.
더욱이 제 3자가 봤을 때는 공과 전혀 상관없는 곳에 헛스윙한 것처럼 보였다.
“스트라이크!”
타자는 공의 궤적을 끝까지 보고 칠 수 없다.
그저 지금까지의 경험과 뇌가 전달해주는 신호로 예상 궤적을 그리며 스윙한다.
그러므로 이번 헛스윙으로 명확히 깨닫게 되었다.
‘수준급에 회전수를 갖췄구나.’
그 수준급의 기준이란 당연 메이저리그였다.
저 아이의 포심 패스트볼은 메이저리그 평균을 훨씬 웃도는 회전수를 갖췄다.
그런데도 0-2 카운트에 몰린 타자는 여전히 당황하지 않았다.
이번만큼은 같은 공이 온다고 한들 기필코 맞출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3구.
공은 손을 떠났다.
이번에도 패스트볼이었다.
더욱이 투구는 한복판으로 향했다.
타자의 스윙이 나왔다.
하지만 그의 스윙은 애꿎은 바람만 가를 뿐.
퍼억.
“스트라이크 아웃!”
타자는 입이 서서히 벌어지더니 허탈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3구는 포심 패스트볼이 아니었다.
한복판으로 향하던 공이 우측으로 잔뜩 꺾여 나가는 투심.
아니. 이 공은 일반적인 투심이라고 부르기 어려웠다.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타석에서 물러섰다.
대기 타석에서 이를 지켜보던 후속 타자는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다.
“뭐, 뭐야?”
왜 헛스윙을 했냐고 묻는 것이 아니었다.
대기 타석에서 지켜본 결과 도진의 투구는 애송이 수준이 아니었으니 어떻게 대응해야 하냐고 묻는 것이었다.
앞선 타자에게서 힌트를 얻은 다음 타자가 타석에 들어섰지만.
“스트라이크 아웃!”
결과는 똑같았다.
* * *
호세는 2개의 삼진 이후 혀를 찼다.
“끌끌.”
연속 삼진으로 물러서는 메이저리거들의 표정이 너무나도 볼만했기 때문이다.
‘무시했다가 역으로 당한 꼴이 어때?’
호세는 베테랑이다.
타석에 들어서는 타자의 표정만으로 어떤 생각을 하는지 대충 유추할 수 있다.
저들은 도진이 어리다는 이유로 무시한 것도 모자라 희희낙락거리면서 내기까지 했을 수도 있다.
그러니 이 얼마나 쌤통이던가.
‘물론. 나 역시도 깜짝 놀라긴 했지.’
첫 등판으로 떨릴 법도 한데 도진은 아주 잘 해내고 있었으니까.
다음 타자가 타석에 들어섰다.
호세는 사인을 내지는 않았지만, 도진에게 로케이션만큼은 지정해줬다.
그곳을 향해 어떤 공을 던질지는 오로지 도진의 몫이었다.
앞서 도진은 높은 쪽 공을 요구하면 라이징 패스트볼을, 몸쪽과 바깥쪽으로는 투심을 던졌다.
2아웃에서 마지막 타자에게도 두 번의 라이징 패스트볼로 카운트를 잡았다.
“스트라이크!”
“스트라이크!”
벌써 이 공만 6구를 던졌지만, 상대는 건들지도 못했다.
하지만 놀라운 건 따로 있었다.
3구.
공은 도진의 손을 떠났다.
이번에도 한복판으로 향하는 역회전을 잔뜩 품은 공은 스트라이크 존을 외면하겠다며 역으로 크게 휘었다.
“스트라이크 아웃!”
호세는 공이 미트에 꽂히자 미간을 잔뜩 구기더니 나지막이 읊조렸다.
“어휴. 이 100마일의 하드 싱커는 벨 조이스 놈의 전성기 시절과 정말 닮았네.”
하드 싱커.
100마일 이상의 투심 혹은 싱킹 패스트볼을 의미하는 공으로 마구와 다름없었다.
‘저 애송이가 이 공을 처음 언제 던졌더라?’
투수와 포수 조가 모인 캠프의 첫날.
라이브 피칭의 마지막을 장식한 공이었다.
무엇보다 데이터상 그는 하드 싱커를 던지지 않았으며 첫날은 이렇게까지 완벽하지도 않았다.
호세는 피식 웃었다.
‘역시. 넌 자격이 있다.’
왕관의 무게를 견딜 자격이.
1이닝 무실점. 세 타자 연속 3구 삼진.
도진은 시범경기 첫 마운드 등판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