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seball genius who chews up America RAW novel - Chapter (180)
미국 씹어먹는 야구 천재-180화(180/400)
호텔 방에 도착한 도진은 복잡 미묘한 표정으로 침대에 걸터앉았다.
‘음. 어쩌지?’
메이저리그 계약을 했다고 지인들에게 알려야 하는 것일까?
하리나 마이크는 학기가 곧 시작된다.
한국에 계시는 부모님은 경기를 보시려면 새벽 내내 깨어 있으셔야 한다.
그런데 출전을 못 하면?
“김만 샐 텐데.”
그렇다고 상우나 그레그한테는 더더욱 알릴 수 없다.
지금 한창 하이 A에서 잘하고 있는 그들의 마음을 뒤흔들고 싶지는 않았다.
“부모님께는 좀 천천히 알리는 걸로 하고.”
도진은 핸드폰을 열었다.
[나: 메이저리그 계약했어.] [하리: 메이저리그 계약? 콜업 된 거야?] [나: 응.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 [하리: 아직 8월이잖아? 더블 A에서 좋은 성적을 내서 확정 로스터에 포함될 줄은 알았는데. 아예 메이저리거로 올려버린 거네?] [나: 얼떨떨하긴 해.] [하리: 도진이 너라면 잘 해낼 줄 알았어. 정말 축하해!] [나: 경기 챙겨보거나 하지는 말아줘.] [하리: 왜? 부끄러워?] [나: 그런 건 아니고. 언제 출전할지 모르니까.] [하리: 에인절스 감독이 바뀌었지. 그럴 수도 있겠다. 조 케넌 감독 특성상 검증된 선수들로 우승했으니까.] [나: 구단에서도 걱정하긴 하던데.] [하리: 그래도 구단이 리빌딩을 선언했으니 기회는 무조건 올 거야. 너라면 그 기회를 무조건 잡을 테고.] [나: 고마워. 덕분에 마음은 조금 편해졌어.] [하리: 응원할게! 좋은 소식 있으면 또 알려줘!]싱숭생숭한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았다.
덕분에 도진은 마이크에게도 연락을 보냈다.
[나: 메이저리그 계약했다.] [마이크: 알아 임마.] [나: 어떻게 알아?] [마이크: 어제 더블 A 경기에 출전 안 했더만. 그리고 에인절스 선수 하나가 부상 당했잖아?] [나: 내가 트리플 A로 갔을 수도 있잖아.] [마이크: 원래는 그게 정석이긴 하지. 근데 에인절스 팜이 좀 구리냐? 최근에 포텐 높은 선수들을 수급했지만, 시기상조. 결국 올라갈 사람이 더블 A 폭격한 너밖에 없었지.] [나: 고맙다.] [마이크: 고맙긴. 물론 조 캐넌 감독 알지?] [나: 대충은 알아.] [마이크: 기회 올 때 잡아라. 아니 내가 볼 땐 기회는 무조건 온다. 여튼 경기 챙겨 볼 테니 삽질하지 말고.] [나: 언제 출전할지는 몰라. 그냥 하이라이트나 챙겨 봐.] [마이크: 누가 너 본다고 그랬냐? 난 그냥 에인절스 경기를 챙겨볼 뿐이야.] [나: 언제부터 에인절스 경기 챙겨봤다고. 너 다저스 찐팬이잖아.] [마이크: 닥쳐. 바쁘니까. 수고해라.]미국 생활에 큰 도움을 준 두 친구와의 연락 덕분일까?
도진의 마음은 차분히 가라앉았다.
‘지금껏 해왔던 것처럼 최선을 다해보자.’
마지막으로 도널드 감독에게도 이 소식을 전했다.
* * *
다음 날 아침.
도진은 호텔 조식을 먹고 슬슬 나갈 준비를 끝마쳤다.
4시까지 구장에 도착하면 된다는 말에 30분 일찍 도착하게끔 출발했다.
오후 3시 30분에 에인절스 스타디움에 도착했다.
구장을 한눈에 담은 도진은 한숨이 절로 튀어나왔다.
‘어휴. 긴장되네.’
이내 눈을 질끈 감고 구장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자신을 알아보는 남성이 서둘러 다가왔다.
“킴! 오셨군요!”
“아. 네. 네.”
“안 그래도 안내를 맡아달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바로 라커룸으로 이동하시겠습니까?”
“부탁드리겠습니다.”
라커룸으로 향하는 도진의 발걸음은 다소 무거웠다.
‘일찍 나오긴 했는데.’
