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seball genius who chews up America RAW novel - Chapter (170)
미국 씹어먹는 야구 천재-170화(170/400)
포수가 교체됐다.
도진은 마운드를 방문한 상우를 향해 피식 웃었다.
상우는 미간을 구겼다.
“뭘 쪼개. 웃음이 나와? 우리 X됐어! 알아? 우리 목숨줄은 지금 실보다 가늘다고!”
“괜찮냐?”
“뭐가.”
“시원하게 지르던데.”
“제, 젠장. 들렸냐?”
도진은 상대편 더그아웃을 향해 미세하게 턱짓했다.
“저기까지 들렸을걸?”
“하. 더럽게 쪽팔리네.”
도진은 그의 어깨를 도닥였다.
“어쨌거나 지금 당장은 중요하지 않잖아?”
위기에서 제일 믿을만한 친구가 짐을 덜어주러 나왔으니까.
상우가 물었다.
“어떡할래?”
“어떻게 해야 하냐?”
상우의 광대가 씰룩댔다.
“타자와의 승부에 집중해라. 주자는 내가 잡는다.”
“알았어.”
“그게 끝이야?”
“뭔 뜻이냐?”
“정말 그게 끝이냐고. 의심 안 해?”
“무슨 의심.”
“지금 1루에 있는 주자는 메이저리거야. 발도 빠르고.”
“그런데?”
“더럽게 태평하네. 개 같은 자식.”
네가 마스크를 써서 태평한 거다.
도진은 생각을 겉으로 내뱉지 않았다.
솔직히 조금 전까지만 해도 등골을 타고 흐르는 식은땀이 유니폼을 흠뻑 적셨지만, 이제는 거짓말처럼 멎었다.
‘지금 당장은 몸이 완벽하게 올라오지 않은 호세보다 상우가 더 나을 수도 있어.’
상우는 도진의 어깨를 툭 쳤다.
“사인은 내가 낸다?”
“어. 믿는다.”
“그래. 수고해라.”
상우는 마운드에서 내려갔다.
홀로 남은 도진은 고개를 살짝 숙인 채 모자를 다시 한번 매만졌다.
솟아오르겠다는 입꼬리를 감추기 위함이었다.
‘상우야. 이것도 꿈이 이뤄진 거 아니냐?’
상우와 어렸을 적 꿈을 꾸었다.
메이저리그에서 배터리를 이뤄보자고.
그리고 잠깐이나마 그 꿈을 이루고 있었다.
도진의 눈빛이 순간 번득 뜨였다.
‘절대 질 수 없지.’
한국인 배터리가 메이저리그에서 첫선을 보이는 자리였으니까.
* * *
막상 투구를 앞둔 도진은 압박감이 전신을 짓눌렀다.
좌측에선 발 빠른 주자가 자신을 뭉개버리겠다며 여유로운 눈빛을 강렬하게 보내고 있다.
타석에 들어선 강타자는 어린 배터리가 그저 우스운지 배터박스에서 과하게 배트를 돌려대고 있다.
친구와 함께 이 난관을 타개해나가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오늘의 결과로 캠프에서 탈락할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아쉽지만 그것이 루키의 숙명이지.’
그래서일까.
후우.
입 틈을 비집고 한숨이 절로 뿜어져 나왔다.
흐리다. 미트가 2개로 보일 정도로 시야가 온전치 않다.
손바닥도 흥건하다.
유니폼에 손바닥을 문댔다.
마음을 추스르고자 글러브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아주 미세하게 나아진 기분이다.
‘완벽히 막아내고 싶다.’
아니. 막아내야만 연명할 수 있다.
안다. 솔직히 몇몇 장점을 제외하면 지금 당장 자신은 약점투성이란 것을.
그래도 잘 해내고 싶다.
더 높은 곳을 올라가기 위해 이 난관을 기필코 해결해내고 싶었다.
욕심을 부린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
그런데 원래 욕심 정도는 다들 부리잖아?
‘그게 잘못된 것도 아니고.’
선수는 주제를 알아야 롱런 할 수 있다.
고작 18세 배터리가 굵직한 메이저리거들을 상대로 완벽한 결과를 원한다고?
‘주제를 아는 것에 어긋나지.’
그래도 초심자의 행운처럼 운이 깃들 수도 있잖아?
어디선가 답변이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실력이 뒷받침되어야 운도 따르는 법이라고.
“후우.”
상우에게서 사인이 나왔다.
