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seball genius who chews up America RAW novel - Chapter (173)
미국 씹어먹는 야구 천재-173화(173/400)
청천벽력의 소식에 상우는 버벅였다.
“누누누…… 누구?”
“조엘 오스틴.”
상우의 턱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벌어지기 시작했다.
“왜, 왜 하필.”
머리가 복잡했다.
캠프에서의 고별전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싶었는데 상대가 하필 미국 1선발이자 지구 1선발이다.
“공을 갖다 맞추기만 해도 다행이겠네…….”
상우는 이내 눈을 질끈 감았다.
자신은 탈락 예정자. 하지만 도진은 아직 탈락이 확정되지는 않았다.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경기에서 최고의 투수를 만나는 그의 머릿속이 얼마나 복잡할지는 차마 예상이 가지 않았다.
상우는 아랫입술을 잘근 씹었다.
“에, 에이! 조엘 오스틴이 무슨 방어율 0 투수도 아니고 똑같은 인간이잖아? 그리고 조엘 오스틴도 아직 몸 상태가 완벽하지 않을걸?”
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 경기만 아니었다면 내일 경기가 기대됐을 것이다.
조엘과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대량의 경험치를 얻을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루키로서, 마지막 기회에서 만나는 상대가 하필이면 메이저리그 최고의 투수라니.
감독의 선택이 조금은 원망스럽기도 했다.
“도진아. 방법이 하나 있다.”
“뭔데.”
“연락해서 봐달라고 하자.”
도진은 눈초리를 가늘게 찢고 상우를 미친놈 보듯 쳐다봤다.
상우는 뒤통수를 벅벅 긁었다.
“장난이야 인마. 긴장 풀어.”
도진은 피식 웃고 고개를 끄덕였다.
실없는 농담은 때로는 도움이 된다.
안 그래도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이 무대에 진입한 순간부터 단 한 번의 여유도 가져본 적이 없었다.
“그래. 끽해야 떨어지기밖에 더 하겠냐?”
상우도 고개를 까딱했다.
“그레그시치 봐라. 우리 또한 1주 차에 떨어졌어도 할 말 없었을걸?”
“그건 그렇지. 그레그는 잘하고 있으려나.”
상우는 도진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내가 내일모레 직접 가서 보고 알려줄게. 넌 남아서 이곳의 소식을 전달해줘.”
도진의 입꼬리가 치솟았다.
“이왕 이렇게 된 김에 연습이나 더 할래?”
“좀 쉬어라. 때로는 휴식이 최고의 컨디션 조절이야.”
* * *
시합 당일.
경기를 앞둔 에인절스 더그아웃은 시끌벅적했다.
호세는 오늘 경기에 나서는 도진과 상우를 불렀다.
“어이 친구들.”
“넵.”
“오늘 누가 LA의 주인인지 가르는 날이다. 알지?”
도진과 상우는 그저 눈만 끔뻑였다.
월드 시리즈도 아니고 고작 시범 경기에서 주인을 가르다니.
애당초 주인을 가르는 경기에서 루키 둘을 내보낼 리가 있나?
그보다 일단 비교 대상은 되고?
다저스야 밥 먹듯이 플레이오프에 나가는 팀이지만, 에인절스는?
호세는 둘에게서 대답이 없자 미간을 구겼다.
“이놈들 봐라? 내 말이 우스워?”
도진이 대표로 대답했다.
“우습진 않은데요. 시범 경기로 LA의 주인을 가를 수 있나요?”
“쯧. 우린 그렇게 생각 안 해도 네놈들은 그런 마음가짐으로 임해야지.”
아하? 도진과 상우의 눈이 번뜩였다.
이내 마음에 투쟁심을 지피는 조언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호세는 상우를 향해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애송아. 넌 오늘 특별히 더 잘해야 해.”
“왜, 왜죠?”
호세는 에휴! 한숨을 쉬더니 우측에 앉아 있는 벨을 향해 슬쩍 고갯짓했다.
“고작 너 따위가 우리 에인절스 1선발의 투구를 받는데 대충하려고 했어?”
“죄, 죄송합니다!”
“최선을 다해야겠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고작 최선을 다해서 되겠어?”
“목숨을 걸겠습니다!”
“좋다. 그런 마음가짐이다. 너는 져도 벨은 져서는 안 돼! 무슨 말인지 알지?”
상우는 뒤통수를 벅벅 긁었다.
배터리는 하난데 어떻게 그게 가능한 거지?
져도 같이 지는 거 아닌가?
호세는 의문 가득한 표정의 상우를 무시하고 도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어이. 투타 겸업 애송이.”
“넵.”
“네가 오늘 상대하는 선수가 누군지는 알지?”