스프링 캠프 때처럼 먼저 도착해서 선수들에게 인사를 건네기 위함이었다.
아무래도 막내가 뒤늦게 도착하는 것보단 모양새가 좋았으니 말이다.
어느덧 라커룸 앞에 도착했다.
도진은 문고리를 비틀자 안에서 들려오는 시끌벅적한 소리에 다시 문을 닫았다.
‘뭐야?’
4시까지 오라고 하지 않았나?
왜 다들 모여 있는 거지?
식은땀이 등골을 타고 흘러내렸다.
다행이라면 아직 자신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
‘이걸 어쩌지?’
도진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등 뒤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움찔 놀랐다.
“뭐야? 웬 애새끼가 왔어? 아가야. 엄마 잊어버렸어? 여긴 네가 올 곳이 아닐 텐데?”
도진은 천천히 뒤로 돌아봤다.
호세가 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씨익 웃고 있었다.
“오랜만이에요.”
“네가 콜업된 거냐?”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X발. 이럴 거 진작에 올렸으면 좋았잖아? 안 그래?”
도진은 눈을 끔뻑이다 말고 나지막이 읊조렸다.
“글쎄요.”
호세는 비키라며 도진의 어깨를 툭 치고는 문을 활짝 열었다.
“애송이 받아라!”
라커룸 안을 가득 메우는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모든 시선이 문 앞으로 쏠렸다.
반응들은 이랬다.
“저 노친네 또 시작이네.”
“에휴. 분위기도 안 좋은데 정신 못 차리는 거 봐라.”
그도 그럴 것이 도진은 호세의 등에 가려져 아직 다른 선수들의 시야에 보이지 않았으니 말이다.
“애송이 받으라고!”
레이날도가 혀를 찼다.
“뭔 애송이! 정신 좀 차리라고!”
“여기 있잖아. 애송이.”
호세는 등 뒤에 가려진 도진의 팔을 잡아 앞으로 끌어당겼다.
덕분에 도진은 모든 시선을 한 몸에 받게 되었다.
“하. 하하. 안녕하세요.”
일순 침묵이 흘렀다.
그들 역시 이 광경을 믿지 못하는 눈치.
침묵을 깬 건 벨 조이스였다.
“Welcome to major league.”
* * *
도진은 정신을 차릴 틈이 없었다.
호세가 레이날도 옆 라커를 배정해주어 짐을 푼 것까진 기억이 났다.
이어서 다양한 질문 공세가 이어졌지만, 어떤 질문이었는지 어떤 대답을 했는지는 도통 기억이 나질 않았다.
호세가 다가와 도진의 머리를 주먹으로 쿵 내리쳤다.
“이거 받고 정신 차려.”
호세가 건넨 건 다름 아닌 유니폼이었다.
가을리그나 스프링 트레이닝 기간에도 에인절스 유니폼을 입고 있었지만, 그때와 다른 점이 있었다.
바로 유니폼에 등번호와 이름이 박혀 있었다는 것.
51번. 그리고 Kim.
그 때문에 또 한 번 가출한 정신을 되찾기 힘들었다.
“너. 첫날부터 누가 이렇게 늦게 나오래.”
“오늘 4시까지 나오라고 했거든요.”
“누가! 어떤 미친놈이 그래? 적어도 경기 시작 3시간 전에는 나와 있어야지!”
“단장님이요.”
씩씩대던 호세의 표정이 사르르 녹아내렸다.
“그렇군.”
호세는 도진을 위아래로 훑더니 다시 물었다.
“몸이 조금 더 좋아진 것 같은데? 물론 미세하지만.”
“잘 모르겠습니다. 몸무게가 자주 왔다 갔다 하고 있거든요.”
“쯧쯧. 관리 좀 똑바로 해라. 그나저나. 왜 네가 콜업이 된 거지?”
“잘 모르겠습니다.”
“좀 쳤어?”
“그냥 적당히 친 것 같습니다.”
“얼마나 쳤는데.”
옆에 있던 레이날도도 귀를 쫑긋 세웠다.
도진은 뒤통수를 긁적이다가 나지막이 읊조렸다.
“3할 4푼 정도……”
“3할 4푼? 3할 사아 푼?”
“조, 조용히 좀……”
“이야. 같은 메이저리거 됐다고 벌써 기어오르는 건가?”
“그런 건 아니고요.”
호세는 도진의 목을 감았다.
“홈런은? 5개는 쳤냐?”
“그거보다는 조금 더 쳤습니다.”
“7개?”
“아뇨.”
“몇 개 이 자식아!”
도진은 이번에도 속삭이듯 말했다.