도진은 세트포지션에 돌입했다.
힘차게 들어 올린 발이 지면을 강하게 짓눌렀다.
라이징 패스트볼은 손을 떠나 타자의 몸쪽을 파고들었다.
동시에 주자도 뛰었다.
타자의 배트도 나왔다.
따-악!
완벽하게 당겨친 타구는 경쾌한 타구음을 뿜어내며 좌익수 방면으로 쭉쭉 뻗어나갔다.
타구는 폴대를 살짝 벗어났다.
“파울!”
카운트는 0-1.
하지만 타자의 스윙은 간담을 서늘하게 할 만큼 완벽했다.
‘역시. 쉽지 않네.’
도진은 입술을 씹었다.
아니. 운이 좋았다.
타자는 18세 배터리의 머릿속을 완벽하게 읽고 스윙했지만, 타이밍이 빨랐을 뿐이니까.
그리고 메이저리거라면.
같은 계열의 구종을 던진다면 완벽하게 맞출 것이다.
상우는 바깥쪽으로 걸터앉았지만, 초구와 같은 패스트볼을 원하고 있다.
‘그거 맞냐. 친구야.’
정면 승부가 두렵다. 떨어지는 공을 던지고 싶다.
그런데 주자가 언제든 뛸 수 있으므로 상우의 사인이 잘못되진 않았다.
‘그래. 주자를 스코어링 포지션에 보내는 것보단 낫겠지.’
순간 뇌리가 번뜩였다.
안 그래도 계속해서 도망가는 피칭에 답답함을 느끼지 않았던가?
한 번 도망가면 평생을 도망쳐야 할 수도 있는 이 세계에서 더는 약점을 늘리고 싶지 않았다.
‘맞더라도 시원하게 처맞고 내려간다.’
그리고 내년이든 내후년이든 다시 강해져서 오면 그만이다.
이렇게 생각하자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그러고는 상우가 요구하는 바깥쪽을 향해 공을 던졌다.
역회전이 잔뜩 걸린 공은 스트라이크 존 안으로 휘어져 들어왔다.
부웅.
타자의 스윙이 나왔다.
따-악!
완벽하게 밀어친 타구는 이번에도 라인을 벗어났다.
도진의 입꼬리가 꿈틀댔다.
‘이번에도 운이 좋았네.’
카운트는 0-2.
이어지는 상우의 사인에 도진은 허! 하고 침음했다.
‘체인지업은 갖다 버리는 거냐?’
하긴. 도진의 입꼬리가 치솟았다.
벌써 두 번의 운이 작용해 카운트는 0-2.
도진은 투구에 돌입하기 전 곁눈질로 주자를 힐끗 쳐다봤다.
뛴다. 이번에도 100% 뛸 것이다.
하지만 상관없다.
‘벌써 운이 두 번이나 따랐잖아?’
운도 실력이 뒷받침되어야 따르는 것이라고?
그렇다면 이번에도 운은 따를 것이다.
역회전이 잔뜩 걸린 공은 도진의 손을 떠나 한복판으로 향했다.
주자는 뛰었고, 타자는 배트를 휘둘렀지만.
역회전을 잔뜩 품고 한복판으로 향하던 투구는 홈플레이트 부근에서 꿈틀대기 시작하더니 우측 아래로 강하게 휘어져 타자의 배트를 외면했다.
퍼억.
“스트라이크 아웃!”
그 즉시 상우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그의 시선은 2루로 향하는 주자에게 고정됐다.
‘어이. 너도 내가 만만해? 대놓고 뛰어도 될 만큼 꿔다 놓은 보릿자루 같냐고!’
굽혀진 무릎이 곱게 펴졌다.
미트에서 공을 꺼낸 상우는 2루를 향해 힘차게 공을 뿌렸다.
쒜에에엑.
중력을 무시하는 듯한 그의 송구는 정확히 유격수 글러브에 꽂혔고.
유격수의 태그가 주자의 유니폼을 스치자 심판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아웃!”
병살타.
그 기세에 힘입어 도진과 상우는 나머지 한 타자마저 아웃카운트를 잡아내며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 * *
해설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와우! 제가 도대체 뭘 본 겁니까?] [18세 한국인 배터리가 무실점으로 이닝을 마무리합니다. 이렇게나 주요 장면이 기다려지는 건 오랜만입니다.]해설의 말마따나 때마침 삼진을 잡아냄과 동시에 도루를 저지한 장면이 나왔다.