“조엘 오스틴이요.”
“나는 몰랐으면서 조엘 오스틴은 안다고?”
끄응.
도진은 혀를 날름거렸다.
사실 호세도 누군지 알고 있었지만, 아부 때문에 모르는 척했을 뿐.
‘이게 이렇게 돌아오네.’
이래서 거짓말은 좋지 않다.
그래도 지금은 임기응변이 필요할 터.
“그래도 더 잘생겼으면 된 거 아닌가요?”
“으하하하! 그렇지! 그것도 맞지.”
휴. 단순해서 다행이다.
도진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호세는 이내 표정을 굳혔다.
“솔직히 묻겠다. 벨이 조엘 놈에게 도대체 어떤 면에서 밀리냐? 어?”
호세는 곧장 말을 덧붙였다.
“조엘이 벨처럼 나이가 많기라도 하냐? 아니면 플레이오프를 매번 못 나가기라도 하냐? 그것도 아니라면 미국 1선발 자리를 후배에게 내어주기라도 했냐? 도대체 우리 벨이 조엘에 비해 뭐가 부족한데?”
조엘은 벨보다 나이도 어렸으며 플레이오프도 밥 먹듯이 나갔고, 더군다나 WBC 1선발 자리도 벨에서 조엘로 변경되었다.
‘도, 돌려 까는 건가?’
도진은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옆에서 가만히 듣던 벨은 호세의 뒤통수를 퍽 쳤다.
“백업 새끼가 말이 많네.”
호세는 키득키득 웃었다.
“하여튼 난 저 기생오라비 조엘 놈이 마음에 안 들어. 다저스라서, 그리고 매우 잘나서도 그래. 그러니 오늘 넌 저 조엘 놈을 무너뜨려라. 임무다.”
도진은 슬쩍 미소 지었다.
말은 저렇게 해도 호세라면 자신이 처한 상황을 알고 있을 터.
상대가 상대지만 꼭 이겨서 살아남으라는 의미였다.
그런데 그때.
호세가 말한 기생오라비가 에인절스 3루 측 더그아웃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뭐야? 저 새끼 왜 여기로 오는데?”
시끌벅적했던 더그아웃이 일순 침묵했다.
그만큼 조엘 오스틴이 메이저리그에서 얼마나 뛰어난 선수인지 위세를 엿볼 수 있었다.
그는 더그아웃 입구에서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여. 벨. 호세. 오랜만이네.”
벨은 고개만 가볍게 끄덕였고 호세는 하얀 이빨을 드러냈다.
“어디서 친한 척이야! 이 핏덩이 자식아!”
“왜 이래? 우리 좋았잖아?”
“좋긴 언제 좋아?”
“WBC에서?”
“고작 전승 우승한 걸로 좋았다고?”
“호세 당신 말이야. 결승 직후 트로피 들고 세상 다 가진 사람처럼 웃는 사진이 우리 집에 걸려 있는데?”
“다, 닥쳐! 그나저나 왜 왔어? 시답잖은 인사나 하려고 온 건 아닐 테고.”
“거기 루키 좀 잠깐 빌려가려고.”
조엘은 도진을 가리켰다.
그 즉시 에인절스 선수들 전원의 동공이 팽창했다.
호세는 도진을 손으로 감싸는 시늉을 했다.
“야! 이 아이는 우리 에인절스 선수야. 어디서 눈독을 들여?”
“그 전에 내 후배다.”
“후, 후배?”
“응.”
호세는 도진을 힐끗 쳐다봤다.
“너 고등학교 어디 나왔는데?”
도진은 나지막이 속삭였다.
“FS요.”
“Fuc*ing Shi*.”
“FS가 그 뜻이 아닌데요.”
“나도 그냥 욕한 거야. 진짜 선후배였네.”
도진은 호세만 듣게끔 더욱 조용히 말했다.
“도움도 좀 받긴 했습니다.”
“도움까지?”
“네.”
“에휴. 그래. 가봐라. 배신자 자식.”
“다녀올까요? 가지 말라고 하시면 안 가겠습니다. 저는 에인절스 소속이니까요.”
호세는 흐뭇하게 웃더니 조엘을 향해 따가운 눈초리를 쏘았다.
“들었냐? 선후배보다 중요한 게 바로 팀 메이트다.”
조엘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말투로 대답했다.
“이야. 정말 부러워 미쳐버릴 지경이야. 나도 에인절스가 되고 싶네.”
호세는 도진의 등을 툭툭 밀었다.
가보라는 뜻이었다.
도진은 고개를 꾸벅 후 더그아웃을 벗어났다.
