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seball genius who chews up America RAW novel - Chapter (172)
미국 씹어먹는 야구 천재-172화(172/400)
도진은 3주 차 두 번째 경기.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의 경기에서 9번 3루수로 배정됐다.
1회 말 2아웃.
따-악!
타자가 잡아당긴 타구는 라인 안쪽을 파고드는 3루 강습.
도진은 백핸드로 타구를 완벽히 받아내더니 1루로 던져 아웃 카운트를 올렸다.
군더더기 없는 수비와 정확한 송구를 선보이자 제리 감독의 고개가 절로 끄덕였다.
‘확실히 수비만 놓고 보면 당장 에인절스 3루 자리를 맡아도 문제 될 것이 없겠어.’
어떤 분야도 그렇겠지만, 수비도 단언컨대 재능의 영역이다.
수준급의 반응 속도와 어깨를 갖춘 도진은 3루가 참 잘 어울렸다.
‘물론 넓은 수비 범위 때문에 유격수가 더 잘 어울리긴 하는데.’
에인절스는 켄이라는 메이저리거 유격수를 보유하고 있었으니 팀 자체로 봐도 도진이 비어있는 3루를 맡는 게 낫다.
‘타격은 조금 아쉽지.’
수비만 잘해서는 주전을 맡을 수 없다.
타격에서 도진의 약점은 바로 힘이 부족하다는 것.
당연히 18세 선수가 메이저리거들을 상대로 힘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6ft 5에 220파운드(2m, 100kg)라도 18세면 메이저리거들의 힘을 이길 수는 없는 것은 매한가지지만.’
그래도 모두가 장타를 칠 필요는 없다.
눈과 발이 좋아 투수를 괴롭힐 수 있는 재능도 팀에는 꼭 필요하다.
장타는 몸이 성장한다면 자연스레 기대해볼 수 있겠지.
‘근데 그건 성장하고 나서의 이야기고.’
결국 중요한 건 코앞으로 다가온 시즌이다.
에인절스의 3루 자리를 노리는 현직 메이저리거들에 비하면 도진이 타격 면에서 제일 부족한 것 또한 사실.
제리의 고민은 더욱 깊어졌다.
‘부족한 타격은 준수한 배트 스피드 덕분에 이 무대에 조금만 더 적응하면 조금 더 기대해볼 수 있어.’
하지만 여전히 현직 메이저리거들과 그를 두고 선택해야만 한다면?
팀을 위해서는 그래도 경험이 많은 현직 메이저리거를 3루에 배치하는 게 낫지 않을까?
더군다나 164경기를 치르는 메이저리그에서 경험이 부족하면 빠르게 지쳐 금방 퍼질 수도 있다.
제리는 메이저리거 혹은 도진이냐는 선택의 기로에서 피식 웃었다.
오락가락하는 정신이 그저 웃겼으니 말이다.
선택은 언제나 아쉬움이 따르는 법이지만 지금만큼은 아니었다.
결국 그는 도진이라는 선택지에 힘이 더욱 실렸다.
‘이 모든 약점을 상쇄하는 게 바로 투수로서도 등판이 가능하다는 거지.’
도진이 26인 로스터에 합류하게 된다면 에인절스는 야수나 투수를 한 명 추가로 보유할 수 있었으니까.
‘타자는 지금처럼만 해줘도 충분해.’
타자가 매번 잘 칠 수는 없는 노릇.
그 외의 우수한 능력을 갖춘 도진이 남은 시범 경기에서 단 한 번도 출루하지 못한다면 또 모를까.
다른 선수들보다 수준 미달의 타격과 출루를 기록해도 다른 능력으로 커버해서 충분히 로스터에 이름을 올릴 수 있다.
‘대신 어디까지나 투수로서 능력이 뒷받침되었을 때지. 패스트볼만으로 절대 메이저리그에서 살아남지 못해.’
하지만 예상을 깨고 그가 투수 부분에서도 괜찮은 활약을 펼친다면?
‘에인절스는 18세 메이저리거를 보유하게 된다.’
물론 타자들의 컨디션은 계속해서 올라오고 있었으므로 살아남았을 때의 얘기였다.
* * *
“하아.”
도진은 한숨을 내뱉으며 더그아웃으로 돌아왔다.
오늘 파드리스와의 경기에서 3타수 무안타로 아쉬운 활약이었으니 말이다.
상우가 위로를 건넸다.
“이제 진짜 우리가 어떤 무대에 있는지 실감 나기 시작했다. 선수들은 1, 2주 때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들이야.”
친구를 위한 위로가 아닌 진심이었다.
투수는 늘 티비에서만 봐오던 턱이 떡하니 벌어지는 공을 던지고 있다.
타자들의 스윙은 또 어떻고.
걸리기만 하면 담장을 넘길 것만 같았다.
무엇보다 선수들은 더욱 진지해졌다.