제일 먼저 도진의 투구 모션이었다.
[투수의 퀵모션이 정확히 1.2초가 걸렸습니다.] [초구와 2구째는 1.3초가 나왔거든요? 0.1초나 단축했어요.] [그 0.1초로 결과가 바뀌는 게 야구가 아닙니까?] [그렇죠. 하지만 이번만큼은 킴이 주인공이 아닙니다.]다음은 상우의 팝 타임 장면이 나왔다.
뒤늦게 숫자가 표기되자 해설들은 헉 소리가 절로 튀어나왔다.
[1.79초라뇨.] [잘못 측정된 건 아닐까 싶을 정도의 기록입니다.] [1.9초대는 메이저리그에서도 수준급이며 1.8초대는 최정상급. 그리고 1.7초대는 신계의 팝타임이라고 불립니다. 저 18세 한국인 포수는 신계에 도달해버렸습니다!] [리는 지금까지 두 번의 대수비로 나왔었죠. 그때 두 번의 도루 저지에서의 팝 타임은 1.99초와 2초였습니다. 루키로서 굉장히 빠른 팝타임이지만, 0.1초가 그리 쉽게 줄어드는 것이 아니거든요?] [하하. 위기에 몰려서 괴력이라도 발휘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만 이게 중요한가요?]이미 신계를 한 번 가봤다는 건 언젠가 그는 평생 신계에 머무를 선수라는 것을.
[동의합니다. 최종 결과를 보시죠. 주자인 에르난데즈는 한 시즌 30도루도 가능한 선수 아닙니까? 그런데 투수와 포수의 딜리버리와 팝 타임이 합쳐서 2.99초가 나왔습니다.] [3.25초 미만은 상대 도루를 상당 부분 저지합니다. 도루 저지 확률이 40% 가까이 되기 때문이죠. 그러니 2.99초는 지금 당장 정확한 측정은 어렵지만, 40% 이상이 된다는 의미겠죠.]벨과 레이날도 사이에 앉아 있던 호세는 팔짱을 낀 채 호쾌하게 웃었다.
“크하하하! 봤어? 봤냐고!”
벨은 피식 웃었다.
“멋진 장면이었다.”
호세는 우측으로 고개를 틀었다.
“어이 레이날도! 봤냐고 묻잖아!”
레이날도는 미간을 찌푸렸다.
“봤다고 이 노친네야! 너보다 내 시력이 더 좋아.”
“크하하하! 정말 말도 안 되는 놈들이라니까? 이젠 진짜로 목 닦고 기다려야겠어?”
“뭔 개소리야! 노친네 당신 목이나 좀 닦아. 킴은 불펜이잖아.”
벨과 레이날도는 선발 투수.
애당초 도진의 경쟁 상대는 아니었다.
대신 상우는 포수. 호세의 경쟁자였다.
“으하하! 뭐 어때? 저런 미친 팝 타임을 보여주는데 내 자리쯤은 언제나 내어줄 수 있지!”
“그건 그래. 정말 말도 안 되는 팝 타임이긴 했어. 내가 마운드에 설 때 저런 포수가 있으면 듬직할 것 같네. 그런데 그렇게 되면 호세 당신이 마이너리그로 내려가야 하는데? 생각해보니 나쁘지 않을지도?”
호세는 입술을 빼쭉 내밀었다.
“그건 좀 그런데.”
벨이 거들었다.
“후배를 위해 자리를 내주겠다니. 은퇴식은 거창하게 치러주마.”
“닥쳐! 누가 은퇴한대?”
티격태격하는 사이 도진과 상우가 더그아웃으로 들어왔다.
호세는 도진과 상우를 목을 양팔로 감았다.
“잘했다! 잘했다고 애송이들아!”
더그아웃을 지키던 선수들도 동의한다는 듯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만큼 완벽한 호흡을 선보였으니 말이다.
도진과 상우는 호세의 힘에 못 이겨 간신히 대답했다.
“가, 감사합니다.”
“어쨌거나 오늘 면담은 꽤 볼만하겠어?”
그러자 그때.
제리 감독은 호세의 뒤통수를 툭 쳤다.
“면담은 네가 하냐?”
호세는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감독님 일을 왜 저한테 떠넘기세요?”
“시끄럽고 경기 끝나면 사무실에 가 있을 테니까 선수들 보내라.”
“일단 알겠습니다.”
대신 그 전에.