조엘은 그 즉시 도진의 어깨를 감싸더니 다저스 측 더그아웃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오랜만이네. 여기서 보니까 감회가 또 새로워. 지낼 만해?”
“숨 막혀 죽을 것 같아요.”
“하긴. 풀 타임 경험도 없는 18세가 이곳에 있는 게 이상하긴 하지. 그만큼 잘하고 있다는 얘기지만.”
놀란 카브레라와 타카시 사토도 스프링 트레이닝에 초청받지 못했을 만큼 도진은 특별 케이스였다.
누구보다 빠르게 싱글 A에서부터 자신의 기량을 증명했고, 가을리그에서도 멋진 활약을 펼쳤기에 가능했다.
첫 무대가 가을리그였다면 아무리 좋은 활약을 펼쳤어도 초청받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
물론 상우도 18세지만, 그는 한국에서 뛰었기 때문에 미국인들보다 조금 더 프로에 일찍 몸을 담을 수 있던 것이고.
어디까지나 포수 포지션 특성상 공을 받아줘야 했으므로 발탁된 것이었다.
도진과 조엘은 어느덧 다저스 더그아웃 근처에 도착했다.
그러자 익숙한 얼굴이 더그아웃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앤서니였다.
“여. 슈퍼 루키.”
도진의 눈이 호선을 그렸다.
“앤서니.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셨어요?”
“덕분에. 너도 보기 좋아 보이네.”
앤서니는 작년까지만 해도 트리플 A 소속이었다.
지금까지 캠프에 살아남았다는 건 메이저리거를 눈앞에 두고 있다는 의미가 되겠지.
‘이렇게 될 줄 알았지만, 막상 직접 확인하니 더 기분이 좋네.’
가벼운 인사가 끝나자 조엘이 물었다.
“3루로 보직을 옮긴 모양이더군.”
“네. 그렇게 됐어요.”
“불펜도 함께 맡게 됐던데. 할만하고?”
“어색하지는 않습니다.”
“특이해서 물어봤다. 우리가 흔히 아는 투타 겸업과는 다르잖아?”
메이저리그에서 흔히 아는 투타 겸업이란 선발 투수와 지명타자를 오가는 포지션을 말한다.
현대 야구에서 투타 겸업으로 성공한 선수는 단 한 명뿐이었으니 말이다.
도진은 그 포지션과는 별개의 길을 걷고 있다.
물론 차후에도 이 보직이 유지될지는 모르겠지만, 조엘은 에인절스가 도진을 끔찍이 아끼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렇게 빠르게 만나게 돼서 반갑긴 한데 요즘 네 상황이 그리 좋아 보이진 않던데? 어때. 오늘 좀 봐줄까?”
“안 봐주실 거잖아요.”
“울며불며 사정하면 한 번쯤은 봐줄 수도 있는데?”
도진은 에휴! 한숨을 내뱉었다.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아요.”
가만히 듣던 앤서니가 너스레를 떨었다.
“이야. 우리 슈퍼 루키 큰일 났네. 안 그래도 어제 조엘이 널 만나면 가차 없이 뭉개겠다고 하던데. 봐주겠다는 걸 직접 걷어찼으니 오늘 긴장 좀 해야겠어?”
“앤서니까지 왜 그래요. 안 그래도 지금 너덜너덜합니다.”
앤서니는 도진의 머리를 좌우로 헝클었다.
“미안하다. 어쨌거나 오늘 좋은 경기 해보자고.”
조엘도 한마디 거들었다.
“이만 가봐라. 몸 완벽히 풀고 최상의 컨디션으로 만나자.”
“알겠습니다. 가볼게요.”
도진이 자리를 떠나자 앤서니가 입을 열었다.
“어이. 원래 시합에 앞서 저 친구가 겪는 문제점을 짚어준다고 하지 않았어?”
“그랬었지.”
“알려준 거야?”
“그럴 필요 없더라고. 아까 잠깐 저쪽 더그아웃을 방문했을 때 깨달았지.”
도진은 에인절스 메이저리거들에게 인정받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가 체인지업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에인절스 메이저리거들도 파악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이 문제점을 짚어주지 않았다는 것은.
‘그를 한 명의 메이저리거 감으로 보고 더 강하게 키우기 위함이겠지. 그러니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오늘 경기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고.’
조엘의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고등학생인 도진의 성장 과정을 쭉 track(추적)했다.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자신이 한참 수준이 낮은 고등학교 리그에 심장을 뛰게 만든 장본인과의 승부.
더군다나 그는 자신이 이루지 못한 업적을 남기고 고등학교를 졸업했으니 비록 시범 경기지만 이날만을 기다려왔다.
‘오늘은 함께 성장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