도진은 상우의 위로에 마음을 추슬렀다.
‘그래. 어떻게 매번 잘하냐?’
매번 잘했다면 지금 경쟁을 펼치는 것이 아닌 여유롭게 컨디션 관리나 하고 있었겠지.
자신이 해야 할 일은 결과가 좋지 못해도 상심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것.
때마침 제리는 휘파람으로 도진을 불렀다.
“휘익. 킴.”
도진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즉각 그의 앞에 섰다.
“넵.”
“이제부터는 지명 타자다. 그리고 곧장 불펜으로 들어가라.”
“알겠습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시 때 되면 나와서 타격해야 하는 것도 잊지 말고.”
도진은 오타니 쇼헤이 덕분에 생겨난 오타니 룰에 적용되는 선수다.
선발 투수가 아니므로 도중에 몸을 풀러 불펜에 들어가야 한다.
그런 도진의 체력 안배를 위해 수비를 6이닝 정도만 제안했고 그 첫선을 보이는 경기였다.
불펜에서 공을 던지던 도진은 10구 정도로 짧고 굵게 끝냈다.
‘몸은 진작에 풀려서 영점만 잡으면 돼서 좋네.’
고등학교 시절엔 불펜에서 몸도 풀지 못하고 즉시 등판하는 때도 잦아 상황 자체는 익숙했다.
그렇기에 배려를 등에 입은 지금의 컨디션이 더욱 최상이었다.
도진은 마운드에 올랐다.
포수는 다름 아닌 호세였다.
‘이젠 맞더라도 더는 핑계를 댈 수도 없겠지.’
호세는 훌륭한 포수다.
여기서 맞는다면 온전히 자신이 부족해서였다.
그에게서 체인지업 사인이 나왔다.
‘체인지업이라.’
도진은 의심 대신 곧바로 와인드업 후 공을 던졌다.
타자가 움찔거렸다.
배트도 나오다가 멈췄다.
하지만 홈플레이트를 지나 스윙으로 인정됐다.
카운트는 0-1.
유리한 카운트로 시작했지만, 도진의 머릿속 실타래는 더욱 복잡하게 얽혔다.
‘역시. 내 체인지업이 읽힌다.’
방금 타자의 행동을 보면 알 수 있었다.
그는 패스트볼을 노리며 스윙하려고 했다.
하지만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는 자신의 체인지업을 눈치채고 배트를 멈추려고 했다.
호세의 리드가 패스트볼이었다면?
높은 확률로 안타를 맞고 시작했을 것이다.
‘어차피 지금 문제점을 찾는다는 건 말도 안 돼.’
그러니 그저 사인을 따라 최선을 다해 던지는 수밖에.
“스트라이크 아웃!”
도진은 호세의 완벽한 리드에 삼진으로 상대를 돌려세웠다.
그런데도 표정 자체는 딱딱하게 굳었다.
공을 던지면 던질수록 타자는 자신의 공이 익기 마련.
맞서야 하는 다음 타자와 다다음 타자는 자신의 공을 더욱 완벽하게 대처할 것이다.
따-악!
예상대로 다음 타자는 도진의 패스트볼을 제대로 맞췄다.
다만 중견수는 펜스 근처에서 아웃 카운트를 올렸다.
도진은 모자를 벗어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식은땀을 닦아냈다.
‘젠장. 정규 시즌이었다면…….’
아니. 4주 차만 됐어도 방금 타구는 담장을 넘겨버렸을 것이다.
4주 차까지 갈 필요도 없었다.
따-악!
도진은 다음 타자에게서 홈런을 맞았다.
그리고 안타 하나를 더 내줬지만, 그다음 타자에게서 땅볼을 유도해 이닝을 마무리했다.
더그아웃으로 돌아온 호세는 아랫입술을 혀로 적셨다.
‘흠. 뭐가 문제인지 대충 알 것 같군.’
호세는 도진의 체인지업 자체는 괜찮다고 봤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결과를 보면 타자들이 좀처럼 속질 않았다.
그리고 직접 그의 공을 받아본 지금.
호세는 도진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말을 해줘야 할까?’
호세는 고개를 저었다.
깨달음이란 것이 그렇다.
누군가의 입에서 나오는 조언이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만, 어디까지나 본인이 직접 깨닫는 편이 약점을 극복하는 데 훨씬 도움이 된다.
100명이 같은 문제점을 지적해도 본인이 깨닫지 못한다면 절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도진은 그런 선수가 아님을 안다.
그는 100명이 아닌 1명만 지적해도 새겨들을 선수였으니까.
‘지금은 혼자서 깨닫도록 내버려 두는 게 낫긴 한데.’
하지만 반대로 그의 문제점을 전달해 성장의 박차를 가해줄 수 있게 해준다면?
이 또한 과연 나쁜 선택지일까?
호세는 도진의 표정을 힐끗 쳐다봤다.