자신은 따로 할 일이 있었다.
호세의 한쪽 입꼬리가 치솟았지만, 분노가 담겨 있었다.
* * *
2주 차가 끝이 났다.
마이너리거들은 다시 한번 감독과의 면담이 예정되어 있었다.
대신 메이저리거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퇴근하는 게 정석이며, 호세는 그 메이저리거들 사이에서도 제일 일찍 퇴근하지만, 오늘만큼은 달랐다.
“어이.”
더그아웃 맨 앞줄 의자에 앉은 호세의 입 틈을 비집고 오금을 지리게 만드는 서늘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그의 앞에 서게 된 두 선수. 제이콥과 다니엘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나지막이 읊조렸다.
“부르셨습니까.”
“내가 왜 불렀는지는 알지?”
두 선수에게서 대답이 들려오지 않자 호세는 더욱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대답 빨리 안 하냐?”
둘은 입을 맞췄다.
“자, 잘 모르겠습니다.”
“모른다고?”
“네, 네.”
호세가 자리를 벌떡 일어났다.
둘은 순식간에 움츠러들며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정말 모른다고?”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호세의 눈썹이 지렁이처럼 꿈틀댔다.
“모른다는 게 말이 돼?”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주변을 가득 메웠다.
경기장이 가득 차 있었다면 상대측 더그아웃과 외야 관중석까지 목소리가 전달됐을 것이다.
둘은 고개를 살짝 치켜세워 무고하다는 감정을 눈동자에 담았다.
호세의 광대가 꿈틀댔다.
“병신같은 새끼들. 고작 루키 상대로 더러운 짓을 해? 메이저리거가 우습나 보지? 그딴 엿 같은 짓을 하면서 밟을 수 있는 자리로 보였나 봐?”
청천벽력의 소식에 둘의 표정이 일순 일그러졌다.
하지만 지금 할 수 있는 건 변명뿐.
“그게 도대체 무슨 말씀이십니까.”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습니다.”
호세는 흥! 코웃음을 쳤다.
“내가 모를 줄 알아? 아니면 내가 병신처럼 보이나 봐? 네놈들의 같잖은 계획을 모를 것 같아?”
호세는 흡! 심호흡을 빨아들이며 분노를 삭였다.
자칫 잘못했다간 주먹이 나갈뻔했으니 말이다.
“루키 신분이라 그저 만만했지? X발. 차라리 메이저리거가 되고 싶었다면 우리 메이저리거들을 상대로 그 짓거리를 했어야지? 이제 입단한 선수를 견제해? 니들이 그러고도 사람이야?”
다니엘과 제이콥의 동공이 파르르 떨렸다.
완전 범죄가 발각됐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둘은 머리를 조아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죄송합니다. 정말 잘못했습니다.”
“자, 잠깐 눈이 멀어 잘못된 행동을 했습니다. 두 번 다시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호세는 눈을 질끈 감고 의자에 털썩 주저앉더니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에인절스에는 네놈들 같은 쓰레기들은 필요 없다. 네 두 놈들이 다시 한번 에인절스 유니폼을 입은 모습이 내 눈에 띄기라도 한다면. 난 오늘 일어난 일을 위에다 알릴 것이다.”
여기서 위라면 구단이 아니었다.
이 소식을 구단에 전달한들 기껏해야 징계 정도 내려지겠지.
이들은 트리플 A 소속으로서 아까운 인재였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호세가 말한 위는 에인절스 소속 메이저리거였다.
메이저리거들은 당당한 경쟁을 통해 전부 그 자리를 쟁취했다.
이런 비겁한 짓을 용납해줄 리 없었다.
그러므로 야구를 더 하겠다면 다른 팀으로 옮기는 것밖에 없다.
에인절스에서만큼은 이 둘의 자리는 없을 테니까.
이것이야말로 호세의 마지막 자비였다.
그만큼 메이저리거가 되지 못한 마이너리거들의 고충을 직접 겪어봤기에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물론 구단이 이를 허락할지는 모르겠지만.’
알 바는 아니었다.
정말 야구가 하고 싶다면 구단에 오늘 일어난 사실을 직접 알려 이적이나 방출을 요청해야겠지.
본인들의 잘못을 직접 시인한다? 구단도 다른 누군가가 이 사실을 알고 있다는 걸 모를 리가 없었다.
결국 둘은 무릎까지 꿇고 울며불며 사정했지만, 호세는 그들을 외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