“15개요.”
“15개? 열 다서엇개? 조금 더 가 아니잖아? 말장난이 늘었네? 도루는 몇 개 했는데.”
“25개요.”
“아쉽겠어?”
“뭐가요?”
“20-20 앞두고 콜업된 거 아냐?”
“아쉽다뇨. 홈런이 그리 자주 나오는 것도 아닌데요.”
“마이너리그 기록 따위는 기록도 아니다?”
“네?”
“네가 있을 곳은 오로지 메이저리그다?”
“제가 언제 그랬어요.”
레이날도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만 좀 해라. 왜 오늘 온 애 기죽이고 난리야. 그나저나. 투수로서의 기록은 어땠어?”
“음…….”
“괜찮아. 편하게 말해봐. 방어율부터.”
“1.9 조금 못 미쳤습니다.”
“1.9? 2.9 아니고?”
“넵.”
“보직은 뭐였는데.”
“홀드 5개 그리고 세이브 20개를 기록했습니다.”
레이날도의 입이 벌어졌다.
“셋업에서 마무리로 바뀐 거네.”
도진은 뒤통수를 긁적였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요.”
“어쩐지. 20-20을 아쉬워하지 않더라니.”
“무슨 말씀이세요.”
“이미 도루와 세이브 부분에서 20-20은 달성했네. 전혀 상관없는 20-20이지만.”
가만히 듣던 호세가 미간을 구겼다.
“그나저나 정말 말도 안 되는 기록이긴 하네. 널 올리지 않았다면 그건 우리 구단이 잘못된 거겠지.”
그래서 다행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만약 도진이 아직도 어리다는 이유로 올라오지 못했다면?
이 구단에는 미래 따윈 없다는 뜻이리라.
호세는 금세 미소를 띠었다.
이 결단은 에인절스가 변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었으니 말이다.
‘물론. 이미 이번 시즌은 물 건너갔지만.’
하지만 괜찮다.
오히려 이번 시즌 대차게 말아먹었으니 도진에게는 오히려 호재였다.
‘문제는 출전인데.’
호세는 도진에게 물었다.
“어이 애송아. 너 더블 A에서는 풀 타임으로 뛰었냐?”
“아뇨. 경기에 많이 나가긴 했지만, 풀 타임까지는 아니었어요.”
“얼마나 뛰었는데.”
“2/3 조금 더 뛰었습니다.”
호세는 턱을 매만졌다.
이로써 에인절스는 도진을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나도 바라는 바야. 언젠가 팀의 중심이 될 선수를 무리하게 굴려서는 절대 안 되지.’
대신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풀 타임을 출전하지 못한 선수를 조 캐넌 감독이 기용할까?
눈에 들기도 어려울 것이다.
조 캐넌 감독은 리빌딩에 강한 감독이 아니다.
오히려 리빌딩으로 따지면 제리 감독이 조금 더 나았다.
‘원래 우리 에인절스도 7월까지는 와일드카드를 다투고 있었어.’
슬슬 힘에 부치자 제리 감독은 구단에게 도진을 올려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결국 그의 요청은 이루어지지 않아 사퇴하게 됐고.
와일드카드를 다투던 에인절스는 결국 감독이 바뀌고 뒤숭숭해진 분위기를 뒤집지 못해 꼴찌로 내려앉았다.
‘물론 이해가 안 되진 않아.’
더블 A를 폭격하는 도진이 페이스를 유지하게끔 두고 싶었던 것.
조금 더 안전하게 키우겠다는 의미였다.
에인절스가 도진을 내년에 올렸어도 시기적으로 여전히 빠르다.
19세에 메이저리그를 밟는 선수 역시 극소수에 불과한데 그는 그보다 어린 18세였다.
21세기가 도래한 이후 18세에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선수가 없던 것을 생각하면 그는 이례적인 경우임이 분명했다.
‘그렇다 해도 새로 부임한 감독님이 이 부분을 용납하기는 어렵지.’
호세는 뒤통수를 벅벅 긁었다.
타자와의 수 싸움을 제외.
머리를 쓰는 건 자신의 성미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걱정할 거 있겠어?’
지금껏 봐왔던 도진이라면 알아서 잘 해낼 것이다.
호세는 도진을 위아래로 훑었다.
“옷 다 갈아입었냐?”
“넵.”
“그래. 연습하러 나가자.”
경기에 앞서 선수들은 가벼운 라이브 배팅과 피칭으로 몸을 푼다.
하지만 신인 선수에게는 연습도 결국 쇼케이스나 다름없었다.