그러고는 피식 웃었다.
‘나는 저 아이의 머리에 강제로 왕관을 씌워 놓고 애 취급을 했구나.’
이글이글 타오르는 그의 눈동자는 절대 꺼지지 않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괜히 조언이랍시고 건넨 말로 저 불길을 되레 꺼버릴 필요는 없겠지.
* * *
야구는 의욕이 넘친다고 성적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도진은 3주 차에서 두 경기를 치렀다.
타석에서는 7타수 1안타 1볼넷으로 다소 부진했지만, 수비에서의 활약은 여전했다.
대신 투수로는 2이닝 동안 마운드에 올라 2이닝 2실점 2피홈런을 기록했다.
도진이 흔들린다기보다는 메이저리거들의 실력이 제대로 발휘되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오늘 면담이 예정된 도진과 상우는 감독 사무실 앞에서 그의 부름을 기다리고 있었다.
상우가 한숨을 내쉬었다.
“나 이제 진짜 짐 싸야 하는 건가?”
도진도 덩달아 한숨을 내쉬었다.
남 걱정할 때가 아니었으니 말이다.
경쟁자들은 치고 나가고 있는데 자신만 슬슬 뒤처지기 시작했다.
안다. 18세 루키가 꿈이 참 야무지다는 것을.
그래도 문제점만 해결하면 지금보다 훨씬 좋은 퍼포먼스를 보일 수 있었다는 확신이 있어 더욱 아쉬웠다.
때마침 도진과 상우의 성이 동시에 불렸다.
둘은 마른침을 꼴깍 삼킨 채 사무실에 입장했다.
“와서 앉지.”
제리 감독은 즉각 본론으로 들어갔다.
“일단 리. 정말 고생 많았네.”
“아닙니다.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상하고 있으니 얘기를 꺼내기는 편하겠군. 자네는 내일 경기를 끝으로 캠프를 떠나야 할 걸세. 대신!”
제리는 말을 이었다.
“내일 경기에서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리게 될 것이야.”
“저, 정말입니까?”
상우의 목소리에는 환희가 실렸다.
3주 차 끝물의 메이저리거들과 붙어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운이었으니 말이다.
제리는 도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킴.”
“넵.”
“솔직히 이번 주는 기대했던 경기력이 나오지 않고 있어.”
도진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체인지업이 통하지 않는다는 문제에 직면해 경기력에 타격을 입은 걸까?
아니면 그저 부족한 실력 때문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제리 감독에게서 희소식도 들려왔다.
“자네는 아직 떨어진 건 아닐세. 우린 선수를 평가할 때 고작 소수의 경기만 두고 평가하지는 않아. 물론 무대가 무대인지라 기회가 적은 것은 사실이지만, 1주 차부터 지금까지 자네의 성적이 어디 떨어질 성적이던가?”
도진은 지금까지 5이닝 2실점 방어율 3.6이다.
3주 차 2경기에서 주춤해서 그렇지, 여전히 훌륭한 성적이었다.
메이저리거 주전 불펜 중에서 방어율 두 자릿수를 기록하는 선수들도 존재했다.
그리고 타석에서는 9타수 2안타.
타율 0.222로 숫자만 놓고 보면 부진하지만, 볼넷도 두 개나 기록했다.
더군다나 메이저리거이면서 2할도 못 치는 타자들도 다수 있었기에 도진은 평균보다 살짝 못 미치는 성적이었다.
타자는 자주 출전해 타석에 익숙해지는 것이 중요하지만.
적은 기록에서 나오듯이 3주의 끝을 바라보는 지금 도진에게 기회가 많이 주어진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곳은 스프링 트레이닝이 진행되는 캠프다.
루키가 살아남으려면 그 적은 기회를 거머쥘 줄도 알아야 한다.
제리는 말을 덧붙였다.
“자네도 내일 경기를 뛰게 될 걸세.”
마지막이 될 수도 있으니 다음 경기에서 투타 모두에서 본인을 증명하라는 의미.
한 번의 기회가 더 주어졌던 것이었다.
하지만 도진은 면담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그럼. 이만 가보도록 해라.”
사무실에서 나온 상우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좋아. 난 마지막을 불태워볼까?”
상우는 도진의 심각한 표정에 미간을 구겼다.
“왜 그래? 기회가 한 번 더 주어졌잖아? 거기서 다 깨부숴버리면 되잖아?”
상우의 말도 맞다.
내일 경기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면 충분히 4주 차에 돌입할 수 있다.
목숨을 부지한 것만으로 쾌재를 불러도 모자랄 판에 도진의 표정은 더욱 어두워졌다.
“내일 우리 어디랑 붙는지 아냐?”
“어딘데.”
도진의 입에서 세상 다 산 사람에게서나 나올법한 한숨이 뿜어져 나왔다.
“다저스. 그리고 선발 투수는…….”
조엘 오스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